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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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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문제와 민중신학

강원돈: 90년대를 맞이하면서 민족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90년대는 민족 문제의 시대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고 외세에 의한 분단의 고통을 당해 온 우리의 처지에서 민족 자주화와 민족 통일 문제에 대한 논의와 실천이 활성화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요즈음 민족 문제를 논의하는 사람들의 말을 찬찬히 훑어 보면 퍽 낙관적인 견해가 깔려있는 듯합니다. 1980년대 말부터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주도해 온 세계적 규모의 데땅트가 독일 통일을 어느 정도 가시화시켰고, 이러한 데땅트의 영향이 한반도에 어느 형태로든 미치리라는 것이 그 논거인 듯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소련과 미국 그리고 바르샤바 조약 기구와 나토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동서 관계의 개선이 지구의 남과 북을 가르는 빈국과 부국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기는 커녕 오히려 남북 관계의 모순을 격화시킬 수 있고, 이러한 모순의 격화는 한반도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신중한 견해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민족 문제가 단순한 체제 대결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 외세와의 관련에서도 인식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상은 주의깊은 관찰을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선생님을 모시고 "민족 문제와 민중신학"이라는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자 하는 것은 민족 문제에 대한 관심이 드높아지는 오늘의 상황에서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민족 문제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를 밝히고 싶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선생님께서 민족의식이라고 할까, 민족 감정이라고 할까 하는 것을 어떤 계기로 갖게 되었는가를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민족 문제에 눈을 뜰 때까지

안병무: 1930년대에 일제의 꼭두각시인 만주국이 창설되었을 때, 일본인들이 민족감정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통치하던 것이 잊혀지질 않아요. 그 당시 만주에는 일본인, 조선인, 몽고족, 러시아인, 만주족 등이 있었는데, 일본인들은 자기들이 가장 우수하고, 조선인들이 그 다음이고,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은 수효를 차지했던 만주족은 가장 열등하다는 식으로 민족 서열을 만들었죠. 일본인들은 음식의 차이, 품성의 차이를 들먹이면서 그런 짓을 했는데, 그렇게 한 까닭은 폭력적으로 침략하는 제국주의 아래서도 민족이라는 것은 함부로 깨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통치하려고 한 데 있었던 거죠. 저는 사소한 문제에서도 민족 감정이 맞부딪치면 격렬한 소요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어린 마음에도 민족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의식했었죠. 그 다음으로는, 독립 투쟁에 대한 경험을 들 수 있어요 그 당시 민족 독립을 위해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합작하여 일제에 투쟁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무시로 우리 집에 드나드는 것을 보았단 말이죠. 저의 어머니는 무식한 분이셨는데, 저희 집에 찾아온 게릴라들에게 의복이나 먹을 것을 공급해 주셨어요. 제가 자는 사이에 가만가만히 하신 일이라 처음에는 저 역시 까맣게 모르고 있었죠. 이렇게 무식한 어머니마저 민족 해방을 염두에 두었나 하는 것이 퍽 신기했고, 나이가 먹을수록 그것이 더해요. 그 당시에는 신화적인 존재들이 많았어요. 김일성을 위시하여 민족 해방을 위해 통일전선에 선 장군들의 이야기가 신화처럼 떠돌아 다니고, 어린 우리들은 뜻도 모르면서도 "새야 새야 파랑새야" 하는 노래를 부르곤 했지요. 이런 경험들이 민족은 뿌리깊은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죠. 소학교 4학년 때 일본인 교장에 대항하여 데모를 벌이다가 퇴학당한 경험도 잊을 수 없어요. 그리고 그 이전까지만 해도 교회가 없는 데서 살았는데 교회를 다니면서 민족 의식이 다시 싹텄어요. 그 당시의 교회는 민족 의식이 상당히 강했어요. 다른 곳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크리스마스 때는 크리스마스와 직접 관계가 없는 모세 이야기나 에스더 이야기를 했고, 새벽 기도회에서는 "주여! 이스라엘을 구원할 때가 이 때입니까" 하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하면서 한국이 독립할 때가 이 때입니까 하고 절규하곤 했었어요. 그 당시의 교인들은 그런 의식이 상당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잃어버렸던 민족 의식을 교회에서 되찾았단 말이죠. 그 후 나이가 더 들어가면서부터는 민족 의식을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었죠. 일본인들에게 개인적으로 압박을 당하곤 했으니까요. 강제 징병, 학병, 징용 등을 보고 들으며, 처절한 약소 민족의 비애를 느꼈던 거죠

한가지 더 말할 것이 있어요. 조금 시간이 흐른 후 반성한 것이긴 합니다만, 그 당시 간도의 조선족은 3백만 가량 되었는데, 그들은 중국 말을 사용하지 않고 조선족끼리 자급 자족하며 살았어요. 만주 사람들과 몇 차례와 어울려 살다가도 구타나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서로 배척하며 살았죠. 그들의 입에서 직접 한마디도 듣지 못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일본에 의해 민족적으로 당한 한과 분노가 응어리져 있었어요 그들의 사는 모양은 극히 한심했죠. 가난하기 짝이 없었어요. 그들은 연변에 잠시 머물다가 고향에 돌아간다는 생각만 했지 영주한다는 생각은 안하고 살았어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저에게는 민족 의식이라는 것이 개념화되기 이전에 감정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거죠.

