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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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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평화를

현재 세계에는 그 어느때 보다 강력하게 평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기이한 현상은 전쟁으로 가장 피해를 받은 제3세계에서가 아니라 이른바 선진국의 국민들이 이 운동을 주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화 운동은 인류 멸망이라는 가공할 만한 핵무기에 대한 공포에 핵심적인 동기가 있다. 한국은 세계의 다른 몇 지역과 더불어 핵전쟁의 촉발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다른 제3세계에서와 같이 평화에 대한 절실감이나 핵무기에 대한 절박감도 국민적 차원에서 운동으로 표출되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하여 우리에겐 특유의 현상이 있다. 비록 국민 운동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는 않으나 민족 분단의 비극과 통일에 대한 열망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 가고 있으며 운동으로서도 여러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민족 통일의 문제가 바로 우리가 당면한 평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현실을 오랜 정치적 변혁 과정을 통한 체험 결과에서 생긴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우리의 평화 문제를 민족 분단과 평화 문제에 초점을 두고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통일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신학도로서의 나에게는 어쩔 수 없는 제약과 한계가 있다. 까닭은 통일의 문제는 우리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제적 역학 관계로 이룩된 문제이며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진단되고 그 해결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이데올로기 문제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고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라는 제한된 견지에서 어떤 방향을 찾아보는 노력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먼저 국민의 일원으로서의 상식을 바탕으로 분단의 비극과 통일의 저해 요소를 규정해 보고 성서적 배경에서 우리가 가질 가본 방향이 무엇인지를 밝혀 보려고 한다.

분단 상태의 성격

2차대전 이후에 인위적으로 분단된 민족이 셋 있는데 베트남, 독일, 그리고 한국이다. 세 민족의 상황이나 동기는 다르나 공통점은 외세에 의해서 분단되었다는 사실이다. 월남은 이미 그들 나름대로의 통일을 이룩했기 때문에 논외로하고 우리 분단 상태를 독일의 경우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특성이 지적된다.

독일은 전범국이요 전쟁 도발의 주체였던 것이 계기인 것에 대하여 우리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른바 연합군에 의하여 분단되었다. 독일은 단일 국가로서의 역사가 불과 백 수십 년에 불과한 데 비하여 한국은 천 수백 년의 통일된 단일민족이다. 독일은 수차에 걸친 전범국이기 때문에 그 민족을 응징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약체로 존속시키려는 인접 국가들이 뚜렷한 의지가 그 분단에 절대적으로 작용한 데 반하여 한국은 국제적으로 어느 나라에 대해서나 위험의 대상일 수 없다. 그러므로 독일 민족과 같은 동기에서 분단되어야 할 당위성은 전혀 없었다. 우리 나라를 분단시킨 숨은 동기가 있었다면 점령국들 자체의 이해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분단된 독일은 같은 민족이라는 공통분모 외에 하나의 종교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기독교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하여 한국에는 종교적 분단이라는 의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비록 우리에게도 몇 가지 종교가 있으나 이북에는 어떤 종교도 적어도 제도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이산가족에 대한 아픔은 비할 바가 못 된다. 독일은 비록 정치적으로 분단된 동안에도 교회(신교)는 동서독 하나의 교회로서 유지한 역사가 있으며 강제로 하나의 교회가 분단을 강요당했어도 저들의 일치감이 강했기 때문에 동서독의 교류를 철저하게 봉쇄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비록 두 정권이지만 하나의 민족으로 머무는 운동을 교회가 계속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서 한국은 어떤 접촉의 매개가 될 것이 없었다. 독일에 있어서 서독은 교회 기구를 통해서 계속 동독 국민을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원했으며 분단 이후에도 베를린을 통하여 수많은 동독인들이 자유를 선택해서 서독으로 넘어 올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서독 정부는 교회 기구를 통하여 동독에 감금되어 있는 많은 정치범들을 막대한 돈을 지불하면서도 구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완전 밀폐된 상태에 고착됨으로 천만이라는 이산가족이 생겼으며 이들은 상대방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유례를 보기 드문 비극속에서 울고 있다. 끝으로 한국전쟁이 준 상처다. 해방의 감격을 단일민족으로서 충분히 인식하면서 자기 주체를 재확인할 새도 없이 민족상잔의 비참한 전쟁을 맞게 된 것이다. 이 전쟁은 결코 우리만의 전쟁은 아닌 것이다. 우리 민족을 점령한 강대국들의 획책에 말려든 전쟁이다. 완전 무방비 상태의 한국을 버리고 어떤 대안도 제시함이 없이 한국 주둔군을 철수시킨 미국, 그리고 뒤이어 미국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했다는 미국무성의 발표 등은 한국에서 무엇을 기대한 처사인가. 북한 철수를 해방군의 자랑으로 내세운 소련이 탱크를 위시한 막대한 전쟁무기를 북한에 공급한 사실이나, 한국전쟁의 발발 계기로 유엔안보회의를 개최했을 때 소련 대표가 참석을 하지 않은 의도 등은 무엇인가? 이것은 어떤 해석자들의 견해대로 미군을 한국에 투입하게 함으로 서방에 있어서의 미국 세력의 공백을 노린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한국전쟁은 결국 두 블록의 싸움터에 우리 민족이 희생의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다. 해방! 그로부터 우리는 동족 사이에서도 볼 수 없는 적대 관계를 철저히 심화시켰을 뿐이다. 그 결과로 모든 것이 기형화되고 있다. 정치에서 아이들의 교육에 이르기까지 분단 상태가 악용되고 있다. 또한 정치적 독재통치의 이유가 되고 있으며 교육에 있어서는 반공 또는 미제국주의 추방을 삶의 목적인 양 세뇌해 왔다. 가는 곳마다 내걸려진 반공 표어와 간첩에 대한 경고문들은 국민상호간의 불신을 애국심의 발로처럼 조장해 왔다. 그러므로 40년의 역사에서도 모순과 비리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상의 열거한 모든 병폐를 배제하는 것은 민족 통일을 성취하는 데에서만 찾을 수 있다.

