메뉴 건너뛰기

전집

전집은 OCR 스캔 잡업으로 진행되어 오탈자가 있습니다.
오탈자를 발견하면 다음과 같이 등록해 주시면 관리자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 수정 요청을 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2. 본문을 읽는 중에 오탈자가 있는 곳을 발견하면 앞뒤 텍스트와 함께 마우스로 선택합니다.
3. 그 상태에서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하여 나타나는 창에서 수정 후 [수정요청]을 클릭합니다.
4. 각주의 경우에는 각주 번호를 마우스오버하여 나타난 창을 클릭하면 수정요청 창이 열립니다.

※ 컴퓨터 브라우저에서만 가능합니다.
제1부
옳은 민족 옳은 역사
서양 사람 한국 사람
유럽 사회의 모순

유럽이란 그 생명이 그 질서에 있는 것이 아니더라. 오히려 모순이 그 동력이더라. 우리는 서양의 역사가 커다란 두 사조의 투쟁의 역사임을 안다. 그것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다. 그 역사를 두고 줄곧 이 두 사조가 맞서고 뒤섞이고 하기를 철학, 신학, 문학에서 계속해왔다. 그들은 그 어느 것도 버리지 못했으며, 또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서 미해결의 모순이면서 그들의 투쟁사를 이루었고 그 투쟁이 바로 그들의 삶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두 모순율만 본 것이 아니고 한 사조 안에서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순에서 사는 것을 본다. 그것은 유대인의 문제이다.

유대인 문제를 모르고는 유럽을 알 수 없다. 이들의 반 유대인 감정이 벌써 뚜렷하게 행위로 나타난 것만 해도 로마의 네로 시대부터다. 로마가 유럽을 비롯해 그의 판도를 세계로 넓혔을 때 팔레스타인이 예속됨을 계기로 유대인은 로마 판도 내의 산지 사방으로 대이동을 했던 것인데, 그때 로마에도 많은 유대인이 모여듦으로써 벌써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네로가 스스로 로마를 불태움으로써 그 광증의 극을 나타낸 후 원망하는 민중의 화살을 유대인들에게 돌린 것이 저 유명한 기독교도 박해였다. 그것은 따져보면 기독교 자체에 대한 박해이기보다는 당시의 로마인의 반유대적 감정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 후부터 줄곧 유대인 박해는 계속되어 벌써 1492년에 스페인에서 200만의 유대인을 추방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들은 네덜란드, 발칸, 레반트 등으로 흩어졌으나 거기서도 또다시 반유대인 운동이 일어났다. 독일에서는 14세기 때부터 벌써 반유대인 감정이 농후해서 십자군 시대,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날로 고조되었다. 18세기에 유대 음악가인 멘델스존의 아버지 모세의 활동으로 정식 독일인으로 되어 철학, 예술의 기술 방면에 결정적인 공로를 세워 히틀러 당시까지 벌써 독일계 유대인으로 14인이 노벨상을 받아 독일을 세계에 빛냈건만 히틀러는 30만의 유대인을 축출하더니 그 광증은 확대되어서 이미 유대 말까지 다 잊어버린 자들을 그 핏줄기까지 더듬어 올라갔다. 독일 내뿐 아니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점령하는 대로 유대인을 골라내어 무려 500만 명을 죽이되, 아이 어른할 것 없이 빵 조각 하나 안 주어 굶어 죽이고, 한꺼번에 수천 명 가스 가마에 쓸어 넣어 죽이고, 그 기름을 짜 죽였던 것이다. 이는 히틀러 개인에게만 그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전 독일 민족 내지 전 유럽인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기독교 천하에 이런 있을 수 없는 소름 끼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을 알고도 그때 자기 나라를 개방해서 그들을 받아들인 나라란 극히 적었으니 말이다. 러시아도 벌써 19세기 말에 유대인 감정을 터뜨려 박해 끝에 그 전부를 추방해버렸던 것이다. 지금도 900만 유대인 중 미국에 700만, 러시아에 200만을 위시해 각 나라에 퍼져있는데, 히틀러 이후에 표면상으로는 잠잠하나 각 개인의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은 골수에 사무친 것이고 음으로 양으로 그 박해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직접 "난 내 딸을 아무에게나 줄 수 있어도 유대인에게는 안 준다" "뱀과 한 방에서 잘 수 있어도 유대인과는 이웃하기 싫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왜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없다. 아무런 죄상을 밝힌 것도 없이 히틀러도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웃지 못할 모순성은 또 다른 데 있다. 그것은 그들의 생활 속속들이 유대인으로 정복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전 유럽이 기독교로 일색된 걸 안다. 이르는 곳마다 교회, 교회, 교회다. 그 교회 안에 그들이 모시고 있는 것은 몽땅 유대인이 아닌가? 예수가 그렇고 바울이 그렇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위시한 열 두 사도가 그렇고 성모 마리아 역시 그렇다. 이들을 그들은 교회에, 가정에, 어떤 집회 장소 등 구석구석에 모시고 있는 것이다. 저들의 예술품은 유대 역사 사실로 차 있고 그들의 모든 생활 계율이 유대의 전통에 의거해 있고 저들의 이름의 대다수가 유대인의 이름을 따고 있다. 저들에게는 따로 그리스도 전사(前史)가 없고 유대 역사가 그대로 그들의 전사로 되어 있다. 몇 대 전의 핏줄기까지 찾아 말살해버리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이것은 대체 무슨 모순인가! 그들은 사실상 민족적 인간으로서의 유대인을 증오 축출함으로써 보다 높은 차원에서 다시 모셔들여야만 했다.

이 모순을 통절히 느낀 니체는가독교에 반항해 말하되 저놈들이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예수라는 가상의 연극을 꾸며서 닫힌 문을 열고 당당히 세계를 정복하고 있다고 했던 것이고, 히틀러도 기독교 박해를 감행하면서 무엇보다 구약을 배척하려고 발악을 했던 것이나, 그들도 이 모순을 제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역시 어리석은 반항을 했다. 그 부딪쳐본 것이 달걀로 바위를 깨려는 우둔함이거니와 그보다 그들은 그 모순을 제거함으로써 유럽은 아주 죽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걸 몰랐다. 왜냐하면 이 모순이 바로 그들의 삶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이 모순이 끝없는 거암처럼, 밑 없는 심연처럼 그들 앞에 놓여져서 저들에게 평면 뒤에 숨은 것을 찾게 했고, 역사란 것이 하나의 기계가 아니라 인격이라는 것을 알게 했고, 자유와 결단을 알게 했고,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그 몸부림은 관념철학을, 변증법적 사고를 낳게 했고 르네상스를, 프랑스 혁명을 낳게 된 것이라고 나는 보는 것이다. 모순 없이 투쟁이 있나? 없다. 모순 모르고 대결 정신이 나오나? 안 나온다. 모순 없이 자유가 무엇인지 아나? 모른다. 모순 없이 결단이 나오나? 안 나온다. 결단을 모르고 인격을 아나? 모른다. 인격을 모르고 자유를 아나? 모른다.

서양은 모순 덩어리다. 철학과 종교를 함께 가짐이 모순이다. 그렇게 이성적인 이들이 법왕의 무오설을 내세우고, 그 때문에 발을 핥는 게 모순이다. 신을 찬미하면서 실생활은 날로 유물적으로 흐르는 게 모순이다. 사랑의 종교를 가지고 전쟁 준비만 하는 게 모순이다.