제가 민중신학을 하게 되면서부터 간도에 있던 그들이 바로 전형적인 민중이라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아요. 우리 민족에 대해 생각할 때, 저는 "민중적 민족"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도 간도에 있던 우리 민족이 바로 전형적인 민중이라는 생각과 결부되어 있지요. "민족"에 대해 논의할 때, 두 가지 부류를 나누지 않아요? 제국주의적 팽창을 위한 민족주의가 그 하나고, 그것에 대항하는 민족주의가 또 다른 하나지요. 우리 민족은 "민중적 민족"으로서 외세에 의해 계속 당하기만 했는데, 저는 우리 나라 말 "민족"에 해당하는 외국어는 없다고 봐요. 영어의 네이션(Nation)도, 독일어의 폴크(Volk)도 우리말 "민족"을 표현하지는 못해요. 일본 사람들도 민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우리말과는 뉘앙스가 달라요. 민족이라는 것도 민중만큼이나 고유한 것이지요.

오늘의 민족 문제를 보면서

강원돈: 요즈음 소련이나 중국에서도 민족 문제가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는데 선생님 소감은 어떻습니까?

안병무: 소련은 여러 민족들이 결합한 연방국가인데, 그 동안은 민족들 사이의 갈등이 거의 노출되지 않았죠. 그러다가 자유의 분위기가 약간 형성되니까, 연방이나 계급의 이름에 의해서는 해소될 수 없었던 민족 갈등이 분출되기 시작했단 말이죠. 저는 그 밑바닥에 민중적 민족 의식 같은 것이 깔려있다고 봐요. 그것은 소연방 체제의 일원으로 있으면서 해소할 수 없었던 민족적인 것, 이제까지 억눌려 왔던 민족적인 것을 되찾으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큰 나라들이 전부 해체되어 패권주의가 종식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는데, 그런 점에서는 박수 갈채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에요. 중국의 경우도 그렇지요. 소수 민족들이 살고 있는 변방은 공산주의도 별로 침투한 것 같지 않고, 한(漢)족이 중심이 되어 공산주의를 내걸고 중국 전체를 지배해 온 것인데, 이것이 조금 느슨해지니까, 이제까지의 체제에서 민중적 민족의 지위에 있던 소수 민족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미국에서까지도 소수 민족이 자기를 찾는 운동이 일어나 큰 나라로 얽어매 놓았던 명분을 무너뜨리지 않을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해 봅니다.

강원돈: 오늘날 전 세계적인 규모에서 추진되는 동서 긴장 완화가 남북관계나 한반도 상황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병무: 양대 진영의 긴장 완화와 화해가 그대로 한반도에 적용될 까닭은 없죠. 양대 진영의 데땅트에서는 일차적으로 군사적 긴장 관계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상당히 큰 모티프로 작용했으리라고 보는데,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약소 민족들에게도 그것이 일차적인 것은 아니죠. 긴장 관계를 구축해서 패권적인 제국주의적 이익을 오랫동안 향유한 것은 소련과 미국인데, 이 때문에 손해 본 것은 전부 약소민족들이지요.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국입니다.

요즈음 미소회담과 한소회담이 열리고 여기에 미국이 개입하여 우리와 연계하면 우리의 장래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데, 저는 이 기대감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어요. 그것은 예속적인 본능만 있는 치사한 것이지요. 민족 통일 문제는 우리 힘으로 해결해야 할 우리 민족의 문제이지, 미소를 중심으로 한 데땅트가 곧 우리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아요. 요즈음 정부는 바깥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무엇이나 양보할 듯이 하면서 내부를 옥죄어 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저는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모델 케이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좀 극단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과거에는 미국과 소련이 서로 갈라져서 양 진영의 긴장 관계 속에서 이익을 추구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미국과 소련이 이해 관계상 서로 연결되어 남북 관계에서 눌린 쪽에게 더 큰 착취와 불이익을 갖다 줄 수도 있다고 봐요. 이 두 블록의 역학에 따라서는 일본과 중국까지도 이러한 일에 발벗고 나설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끝끝내 경계심을 놓을 수 없어요.

과거에는 패권주의적인 강대국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팽배했지만,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 이란, 니카라과 등은 민족이라는 것이 강인한 것이고, 양적으로 커다란 세력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어요. 이 국가들은 약소 민족으로 하여금 강대국의 허상을 보게 하고 우리도 하면 된다는 용기를 갖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베트남이 궁지에 몰려 고생을 하고 있다지만, 베트남은 제 힘으로 독립을 쟁취했으니만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는 긍지가 굉장할 겁니다.

우리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켜 보면 지상의 과제는 통일 문제인데, 이 문제를 상부층이 중심이 되어 정치적 협상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면, 또 다른 형태의 예속 관계를 끝끝내 벗어나지 못한다고 봐요. 민이 앞장을 서야 해요. 우리 민족의 민중적 민족 의식이 이럴 때일수록 고도로 첨예화되어 인위적으로 분단된 분단선을 끊고 남북을 합쳐버림으로써 정권들이 마지못해 그 뒤를 따르고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고, 세계 각국이 그 실상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한국 문제는 제 궤도에 서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에요.