민족 통일을 위한 움직임들

남북을 막론하고 민족 통일을 위한 움직임은 오직 정권에 의해서만 용인되었다는 것이 첫째의 특징이다. 우리가 처해 있는 남한에서만도 자유당시대에서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번도 민의 차원에서 민족 통일을 위한 움직임을 허용한 일이 없다. 자유당시대에는 정부가 무력 통일을 국시처럼 내세웠기 때문에 평화적인 통일 주장 따위는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불가능한 금기로 되어 있었다. 419학생 혁명으로 자유를 얻은 민은 통일에 대한 염원을 여러 모양으로 노출시켰다. 그러나 그러한 민의를 성립할 사이도 없이 군사 쿠데타로 짓밟아 버린 후 10여 년을 민족 통일에 대한 논의 자체를 금기로 삼고 반공 교육만 점점 철저히 했다. 그러던 군사정부가 국민에게는 비밀리에 남북 협상을 모색한 결과로 저 유명한 74성명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국민들의 절대 지지와 환호를 박 정권은 철저한 독재정권 구축의 기회로 이용함으로써 우리 정치사에 가장 죄악스러운 유신체제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현 정부도 출범과 더불어 마치 평화 민족 통일이 제일 과제인 양 여러 기회에 평화 협상의 구체안까지 제안하기를 거듭해 왔다. 그러나 박 정권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족 통일에 대한 자세에는 다음 몇 가지의 공통점이 일관되어 있다. 첫째, 통일에 대해 정부만이 거론할 수 있다는 독점 의지의 관철이다. 박 정권은 이 협상을 위한 권한을 자신에게 완전 일임해 달라는 요구를 강조하였고 현 정권은 비록 여러 가지 안을 계속했으나 내용은 하나같이 정부와 정부 사이의 대담을 제시하는 데 불과했다. 양쪽의 수뇌 회담, 수상급의 회담, 각료급의 회담 등이 그 예이다. 국민적 차원에서의 통일 논의는 어용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일체 금지되어 왔다. NCC를 위시한 기독교에서의 통일을 위한 회의 계획이 예외 없이 음성적인 권력 행사에 의해서 무산된 것이 우리가 직접 경험한 현실이다. 둘째는 남북회담의 재개를 위한 제의가 있을 때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접 대국들의 필요에 의해서 사주받은 정부들의 제스처였다는 의혹이 짙다. 남북 협상이 구체화되기 전에 우리를 제외한 강대국들 사이에서 한반도 문제를 논의했다는 보도를 계속해서 우리는 접하게 된다. 그 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말이다. 여러 차례의 회담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실효도 거두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정말 자주적인 결단에 의한 협상이었다면 그렇게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양순하리 만큼 정부에 의한 통일 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하면서 적어도 14-15년을 기대해 왔다. 그리고 국민 자신의 운동을 정부의 요청대로 자재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정권 차원에서 통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무산되었으며 한걸음 나아가서 민족 통일의 문제는 나라의 주인인 민의 차원에서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민족 통일은 결코 국토 통일과 동일한 것이 아니며 또한 한 체제가 다른 체제를 어떤 형식으로 정복함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다. 분단이 파생한 온갖 오해와 불신과 차이점을 극복하고 우리는 하나의 뿌리를 가졌다는 의식 위에서 모든 인위적인—제도적이든, 사상적이든—담을 민 자체의 화합에 의해 무너뜨릴 때에만 진정한 민족 통일이 가능한 것이다. 민에 의한 민족 통일! 이것만이 진정한 통일의 길이라는 확신 위에 우리는 민족 통일 운동을 전개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교로 하여금 통일 운동의 전선에 나서야 한다는 결단을 하게 한다.

