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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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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평화
한국전쟁의 현장

나는 한국전쟁을 고스란히 서울에서 당했다. 국민들 사이에 불길한 예감이 감돌고 있었던 지도 오래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밖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안으로 찬일파에 둘러싸여 주체적 자기 결단을 못하고 있었다. 이에 일부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 동지회'라는 것을 결성하여, 교회에 자각을 촉구하며 국민들에게 위기 의식과 더불어 회개를 외치기로 다짐했다. 국민들에게 그 뜻을 알리기 위해서 작성한 포스터의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하나님의 의가 서지 못한 곳에 정당한 양심이 없다. 양심을 잃은 그 세기, 사회, 민족은 영원히 죽음뿐이리라. 그대는 자신을 사랑하는가? 조국을 염려하는가? 그러면……" 이런 문구를 실은 포스터는 서울 곳곳에 붙여졌으며 모든 영화관의 광고로 상영되었다. 이것은 당시 젊은 그리스도인에게 반영된 불길한 예감의 긴박성을 노출한 것이다. 그러나 그 소리는 아무런 반응도 없는 무의미한 메아리로 그쳤을 뿐 교회는 피안을 향한 꿈만 꾸고 있었고, 정계는 권력 싸움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나는 한국전쟁을 북악산 밑에 있는 어떤 기도원에서 맞았다. 거기서 소수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불길한 예감 앞에서 철야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고쳐 묻고, 비상한 결단을 하려 했던 것이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경험한 당시의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는 아무런 준비도 없었고 교회도 어떤 각성이 없는 채 밀어닥치는 이북의 힘 앞에 계속 남으로 남으로 밀려갔으며, 그리스도인들은 밀려가는 정부를 따라 갈 뿐 아무런 자기 표현이 없었던 것이다.

이 전쟁은 누가 일으켰으며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가? 서울을 점령한 이북군은 남산에 고사포 부대를 주둔시켰다. 나는 당시에 바로 남산 기슭에 있는 한 교회를 지키려고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미군 폭격기가 남산을 강타했다. 그 진동은 교회로 쓰는 건물을 물 위에 뜬 뗏목처럼 흔들어댔다. 죽음의 공포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인민군 차림의 한 젊은이가 교회 뜨락 한 구석에 엎드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에게 접근했을 때 그는 무릎을 꿇고 손을 비비면서 평안도 사투리로 "난 아무 죄도 없어요. 농사짓다가 끌려온 것뿐이에요. 살려 주세요" 하며 애원했다. 그는 남산 고사포 부대에 속한 젊은이로 폭격에 혼비백산했던 것이다. 그는 작열하는 폭격 소리와 더불어 천지가 완전히 뒤바뀐 것으로 착각했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그는 "난 빨리 돌아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부대장에게 맞아 죽어요"라고 아까와는 다른 말을 하더니 마침내는 우리 앞에서 "김일성 장군 만세"라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대문을 차고 사라졌다. 그것은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 전쟁은 민중에 의해서 민중이 하는 것이 아니라 부대장이, 아니 김일성 자신이 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단적으로 실감하게 했다.