강원돈: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따른 강대국의 세계 전략이 변화되고 있는 요즈음 북방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안병무: 세계의 추세가 점점 그렇게 되고 있지만, 미국이나 소련이나 일차적으로 실리주의를 추구하고 있지 않아요. 미국이나 소련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것도 한국을 돕자는 게 아니고 경제적으로 좀더 많은 이익을 보자는 데 중점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 민족은 그 동안 미국을 상대하면서 굉장히 많은 것을 밑졌는데, 어떤 의미로나 세계를 상대로 해서 힘을 가져보지 못하고 밤낮 수동적으로 움직여왔던 우리 민족이 무작정 개방이나 했다가는 소련과의 관계에서도 밑지고 말지 않겠나 우려하고 있어요. 더 나아가, 미국과 소련의 데땅트를 통해 한반도에도 어느 정도 해빙 무드가 형성되면, 여기에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미국과 소련을 위시하여 중국과 일본일 거예요. 특별히 일본은 호시탐탐 우리를 자기들의 지배권 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그런 경우가 온다면 미국과 소련은 자기들의 이해 관계 때문에 묵인할 가능성이 있어요. 우리 때문에 미국과 소련이 발벗고 나설 것 같지 않단 말예요.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문화적 침략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데땅트라는 것은 이처럼 한국에 대해서는 소련도 소련이지만 일본의 문화적 침략과 직결된 구도를 갖고 있어요. 왜 이 점을 강조하는가 하면, 그것이 한국 민족의 아이덴티티 문제와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침략이라는 것은 그 다음의 여러 형태의 침략을 용이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민중적 민족"

강원돈: 현상에 대한 진단은 어느 만큼 나왔으니까, 이제 조금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 볼까요? 선생님 말씀 가운데 "민중적 민족"이라는 표현은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우리 민족을 바로 그런 개념으로 포착하게 되면, 영어의 네이션이나 독일어의 폴크로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겠지요. 그런데 우리 민족의 민족의식은 어떤 계기에서 형성되었을까요?

안병무: 역사적으로는 잘 규명하지 못하겠지만,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우리 민족이 문화적으로 동화되어 적대 의식을 별로 갖지 않았단 말이지요. 중국은 문화적으로 침탈해 들어왔지, 군사적으로 점령하여 지배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우리 민족의 민족 의식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고조되었어요. 우리 민족은 일본을 문화적으로 깔보았는데, 그런 일본이 군사적으로 침범해 들어오니까 이에 대한 저항감이 컸던 것이지요. 우리 민족은 단일 민족으로서 오랜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공동 운명체라는 의식이 클 수밖에 없었는데, 지배 세력이 민족개념을 유일한 고리로 삼아 통합을 이루고자 했어도, 대외적인 측면에서 우리 민족은 계속 눌려 살 수밖에 없었단 말이죠. 우리 민족이 민족을 내세울 때에도 제국주의적인 의미의 민족주의를 표방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우리 민족은 외세에 억눌린 상태에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의미의 민족주의를 내세웠을 뿐이지요 그야말로 "민중적 민족"주의라고 할까요?

강원돈 :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민중적 민족" 개념은 부르주아적 민족 개념이나 마르크스주의적 민족 개념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안병무: 글쎄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는 걸요. 우리의 민족 개념은 부르주아적 민족 개념은 아니죠. 유럽에서는 민족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에 봉건 사회가 자리잡고 있었죠. 바로 이 봉건 사회를 무너뜨리고 민족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는 그야말로 민족 국가보다는 부르주아 계급이 중심에 선 민족 국가가 앞섰고, 그것이 제국주의 시대에 들어와서는 침략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이죠. 우리에게는 엄밀한 의미의 봉건 사회가 없었어요. 우리는 타민족의 박해와 침략 속에서 민족주의를 갖게 되었던 거죠. 우리 민족에게 계급 의식이 생긴 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이식되면서 형성되었지, 지금 내 기억으로는, 타민족과의 관계에서 계급 의식이 싹텄다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마르크스주의는 서구의 역사경험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 아니에요? 1920년 대에는 한국에서도 마르크스주의가 시골에까지 깊이 침투했었는데, 지주에 대한 저항은 계속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반제 투쟁이었단 말이예요. 계급 의식이라는 것은 별게 아니었어요. 해방 후 이북에서 계급의식을 고조시키려고 했어도 뭐가 있었어야죠. 소지주들을 내쫓고, 별 것도 없는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투쟁을 자꾸 강조했는데, 그 점에서는 성공을 못한 것으로 저는 알고 있어요

지금은 문제가 다릅니다만,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외세에 눌려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내부에서의 계급 의식보다는 외세와의 관계에서 민족 의식이 더 강했어요. 물론 계급적인 의미에서 민중은 지배층의 억압과 수탈을 당했고, 이 지배층은 다시 외세와 결탁하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요.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민중이 일어났다가도 쓰러진 것은 언제나 지배 세력에 의해서가 아니고 원병에 의해서였단 말이죠. 그리고 이 괴뢰적인 정부가 유지된 것도 외세의 힘 때문이었죠.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민족의 민족 의식에서는, 우리 민족 전체가 외세에 의해 깡그리 망한 민족이다, 외세에 의해 수난당하는 민족이다 하는 감정이 일차적으로 작용하고 있었어요. 이 감정은 지배 세력에 의해 역이용 당하는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지배 세력과 외세에 의해 이중적으로 억눌리고 수난당하는 민중이 있어요. 그들에게는 외세의 침탈을 받는 서러움과 한이 가득 차 있었던 것이지요.