민족 통일 운동의 거점

동기야 어쨌든 74공동성명의 3대 전제는 통일 논의에 결정적인 발판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①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②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 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천 해야 한다. ③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사람들은 이 원칙들에 대해서 거의 예외 없이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이 같은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주체는 절대로 정권들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결정한 정권들은 애당초에 자신들이 이 원칙을 실천하는 주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증거로는 북한측이 이러한 협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 8월 14일에 발표한 남북한 연합 체제안을 계속 반복하는가 하면 박 정권은 이 성명이 발표된 3일 후인 7월 7일에 개최된 국무회의에서 반공 교육의 계속 강화를 지시했다는 것 등이 두 정권 모두에게 통일 의사가 전혀 없음을 반영한 것이다. 사실상 정권적 차원에서는 이 세 가지 어느 원칙도 시행될 수 없다. 오늘과 같이 정권이 국제적으로 상호 의존 내지 예속된 상황에서 어떻게 정권이 외세에 의존 없이 뜻을 관철할 수 있으며 무력으로 시작되고 뒷받침된 정권이 그 외의 어떤 다른 수단이 있을 것이며, 안보논리를 정권 유지에 전가의 보도처럼 삼고 있는 정권이 사상과 이념, 제도를 초월한 운동을 어떻게 전개할 수 있단 말인가? 이 3원칙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민이 주도할 때만일 것이다. 국제적 강대 세력에 예속되지 않은 민, 무기 행사권을 가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식과 남편을 전쟁터에 내보내려는 어떤 가능성도 생각할 수 없는 민, 사상이나 제도에보다 정과 피에 얽혀 있는 민, 이 민만이 기존적인 모든 담을 헐 수 있는 본질적이며 실존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원칙을 작성한 장본인들은 잠깐 정권의 차원을 떠나 민의 차원으로 돌아감으로써 이 같은 발상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북은 물론 이남에 있어서도 공동성명 그 후에도 일체 민이하는 통일 문제 논의를 허용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렀다. 여기 정권 차원에서의 제시나 협상에 허(虛)가 있다. 한마디로 그들에게는 통일의 의사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민족 화합을 궁극적 거점으로 삼았음에도 민의 통일 운동을 금지하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정부의 대표가 직접 만나자는 제의가 자주 발표되는데 거기에는 정부의 대표가 곧 민의 대표일 수 있다는 허구한 전제가 것들어 있는 것이다. 어용적으로 만든 민간 단체가 또한 어떻게 민을 대표할 수 있는가. 남북 정권이 제시한 모든 제안들은 한마디로 하면 민을 무시한 횡포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이 이상 더 외세에 대한 기대는 물론 정권에게 통일 문제를 내맡기거나 무엇을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통일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의 역량에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러한 민의 운동을 저해하는 요소를 막아주는 야경 국가의 역할이다. 그 이상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신념 위에서 그리스도교 교회는 통일 운동을 펴야 한다.