이북과 그 세력을 두둔하는 여론은 그 전쟁을 한국측이 미국의 조종에 의해 일으켰다고 주장했으나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때 군비를 위시한 실력으로 보아서, 그리고 한국전쟁을 맞은 정부의 당황해 하던 작태로 봐서도 그런 주장은 가당치 않다. 그런데 내가 50년대에 영국에 갔을 때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물론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서 그의 주장에 강경히 맞섰다. 그러나 그는 다른 차원에서 설득력을 가진 분석을 개진했다. 요약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전쟁 발발 훨씬 전부터 한국군의 정보부대가 이북군들이 38선에 집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당시 한국 대통령에게 알렸다. 그러나 이 사실을 미국은 거듭 부정했다. 정보 능력이 고도로 발달된 미국이 이 사실을 몰랐을 까닭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무런 후속 조치 없이 미군을 전부 철수해 버렸다. 당시 한국군은 몇 대의 철갑차 정도와 소무기를 지녔을 뿐 단 한 대의 전투기도 전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철수한 미군은 뒤이어 미국의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 발표는 한국에 전쟁이 나더라도 간여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었다. 이렇게 미국이 이북의 공격을 유발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미국이고, 이북 세력은 이에 말려들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시각은 내 머리를 강타했다. 내가 겨우 할 수 있었던 말은 미국이 왜 그래야만 했을까라는 것이었다. 그의 대답은 극히 간단했다. 2차대전 때 쓰다 남은 많은 무기들을 처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미국을 그렇게 보는 것이 내게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 사람의 그 분석을 아니라고 할 말도 갖고 있지 못했다. 한편 이북은 수백 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일시에 공격했다. 이것은 누가 준 무기들인가? 그 모든 것은 소련에게서 공급받은 것이다. 그들이 소련의 동의 내지는 사주 없이 한국전쟁을 일으켰으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또한 한국 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되었을 때 소련 대표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도 우연이라고는 결코 볼 수 없다. 평범한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국제적 음모와 계산이 배후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한국전쟁은 냉전 체제 밑에서 우리 땅이 세계의 갈등이 충돌하는 전장으로 제공된 사건이며,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우리 젊은이들이 흘린 피와 민족적 수난은 양대 진영의 꼭두각시들에 의해서 대리 전쟁을 한, 희생의 제물을 바치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 같은 많은 수난과 피를 흘리고도 세계의 제국들이 그어 놓은 휴전선이 그대로 고착되어 있다는 사실이 어떤 다른 판단을 가능케 하겠는가?

분단시대의 병

우리가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대리 전쟁을 치른지도 3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말하자면 한국전쟁의 그 처참한 희생의 대가도 없이 민족 분단의 시대를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분단시대가 우리 민족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는 냉철한 시각으로 분석해 봐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정부는 KBS라는 매체를 통해 이산가족 재회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것은 분명 아직도 아물지 않은 과거의 민족적 상처를 건드린 행사였다. 타의에 의해 30여 년 동안 갈라져 살 수밖에 없던 가족이 만나는 장면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 만나는 자들과 더불어 기뻐하면서도 다음 두 가지의 물음 때문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는 이렇게 가능한 거사를 왜 30여 년 동안 미루어 왔는가? 라디오는 물론 TV가 전국에 보급된 지도 오래다. 그런데 남북 이산가족 문제를 남북 대화의 주요 논제로 다루어 온 정부가 왜 이렇게 쉽게 풀어볼 수 있는 이남의 이산가족 문제를 등한시했는가? 이 사실은 정부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가 분단시대의 현실과 그 비극성을 철저히 인식하지 못하고, 구체적으로 이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여러 분야에서, 분단시대라는 한정사 밑에서 이 민족의 현실을 보려고 하는 시도가 있어 왔다. 그것을 나름대로 분류하면 이러하다. 첫째는 독재정권의 존재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역대의 독재정권들이 제일의 국시처럼 크게 내세우는 것이 안보 논리이다. 이 안보 논리는 언제나 남북 상호의 적대 관계를 과장극대화해 왔으며, 그것은 군국주의를 팽창시키는 구실이 되어 왔다. 아마 세계에 안보 논리가 이처럼 비대하게 군사 지역화한 예는 우리밖에는 없을 것이다. 최소한 150여 만의 젊은이들이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적개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남한은 미군 주둔을 정당화할 뿐 아니라 외국군 철수 요구가 반민족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도식을 말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국민 전체가 군사 문화를 거치면서 세계를 보는 시야를 안으로, 즉 자기 민족이라는 좁은 현장에만 제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늘 세계의 양심들은 세계의 평화, 핵의 문제, 공해 문제, 동서와 남북간의 긴장 해소 문제 등 인류 미래를 걱정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자기 민족을 향한 안보 논리의 협박으로 인해 우리 민족 전체는 세계에서 후퇴하고 있다.