강원돈: 그러니까 우리 역사에서는 민족 감정이나 민족 의식, 민족주의를 가진 사람들이 지배층이 아니고, 외세의 침탈과 이와 결탁한 지배층에 의해 착취를 당하며 서러움과 한을 안고 살아가는 민중이라는 것이지요? 선생님께서는 평소 "민중적 민족"을 말씀하시면서 문화적 차원을 굉장히 중시하지 않으셨습니까? 방금 서러움과 한이라는 표현도 사용하셨는데 그것을 조금 더 보충해 주시면, "민중적 민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안병무: 그렇죠. 역사가들은 어떻게 정리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역사는 어떤 의미에서는 체념의 역사였어요. 남을 침범하지 않는 평화 민족이라는 것은 미화하는 말이고, 실제 체념에 빠져 힘이 없었어요. 역대의 왕조나 위정자들은 이 체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민을 지배하기도 했죠. 지배층은, 앞에서 말한 바 있듯이, 민족주의를 내세울 필요가 없었어요. 언제나 외세를 이용했기 때문이죠. 지배층은 또한 충과 같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어 왕권에 저항할 수 없는 것처럼 민중을 세뇌하기도 했죠. 특히 조선왕조 5백년이 그랬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은 진실한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민중은 노동을 통해 가치를 생산하고 민족의 살림살이를 꾸리는 살림의 주체가 아닙니까. 이 살림의 주체는, 외세의 침략을 받았을 때 민족이 살아야 우리도 산다는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텐데, 거기서 민족 의식이 발전하지 않았겠어요. 민중이 강인한 힘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죠

간도에서의 경험인데, 한국 사람들끼리 둘러앉아 이야기하게 되면, 거의 예외 없이 울어요. 가슴에 한이 차 있는 증거지요. 그렇지만 그들은 개, 돼지처럼 산다고 자학하면서도, 땅을 빼앗기면 화전을 일으켜서라도 살아야겠고, 정 살 곳이 없으면 만주에 가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겠다고 나선 사람들이거든요. 그들은 수난 속에서도 강인하게 살아간 사람들이지요. 물론 그 일차적인 동기는 굶지 않고 살아남아야겠다는 것이었지만 말이죠.

민중의 강인만 생명력,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다

강원돈: 그와 같은 민중의 강인함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요? 수난 속에서 서러움과 한을 지니면서도 꼿꼿이 일어서게 하는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올까요?