통일 문제 해결의 성서적 거점

본인은 통일에 대한 성서적 조명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은 시각으로 민족 분열의 원인을 밝혔다. 이스라엘은 종족 동맹으로서 비군주적 공동체 체제를 가졌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 체제에 가까웠는데 이 종족 동맹이 가능했던 것은 야훼 하나님을 절대 그리고 유일한 통치자로 전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나안 지역에 군주 체제에 매혹된 일부 세력이 국가 안보라는 차원에서 부강한 나라를 이상으로 함으로써 이스라엘을 군주 체제로 만들려는 책동을 계속해 왔다. 그 결과로 사사(판관)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군주 체제로 돌아가게 됐다. 이 체제에서 사울이 첫 왕으로 등장했으나 그는 과도적인 인물이었고 무술과 지략에 뛰어난 반디트(bandit)의 대장인 다윗이 등장하여 이스라엘을 장중에 넣기 위한 갖은 획책을 꾸몄다. 그러나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이스라엘의 숙적인 불레셋과 야합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서 먼저 유다 족속의 왕이 되고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사울이 죽은 다음 약화된 이스라엘과의 투쟁을 계속하여 무력과 권모술수로 마침내 통일 국가를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것은 국호의 통일이지 민족의 통일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는 예루살렘에 권력의 상징인 궁전을 짓고 통치자로 군림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의 신앙의 상징인 법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함으로써, 마침내 그의 아들 솔로몬에 와서 성전을 세우고, 우주의 신을 성전의 신으로 만들어 버리고, 이 성전의 신은 다윗 왕조의 수호신 즉 이데올로기로 전락시키기에 이르렀다. 다시 말하면 저들은 만유의 통치자 야훼를 사람이 지은 집에 감금하고 다윗 왕조를 수호하는 신으로 하는 그런 이데올로기로서의 신학을 펴게 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민족 사이에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로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대립은 날로 심화되어 마침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민족이 분단되기까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러한 군주적인 현장에서 온갖 비리에 대항하여 예언자라는 일군들이 일어나서 생명을 걸고 군주들의 포악성을 저지하려고 했으나 들을 귀가 없어 마침내 힘없는 민족으로 북과 남 할 것 없이 외세에 분단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살핀 나는 민족의 통일은 결코 집권자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도 없고 이루어져서도 안 되며 오히려 분단의 책임이 집권자들에게 있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통일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민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예수가 등장했을 때에는 여러 신흥 제국들의 정복을 거쳐서 세계제국이 되었던 로마제국의 식민지시대였다. 이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로마제국에서의 해방이라는 가장 큰 과제와 적국의 점령 하라는 암흑 속에 있으면서도 민족 안의 정신적인 분열이 일어났다. 첫째, 특히 이스라엘에 뿌리를 둔 갈릴리 지방, 사마리아 지방, 예루살렘을 중심한 유다 지방 사이의 갈등이었으며, 둘째는 로마의 어용괴뢰 정부인 헤롯왕, 셋째는 예루살렘파가 문제였다. 저들에겐 특히 성전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역대로 외세에 계속 아부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이름을 팔아 사복을 채우면서 이스라엘 민의 대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체질화되었다.