결국 제1모순은 저들이 성서를 유일한 경전으로 가진 것이 모순이다. 도대체 저들이 가진 성서가 그대로 모순의 책인 것이다. 외적으로 보아 합해진 한 책인데, 사고 방법이 아주 다른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그리스어로 된 것이 모순이다. 그 내용으로 보아 절대의(絶對義), 절대 사랑을 함께 강조함이 모순이다. 그 하나님 자체가 모순이다. 선악과를 만들어 세우고 먹지는 말라 하고 유혹의 악마를 보낸 모순의 주체이다. 죄짓기를 방임하고 그 아들을 죽여서 구한다는 사실이 모순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복음을 거리끼는 것(Hindernis)으로 받았고, 그는 그것을 전함에 지혜의 말을 쓰지 않고 미련한 전도의 말로 전한다고 했다.

서양인은 왜 하나님이 악과 선을 함께 지었나, 그리고 악마와 천사를 함께 창조했냐고 묻기보다 오히려 이 모순을 모순대로 놓고 싸운다. 그게 바로 인생임을 안다. 그래 인생이란 싸움 마당임을 안다. 그들은 생을 장애물 경기장같이 알고 싸우며 뛴다. 그들의 전통은 그들의 장애물이다. 그들의 낡은 기독교도 장애물이다. 그들의 사상사가 역시 앞으로 나아가기에 장애물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제거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또렷또렷하게 인식하면서 앞으로 뛴다. 루터가 과거 전통을 치워버린 게 절대로 아니다. 그는 그것과 대결함으로써 그것을 더 밝혀놓았다. 루터의 일면만 소개받은 우리는 그들이 아주 가톨릭적인 것을 물리쳐버렸나 생각하기 쉬워도 실상 여기 와보면 그가 낳은 신교 특히 루터교회는 그 예식, 기도문, 심지어 가슴에 십자가를 그리는 것까지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모순을 제거하려면 성경 자체를 제거해야 할 터이나 실상 그는 그것을 더 밝힘으로써 거사(擧事)를 이루었다. 르네상스가 그것이다. 철학 사상가가 그렇다. 가령 키에르케고르가 헤겔을 무시했나? 아니! 그가 그에 대항하여 집요한 싸움을 했다는 사실이 그를 크게 시인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그것으로 헤겔은 더 또렷해진 것뿐이다. 그들은 영과 육이 모순되어 보인다고 해서 어느 하나를 부정하려고 하지 않고 양쪽을 점점 밝히고 그 의미를 주어 결국 모순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말할 기회가 있어서 이들에게 불평을 퍼부었다. "교회에, 거리에, 시골길 어귀에 이르는 곳마다 가장 처참한 모습을 한 십자가형을 만들어 세우고 그 생활은 술로, 포옹으로, 키스로, 이른바 생의 향락이란 표어 밑에 서슴지 않고 그 첨단을 걷는데 이럴 바에는 그 십자가를 거두어버리는 것이 옳지 내 눈에는 꼭 그걸 세워놓고 유대인들이 퍼붓던 조롱을, 침을 뱉는 것 같다"고, 여기에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른바 '카니발'이라는 것이다. 그 발단은 역시 종교로부터 왔는데, 그동안은 그대로 미치광이가 되고 또 모두 그걸 용인한다. 밤새 반나체로 춤추고 닥치는 대로 입맞추고, 껴안고, 아무튼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짓을 감행한다. 지난해에 카니발 가장춤 진열장에 예수의 십자가형이 함께 장식된 것을 보고 나는 분개했다.

또 'Kirmes'라는 것은 'Kirchmesse'(교회미사)에서 온 것으로 각 교회의 창립기념일에 특별예배를 드리는 바로 그 날은 유곽의 개방의 날로 난장판이 빚어져 꼭 카니발과 같은 날을 이룬다.

난 이들에게 독일의 "'Weihnacht'는 'Wein'(술) 'Nacht'(밤)이 되어버렸고 영국의 'Christmas'는 'mass without Christ'(그리스도를 뺀 군중)가 되고 말았다"고 비난해 보았다. 이게 또한 모순 아닌가?

대체 이들의 모순성은 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들에게는 뚜렷이 예리한 이성이 활동하는 반면에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음이 있다. 이 인습적으로 굳어졌는지 모르는 어리석음은 그대로 맹목적인 것으로, 특히 이미 말한 명절 같은 데 또는 어떤 전통적인 것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둔함은 그들의 전통을 수호하는 큰 역할을 하여 명절들이 그 모습을 잃지 않고 발전되며 이렇게 발달한 이성 앞에 설자리가 없을 듯한 '권위'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또 그렇게 무비판으로 자라 굳어진 전통은 새로운 모순으로 이들이 대결해 싸워야 할 대상이 되고 있다. 이래서 일상생활에서 정반합(正反合)의 진전을 이루어나가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생활상은 요컨대 성서에서 온 것이다. 이 성서는 이들의 구원의 설명이기 전에 이들에게 모순이다. 바로 말하면 암 같기도 하고 가슴에 박힌 화살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이들의 생활 모습은 화살에 맞은 사슴 같다. 가슴에 박힌 화살을 뽑는 재주를 못 가진 사슴이 그 아픔을 못 참아 그 아픔을 잊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처럼 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들은 제 가슴에 박힌 화살을 품고 반항도 해보고 뛰기도 해보고 복종도한다. 이들의 생의 모습은 결코 평온한 모습은 아니고 어찌 보면 분명히 몸부림치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초조와 불안에 못 견디겠기에 자꾸 움직이는 것이다. 이들의 역사가, 철학가거나 예술가거나 결국 이 맞은 화살에 몸부림친 모습이다. 더욱이 현대 예술을 보면 꼭 광란하는 것만 같은 인상이다. 사색에 정좌하는 철인들에게서 이 화살을 극복하려는 모습이 엿보이고, 사교장에서 광란하는 무리에게서 그 빛을 볼 수 있고, 그냥 온종일 꾸역꾸역 일하는 농민, 노동자에게서도 이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독일인은 일을 위해 일한다 하지만 내게는 잊기 위해 움직이는 것, 생각하지 않기 위해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 성서에서 얻어맞은 화살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현대 유럽 신학자들은 오직 일회적인 사건이라고 한다. 그 사건이란 영원히 시각 안으로 뚫고 들어온 순간이라고 한다. 그것은 말씀(하나님의 육신으로 사람되어)이 역사 속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나사렛 예수라는 것이다. 그가 너무나도 당돌하게 인류가 순탄하게 걸어가는 궤도에 맞서서 방해하기에 인류는 그를 죽여버렸다. 제거해버린 것이다.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표현한 대로 예수라는 젊은 청년이 홀몸으로 굴러오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가로막으려 했는데, 이 역사의 수레바퀴가 그대로 그를 짓밟아버리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 짓밟힌 시체는 바퀴에 딱 붙어 좀체로 떨어지지 않고 점점 커 간다고 슈바이처 박사는 표현했다. 그는 죽으면서 인류의 가슴속에 뺄 수 없는 화살을 쏘아 꽂고 갔다고 할 수 있다. 여하간 그는 이들 속에 아직도 정체미확인의 존재로,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절대적 힘을 가지고 이들의 순탄한 이성의 길에 마주서서 결단을 요구하며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이성으로 정리하면 아주 무로 무시해지는데도, 정리하고 머리를 들면 그대로 그는 엄연히 그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이 앞에 서양인은 때로 탕자가 되어 멀 리 떠났다가도 울면서 돌아와야하고 집에 있는 맏아들같이 불평 없이 복종하다가도 화가 나서 항거한다. 그러나 그 둘 다 그를 떠날 수는 없도록 되는 것이다.