안병무: 조금 차원이 다른 건지 몰라도, 요즈음 저는 생명력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고 있어요. 민중이라는 것은 참 생명이다, 그야말로 생명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권력이나 재산이나 지위와 같은 "가진 것"으로 존재하는 사람은 그런 것을 다 떼어버리고 나면 죽어 버리고 말아요. 민중은 외적인 장식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생명 자체라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민중은 생명 운동을 위해 제 문제를 제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어요. 민중은 "가진 것"으로 해결하지 않아요. 자본으로 해결하는 것도 아니고 권력으로 해결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삶 자체로 밀고 나간단 말이죠. 함석헌 선생님께서 씨알이라는 말을 사용하셨는데, 저는 요즈음 그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씨알이라는 말을 생명이라는 말로 바꾸면 어떻겠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함 선생님은 순수 생명, 맨 사람이라는 말도 사용했는데, 생명은 그야말로 무서운 힘을 가진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그 생명의 근원이 민중이라고 봐요. 그토록 짓눌러도 죽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민중, 고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겉으로는 체념하는 것처럼 보일는지 모르지만 강렬하게 자기의 삶을 이끌어 나가고 개척해 나가는 민중, 민중 아닌 것들은 다 항복하고 스스로를 팔아 먹어 죽어 없어지거나 겨우 연명하지마는 민중은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제 힘으로 살아가는 훈련이 되어 있거든요. 사실 따지고 보면, 민중이 아닌 것은 결국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고 "가진 것"에 의해 살아가는 허상에 불과해요. 반면에, 민중은 생명 자체, 때묻지 않은 생명 자체이지요. 약을 먹지 않고 건강을 지켜온 사람처럼 수난이 오면 올수록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자꾸 커지고 자활하는 능력이 생기는 바로 그것이 민중이라는 생각이 요즈음 자꾸 들어요. 함 선생님은 그것을 씨알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민중이 자꾸 도전을 받으며 이에 투쟁하면서 민중성을 실현한다는 바로 그 점을 함 선생님은 별로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강원돈: 매우 중요한 개념들이 방금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나왔는데요, 선생님은 생명과 민중을 서로 직결시키고, 끊임없이 제기되는 도전에 대응하고 투쟁하면서 실현되는 "민중성"을 양자의 매개념으로 설정하셨습니다. "민중성"이라는 말은 선생님께서 최초로 사용한 개념 같습니다. 민중과 생명, 민중성의 관계를 조금 더 분명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안병무: 글쎄 아직 발표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건네주는 이야기들이지만…… 그저 예화 정도로 들어줘도 좋겠어요. 창세기를 보면, 선악과와 생명나무 이야기가 있잖아요.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죠. 물론 생명나무를 따먹지 말라는 명시적인 언급은 없어요. 그런데 사람은 선악과를 따먹었죠. 지혜의 열매를 따먹은 겁니다. 그러니까 선악과는 어쨌든 허락이 된 거예요. 따먹지 말라고 했지만 그것을 인간의 자율에 맡겼단 말예요. 그런데 생명 나무는 경우가 달랐어요. 하나님은 인간이 생명나무를 따먹지 못하도록 결사적으로 막았어요. 생명 나무까지 따먹으면 인간은 영원히 살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과 똑같이 되니까, 생명 나무에 인간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불칼로 가로막았던 거예요. 결국 인간은 생명 나무에 손을 못 댄 거죠. 저는 오랜 옛날 사람들이 어떤 원초적인 경험을 그렇게 표현했는지 궁금해요. 생명 나무 이야기는 성서를 종으로 흐르며 나오지요. 잠언에도 많이 나오고, 묵시록에도 한 번 나온단 말예요. 생명과 예수를 연결시킨 것은 요한복음이에요. 마가복음은 민중과 더불어 움직이는 예수를 현상적으로 기술했고, 따라서 민중의 본질을 마가복음으로부터 밝히기는 어렵게 되어 있어요. 아무튼 마가복음이 역사 지평에서 움직이는 예수를 주로 그렸다면 요한은 그것을 넘어서려고 고민한 것 같아요. 민중이 뭐냐, 그 뿌리가 뭐냐는 물음에 대해 요한이 그것을 생명이라고 말한 것 같아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예수의 말도 있지만, 생명의 물, 생명의 밥 등 생명과 관련시켜 예수를 말하는 대목이 요한복음에는 많이 있지요. 요한은 이런 식으로 예수의 뿌리를 밝히려고 노력한 것이지요.—결국 예수는 생명이다. 따라서 예수는 죽었다가도 죽지 않고 살았다—이렇게 되지 않겠어요. 다른 말로 하면, 죽지 않는 게 생명이라는 것이지요. 죽었다는 것은 현상적인 것이고, 생명은 실제로 죽지 않는 것이지요. 죽지 않는 것, 그리고 못 죽이는 것, 바로 그것이 생명이지요. 에스겔서를 우연히 읽다가 37장을 주목하게 되었어요. 37장은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뼈가 모이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생기고 가죽이 생겨 생체를 형성되지만, 아직 생명은 없어요. 그래서 "루아하야, 불어라" 하고 외치자, 루아하가 생체와 접촉을 해서 비로소 생명이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이 과정이 막연한 게 아니고 목적 의식을 가지고 서술되었다는 거죠. 그 생명들은 군대를 이루어 자기 고향을 찾아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어요. 여기서 루아하는 생명과 직결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역사에 적용해 보고 싶어요. 역사의 표면에는 피상적이고 필요 없는 것, 죽은 것, 썩은 것이 깔려 있는데, 그렇게 보면 역사는 죽은 것 같단 말이지요. 그 역사가 생명과 부딪치면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겁니다. 저는 그 생명을 민중이라고 봅니다. 에스겔이 본 것처럼, 민중이 살아 움직이면 다 죽은 것 같은 것들이 산 것이 되어 목적 의식을 가진 민족이 탄생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민중은 결국 성서에서 말하는 루아하, 프뉴마에 해당하고 동양 사상에서 말하는 기(氣)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그것이 움직여서 작동하지 않는 한, 제대로 된 민족이 생기지 못하고 어떤 목적을 갖는 공동체적인 생명체가 탄생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그런데 이 생명의 특징은 계속 도전을 받고 이 도전에 대항하면서 자기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민중은 생명의 근원이에요. 민중이 루아하의 역할을 하듯이, 민중성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해야 비로소 민족이라는 것에서도 생명의 사건이 일어나지, 그 이전에는 생명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요. 우리 한국 민중은 수난의 역사를 통하여 바로 이러한 민중성을 풍부하게 갖게 되었어요. 아까 말한 바와 같이, 한국 민중은 가난과 수난 속에서 도전을 많이 받았고 심지어 죽음과도 같은 도전을 받으며 점점 강인해졌기 때문에, 민중은 한국 민족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지위를 갖게 된 것이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민중은 민족 생명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예수의 태도: 선 자리에 대안 강한 책임 의식

강원돈: 여기서 이야기의 방향을 조금 바꾸어 볼까요. 민족적인 것에 대해 예수는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요?