이러한 문제 앞에서 민족의 해방과 그 통일을 위해서 여러 형태의 운동 집단이 있었다. 이미 마카비전쟁 전에 예루살렘에 이른바 지도층의 부패를 용인할 수 없어 탈예루살렘하여 백이숙제처럼 자신들의 경건을 훈련하는 신앙동지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하시담이다. 저들은 마카비아 일가가 독립 전쟁을 일으켰을 때에 과감히 참여하여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마카비아 가가 권력을 잡자 또다시 무력 지상주의에 빠져 민족 위에 군림하며 군주 체제를 만들었다. 이것을 용인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예루살렘 숙청을 염원한 것이 에세네파다. 이 에세네파의 정신에 준한 그룹으로 세례 요한파 그리고 젤롯당도 그 맥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반하여 현실주의자들로서 외세와 대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현장에서 국민운동을 통하여 정신적 무장을 하는 것이 옳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을 거점으로 해야 한다는 그룹이 있었다. 그 중추가 바로 바리새파다. 저들은 율법을 토대로 이스라엘 민족의 일상의 생활 규율을 만들어 국민 운동의 기틀을 삼았다. 그러나 저들은 여권이 수용됨과 동시에 세력을 등에 업은 체제주의자들로 되어 버렸다. 저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이름으로 체제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중산층 이상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날그날의 끼니를 염려해야 할 사람이나, 병자나, 천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준수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이 체제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죄인과 의인이라는 종교적 이름으로 분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체제 안에서 체제의 의무를 다하는 자는 의인이고 그렇지 않는 자는 죄인이라는 현장에 예수가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예수의 행태에서 민족 통일을 향한 직접적인 대답을 찾을 근거는 내세우기 어렵다. 그 대신 예수의 행태를 크게 몇 가지로 성격화 함으로써 우리의 통일에 대한 방향 설정의 근거로 삼아 보려고 한다.

1) 예수 연구가들이 한결같이 놀라는 것은 예수에게서 헬레니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헬레니즘은 당시의 로마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갈릴리 지역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분계선에 있으므로 헬레니즘이 만연되어 있었다. 웬만큼 배운 계층은 헬라어를 자기 말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예수와 그의 일군이 무소유를 생활 원칙으로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고대 자본주의에 예속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두 특성을 종합해서 우리 관심의 시각에서 성격화한다면 예수는 '탈이데올로기 또 초이데올로기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점을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주는 제일차적인 방향 제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74성명 3원칙에서 "사상과 이념을 초월하여서"라는 조항이 진정인가?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탈이데올로기화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탈블록화하는 길밖에 없다. 즉 자신이 중립국이 되는 길밖에 없다. 그리스도교는 공산주의와 일치시킬 수도 없거니와 자본주의도 자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동시에 반공을 국시처럼 내세운 이 풍토도 저지해야 할 것이며 자본주의를 자명적으로 아는 풍토에도 저항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통일 문제의 길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반공에 있어서 유명한 반면에 자본주의 죄악성에 대해서는 색맹과 같다는 이 시점에서 자체 체질을 개선함과 동시에 이 두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제3의 자리를 추구하는 운동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2) 예수 연구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것 중의 하나는 예수가 로마제국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로마에 의한 십자가의 처형 사건을 빼면 로마제국과의 충돌의 현장은 전혀 기록되지 않다. 마치 로마제국을 몰랐던 것처럼! 예수 운동을 젤롯당과 연결시키려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불가능한 시도이다. 반면에 예수를 비정치적인 종교인으로 보려는 시도는 현실을 외면하는 주장이다. 나는 예수의 대로마 자세를 탈권력주의, 권력에 대한 철저한 무시라고 보고 싶다. 이러한 흔적은 특히 예수의 수난사에서 뚜렷하다. 권력에 의해서 재판을 받고 죽으면서도 마치 하나님이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에게만 호소하는 그의 자세, 빌라도의 앞에서의 침묵 등이 그런 것이다. 이와 관련된 것으로 예수는 바리새파가 중심이 되어서 이루워 놓은 유대 체제를 무시했다. 그의 행태는 반체제적이라 기보다는 그 체제가 없는 듯이 행동한 것이다. 이것이 예수 행태의 두번째 특징인데, 위의 특징을 민족 통일을 위한 우리의 기본 자세에 적용시킨다면, 어떤 기존 권력 체제도 통일운동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집권층과의 충돌을 예상할 수밖에 없는 가장 예민한 측면이다.

