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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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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한국의 민족 감정
민족 감정

TV에서 권투시합이 한창이다.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는 터라 무심히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나운서를 통해 그 상대방이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내 관심은 달라졌다. 나는 보고 있는 동안 어느덧 우리 선수와 함께 일본 선수를 계속 치고 박고 있는 나를 의식하고 놀랐다. 이게 민족 감정인가? 민족 감정이란 다른 민족과의 관계에서 유발되는 감정인가?

한번은 필리핀 사람과의 권투를 본 일이 있다. 그런데 내게는 우리 선수를 응원할 감정도, 필리핀 선수를 치고 싶은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디서 오는 차이일까?

민족 감정이란 다른 민족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은 사실이나, 역사적 맥락에서 비로소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보다. 필리핀은 역사적으로 우리와 어떠한 이해 관계에서 대립된 일이 없다. 오히려, 비록 종주국은 달랐으나 함께 식민지의 서러움을 당했다는 공통성을 지녔기 때문에 서로 도와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느낀다. 이에 비하여 일본은 오랜 역사를 통해 우리를 괴롭히고 짓눌러 왔으며, 오늘날까지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들은 분명히 아시아의 깡패 노릇을 해서 많은 민족을 괴롭혔는데 지금은 단연 경제 강대국으로 재기해서 거만한 자세로 다시 위압해 오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에 대한 민족 감정은 과거의 원한에서만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이제 올 침략을 눈앞에 보기 때문에 생기는 생생한 것이다.

나는 맹목적인 반일주의자는 아니다. 나에게도 일본인 친구들이 있다. 그 중에는 피차 진정으로 위하고 성심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한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고 인권을 위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정말 인권문제를 심각히 생각한다면 먼저 일본 안에 있는 우리 교포에 대한 인권 유린을 막기 위한 투쟁을 벌여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 사는 우리 교포는 60만이 넘는다. 저들은 대부분 일제 때 강제로 끌려가 광산 등지에서 노동하던 계층의 후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멸시는 대단하다. 힘 없는 그들은 그 굴욕을 묵묵히 참거나 아니면 자신이 한국인임을 은폐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고 일본인과 결혼하거나 귀화하는 사례가 많다. 그런데 한국말까지 잃어버린 3세대의 어린 사람들의 분노가 어른들에게 파급되어 민족 감정이 민족운동으로 번져가고 있다.

일본은 외국인이 거주권 신청을 하는 경우 지문을 찍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 이때 외국인은 한국인과 약간의 대만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1세대는 말 없이 지문을 찍었다. 그런데 몇 곳에서 소녀를 위시한 어린 사람들이 거주권 갱신에 지문을 강요받았을 때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 거부의 변은 분명했다. '일본법에는 범죄자에 한해서 지문을 찍도록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범죄자라는 말이냐'라는 것이다. 이 작은 분노는 파문을 던졌다. 이미 말 없이 순응한 어른들에게 부끄러움을 주고 그 부끄러움은 용기로 변해 어른들이 어린이들의 저항 대열에 가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투쟁은 지금 진행 중이다. 일본은 지문 거부자에게 출입국을 허락하지 않더니 지금은 기소하여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맞서서 지지자를 모으기 위한 서명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낀다. 잔인무도했던 일본, 그러고도 사죄할 줄을 모르는 저들, 특히 약소 민족에 대해 오만불손하기 이를 데 없는 저들! 무고한 사람들을 끌어다가 고혈을 빨아먹고 그 유족을 죄인 취급을 해?

또 다른 싸움이 조용하게 번지고 있다. 그것은 이름(성명)에 관련된 싸움이다. 저들은 우리 이름을 한자로 쓰는 것을 기회로 자기들의 발음으로 부른다. 가령 최씨면 사이상이라고 하고, 박씨면 보구상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그러한 변칙적 호칭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서 움튼 민족 감정이 법정 투쟁으로 번지고 이것이 또 다른 민족 운동이 되고 있다.