안병무: "민족" 개념을 강조한 신학자는 고가르텐이지요. 그는 이 개념을 히틀러 시대에 사용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민족"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트네"거든요. 이 낱말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였지요. 그것이야 어떻든 예수가 보고 있는 궁극적인 세계에서는 민족주의니 뭐니 하는 것이 다 해소되지요. 그러나 예수는 선 자리에 대한 책임 의식이 굉장히 강했어요. 저는 예수야말로 특수성을 통해 보편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분이라고 봐요. 이스라엘 민족은 특수한 민중적 민족 아닙니까? 예수는 일차적으로 민중적 민족인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태어났다는 것과 그 민족의 운명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어요. 예수는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말아라. 다만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마 10:5-6)고 말한 적이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이 먼저라는 것을 강력하게 말한 것이죠. "잃어버린"이라는 말도 민중적 민중을 표현하는 상당히 중요한 어구라고 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찾아라, 그래서 하늘나라가 임박했다고 전하라고 한 예수의 말에서 민족주의를 읽자는 것이 아니고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가장 수난 당하는 사람들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성실한 책임 의식을 읽자는 것이지요. 저는 눈앞에 있는 것을 떠나서 세계주의를 표방하는 것을 거짓이라고 봐요. 이 점에서는 바울도 마찬가지예요. 바울은 이방인 선교에 전념했으면서도, "나는 혈육을 같이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롬 9:3)하고 말합니다. 바울의 말은 소위 구속사적 의미에서 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말에는 자신이 태어난 민족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깊이 뿌리박혀 있죠. 이것은 예언자들에게도 뿌리깊은 사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가 민족을 도외시하고 세계주의로 넘어갔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그러나 장차 올 그 때는 민족이라는 것도 달리 해석되겠지요. 마태복음 8장 11절에는 "많은 사람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에 참석하겠고"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은 가장 오래된 전승층에 속하는 것으로서 예수가 직접 한 말로 볼 수 있어요. 이 말은 예수의 관심이 이스라엘에만 국한되지 않고 세계를 향해 열려 있음을 말해 주지요. 복음서들도 예수의 생애를 보도할 때에는 이스라엘에 국한되지만, 부활한 이후에는 온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놓고 있어요. 마태복음 28장 20절에도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 운운하는 말이 나오지요.

아무튼 예수는 그의 현장인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이 강했는데, 그것이 민족주의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차이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의 관심은 "지금 먼저 여기"라는 현장성이 강했다고 볼 수 있어요. 철저한 수난을 당하고 있는 지금 여기의 현장, 그리고 수난을 당했기 때문에 민중성이 가장 강한 사람들의 염원에 호응해서 먼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가라고 했다고 봐요. 그것은 민중적 민족에 대한 관심의 발로였는데, 이 점이 강조되어야 할거예요.

한 가지, 요한복음 4장은 이러한 해석에 약간의 걸림돌이 되기는 해요. 요한복음은 가장 보편적인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데도,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예수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온다"고 하거든요. 문제는 문제인데, 고난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고난받는 이스라엘 민중을 통해서 세계 구원이 온다고 예수가 말했을 가능성은 상당히 많다고 봐요.

강원돈: 선생님께서 선 자리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강조하셨는데, 이러한 책임의식을 잘 보여주는 민중적 표현이 있을까요?

안병무: 지난번 어느 곳에선가 "환생"을 주제로 설교를 한 적이 있어요. 세례자 요한을 죽인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났다는 소문에 두려워했죠. 예수를 보고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났다, 엘리야가 되살아났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죠. 저는 이 모티프를 중시해서 한 맺힌 사람은 다시 둔갑을 해서라도 한이 풀릴 때까지 죽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환생"이라는 말이 적절한 언어일지는 모르지만,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한번 이런 생각을 해보라"고 말하곤 하죠. 엘리야가 다 풀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서 내가 엘리야로 환생했다고 말이에요. 그것은 정말 무서운 민중성이라고 봐요. 저는 생명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생각은 수난받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일반 상식과 같은 것이었어요. 마카비 시대 때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은 그들이 묻힌 바로 그곳에서 다시 살아나 그 한을 풀 것이라는 생각이 유대교 묵시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모티프로 자리잡기도 했었죠. 누가복음 12장 9절을 보면,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는 말이 나오는데, 앞에 나오는 "나"와 뒤에 나오는 "사람의 아들"은 서로 다른 실체예요. 나를 죽이면 사람의 아들이라는 모습으로 다시 둔갑을 해서라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뜻이 그 말에는 담겨 있어요. 생명은 그런 겁니다.

전태일은 죽었지만, 전태일은 무엇으로 태어나든 다시 태어나 활동하고 있어요. 흔히 전태일의 정신이 살아 있다고 말하지만, 저는 정신적 계승이라는 말은 피하고 싶어요. 전태일은 죽지 않고 되살아났어요. 생명은 그런 겁니다. 안 죽는 것이 생명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예수도 죽지 않았어요 그를 죽였는데, 그는 죽지 않았어요. 앞에서 저는 예수를 생명의 근원이라고 했고 민중의 전형적인 예로 본다고 했는데, 마가복음의 서술에서 죽은 다음의 예수, 부활한 예수의 모습은 왜 그려지지 않았을까? 참 바른 해석을 했다고 보았어요. 마가는 마태나 누가처럼 떠돌아다니는 예수를 보여주려는 동기를 상당히 약화시켰는데, 그것은 예수가 환생했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가 그냥 다시 살아났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요. 마가는 그 말을 아예하지 않고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것으로 그치고 말거든요. 그러면 그때 일어난 사건의 정체는 무엇이냐. 그것은 죽었던 민중이 일어났다, 환생했다, 예수는 민중으로, 집단적 민중으로 환생했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예수는 오늘 우리 한국에서도 환생하고 있어요. 저는 이 모티프를 서 있는 현장에 대한 책임의식과 연결시키고 싶어요. 예수가 갈릴리아의 민중으로 환생했듯이, 예수는 오늘 한국에서도 환생하고 있어요.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 그 누구인가의 환생으로 그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어야 해요. 죽어도 이루어야 해요. 한국 민중이 품고 죽은 한을 풀기 위해서 민중은 오늘 나와 너, 우리의 모습으로 환생하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이것이 선 자리에 대한 책임 의식의 뿌리라고 봐요.