일상의 생활 모습에서 저들은 종교인들로 볼 수 없다. 실상 90퍼센트가 교회 생활을 하지 않는다. 교회 출석률이 등록한 95퍼센트 중에 5퍼센트를 넘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교회 헌금을 꼬박꼬박하고, '정신' 하면 결국 그리로 돌아간다. 많은 영웅들이, 자유의 천재들이 그 뿌리를 빼버리려고 애썼고, 그런 때는 이제 기독교는 그 하나님과 더불어 죽었구나했으나 파도 속에 버티고 있는 거암(巨岩)같이 물결에 감춰진 듯하다가도 나타난다. 철학도 바꾸고 정치도 바꾸었으나 종교를 바꾸어본 일은 없다. 그 좋은 예가 지금 공산권 안의 여러 나라인데 최근의 폴란드는 그 좋은 예다. 나는 여기서 폴란드에서 유학 온 신학도를 만났는 데 그의 굳센 신앙과 그를 통해 들은 기독교 세력에 놀랐다. 저들은 처음 공산당에 점령당할 때는 교회는 아주 없어지나 했는데, 지금은 그 모습을 다시 나타내어 날로 굳세어지고만 있다. 레싱은 서양인의 혼을 잘 표현했다.

만일 하나님이 완전한 진리를 그 오른손에
끝없는 지성과 노력의 추구로도 다함 없을 진리를 그 왼손에 드시고 "택하라" 분부하신다면
난 겸손히 그의 왼손의 것을 잡고 여쭈리라.
"아버지, 이것을 주십시오, 그 완전한 진리는 오직 당신만 위해 있나이다."

이 얼마나 투쟁적인 표현이냐. 저들은 이렇게 즐겨 어려움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모순을 가져다 준 둘째 천성이다. 여기서 그들의 역사는 대항, 반항, 투쟁, 결단, 복종, 다시 대결로! 이렇게 엮어진 것이다.

"내게 모순(문제)을 다오, 그래야만 난 살 수 있겠다." 이것이 그들의 삶의 모순이다. 여기에서 건설이 있고 발전이 생겼다. 이 투지는 세계를 개발했으며 서양문명을 낳았다.

그러나 인간의 삶의 모습이 반드시 이래야 할 것인가? 이런 삶의 모습에는 반드시 희생의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저들의 삶을 위해 연속적으로 혹은 세계의 혹은 가상의 원수를 대상으로 설정했다. 서양의 혁명사는 민중의 편에 선다는 의미에서 자유의 절대성을 승인할 때 무조건 찬미의 대상일 수 있으나 우리가 다른 각도에서 다시 생각할 때 그것이 반드시 유일한 생활양식인가? 아니 우리가 좀더 심각한 인도주의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유대인의 문제는 이미 말했거니와 저들의 혁명사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무고한 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대항의 대상을 극도로 악화시켜서 무리죽음을 시키고도 그것을 찬양할 것을 강요했다. 힘이 곧 정의라는 것은 니체가 만든 말이기 전에 서양인들의 모습이며, 다윈의 약육강식이란 생물학적 관찰 결과이기 전에 저들 자체의 현실의 표현이 아닌가. 프랑스혁명 때에, 종교개혁에서 흘린 그 많은 피가 다 흘려야 할 피들이었다면, 공산혁명이 무자비한 공산당의 창조이기 전에 유럽인의 본성의 첨단화라고 해야 하리라. 이러한 저들의 모습은 그들의 역사에 중추를 이루고도 있으나 저들의 영리한 해명에 우리는 비판의 눈을 흐리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정사(正史)의 이면사를 엿보면 저들의 잔인성이 우리를 몸서리치게 한다. 한 예로 반유대참사와 비슷한 것으로 소위 '요귀'(Hexe)라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 귀에 익은 얘기로 프랑스의 잔다르크, 종교개혁자 요한 후스 등도 '요귀'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워 화형에 처했거니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는 전 유럽의 정치의 원수, 종교적인 원수, 책임의 전가 등에 이런 터무니없는 가상의 미신을 산 사람들에게 뒤집어 씌워 무모한 학살을 감행했던 것이다. 말이 막히고 권력 가진 종교가는 그 반대자를 '요귀'라 해서 무조건 잡아 죽였으며 포악 잔악한 자기 죄에 의한 화살을 피하기 위해 군주들은 그 반대자를 그런 이름으로 뒤집어 씌워 마음대로 죽였버렸던 것이다. 자기에게 거슬러 바른 말을 하는 이들이나 단체에 그런 이름을 뒤집어 씌워서 불태워 죽였다. 서양인은 그 타는 기름내를 즐겼던 것이다. 가장 이성의 세계라고 자처하는 오늘에도 이 터무니없는 미신을 저들은 즐겨 그들의 포악성의 이용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으로 갈라놓고 서로 큰 정의나 위하는 듯이 야단해도, 오늘의 공산주의를 저렇게 만든 것은 바로 저들 자신인 것이다. 도대체 어린이도 예상할 수 있을 오늘의 문제를 저들은 즐겨 꾸며온 것 아닌가? 어쩌면 저들이 소련과 야합해서 저들에게 무기를 제공하면서 저들을 길러올 수 있었을까. 독일과 일본을 치기 위해서라고 하나 독일, 일본을 그렇게 만든 것은 저들 자신이 아닌가? 일본이 한국을 삼키려할 때 저들은 그것을 지원했으며 만주 침략까지도 저들의 승인 밑에 했다고 하지 않는가. 독일을 그렇게 만든 것도 저들이었다. 지금에 와서 미소는 서로 그 책임이 상대방에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 않는가. 한국의 625의 참극을 누가 꾸몄나? 독일을 분할시킨 것은 누구며 이제 그게 큰 문제인 듯이 야단하는 것은 누군가? 정말 요귀가 한 일이 아니면 흡혈귀들의 장난이 아니겠는가? 난 단적으로 이 모든 것은 서양인들의 싸움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포악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본다. 사람과 사람, 맹수에게 싸움을 시키고 즐겨 구경하던 로마인들의 잔인성이 오늘 저들의 스포츠에 나타나고 있으며 그것은 분명 전쟁에도 반영되어 있다. 저들에게 전쟁을 위한 전쟁 도발자라는 이름을 뒤집어 씌울 수 없는지 모르되 적어도 저들은 싸움거리가 없이는 살 수 없는 버릇으로 차 있다. 우리는 미국 건국사를 표현하는 활극에서 통쾌한 듯 허허 웃을 수 있으나 이 앵글로색슨족에게 그들의 선주(先住) 점령권의 박탈은 고사하고 거의 멸종에 가깝도록 학살당한 인디언 족의 일을 눈물 없이 생각할 수 없다. 저들은 무참한 침략을 당했으나 어느 한 나라의 변호자도 없이 강도단의 누명을 쓰고 있다. 이런 일은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에서 현재도 계속되고 있으며, 식민지 정치에서 후퇴해야 하는 저들은 미국을 본받아 각처에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을 박해하고 있다.

공산주의는 저들의 산물이다. 저들이 종말에 대항하며 싸운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가 없어질 때면, 저들은 살기 위해 또 그런 원수를 앞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발전인가? 그렇게 시체를 산으로 만들면서 진행하는 서양인의 유도하는 이 역사는 무얼 하자는 것인가?

나는 저들이 인류에게 제공한 공로를 무시하자는 심사는 아니다. 단지 저들의 삶의 길이 바른 역사의 목표에로의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양 사람의 길은 공산주의에서 그 종말에 왔어야 할 것이고, 이제 역사의 바통을 이어받아 골인할 사명은 다른 이들에게 짊어지워야 할 때가 오고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소견일까?