최창화(崔昌華)라는 목사가 1975년에 일본 NHK방송국에 '인격권 침해에 의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것은 그 방송국이 그를 최창화라고 부르지 않고 '사이 쇼가'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는 서면으로 자기 이름은 고유명사니 제대로 불러달라고 했는데도 저들은 끝내 일본식으로 부를 것을 주장, 반복했기 때문에 고소한 것이다. 이 법정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판결은 안 났지만, 언론계가 한국인명을 한자 곁에 우리 발음을 표기하기 시작한 것은 이로부터이다. 사람들 중에는 '이 따위 작은 문제를 갖고 무얼' 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그것에 얽힌 민족 감정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우리는 가령 '田中' 씨를 '전중' 씨라고 부르지 않고 '다나까'라고 부른다. 그것이 고유명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전중'이라고 불러도 저들은 별로 예민해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참을 수 없나! 그것은 저들이 우리 이름을 갖고 마음대로 농락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일제시 저들은 물론 우리 발음대로가 아니라 자기들의 발음으로 우리 이름을 불렀다. 그 경우 저들에게는 모멸의 감정이 담겨져 있었다. 그러던 저들은 우리 민족정신 말살 정책으로 우리말을 못 쓰게 함과 더불어 우리 성을 일본식으로 고칠 것을 강요했다. 성을 갈다니! 성은 조상에게 물려 받은 가장 귀중한 것으로 믿었기에, 맹세한 최대의 표현으로 'XX 하면 성을 갈겠다'고 할 정도인 그 성을 갈다니! '성을 갈면 개자식'이라고 맹세했는데! 그때 우리 민족은 통곡했다. 끝내 거부하다 경친 이들도 많이 있었지만 어떤 이는 더 피할 수 없는 판국에 와서 '이누고 부다사 부로'라고 신고했다. 즉 개새끼요 돼지새끼란 말이다. 마침 일본 성에 이누고(犬子)라는 것이 있었으니 거부할 수도 없었을 게다. 어떤 이는 '에히라 노히라'라고 고쳤다. 쌍놈의 것, 될 대로 되리라는 감정 표시다. 이처럼 조상을 배신하고 개돼지된 굴욕감을 가지면서 일본식 이름을 메고 다닌 민족이니 최를 '사이'라고 부르는 데 분노하는 것은 곧 민족사적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민족 감정이다.

우리는 식민지가 됐어도 포악한 민족 밑에서 됐던 것이 한스럽다. 그런데 저들은 우리 민족의 피(625)를 경제적 재기의 발판으로 삼고도 단 한번의 공적 사죄도 없은 채 지금은 경제로, 문화로 도도히 침범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국책으로도 일본에 문을 열어 일본어를 학교에 도입했고, 출판계는 일본의 책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홍수같이 쏟아내 놓으며 거리에는 일본 책 서점이 범람한다. 그런데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대학생들 중, 이른바 의식을 찾는다는 서클들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어로 된 책들을 교본으로 사용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고 있다는 풍문 이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일본바람은 지하에까지 숨어든 셈이다.

3월이 오면 1919년 31민족 봉기의 함성이 가슴에 새롭게 사무쳐 오는 것은 이런 현실을 목도하기 때문에 그러리라.

(『샘터』 1984. 3)


List of Articles
동양의 한 시각에서 본 서구신학 비판
종교고발
성서와 종교
해방과 참여의 신학
정치신학의 동향
혁명의 신학
정치적 예배
민중신학을 묻는다
 
제3부 개혁을 위해 성서를 다시 본다
I 새로 보이는 성서
성서의 '영'(靈)이란 무엇인가
신약성서에서 본 회개
하나님, 이웃, 나의 관계
의식 종교와 사랑
율법을 지키는 일과 참 복종
전통(유전)과 하나님의 뜻
두 질서
예수에 있어서 결혼과 이혼
순교자 개념의 어제와 오늘
신약에서 본 교회사의 한 단면
II 성서 본문과 설교
성서와 설교
성서 해석의 과정
비유와 설교(1)
비유와 설교(2)
혁신과 보수
하나님의 나라
 
제4부 한국 신학의 과제
한국의 신학의 현황과 과제
한국 교회의 예수 이해
한국 그리스도교와 종교개혁
한국 그리스도교의 자기혁명
한국 교회의 구미신학의 유산과 그 한계
 
제5부 도피냐 구원이냐
기독교의 본의(本義)
도피냐 구원이냐
인간혁명
개인구원이냐 사회구원이냐
공관서의 구원론
부활신앙과 혁명
대담 | 기가 막힌 세상
 