강원돈: 선생님께서 선 자리에 대한 책임 의식과 환생의 모티프를 연결시킨 것을 흥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좋겠습니다. 아까 선생님께서 민중이 민중성을 실현하고 민중의 생명력을 실현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는 것을 시사해 주셨는데, 민족 문제도 그런 안목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즈음 민족 자주화와 민족 통일, 사회 민주화 등에 관한 논의와 실천이 활발한데, 선생님께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민족 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안병무: 민중의 민중성을 실현하지 못하게 하고, 민중의 생명력을 억누르는 것은 모두 철거되어야 해요. 생명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것, 싸움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것이지, 그 생명이 바깥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저는 민중이 생명의 원천, 근원이라고 봐요. 민중이 생명력을 발휘해야 민족도 사는 것이지요. 그것은 바깥에서 줄 수 있는 게 아니고 내적인 투쟁을 통해서 스스로를 형성하고 앞으로도 스스로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겠죠. 제가 민중신학과 관련해서 행한 첫 번째 공개강연이 "민족민중교회"입니다. 거기서 저는 "우리 역사에서 민족은 있어도 민중은 없었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으면 정말 실재하는 것은 민중이고 민족이란 대외 관계에서 형성된 상대적 개념인데 언제나 내세우는 것은 민족이었고 민족을 형성한 민중은 계속 민족을 위한다는 이름 밑에 수탈 상태에 방치되어 왔다"고 말한 적이 있죠. 민족의 실체는 민중이죠. 그런데 이것을 억누르고 민족이라는 이름을 빌려 가지고 민중을 수탈하고 외세와 결탁해 가지고 무엇인가 해 보려는 것은 절대로 성공 못해요. 그렇게 되면, 민중의 생명력은 억눌리게 되지요. 어쨌든 종속적이고 외세 의존적인 상부층, 민중에 의해 추대 받지 않는 세력들을 배제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죠. 그리고 우리 민족의 문제도 민중이 스스로 해결하는 거지, 다른 제3자가 하려고 들면 민중의 힘을 죽이고 민중을 의존하게 만들고 말거예요. 이웃 나라와 공존하는 것은 상관없으나 우리를 침해하거나 규정하는 외세를, 이미 외세화된 한국 사람까지 포함해서 배제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죠. 지금껏 제국주의는 민중적 민족들을 억눌러 힘을 못쓰게 하고 가두어 놓았는데, 요즈음 민중적 민족들이 이를 헤치고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은 마치 봄을 맞이하는 것처럼 고무적인 일이에요. 이런 면에서 우리 민족, 우리 민중은 때를 만난 거죠. 그러나 제 힘으로 독립과 통일을 달성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계속 예속될 수밖에 없으니까 글자 그대로 생명의 본연의 상태에 돌아가서 생명의 원천인 민중이 주도적으로 독립과 통일을 이룩해야 할 거예요. 민중이 스스로의 힘으로 민족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동등한 관계에서 국제 교류를 하게 되면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절대로 안 되요. 제가 주장하는 것은 단순해요. 모든 것을 민중에게 맡기라는 것이죠. 민중은 고난 가운데서 투쟁하며 생명력을 키워 왔으니까, 민중이 자기를 찾고 그 민중성을 통해 이 민족을 산 민족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강원돈: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경제 제도가 지배적인 사회가 되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자본주의 문제는 민족 문제의 해결과 관련해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 또 민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족 공동체의 대안 모델이 필요할 텐데, 이와 관련해서는 사회주의의 문제도 검토해야겠지요. 선생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안병무: 민중은 지배를 받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죠. 또 인간과 인간 사이에 무엇인가가 매개되어 인간 관계를 좌우하는 것도 원하지 않죠. 원래 생명 자체는 그런 거예요. 그 인간 관계가 타락하여 자본주의를 낳고 다시 자본주의가 인간 관계를 매개하면서 잘못된 세계가 나타난 거죠. 사회주의의 문제가 오늘날 크게 부각되고 있는데, 저는 엘리트가 민의 이름으로 세력을 잡은 다음,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를 공언하면서도 민이 개입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것이 큰 병폐라고 봐요. 아무튼 미래의 세계에서는 정치적으로 민이 최대로 정치 과정에 직접 개입하고 민의 관계가 소통되어야 하리라고 봐요.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자본주의는 절대로 안 되요.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이 철저하게 소외되고 자본 관계가 그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이지요. 사회주의는 중앙 집권제로 발전하면서 실제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다는 것이 문제이므로 이 점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가 되고 있죠. 우리 한반도 상황으로 돌아와서 좀더 말해보면, 이남은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하고 있고 이북은 형태야 어떻든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해 왔는데, 이북이 페레스트로이카의 영향을 받아 이제까지의 노선을 수정한다고 선언한다 해도, 저는 마르크스주의가 불러일으켰고 레닌에 의해 실천된 사회주의의 기본 정신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또 죽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회주의의 기본정신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 역사 속에서 작용을 하리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일차적인 적은 자본주의예요. 저는 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을 끝끝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는지 몰라도, 페레스트로이카를 내세워 인민의 자발성은 드높이고 있는데, 자본에 의해서 인간을 분열시키는 일에 저항하면서 평등 사상을 옹호하는 사회주의의 기본정신은 가장 성서적이고 가장 인간적이지 않아요? 민중이 원하지 않는 것, 인위적인 것에 계속 도전해서, 자본주의 체제가 완전히 변질되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그것도 민중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이겠지만, 사회주의는 현실 사회주의의 여러 가지 모순들을 극복하면서 사회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을 다른 형태로 되살려야 할 거예요. "제3의길"이라는 말에 대해 의혹과 비판이 많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는 하나, 앞으로의 과제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찾는 것이라고 봐요. 그러한 새로운 삶의 양식을 실현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민중 자신이겠지만, 지식인들이 그 모델을 제시해주는 것은 자기가 가진 것을 최대한 내어놓고 봉사한다는 의미에서도 중요한 일이겠지요.