한국 사회의 모순

한국 사람, 우리는 그런 모순을 가졌는가? 사실 우리야말로 타고난 모순 속에서 살아오고 있다. 함석헌 씨가 지적한 대로 우리는 지리적으로 모순에 처해있다. 커다란 기구(氣球)와 같은 중국 땅의 한쪽 끝에 맹장같이 달려있으니 그것이 팽창하면 자연히 그 여파를 받도록 되어있다. 그 앞에 당돌한 아귀(餓鬼) 같은 일본에 대륙에 붙은 젖꼭지같이 보이게 된 것이 모순이다. 그래서 밤낮 그 둘 사이의 전쟁터로 제공되면서 희생을 거듭해야 했다. 안으로 내뻗칠 것은 없는데 밖으로 열린 출입구(항구)는 많아서 중국이 출구로 삼고 싶기에 알맞도록 되어있고, 밖에서 쉽게 발을 들여놓으려는 의욕을 불러일으키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위치에 놓인 한은 부강하게 타고났어도 모를 것인데 강산은 수려해 문약한 민족으로 존속해와야 했다. 80퍼센트가 산악이고 보니 그 좁은 땅에서 부강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 탓도 있겠지만 도대체 평생 남의 땅에 한번 못 내디디고 순한 양같이 살려는 이 땅에 그 놈의 인심은 어떻게 돌아서 중국 놈들, 몽고 놈들, 일본 놈, 러시아놈 할 것 없이 번갈아 함부로 짓밟아 제 숨 돌릴 새도 없이 돋아나다 꺾이곤 했다. 그 동안 무려 5, 60회의 이민족의 침해를 받았다면 알 만한 일이다. 그러기에 일본 사람 하나가 한국은 기차 속 변소 입구자리 같다고 했다. 좀 잠이 들려고 하면 탕탕 이놈 저놈이 드나들어 잠을 잘 수 없는 그런 형편이란 소리다. 더군다나 오랜만에 해방됐다는 것이 허리가 동강났다는 사실은 얄타협정에 모였던 스탈린, 루즈벨트, 처칠만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원수가 있어 우리를 지도에서 찾아내 허리를 꺾지는 않았을 터이다. 결국 인류의 20세기 제단에 불행히도 올림을 받아 바쳐지도록 점 찍어놓은 것이다. 20세기는 본래 죽음에 이르는 병 덩어리였다. 625동란이란 새 일이 아니라, 이렇게 바쳐진 양에게 세계인이 모여들어 불질한 것이다. 쳐서 피를 내고 뼈를 추리고 그것을 하늘을 향해 태워 올렸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이렇게 줄곧 모순 속에서 짓밟혀 살아오면서도 서양 사람이 말하는 의미의 '불안'이니 '초조'니 '절망'이니를 몰라왔다. 애가(哀歌) 하나 슬피 불러 세상이 눈물 한번 제대로 못 흘리게 했다. 가까운 예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625동란 이후에 뜻 있는 사람은 주목해 보는데도 세계를 울릴 문학작품 하나 못 나왔다. 바다에 뜬 썩은 나무 조각처럼 파도가 내밀면 밀리고 들이몰면 기어들고 그러면서도 날로 쇠잔해만 갔다. 배가 고프면 "배고파"라는 탄식은 해도 왜 고파야 하나 맞서서 묻지 않는다. 안으로 피를 빨리기를 계속해도 반항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좁은 땅에 먹을 것이 없어 허리를 감아쥐면서도 허허벌판 주인 없는 만주땅을 내 땅이다 고함치며 내디디지 못했고, 왜적이 그렇게 함부로 짓밟아도 제 마당에서 뱅뱅 돌다 항복했지 저들의 가슴팍으로 뛰어들어가 칼을 박을 생각은 못해봤다.

우리는 문제가 있으면서 문제가 없었다. 그것은 왜? 모순을 모순대로 받지 않고 팔자로 받았기 때문이다. 팔자거니 해버렸기에 그 팔자는 날로 기세를 부리고 우리는 그 밑에서 시들어갔다. 그것은 석가, 특히 공자를 잘못 배운 데서다. "공자를 배워도 공자가 쳐들어오면 맞서 싸우도록 배우지 못하고", 천(天)을 흔들 수 없는 자연 철칙으로 배워왔지 그 천이 "이것은 내 분깃이요" 하고 나서는 아들을 장하다 생각할 아버지도 못 배웠다. 내가 아는 공자는 적어도 그런 모순을 가르친 것은 아니다. 그는 '인(仁)'을 그 교훈의 중심으로 했으나 '명(命)'을 그만큼 강하게 내세웠고 그 명을 내세움과 함께 천(天)을 말하기를 피했으며 귀신을 멀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을 배제하자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자주성을 살려야 한다는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팔자를 천운(天運)이라고 바꾸어 말하자면 그 천은 맞서야 할 천이다. 그 천은 적어도 사람에겐 모순 덩어리다. 그 천을 우주론적으로 합리화하면 벌써 그것은 참 하늘은 아니다. 우리가 극도에 이르면 "하나님 맙소사" 한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말게 하기까지는 않는 하느님이다. 그 하느님 말게 하는 길은 그와 대항해 싸우는 길뿐이다. 하느님과 대항해 싸운다 함은 내가 제정신 찾아가자는 것이다. 만일 그가 참 하느님이라면 그가 우리에게 채찍을 가한다 해도 매 자체가 목적이 아닐 것이고 목적은 딴 데 있을 것이다. 딴 목적 위해 매질하는 부모에게 덮어놓고 그만 그만하는 자식이나 또 죽은 듯이 목을 늘여대고 얻어 맞기만하는 자식 가진 부모의 비참함이여.

사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모시면서 그를 정말 무서워한 것은 유대민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하느님을 참으로 안 것은 신학적으로는 계시받았다고 하겠으나 그들 편에서 보면 그 같은 고난의 연속에서 "대체 내 등덜미에 이런 모진 매질하는 이는 누구냐"고 대항하고 추구하는 데서였다. 그들의 지도자 모세가 자기가 원치 않는 탓으로 휘몰아치는 어떤 의지 앞에 대체 날 명하는 당신 이름은 무엇이냐고 항의했다. 그것은 이름을 알고 싶은 것 이전에 한 반항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나는 나다" 하는 대답밖에 못 들었다고 했다.

요는 우리에게 '나'라는 자각이 없다. 나, 자연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인격으로서의 나 없으면 모순은 모순일 수 없다. 모순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고 사람이면 모순에 맞서야 산다. 모순은 곧 문제다.

우리가 나를 내세우고 볼 때, 모순 덩어리 우리 역사의 자취를 볼 수 있다. 우선 종교면에서 볼 때, 우리에게 언제 유교나 불교가 들어왔는지 알 수 없이 들어와서 자리잡았다. 그것은 자각 없이 받은 증거다. 왜 유교를 우리의 종교로 받아야 하나 문제삼았던들, 문제가 제시됐더라면 옳게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저 천자문이나 사서(四書)를 받아 서는 통째로 외우거나 그 문장을 본따기 일삼았지 나와 대결시킨 흔적이 없다. 불교를 국교로 삼았을 때도 유교적인 입장에서 더러 반대 소리한 이는 있으되 내가 왜 하필 인도 종교를 믿어야 하는가 하는 참된 문제 제기가 없었다. 더군다나 천 년 이상의 불교 숭상에서 이성계의 정치 목적에 의해 유교를 다시 받아들일 때도 적어도 종교적 입장에서 자기와 대결해서 문제삼은 흔적이 그렇게 희미하다. 그후 기독교가 들어올 때도 어디까지나 쇄국정책의 반영으로 기독교를 반대했지 그것과 맞서 진지하게 싸움한 흔적이 없기에 아직까지도 선교사들의 무대요 우리 생리에는 맞지 않은 채 수만 늘어간다. 이제 다시 돌이켜 생각해서, 어찌 유교 불교 계통에서 진지한 반성도 또 발전도 없이 그저 잠잠히 시들어만 가야하는가? 대체 전 민족이 받아들일 때는 왜 그랬으며 지금은 왜 우리와 상관이 없는지 우리는 모르는 채 지나가려고 하고 있다.