둘째는 이데올로기 문제이다. 우리는 일제시대부터 엄격히 고수되어 왔던 반공주의에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당해 왔다. 이것은 안보 논리와 관련된 정책적인 강요다. 그런데 문제는 반공을 국시처럼 관철시킴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는 물론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연구의 자유가 일체 터부시되어 오고 있는 현실이다. 이 사실은 반공에도 자율적인 판단은 없고 강요에 의한 타율적 복종만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세계는 이미 마르크스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한 신비화를 극복하고 그 정체를 밝힘으로 상대화한 지 오래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사회의 갈등과 모순에 대해 사회 과학적으로 밝혀 낸 바를 수렴하여 세계를 보는 눈과 제도에 대한 변혁에 도움을 받고 있다. 똑같은 분단 국가인 서독은 공산당을 합법화하고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한 연구나 해석의 자유를 충분히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 자체를 상대화하며, 그것에 대한 국민의 면역성을 기를 뿐 아니라 자신들의 사상이나 제도를 개혁하는 데 활력소로 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분단 40년 동안 이데올로기에 대해 완전히 색맹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세계 인구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세력의 진상을 모르고 어떻게 세계의 일원으로 미래에 대비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흑백논리의 강요로 인해 세계를 보는 눈이 얼마나 좁아졌는가 하는 것이 밖의 세계에 나가 본 사람들이 충격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우리 민족 정체성의 인식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분단시대의 안보 논리가 내세운 일차적인 내용은 반공이다. 그런데 실리주의를 표방해 가는 정부의 경제 정책은 공산주의 국가와의 접근을 여러 측면에서 시도하고 있으며 환영하고 있다. 반공이 우리의 '국시'라면 제일차적인 적은 소련이나 중국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의 적은 바로 이북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반공주의도 날로 허구화되어 가고 있으며, 민족 의식도 점점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른바 74 공동성명에서 내세울 수 있었던 공동의 장은 오직 민족 의식뿐이었다. 피는 모든 것보다 진하다고 함으로써 같은 피이기 때문에 사상과 제도를 초월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양쪽 집권층은 단지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 악용함으로써 그들의 노력은 허구에 불과했다는 것이 폭로되었다. 그러므로 분단은 사상적 차이에 의한 분단이나 민족의 분단이 아닌 두 정권에 의한 분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민족의 정체를 밝히는데 수렁이 되고 있다.

넷째는 위와 관련하여 우리는 자기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진단하여 개혁할 수 있는 길이 크게 제한되고 있다. 남한은 이른바 자유주의 진영에 속해 있다. 그런데 자유 진영이라고 하나 그 안에서는 여러 색깔의 체제나 사상으로 다원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유 진영에 속해 있으면서도 철저한 반공주의 보수 정권이 있는가 하면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진보적 정권들도 많다. 자유주의 진영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말한다면 역시 자유일 것이다. 민주 체제가 다원화 사회를 용인하는 체제라면 사상의 자유는 물론이고 언론의 자유, 체제 선택의 자유까지도 용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분단시대는 이러한 일체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 모든 자유는 이른바 안보 논리에 의해 압살 내지 유보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같이 경제가 민족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때도 없었다. 그러므로 경제 체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비판에 온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그 민족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하겠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풍토는, 자본주의의 비판은 곧 용공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독단이 권력에 의해 판을 치고 있는 상태이다. 제1세계에서 자본주의가 갖는 의미와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결코 같을 수가 없다. 강대국의 자본주의는 그 국가 민족의 이해와 일치될 수 있으나 우리와 같은 제3세계는 그것이 상반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의 이해관계 시각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거나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른바 정치적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우리 여건에서 어떻게 접할될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묻고 토론할 만한 자유마저도 없다. 우리의 현실에 대한 국민적 참여의 한계는 사상적, 제도적 선택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우리 고유의 언어 사용에 있어서까지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자신이 서있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는 기대는 망상 이상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끝으로 정의감의 위축을 들어야 할 것이다. 산업사회를 목표로 하는 사회에 있어서 노동자와 농민의 역할은 막중하며 따라서 그들이 보호 내지 존중되어야 함은 정의사회 규범의 제1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근대화를 위하여 외국 자본에 의한 수출을 유일한 방법으로 삼고 있는 우리의 경제 정책은 세계 경쟁에 한몫 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최저의 임금이라는 것을 유일한 무기로 삼게 된다. 이미 천 만을 육박하는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하여 수출고를 높이는 것을 당연시 내지 정당화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정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수출인가? 민족의 실체인 노동자와 농민들의 희생을 담보로 잡고 이룩한 성과가 어떻게 민족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또한 이런 상황에서 분단의 사실은 노동자 농민의 권익을 위한 투쟁은 물론 언로(言路)마저 차단하고 있다. 분단시대에 자본주의가 싹틀 때부터 우리의 사회 현상은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로 집약되게 되었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느니, 기업주는 권력자의 시녀이라느니 하는 말들이 팽배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와 농민의 입장에서 정당한 비판과 사회개혁을 위한 제안, 또는 투쟁으로 이 나라의 정의로운 질서를 수립하지 못한 것은 분단시대가 가져다준 가장 큰 병이다.