강원돈: 그러한 새로운 삶의 양식은 민중의 민중성이 실현되고 민중의 생명력을 가장 풍부하게 발현하는 것일 텐데, 그러한 공동체를 나타내는 지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떤 것일까요?

민주에 대한 염원

안병무: 뭐니뭐니 해도 가장 아름다운 말은 민주죠. 민이 주인이 된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거요. 우리가 바라고 지향하는 사회는 민주사회죠. 엄밀한 의미의 민주사회를 형성하면 다 되는 건데, 민의 이름을 자꾸 가로채서 문제란 말이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주인이죠. 자본이 권력을 갖거든요. 저는 언젠가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그것은 결코 고르바초프 개인이나 소집단이 만든 작품이 아니고 그 동안 억울하게 계속 당하고 당하면서 부르짖고 생각했던 피압박자들 사이에서 형성된 것을 수용한 것이라고요.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조금씩 나가는 것도 민중 운동을 자꾸 하면서 내세우는 대안이 조금씩 수용되어가기 때문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민중이 수난 속에서 도전을 받고 이에 대응하는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청사진만이 우리 민족을 살 수 있게 하는 길이라고 봐요. 여기에는 대전제가 있어요. 우리 민중은 그것을 할 만한 지혜를 갖고 있다는 것이죠. 이제까지는 엘리트들이 자꾸 앞장서서 해버리는 통에 실패의 역사가 반복되어 왔는데, 엘리트들이 할 일은 민중을 앞장세우면서 민중을 방해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뿐이에요. 글자 그대로 민주적으로 하려면, 엘리트들이 먼저 청사진을 내세워 민중을 그리로 강제로 밀어넣는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될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대답을 엘리트가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도 하나님 나라를 얘기하면서 단편적인 이야기를 조금씩 했을 뿐, 설계도 같은 것을 제시하지 않았는데, 이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강원돈: 끝으로, 한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선생님, 민중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스스로 망각하는 일은 없을까요? 그래서 생명의 힘과 본질을 잃고 스스로 반생명적인 것에 사로잡히는 일은 없을까요?

안병무: 요즈음 저는 영지주의에서 새삼스러운 점을 보고 있어요. 기독교가 영지주의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아요. 영지주의의 통찰 가운데 중요한 것은 인간이 포로가 되어 갇혀 있다, 그래서 마침내 자기의 아이덴티티마저 잃어버렸다는 데 있어요. 육체에 갇혀 헤어나올 생각도 하지 않는데, 빛의 세계에서 파견된 사자가 "너는 빛의 아들이다"는 것을 전달하고 그것을 깨닫게 되면 그 즉시 포로 상태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죠. 그것이 잘못된 것은 너무 종교적인 면으로만 기울어져서 그런건데 사회 경제적인 시각으로 이를 확대시키면 굉장히 좋았을 거예요. 기독교는 영지주의의 영향을 종교적인 면에서만 받아들였죠. 물론 영지주의는 이원론을 너무 극단적으로 절대화시키는 오류를 범했는데, 기독교가 그것을 상대화시키려고 노력한 것은 공헌이라고 봐요. 아무튼 이제까지 저는 민중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된다고 해 왔는데, 현재의 민중이면 다 되는 거냐, 그 민중도 자신의 실체를 망각하고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니냐하는 생각을 최근에는 깊이 하게 되었어요. 민중은 생명의 근원인데, 그것을 망각한 민중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이제까지 민중신학은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든지, 구원의 주체라든지 하는 것을 지식인들에게 전달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진일보하여 자기다움을 잃고 있는 민중에게 "당신은 생명의 근원이오" 하고 말하고 깨우쳐야 할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난 해 미국에서 큰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도중의 무의식 상태에서 제가 정충이 되어 태평양 바다 만한 곳에서 고독하게 헤엄치는 환상을 보았어요. 기진맥진해서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가나 거의 체념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배를 쓸어주는 것을 느꼈어요. 그 순간 내가 그 안에 있는 것을 누군가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서 힘을 얻어 다시 헤엄쳐 나오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죠. 밖에서 인정해 준다는 것은 이처럼 중요해요. 그것은 민중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대체로 민중은 난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잊어버리고 마는데, 그 민중을 인정해 준다는 것은 무서운 힘을 갖는다는 말이지요. 민중은 오랫동안 체념에 빠져 약화됐기 때문에 바깥에서 지원해 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는 지식인과 민중을 일단 구별하고 있습니다만, 양자의 관계라고 할까 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중의 민중성을 보고 그것을 증언하는 지식인과 민중이 관계를 맺어 민중 지향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봐요.

강원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신학사상』 1990. 여름호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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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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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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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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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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