학문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불교시대에는 불교를 하는 척하다가 유교시대에는 아무 연관 없이 옆으로 들어온 것을 하나비에게서 받는 듯이 거기에 몰두했으되 어디까지나 '나'는 없이 그저 상전으로 모시었을 뿐이다. 비록 우리의 성리학에 이해가 있다고 하나 당시의 중국의 주자학이 성하니 그것을 그대로 받아 전했고 비록 딴 생각이 있었어도 상전 앞에 거역할까 보아 조심해왔다. 또 오늘에 와서는, 이조시대에 중국일에만 몰두하듯이 서양 사상에 몰두해서, 이른바 좀 유능하다는 이들을 비롯해서 온통 학계가 서양 사람에게만 눈이 가서 이날까지의 유산은 거지발싸개로 알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사상계』 하나를 여기서 받아보아도 그 9할이 서양적인 것으로 차 있다. 우리의 현실 문제를 취급해도 으레 서양 사람의 이름이나 학설 등을 끌어대는 것을 영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나'나 동양을 취급하는 이들도 정말 케케묵은 소리를 소개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 불평을 몇 사람의 모임 자리에서 털어놓았더니 누가 그런 걸 읽으려는 사람이 있나요 했다. 우리가 지금 새 시대라고 해서 서양 서양 하면서 칸트입네 키에르케고르입네 야단해도 그것은 사실 유교보다도 거리가 멀다. 이러다가는 이조시대의 한학만한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시대의 남의 사상으로 옮겨가야 할 것이다. 이거야 행진하는 군대 뒤를 맨발로 따르면서 그 시체나 치우는 팔자 아닌가?

과거의 정치적인 무자각은 더 말할 흥미가 없다. 우리는 다같이 그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오늘은 자각이 있는가? 우리에게는 대체로 오늘날의 미국식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정말 지상의 것인지 반성하는 기색이 없다. 옛날에 중국정치사상을 상전으로 알듯이 덮어놓고 민주주의를 상전 삼아 정부는 척하면 민주주의 반역자라 내걸고 잡아들이면서 스스로는 정반대 면에서 분망하다. 정당도 민주주의라는 구호를 내세우고도 범사에 그 정부와 맞선다. 정당간의 대립이 그렇게 심해도 그 정책이 무엇 다른 것이 있나? 그것은 하나님이 무엇인지도 규정 못 하면서 그 이름 밑에 서로 죽이고 싸우고 하듯이, 민주주의 규정도 없이 그저 그런 거려니 하고 덤비기 때문이라 보면 내 잘못일까? 사실 우리에게 지금도 속 깊이 미련 있는 것은, 적어도 정리했어야 할 것은 민족주의인데 그것은 한 구석에서 울고 있다. 나는 반공이 앞서는지 민족 의식이 앞서는지도 진지하게 문제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본다. 북한이 민족의 자각, 자기 위치에 대한 자각이 없이 스탈린 시대의 공산주의의 종이라면, 남한도 아무런 자각없이 무엇인지도 애매한 민주주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는 듯이 보인다. 중국이 비록 공산주의이면서도 자기들 위치를 자각해서 새로운 이론을 수립하고 있는 것이나 인도가 서방측에 가까이 하면서도 자기들의 전통에 심심한 주의를 하고 있는 것은 감정을 떠나서 주목해야 할 일로 본다. 그러기에 세계는 벌써 그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알고 있다. 이집트의 낫세르마저도 처음에는 조소의 대상이더니 지금은 점차 주목의 대상이 되어 이곳 지식층에서는 이제는 세계 수도가 워싱턴, 모스크바, 런던으로부터 북경, 뉴델리, 카이로로 옮겨가고 있다.

나는 우리의 태도를 생각하면서 인도의 간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서양 사람들이 입는 의복을 왜 꼭 우리가 입어야 하나? 그들이 쓰는 소위 문화 도구를 왜 우리가 꼭 써야하나? 편리하니 가능하면 쓸 수도 있으나 나를 팔아서 그 옷 자동차를 입고 탈 수야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서양에서 온 모든 의복을 모아 산을 이룬 것을 불질러 버리고 몸소 그 손으로 물레질을 했으며 종교보다 더 큰 것은 사랑이요 평화라고 믿었기에 생명을 내걸고 그 민족에 맞서면서 평화를 주장하다 쓰러졌다.

오늘 우리 사는 꼴은 우리 조상들이 몽고시대에는 왕으로 시작해서 몽고 의복을 걸치고, 중국시대에는 중국 의복을 걸치고, 일제시대에는 게다짝을 즐겨 끌던 것과 조금이나 다른게 있을까? 요는 이런 것들이 나를 못 찾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나를 못 내세웠기에 모순이 문제로서 내 앞에 뚜렷이 있지 못하고 어물어물해서 넘겨보내는 탓이다.

우리에게 대결정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원효, 최영, 정몽주, 충무공, 임경업, 사육신 모두가 그 두드러진 상징들이다. 더욱이 근대의 동학당 같은 것은 단지 한 종교로서보다 서양 바람과 타락된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일어선 몸부림으로 길이 추구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오늘날 유행같이 반항, 반항 정신 하면서도 척하면서양의 사건이나 표현들을 끌어들이는 것뿐이다. 우리더러 프랑스혁명을 하라는 것인가? 반항의 대상을 알아야 할 테지만 내가 가진 무기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반항일 수 있지 않겠는가?

사실상 정당한 반항이란 전통적인 유산을 버리고 다른 것을 바꿔입는 것이 아닐 게다. 참 반항이란 무엇보다 잘 둘러싼 사이비 아(我)에 대한 도전이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것과 맞섬으로써 비로소 반항할 받침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것이 없다. 목에 운명처럼 걸린 전승에 대한 반항(구멍)이 없이 자꾸 달아나려고만 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서양 사람들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민중 속의 참 한국혼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이른바 지도자들의 모습이지 한국 사람의 모습은 아니다. 참 한국 사람의 혼은 민중에 있으며 그 민중은 아직까지 자기를 발휘 못해본 채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들 틈에서 살아볼수록 우리에게 이들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거듭 거듭 느낀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 변할 수 없는 대상인 어떤 임"이 있다. 그 임은 제왕시대에는 왕이었으나 따지고 보면 그건 우리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임의 상징이었지 제왕 자체는 아닌 것, 말하자면 우리 속에 들어앉은 이가 있다. 우리가 깨기만 하면 나타날, 공자가 그리던 요순의 세계 같은, 타고르가 그리던 '임'같은 그 무엇이 나타날 것만 같다. 그렇게 믿어지게 되는 다음 몇 가지 뒷받침이 있다.