3) 예수는 오직 민중과 더불어 살았다. 그들의 애환이 무엇인지 민중의 현장에서 충분히 보며 경험하고 살았다. 그는 도시로 간 일이 없으며 농촌으로만 다녔다. 특히 가난한 자들이 수난당하는 현장에는 예수가 있었다. 그 민중의 현장은 바로 예루살렘파들이 오랑캐라고 무시한, 세례 요한을 처형한 헤롯 안티파스의 통치 영역인, 갈릴리였다. 그가 만일에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했다면 예루살렘을 거점으로 했어야 했다. 그는 세례 요한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갈릴리로 들어가서 민중 안에, 민중 편에 서서 저들을 구속하고 저들을 멸시하는 체제와 계층에게 저항하면서 저들의 권리를 수호했다. 그러나 그는 젤롯당처럼 폭력 혁명을 주도하지도 않았으며 바리새파들처럼 어떤 체제를 만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가 최후에는 갈릴리 민중을 데리고 하시딤 이래로 저주의 대상이 된 어용의 본부인 예루살렘으로 진격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셋째 방향을 암시받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 통일운동은 민중운동으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수난당하고 있는 민중이 분단의 경계선을 뚫는 원동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즉 아래에서 위로의 길이 바로 통일 운동의 원칙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이렇게 되는 길이 바로 민주주의의 길이다. 민이 주도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나 풍토적으로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민이 뜻을 모으고 민의 진정한 소리와 대표를 뽑아 대화로부터 통일에의 대과업에 임할 수 있는 길은 남이나 북 할 것 없이 진정한 민주제도가 앞설 때만 가능하다. 선민주 후통일 또는 그 반대 따위로 대결하는 것은 현실을 떠난 말장난일 뿐이다.

4) 예수에게는 젤롯당처럼 폭력으로 민족 분단을 해결하려 한 흔적이 전혀 없다. 예루살렘에는 들어갔지만 바로 비폭력적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것은 자기 희생이라는 결과밖에 없었다. 그것이 십자가의 사건이다. 십자가는 분단선에서 짓밟힌 제물인 셈이다. 그가 어떤 결과를 지향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역사적으로 하나 분명한 사실은 이 십자가의 사건 후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오랑캐로 대우받던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정착하고 그곳을 거점으로 민족 통일 아니 세계 통일의 거보를 내디딜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암시를 찾을 수 있다. 우리의 분단은 첩첩이 가로놓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처음에 언급한 대로 독일의 분단과도 아주 다르다. 민족 상잔 이후에 상호간 증오와 불신을 고조하는 역사가 40년을 계속했다. 이런 현실에서 이 분단선을 넘으려면 희생의 각오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늘 누가 이 분단선 위에서 죽음을 각오하며 민족 통일의 절대 필요성을 증거하겠는가? 바로 우리가, 이 민족의 구원자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만이 이 일을 담당해야 한다는 철저한 각오가 있을 때 민족 통일의 제단에 놓인 희생의 제물이면서 분단의 선을 뚫는 선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NCC 34회 총회 및 정책협의회 주제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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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유전)과 하나님의 뜻
두 질서
예수에 있어서 결혼과 이혼
순교자 개념의 어제와 오늘
신약에서 본 교회사의 한 단면
II 성서 본문과 설교
성서와 설교
성서 해석의 과정
비유와 설교(1)
비유와 설교(2)
혁신과 보수
하나님의 나라
 
제4부 한국 신학의 과제
한국의 신학의 현황과 과제
한국 교회의 예수 이해
한국 그리스도교와 종교개혁
한국 그리스도교의 자기혁명
한국 교회의 구미신학의 유산과 그 한계
 
제5부 도피냐 구원이냐
기독교의 본의(本義)
도피냐 구원이냐
인간혁명
개인구원이냐 사회구원이냐
공관서의 구원론
부활신앙과 혁명
대담 | 기가 막힌 세상
 
제6부 하느님의 선교와 새로운 공동체의 모색
목회론
평신도의 목회
선교신학의 성서적 핵심
하느님의 선교
새로운 공동체
전달자와 해석자
프로테스탄트 교회관과 일치운동
1980년대 교회의 선교적 과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교회상
예수공동체의 신앙고백
한국 교회는 민족의 과제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1부 메시아를 기다리며
때 (시편 39, 5-13)
진통하는 역사 (로마 8, 18-27)
밤이 오면 (로마 13 , 11-14)
아침을 기다리며 (로마 13, 11-14)
밤과 새벽의 분계선 (로마 13, 11-14)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루가 11, 2)
내가 속히 오리라 (묵시 22, 12-13)
마라나타 (묵시 22, 10-20)
성탄절에 보내는 글 (요한 1, 14)
미래의 크리스마스 (루가 2, 1-38)
 