이상에서 편의상 몇 가지로 나누어 분단시대의 성격을 지적했으나 어느 것도 유리시킬 수 없이 연결된 문제들이다. 일반은 사회과학적 시각에서나 역사적 맥락, 문학적인 직관 등에서 이러한 사실들을 문제시 해 왔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비록 70년대의 현실 참여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분단시대의 구조적 아픔들을 구체적으로 보고 그 인식을 저변화하지도 못했으며, 이런 문제들을 그리스도교적으로 해석하여 이 민족 앞에 천명하지도 못했다. 70년대 폭넓게 동의를 얻은 것은 인권옹호였다. 그러나 인권에 대한 이해도 매우 한정적이었다.

그것은 반드시 무지 때문만이 아니라 분단시대가 강요한 제약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인권을 논하려면 무엇보다도 노동자와 농민들의 인권을 물어야 하며 저들의 인권을 물으려면 자본주의에 대한 병폐를 위시한 체제 전반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해야 하는데, 바로 이 길이 근원에서부터 막혀있기 때문에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한계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였다.

갈등은 강권이나 폭력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근경에 와서 학생 운동의 언어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일으키고 있다. 저들의 관심은 이미 학원 영역을 넘어서 이 민족의 갈등 구조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며 문제를 제기한다. "반제", "반파쇼" 등을 전면으로 내세우는데 그것은 단순히 민주화를 요청하는 것과는 다른 데서 생겨난 주장이다. 민주화를 주창할 때는 주로 권력 구조에서의 자유, 따라서 인권 수호에 초점을 두는 데 반해서 반미, 반제, 반파쇼는 경제적 종속 관계, 권력의 경제적 기초를 더 근본적인 문제로 본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 운동이 노동자의 권익 옹호에 날로 비중을 더해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미 천만을 육박하는 노동자들이 산업 사회의 사실상의 담지자들이다. 이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권리를 차지하게 되지 않는 한 우리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지난 인천 사태를 둘러싸고 두 가지 상극적인 비판의 소리가 높다. 하나는 저들이 용공 세력이요 파괴분자들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나 제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요, 다른 하나는 저들로 하여금 그처럼 과격하게 만든 원인은 지속된 강권으로 인한 폐쇄 사회가 오랫동안 계속된 데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 책임을 정부에 돌리는 입장이다. 사실상 이 정부가 우리 현실을 얼마나 바로 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날로 의문만 가중되고 있다. 민주화 또는 개방 사회 정책을 거듭 표방하면서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강권 발동을 유일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한다. 우리의 사회는 문제가 얽히면 얽힐수록 점점 폭력만 난무하는 무대가 되어 버린다. 저항층은 폭력 외에 아무런 통로가 없다고 생각하며, 정부는 안보 논리를 등에 업고 강권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려고 한다. 이런 마당에서는 어떤 문제라도 해결되지 않으면 이 사회를 승자도 패자도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갈 뿐이다. 공업화에 우리의 운명을 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동자 문제는 온 민족적 지혜를 모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화급한 과제이다. 더군다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표방하고 나선 이북과의 대치 상태에 있어서 이 문제는 그 의미가 더욱 심각해진다. 한 마디로 우리 민족의 평화 문제에 접근하는 길은 이 노동자의 문제 해결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경의 학생들의 부르짖음을 단순히 혹백논리에 의해 정죄하지 말고 오히려 피할 수 없는 문제를 앞당겨 제기한 것으로 받아들여 우리의 민족적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치나 경제, 또는 문화를 막론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하는 일이다. 우리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정부는 해방신학이나 종속 이론 등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는데 그것은 정권 수호만을 지상목적으로 하는 소아병적인 반응이다. 가능한 한 외세에 종속되지 않고 자율성을 가지자는 것이 왜 나쁘다는 말인가? 이미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강대국에 얼마나 예속되었는가 하는 것은 단순한 신문상의 정보로도 날로 분명해지고 있다. 국민들은 이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외세가 정부의 시책에 개입하는 현실을 목도할 때마다 우리 국민 전체에게 준 모욕으로 분노하게 된다. 경제 전문가가 아닌 국민들의 눈에는 많은 빛을 등에 진 채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에게 무슨 권한으로 무조건적으로 수입 개방을 요구하는지 알 길이 없다. 정부 자신이 이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계속 밀리고만 있는데, 그 이유를 국민에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왜 우리 상품이 계속 덤핑 판정을 받아야 하는지도 큰 수수께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아는 것은 우리가 어떤 형태로나 이미 자율권을 제약받는 상태에 있다는 것, 즉 종속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왜 우리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기업가들 중 세계의 상위권에 속하는 기업체는 늘어나면서도 노동자는 여전히 가난에서 허덕이고 있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공업화이며 발전인가? 이와 같이 우리에게 내재해 있는 갈등들은 결코 우리 민족과 사회 자체 안에서만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이는 국제적 관계에서 얽히고 설킨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발전을 이른바 GNP의 지표로서 표시하고 있는데, 이 GNP 경쟁은 우리의 국민 생활과 직접 관계가 없고 오히려 종속 관계만 심화시키고 있다는 일면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평화에의 길