첫째는 역사의 흐르는 모습에서다. 그 하나는 세계인의 흐름이요, 다른 하나는 우리의 역사이다. 세계가 분명히 새 모랄을 찾고 있는 것은 유명한 이들의 논의에서보다 이들의 일반 생활에서 엿볼 수 있다. 이들은 이날까지 강자의 역사로서 투쟁을 거듭해서 기계와 조직의 세계를 낳았다. 그런데 이렇게 고도로 발전된 삶은 이들에게 절대로 행복한 것이 아니다. 자유를 위하여 쟁취한 오늘의 저들의 세계에는 사실은 자유란 없다. 기계와 조직의 베가 짜이도록 되어 사람의 자리가 자꾸 줄어들어가는 것이다. 저들은 피차에 한계를 너무도 기계적으로 그어 홀로 서 있다. 사람이 궁극적으로 찾는 자유란 정치의 자유보다 한걸음 더 들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을 넘나드는 자유여야 하는데 사실 이들은 정치의 자유, 외적 세계 확보의 자유를 얻은 대신 그 본향을 잃어버렸다. 자식에게 부모가 본향이 못 되고 부모도 늙으면 닫힌 방에서 홀로 늙어 죽는 날을 기다린다. 이 마당에는 애국도 직업 정치가에게, 종교도 직업 종교인에게 일임되고 자기가 마주선 기계부품 외에는 아주 차단되어 있다. 이들은 물질을 풍부히 가진 인정의 빈곤에 외롭다. 자동차를 몰고 텔레비젼을 놓아도 몇 번 해보면 다 지루한 것이고 사실상할 일이 없고 생각할 일도 없어져간다. 이들의 지루함이 오늘날의 괴상한 예술을 낳고 사교도 광란으로 변하여 가고 있다. 이들의 이 지루함에서 오는 광증은 더 고차적 스릴을 찾거나 아니면 딴 세계를 그리워한다. 이들의 스포츠는 점점 살인적이 되어가고 있다. 자동차 경주스키는 정말 사람 죽는 전제요, 요새는 권투도 장갑도 벗어버리기 시작해서 정말 피투성이를 만든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전쟁밖에 다른 길이 있으랴. 반면에는 정말 원시 세계를 그리는 것이 날로 고도화 되어간다. 아프리카 원시림 등은 날로 동경의 대상이 되어가며 음악이나 춤은 그대로 원시 세계에서 흡수해가고 있다. 신사 나라라는 영국에 "댄디보이"라는 어깨는 세계 우위를 점하고 있고 미국은 갱, 독일도 사회가 안정됨에 따라 소위 '할프스탈커'라는 것이 날로 늘어만 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전쟁을 싫어한다. 단적으로 말해 이들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그립다. 정말 본향 같은 평화로운 새 세계에 대한 갈증이다. 식자 중에서 점차로 동양, 동양하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나는 저들을 보면서 저들이 희구하는, 그러면서도 표현 못하는 본향 같은 세계를 우리가 이룩할 바탕을 갖고 있다하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이렇게라도 살아남아 있되 그대로 한국 사람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데 신비감을 느낀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저 한민족(漢民族)이 수많은 이민족을 구렁이 달걀 삼키듯이 다 동화시켜버렸는데 우리 나라를 제 집 문턱 넘나들 듯 하면서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었건만 왜 삼키지 못했을까? 글도 그들 글이요, 정치 사상과 도덕, 한때는 의복마저 그들의 것을 입어야 했으되 벗어버리니 그대로다. 이리 같은 포악한 일본이 40여 년이나 꿀꺽 통째로 삼키고 말도 글도 성도 폐지시켰건만 그것을 도로 뱉으니 그대로 살아 뻗치었다. 혹은 그러면서 우리가 그들에게서 물들었다 하겠으나 그것은 극소수의 소위 지도층에서 생긴 일이고 그 외에는 그대로다. 농민들을 보라. 천년 전부터 흐르는 고담에서 보는 한국 사람의 모습과 달라진 게 있는가. 그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 역사야 어찌됐건 '나'는 '나'다 하듯이 제 모습 지켜 산다. 그 꼴이야 송장 같건, 허수아비 같건 이렇게 줄곧 가는 생명이나마 줄달아 오는 것은 분명히 할 일이 있어 있는 줄로 나는 믿을 수밖에 없다.

또 역사는 슬픈 자의 것이라고 토인비가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 세계를 지배하는 중추는 슬픈 역사의 민족이 낳은 것이 틀림없는데 우리보다 더 고생하고 슬퍼한 민족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아직까지 세계에 무얼 내놓은 일이 없다. 그러니 우리의 무대는 아직 앞으로에 있다.

다음 우리는 이 세계 어느 민족과도 다른, 독특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일찍 이것을 보아 착한 민족, 예의의 나라라고 했고 함석헌 씨 등은 역시 착함이 본성이라 했다. 나는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지금의 세계와는 대조적으로 평화와 인정의 본향일 수 있는 마음씨를 가졌음은 틀림없다. 우리는 이조의 당쟁과 오늘의 잔인한 흔적을 들어 이 일을 거부할지 모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극소수의 정치 상인들이 한 일이고 종주들이 강요한 것이지 민중들이야 까딱이나 했겠는가. 가까운 예로 중국이 밤낮 제 마당 짓밟듯했어도 저들에게는 복수심은커녕 그래도 '공맹께서' 온 '대국사람'이라고 원한 없는 마음을 지녀왔다. 일본이 그 입에 우리 자녀 씹은 피가 마르지도 않은 것을 보면서도 일본 아이들이 떠나는 전 날까지 놀고 뛰고하는 것을 그대로 다치지 않고 돌려보내지 않았는가? 지금은 또 달라졌다 할지 모르나 난 아직도 이런 순한인을 저 농민들에게서 본다.

이것을 비굴이라고 보겠는가? 비굴한 것은 지도층에 있었지 저들이야말로 바른 데만 찔리면 손에 막대기 하나 없이 대포에 맞서는 무리들이다. 저들이야말로 31운동의 참가자가 아닌가! 31운동에 불을 지른 것은 33인일지는 몰라도 정말 불탄 것은 민중들이다. 저들은 도망할 구멍을 마련하고 돌진하는 그런 이들이 아니었다. 그대로 가슴에 있는 그 무엇이 찔리면 일어설 줄 아는 이들이다. 우리는 양보 양보하다가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역사가 흘러도 흘러도 흐르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불질로만 타오를 것이 그대로 처녀지처럼 기다리고 있다. 저들은 쉽게 통하지 않는다. 저들은 자유당도 아니거니와 아직 민주당의 구호에도 일어서지 않는다. 그것은 비겁이 아니다. 저들 속에 정말 명중되는 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정말 저들의 가슴에 간직된 것을 뚫고 일어서보라. 바로만 찌르는 날에는 저들은 그대로 불덩어리가 될 것이 그대로 있다는 것을 난 의심할 수 없다.

'참'에 선 착한 마음이 이길 날은 올 것이다. 세계는 소련보다 중국에 더 기대하며 중국보다는 인도에 동정을 기울인다. 까닭은 중국에는 역시 동양적인 어떤 어진 것이 가미될 걸 기대하는 마음이요, 인도는 역시 착한 민족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것으로 내게는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다 이미 한번씩 되어 보았던 것이다. 한국은 그대로 미지수이다. 아직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것을 안고 무엇을 기다린다고 나는 본다.