제6부 하느님의 선교와 새로운 공동체의 모색
목회론
평신도의 목회
선교신학의 성서적 핵심
하느님의 선교
새로운 공동체
전달자와 해석자
프로테스탄트 교회관과 일치운동
1980년대 교회의 선교적 과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교회상
예수공동체의 신앙고백
한국 교회는 민족의 과제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1부 메시아를 기다리며
때 (시편 39, 5-13)
진통하는 역사 (로마 8, 18-27)
밤이 오면 (로마 13 , 11-14)
아침을 기다리며 (로마 13, 11-14)
밤과 새벽의 분계선 (로마 13, 11-14)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루가 11, 2)
내가 속히 오리라 (묵시 22, 12-13)
마라나타 (묵시 22, 10-20)
성탄절에 보내는 글 (요한 1, 14)
미래의 크리스마스 (루가 2, 1-38)
 
제2부 넓은 문과 좁은 문
해방자 예수 (루가 4, 18-19)
우리는 모두 사찰당하고 있다 (마르 3, 1-6, 22)
"악마!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르 5, 1-15)
분단의 극복 (요한 4, 21-23)
다 팔아 보화를 산다 (마태 13,44-46)
평화와 칼 (마태 10, 34-39)
좁은 문 넓은 문 (마태 7,13-14)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루가 11, 3)
기도의 사건화 (루가 18, 1-8)
인간봉화(人間峰火) (마르 8, 31-38)
"십자가를 지고"의 뜻 (마르 8, 34-38)
신의 침묵은 심판이다 (로마 1, 18-32)
복음의 전진 (필립 1, 12-18)
사건의 신학 (고후 11, 23-33)
 
제3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
오늘의 그리스도 (마르 15, 27-37)
오늘을 사는 청년 예수 (마르 2, 15-17)
그리스도 (마르 8, 27-33)
우리를 지키시고 구해 주시는 이 (고후 1, 8-11)
새로운 존재 (요한 3, 1-12)
이제 다 끝났다 (요한 19, 28-34)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마태 6, 32-33)
예수 그리스도一세상의 생명 (로마 8, 18-28)
문 두드리는 소리 (묵시 3, 14-22)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고전 6,1-11)
권위와 행동 (루가 20, 8)
현존의 그리스도 (히브 13, 12-13)
 
판권
 
판권
 
판권
 
판권
 
판권
제1부 옳은 민족 옳은 역사
서양사람 한국사람
구라파에서 본 조국
사상의 주체성
세계 속의 한국
   
제2부 한국의 민족 감정
민족 감정
아키히토 방한과 민족 감정
히로히토가 엄존하는데
민족적 염원
'조국 근대화'와 민족문화
민족 정신 문화 불식시키는 외래 종교
   
제3부 한국의 민족 운동
3•1절과 민족사적 고백
8•15와 해방
3•1 운동과 기독교
민중 운동의 새 기원
4•19혁명과 민주주의의 갈망
4•19의 혼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4부 한국 민(民)과 종교
민족적 과제와 교회
그리스도교와 민족 공동체
개화기의 한국 교회의 위치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주체성과 신앙
더 이상 종교는 침묵일 수 없다
   
제5부 민족 자결
민족 자결의 민족주의
민족 문제와 민중신학
혼선된 역사
   
제6부 분단과 평화
해방은 통일로써만
한국전쟁과 평화
6•25전쟁은 언제 끝나나!
이 땅에 평화를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
   
제7부 통일의 주체
민족 통일 문제의 성서적 조명
통일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통일은 민(民)의 손으로
씨알과 민족 통일
   
제8부 평화의 길
평화와 칼
아시아 평화와 일본
함석헌의 평화 사상
통일을 위한 민족 교육의 방향
평화의 실현
분단 극복과 평화
새 국면에 선 민족 통일과 기독교
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판권
제1부 절망 속의 희망
실락원 (창세 2-3장)
종주권과 민중의 투쟁 (창세 4, 1-16)
카인의 후예 (창세 4, 1-26)
아브라함과 종주권 (창세 16, 3-12)
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창세 25, 19-24)
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탈-향(脫-向)의 인간사 (창세 12, 1.7)
절망 속의 희망 (창세 22, 1-13)
   
제2부 지성소
바벨탑 (창세 11, 1-9)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창세 18, 22-33)
지성소(至聖所) (출애 3, 5)
나는 나다 (출애 3, 13-15)
탈향(脫向)의 기수 (출애 3, 7-10)
지평선 너머 (신명 32, 48-52)
   
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고대 이스라엘 종족 동맹 (사사 5, 1-8)
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믿음의 조상 (히브 11, 17-19)
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제4부 남은자의 믿음
다윗 왕권의 죄 (삼상 8, 4-18)
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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