이상에서 제시한 모든 조건들은 평화의 적들이다. 그렇다면 동시에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적들이다. 강권이나 폭력에 호소하는 것도, 강대국에 예속되어 자주권을 침범당하는 것도, 그러한 조건 하에서 노동자, 농민들의 노동을 희생의 제물로 삼아 GNP의 지표를 높이게 되는 것도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갈등에서 해방되는 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중심 개념은 하나님 나라이다. 그 나라는 바로 평화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는 갈등을 해결할 때만 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갈등을 해결하는 데 신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 신앙이다. 하나님은 종교적으로 신앙의 절대자인데 이것을 사회학적 개념으로 바꾼다면 '공(公)'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만인을 위해 있는 것이고 어느 누구도 사유화할 수 없는 것처럼 '공'이란 '사(私)'의 상반 개념이다. 그러므로 '공'은 사유화해서는 안 되며, 사유화될 때 자동적으로 갈등이 일어난다. 이것은 아담이 하나님같이 되기 위해서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것이 죄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실낙원의 역사는 '공'으로서의 권력에 대한 사유화 체제인 제국주의로 전개된다. 바울은 모든 권력이 하나님에게만 속해 있다고 한다(롬 13 :1). 그런데 구약의 사실상의 첫 책인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이집트는, 한 인간을 파라오라는 이름으로 신격화하여 중동 일대를 제패한 대제국이다. 이 대제국의 등장으로, 하나님에게만 속한 '공'으로서의 권력이 지배되는 영역은 갈등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갈등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즉 계급의 분화로 노출되었다. 그 후 바벨론, 시리아, 로마 등 대제국이 속출하면서 중동과 유럽, 지중해 일대를 갈등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야훼에 대한 신앙이 천명되었고 그리스도교가 탄생하였다. 출애굽의 이야기는 바로 이집트 제국 밑에서 혹독하게 노동을 착취 당하던 하삐루(히브리)들의 탈출로 시작된다. 이집트권에는 이 같은 하삐루들이 도처에 있었다. 이집트의 고대 문서에 하삐루를 토벌한 기록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하뻐루들이 결 속하여 저항 세력을 이루었다는 증거들이다. 이집트의 하삐루들은 노동계층이다. 저들이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이르러 가나안의 많은 군주들 치하에서 착취당하는 농노들과 만난다. 저들도 가나안에 있는 하삐루들이다. 이 큰 두 집단의 만남은 가나안의 제군주들의 지배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부족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열 두 지파의 모체요, 이스라엘의 전신이다. 이 고대 이스라엘은 계속 인접한 군주 세력들의 침략 위협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이 군주 체제를 만들려는 유혹을 오랫동안 거부해 왔다. 그것은 권력은 '공', 즉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이고 어느 집단이나 개인이 사유하여 사람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이라는 인물이 무력으로 유다 지방의 왕이 되고, 마침내 이스라엘까지 침범하여 합병하므로 이른바 다윗 왕조가 형성되어 이스라엘 내의 갈등 구조가 심화되었다. 그것이 솔로몬 시기에 와서 극에 달하여 마침내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은 권력 다툼의 장이 되고 그 결과는 남북 왕국으로 분단되어 결국에는 보다 강한 제국들에 의해서 식민지화되어 버렸다. 이러한 갈등 구조에서 예언자들이라는 일군을 통해 강조된 것이 샬롬, 즉 평화였다. 그들의 평화는 하나님의 평화이다. 하나님의 평화는 갈등의 해소를 대전제로 한다. 이것을 대변한 예언자들은 높은 것이 낮아지고 낮은 것이 높아지는 현실이 구체적으로 가난한 자와 무력한 자들 편에 서고 그들을 억누르는 자들을 심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서에 있는 여러 법전들은 이러한 의지를 뚜렷이 밝히고 있는데, 그 결정체인 십계명이 다름 아닌 바로 이러한 갈등 극복의 대강령이다.