내가 우리의 이런 독특한 마음에 세계사적 의미를 희망하는 것은 이 세계로 추구한 새 세계가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니라 새로운 윤리의 세계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윤리의 세계란 어떤 한 개인이 높이 추켜드는 도덕률을 정치로 짜서 강압하는 세계가 아니라 민중을 바탕으로 한, 민중 속에서 스스로 터져 일어나는, 공자가 상상했던 요순의 세계와 비슷한, 정부가 있는지 없는지 윤리담을 일부러 소리쳐 고집하지 않는 "무위즉유위"(無爲卽有爲)의 상태라고 생각해서이다. 고귀한 도덕률이나 종교는 세계에 이미 나타났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적당한 옥토로서의 민중을 발견하지 못했다. 개인들에게는 바로 심어져서 놀라운 빛을 발했다. 그러나 여기서 기독교가 서양 사람들의 마음 밭에 심어짐으로써 그 본모습이 이루어졌구나하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우리는 아직까지 제대로 종교를 받아보지 못했다. 유교도 불교도 있었으나 그것은 위에서 아래로 쏟은 것이었지 민족 속에 심어지지 못했기에 피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민중에게 바른 씨가 심어져 봐라. 난 그러한 시험장으로서 세계에 우리 민족이 선택받을 수 있는 마음 바탕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끝으로 난 우리에게 무엇이나 할 능(能)이 있음을 믿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한글은 기적적인 것이다. 그렇게 다른 한문의 천지에서 그런 게 생각날 수 있었을까. 이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증거가 있노라 외칠 수 있으리라. 나는 동양에 대해 참고할 일이 있어서 근일에 일본의 『서기』(書紀)와 『고사기』(古事紀)를 본 일이 있다. 우리 국사(國史)에서 못 본 것은 아니나 그들의 글에서 우리가 얼마나 월등한 선각자로서 저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교수했나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251년에 시작해서 약 740년까지 외국으로 거의 매년같이 줄곧 유교불교의 전달자로서 그들의 궁중으로 스승을 보내면서 많은 예술품, 토공(土公), 건축공, 율사(律師), 재봉사, 역서(曆書), 의서(醫書) 심지어 원예사까지 보냈고 많은 학자들은 완전히 저들의 지도하에 일본 문화를 건설했다. 그중에 다음 대목 등을 저들의 글에서 찾을 때 가슴에 무엇이 복받친다. 284년에 백제왕이 아직기를 보냈을 때 일본이 그를 머물게 했는데 "그는 또한 경전을 잘 읽기"에 그 태자의 스승으로 했다. 왕이 아직기에게 묻기를 "만일 그대보다 더 우수한 박사가 그대의 나라에 있는지." 아직기 대답해서 "왕인이라는 자입니다." 그래서 곧 사자를 보내서 왕인을 모셔왔다는 것 더욱이 572년에 고려왕이 선리(船吏) 조왕진이(祖王辰爾)를 통해 어서(御書)를 보냈는 데 여러 신하가 모여 3일간에도 깨쳐 읽지 못해 결국 일개 고려 선리에게 부탁하니 그가 곧 해석하기에 일본왕은 신하들을 책망했다는 기록을 읽을 때는 무슨 용기가 솟았다. 결국 우리가 나라로서 당당할 때는 그같이 자기를 발휘할 수 있어 단연 문화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더니 나라가 망하므로 이 힘은 안으로 숨어 잠들었다. 영국박물관에 진열된 고려자기를 일본 것과 비교해 보면 난 단적으로 이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퇴계나 이율곡 같은 큰 인물을 빼고라도 우리가 지금 전해 가진 옛날 문장들을 보면 그 표현 재주에 놀랄 수밖에 없으며, 나라가 망해감으로 가꾸지 못해 비록 기생들에 의해 연명해 전해내려온 우리 민요나 무용은 것은 언젠가는 세계를 황홀하게할 것으로 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현재 외국에 알려진 것으로 가령 강용흘의 『초당』(草堂)은 내가 가지고 있는 독문 번역을 주워 읽은 사람은 극구의 감탄을 한다. 케임브리지에서 일본 문학하는 영국인을 만났을 때 그 동기를 물었더니 동양사에 관심한 것은 『초당』을 읽은 것이 계기라고 했다. 그는 영국 사람 손에서 된 글로서도 그렇게 아름다운 영어는 드물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일본 문학으로 옮긴 것은 왜일까? 나는 우리 민족이 1대 1로 마주설 때에 어느 민족에게도 지지 않는 머리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여기 와서 절대로 믿게 되었다.

만일 우리가 제 것 찾아 제 궤도에서는 날이 온다면 그게 곧 세계의 희망이 되리라는 것이 왜 과신이랴. 그날이란 우리의 역사가 민중의 손에 잡혀지는 날이다.

한국 얼굴의 발견

나는 사실 새로운 소리를 전하려 이 붓을 든 것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하면 외국에 와서 내 나라를 재발견한 한국의 젊은 한 혼의 고백인데 긴 말이 됐다. 여기서 유일한 우리말로 된 잡지 『사상계』를 읽으면서 가슴에 맺히는 것이 있곤 했던 마음 풀이이다. 그런 중에 늘 섭섭한 것은 우리 선배들이 왜 우리의 유산을 추구하는 일에, 즉 우리를 추구하는 일, 우리를 우리 후진들에게 알리려는 수고가 그렇게 적으냐하는 것이다. 위에서도 한마디했지만 가령 반항정신한다면 반항이란 용어는 같을지 모르나 우리의 반항의 모습이 어때야하는지, 세상에는 프랑스 혁명 같은 반항도 있지만 간디 같은 반항도 있다. 개구리 소 흉내내서도 안되고 꾀꼬리더러 부엉이같이 울라고 해도 안 되리라. 우리는 내 목소리, 내 얼굴도 잊어버린지 오래다. 어느 게 정말 난지, 싸우라 해도 싸울 생각은 있으나 무얼 내가 가졌는지, 요는 본래 무엇인지 모른다. 내 얼굴은 내가 물려받은 것이다. 하니 난 내게 물려준 이들을 알아야겠다. 그런고로 우리들이 현실문제에 맞게 싸울 때 우선 어떤 유산을 받았고 또 어떤 능력과 약점을 가졌는지, 즉 역사적으로 계승되어 여기 섰는 나를 알게 된다. 우리 선배들은 그 개인의 길에 지장이 있더라도 우리가 서기까지는 그 시선을 안으로 돌려 우리를 알리는 일에다 집중해 주었으면! 소크라테스보다 공자를 먼저, 공자보다 이퇴계를 먼저, 이퇴계보다 먼저 내 엄마를 아버지를 알아야겠다.

내가 몇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많은 논자들은 우리의 오늘의 얼굴을 말할 때 서울에 국한시키는 잘못을 범한다. 솔직히 말해 서울 사는 이는 우리의 대표적 얼굴이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혼혈아 같은 이들이다. 우리의 얼굴은 역시 저 농촌에 있다. 거기 아직 아무것에도 물들지 않은 순수한 한국 얼굴들이 있다. 우리는 논자들을 통해서 제 애비집에서 도망친 서울의 탕자의 모습은 엿보아도 제 집 죽음을 지키고 있는 맏아들, 농부들의 표정은 볼 수 없다. 저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저들의 윤리적 세계가 무엇인지, 저들의 양심이 무얼 고집하고 있는지 알아야겠다. 우리에게 혼이 있다면 역시 민중에 있는 줄로 난 믿는다. 다음으로 우리가 한글 전용을 내세운 것은 좋으나 그 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우리의 유산들을 우리말로 완전히 옮기는 일이다. 수천년 역사 유산은 전부 한문인데 그것을 젊은 세대에서 닫아 버리고 어찌 내 문화가 나올 것인가. 삼국사를 이병도 박사가 이미 번역한 걸 읽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러나 아직 우리의 유산의 대표로 자랑하는 이퇴계, 이율곡 등의 그 많은 글들이 그대로 젊은 세대에게 닫힌 문이 되고 있다.