제2부 넓은 문과 좁은 문
해방자 예수 (루가 4, 18-19)
우리는 모두 사찰당하고 있다 (마르 3, 1-6, 22)
"악마!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르 5, 1-15)
분단의 극복 (요한 4, 21-23)
다 팔아 보화를 산다 (마태 13,44-46)
평화와 칼 (마태 10, 34-39)
좁은 문 넓은 문 (마태 7,13-14)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루가 11, 3)
기도의 사건화 (루가 18, 1-8)
인간봉화(人間峰火) (마르 8, 31-38)
"십자가를 지고"의 뜻 (마르 8, 34-38)
신의 침묵은 심판이다 (로마 1, 18-32)
복음의 전진 (필립 1, 12-18)
사건의 신학 (고후 11, 23-33)
 
제3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
오늘의 그리스도 (마르 15, 27-37)
오늘을 사는 청년 예수 (마르 2, 15-17)
그리스도 (마르 8, 27-33)
우리를 지키시고 구해 주시는 이 (고후 1, 8-11)
새로운 존재 (요한 3, 1-12)
이제 다 끝났다 (요한 19, 28-34)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마태 6, 32-33)
예수 그리스도一세상의 생명 (로마 8, 18-28)
문 두드리는 소리 (묵시 3, 14-22)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고전 6,1-11)
권위와 행동 (루가 20, 8)
현존의 그리스도 (히브 13, 12-13)
 
판권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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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권
 
판권
제1부 옳은 민족 옳은 역사
서양사람 한국사람
구라파에서 본 조국
사상의 주체성
세계 속의 한국
   
제2부 한국의 민족 감정
민족 감정
아키히토 방한과 민족 감정
히로히토가 엄존하는데
민족적 염원
'조국 근대화'와 민족문화
민족 정신 문화 불식시키는 외래 종교
   
제3부 한국의 민족 운동
3•1절과 민족사적 고백
8•15와 해방
3•1 운동과 기독교
민중 운동의 새 기원
4•19혁명과 민주주의의 갈망
4•19의 혼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4부 한국 민(民)과 종교
민족적 과제와 교회
그리스도교와 민족 공동체
개화기의 한국 교회의 위치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주체성과 신앙
더 이상 종교는 침묵일 수 없다
   
제5부 민족 자결
민족 자결의 민족주의
민족 문제와 민중신학
혼선된 역사
   
제6부 분단과 평화
해방은 통일로써만
한국전쟁과 평화
6•25전쟁은 언제 끝나나!
이 땅에 평화를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
   
제7부 통일의 주체
민족 통일 문제의 성서적 조명
통일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통일은 민(民)의 손으로
씨알과 민족 통일
   
제8부 평화의 길
평화와 칼
아시아 평화와 일본
함석헌의 평화 사상
통일을 위한 민족 교육의 방향
평화의 실현
분단 극복과 평화
새 국면에 선 민족 통일과 기독교
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판권
제1부 절망 속의 희망
실락원 (창세 2-3장)
종주권과 민중의 투쟁 (창세 4, 1-16)
카인의 후예 (창세 4, 1-26)
아브라함과 종주권 (창세 16, 3-12)
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창세 25, 19-24)
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탈-향(脫-向)의 인간사 (창세 12, 1.7)
절망 속의 희망 (창세 22, 1-13)
   
제2부 지성소
바벨탑 (창세 11, 1-9)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창세 18, 22-33)
지성소(至聖所) (출애 3, 5)
나는 나다 (출애 3, 13-15)
탈향(脫向)의 기수 (출애 3, 7-10)
지평선 너머 (신명 32, 48-52)
   
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고대 이스라엘 종족 동맹 (사사 5, 1-8)
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믿음의 조상 (히브 11, 17-19)
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제4부 남은자의 믿음
다윗 왕권의 죄 (삼상 8, 4-18)
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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