예수 시대는 팔레스틴이 로마제국에 의해서 정치 경제적으로 수탈당하던 시대였다. 이때 유다 사회에는 이미 여러 계층이 형성되었고 지방간의 갈등도 심화되었다. 이러한 현장에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는 것으로 그의 활동을 전개했다. 이미 위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평화의 나라이다. 그렇다면 그 현실은 어떤 것인가?

여기서는 다음 세 가지 사실만 분명히 밝히겠다. 하나는, 하나님 나라는 곧 하나님의 주권만이 지배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이 야훼만을 강조하므로 '공'으로서의 권력을 사유화한 모든 군주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거점이 되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주권만을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 선포는 권력을 사유화한 모든 집단에 대한 거부이며 선전포고와도 같은 것이다.

둘째는 궁극적인 평화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갈등을 극복하는 일을 전제하고 있다. 이미 세례 요한이 자기의 임무는 높은 것을 낮게 하고 낮은 것을 높게 함으로 평화의 왕으로서의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는 하나님 나라 실현이 가난한 자와 눌린 자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했다. 예수의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저희의 것이다"라는 대선언은 바로 이 사실을 뚜렷이 천명하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이나 행태가 모두 이 같은 정신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가 갈릴리의 민중의 편에서 민중과 더불어 한 모든 행위는 평화를 지향하는, 갈등 구조의 극복을 목표로 했으나 그 결과는 점령 세력과 매판 세력들의 손에 의해 정치범으로 처형된 것이다.

셋째로는 하나님 나라 현실은 나누는 삶이다. 예수가 거듭하여 그 나라를 잔치나 만찬 등으로 비유하고 또 실제로 나눔을 실천했으며, 최후의 밤에 그 나라가 도래할 때도 식탁에서 나누게 될 것을 예고한 것 등이 이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맥을 이은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시대에서 추구해야 할 뚜렷한 지표가 주어졌다. 그것은 바로 '공'의 질서의 재확립이다. 원래 땅도 바다도 하늘도 공적인 것이지 어느 집단이나 개인이 사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반역한 역사는 국경을 긋고, 사유지로 경계선을 긋고, 권력 체계를 만들고 인간 위에 군림하며, '공'으로서의 '물(物)'을 독점화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므로 이 역사는 전쟁의 역사가 되고 말았다. 이 마당에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가 바로 '공'의 질서의 확립이다. '공'의 확립은 나누는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실현될 것이다. 평화는 주며, 나누는 데서 이루어진다. 나누어 주는 것은 바로 사유화된 '공'을 되돌리는 운동이다.

그러나 강제나 폭력으로 뺏는 것에 의해 평화에 이를 수는 없다. 그 이유는 폭력은 폭력을 낳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평화 운동은 갈등을 초래하는 자들 즉 '공'을 사유화한 자들이 자진해서 되돌려주고 나누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길뿐이다. 그런데 그 상황은 설교나 설득만으로는 안 된다. 그것은 구조적인 사회 변혁이 병행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분단시대의 극복의 역사에서 그리스도교가 기여할 수 있는 길도 역시 이것을 철저화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원제: "625와 평화", 「기장회보」/ 『민중 사건 속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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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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