이것은 먼저 전국가가 동원되어 완전한 우리 글로 옮기고서야 한글 전용이 있을 수 있다. 다음으로 우리 민속의 예술을 먼저 살리는 일이다. 서양 음악이나 유화도 좋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의 혼 깊이 무엇을 노래하며 어떻게 표현하나하는 것을 알고서야 내 것이 살 수 있는 것으로 믿는다. 위에서도 말한 대로 우리 혼의 읊음은 아악도 아니요, 심포니도 아니요, 실상은 민요들이다. 우리의 정서의 표현은 저 농악에 있다. 그것은 줄곧 내려오면서 묵살 되어왔고 쌍놈들의 것으로 천대받아왔건만 그 쌍놈들은 그래도 할 수밖에 없어 그대로 연명해 왔다. 그러나 소위 자유를 맞았으되 그것들은 지금도 아무런 지원 없이 홀로 읊어지고 있다. 국가가 못하겠으면 문화인층에서라도 일어나서 저들을 살려주어야 한다. 저들에게 피리를 주어라. 새 장구를 주어라. 그리고 우리는 들어보자. 거기서 나는 우리의 혼의 소리를 밝히 듣고 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나는 수일 전 독일신문 지상에서 간디의 제자인 브하베(Bhave)라는 64세 노인이 새로 브호단(bhudan) 운동이라는 걸 일으켜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순전히 가난한 농민들을 위한 운동이다. 그것은 일부러 공산주의가 팽창한 지대를 택해서 폭력과 마주서서 혼에 호소하려는 반공산적 운동인 것이다. 공산당은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당신이 어떤 결과를 거둘지 의심한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한다면 우리(공산당) 운동과의 양자택일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난 그것이 성공하기를 빈다. 그리고 성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상계』 1959. 7/『옳은 민족 옳은 역사』)

TAG •

List of Articles
동양의 한 시각에서 본 서구신학 비판
종교고발
성서와 종교
해방과 참여의 신학
정치신학의 동향
혁명의 신학
정치적 예배
민중신학을 묻는다
 
제3부 개혁을 위해 성서를 다시 본다
I 새로 보이는 성서
성서의 '영'(靈)이란 무엇인가
신약성서에서 본 회개
하나님, 이웃, 나의 관계
의식 종교와 사랑
율법을 지키는 일과 참 복종
전통(유전)과 하나님의 뜻
두 질서
예수에 있어서 결혼과 이혼
순교자 개념의 어제와 오늘
신약에서 본 교회사의 한 단면
II 성서 본문과 설교
성서와 설교
성서 해석의 과정
비유와 설교(1)
비유와 설교(2)
혁신과 보수
하나님의 나라
 
제4부 한국 신학의 과제
한국의 신학의 현황과 과제
한국 교회의 예수 이해
한국 그리스도교와 종교개혁
한국 그리스도교의 자기혁명
한국 교회의 구미신학의 유산과 그 한계
 
제5부 도피냐 구원이냐
기독교의 본의(本義)
도피냐 구원이냐
인간혁명
개인구원이냐 사회구원이냐
공관서의 구원론
부활신앙과 혁명
대담 | 기가 막힌 세상
 
제6부 하느님의 선교와 새로운 공동체의 모색
목회론
평신도의 목회
선교신학의 성서적 핵심
하느님의 선교
새로운 공동체
전달자와 해석자
프로테스탄트 교회관과 일치운동
1980년대 교회의 선교적 과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교회상
예수공동체의 신앙고백
한국 교회는 민족의 과제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1부 메시아를 기다리며
때 (시편 39, 5-13)
진통하는 역사 (로마 8, 18-27)
밤이 오면 (로마 13 , 11-14)
아침을 기다리며 (로마 13, 11-14)
밤과 새벽의 분계선 (로마 13, 11-14)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루가 11, 2)
내가 속히 오리라 (묵시 22, 12-13)
마라나타 (묵시 22, 10-20)
성탄절에 보내는 글 (요한 1, 14)
미래의 크리스마스 (루가 2, 1-38)
 
제2부 넓은 문과 좁은 문
해방자 예수 (루가 4, 18-19)
우리는 모두 사찰당하고 있다 (마르 3, 1-6, 22)
"악마!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르 5, 1-15)
분단의 극복 (요한 4, 21-23)
다 팔아 보화를 산다 (마태 13,44-46)
평화와 칼 (마태 10, 34-39)
좁은 문 넓은 문 (마태 7,13-14)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루가 11, 3)
기도의 사건화 (루가 18, 1-8)
인간봉화(人間峰火) (마르 8, 31-38)
"십자가를 지고"의 뜻 (마르 8, 34-38)
신의 침묵은 심판이다 (로마 1, 18-32)
복음의 전진 (필립 1, 12-18)
사건의 신학 (고후 11, 23-33)
 
제3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
오늘의 그리스도 (마르 15, 27-37)
오늘을 사는 청년 예수 (마르 2, 15-17)
그리스도 (마르 8, 27-33)
우리를 지키시고 구해 주시는 이 (고후 1, 8-11)
새로운 존재 (요한 3, 1-12)
이제 다 끝났다 (요한 19, 28-34)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마태 6, 32-33)
예수 그리스도一세상의 생명 (로마 8, 18-28)
문 두드리는 소리 (묵시 3, 14-22)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고전 6,1-11)
권위와 행동 (루가 20, 8)
현존의 그리스도 (히브 13, 12-13)
 
판권
 
판권
 
판권
 
판권
 
판권
제1부 옳은 민족 옳은 역사
서양사람 한국사람
구라파에서 본 조국
사상의 주체성
세계 속의 한국
   
제2부 한국의 민족 감정
민족 감정
아키히토 방한과 민족 감정
히로히토가 엄존하는데
민족적 염원
'조국 근대화'와 민족문화
민족 정신 문화 불식시키는 외래 종교
   
제3부 한국의 민족 운동
3•1절과 민족사적 고백
8•15와 해방
3•1 운동과 기독교
민중 운동의 새 기원
4•19혁명과 민주주의의 갈망
4•19의 혼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4부 한국 민(民)과 종교
민족적 과제와 교회
그리스도교와 민족 공동체
개화기의 한국 교회의 위치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주체성과 신앙
더 이상 종교는 침묵일 수 없다
   
제5부 민족 자결
민족 자결의 민족주의
민족 문제와 민중신학
혼선된 역사
   
제6부 분단과 평화
해방은 통일로써만
한국전쟁과 평화
6•25전쟁은 언제 끝나나!
이 땅에 평화를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
   
제7부 통일의 주체
민족 통일 문제의 성서적 조명
통일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통일은 민(民)의 손으로
씨알과 민족 통일
   
제8부 평화의 길
평화와 칼
아시아 평화와 일본
함석헌의 평화 사상
통일을 위한 민족 교육의 방향
평화의 실현
분단 극복과 평화
새 국면에 선 민족 통일과 기독교
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판권
제1부 절망 속의 희망
실락원 (창세 2-3장)
종주권과 민중의 투쟁 (창세 4, 1-16)
카인의 후예 (창세 4, 1-26)
아브라함과 종주권 (창세 16, 3-12)
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창세 25, 19-24)
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탈-향(脫-向)의 인간사 (창세 12, 1.7)
절망 속의 희망 (창세 22, 1-13)
   
제2부 지성소
바벨탑 (창세 11, 1-9)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창세 18, 22-33)
지성소(至聖所) (출애 3, 5)
나는 나다 (출애 3, 13-15)
탈향(脫向)의 기수 (출애 3, 7-10)
지평선 너머 (신명 32, 48-52)
   
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고대 이스라엘 종족 동맹 (사사 5, 1-8)
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믿음의 조상 (히브 11, 17-19)
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제4부 남은자의 믿음
다윗 왕권의 죄 (삼상 8, 4-18)
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위로
텍스트를 수정한 후 아래 [수정요청] 버튼을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