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집

전집은 OCR 스캔 잡업으로 진행되어 오탈자가 있습니다.
오탈자를 발견하면 다음과 같이 등록해 주시면 관리자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 수정 요청을 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2. 본문을 읽는 중에 오탈자가 있는 곳을 발견하면 앞뒤 텍스트와 함께 마우스로 선택합니다.
3. 그 상태에서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하여 나타나는 창에서 수정 후 [수정요청]을 클릭합니다.
4. 각주의 경우에는 각주 번호를 마우스오버하여 나타난 창을 클릭하면 수정요청 창이 열립니다.

※ 컴퓨터 브라우저에서만 가능합니다.
제7부
통일의 주체
민족 통일 문제의 성서적 조명
문제의 제기

남북 통일 문제는 정치 문제이지 그리스도 교회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이것은 집권층 또는 교회 내부의 소리일 수 있으며, 그나름의 근거가 있을 수 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말하는 근거는 국제 관계를 측정하고 국내적으로 힘의 균형 등 역학 관계를 측정하는 한편 경제적으로 실리적인 분석을 함으로써 비로소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작업은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에 종교단체인 그리스도교가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걸음 나가서 현재까지 정부 주도의 통일론만이 허용되는 풍토에서 그리스도교가 이 문제 관여하면 이른바 '국론 분열'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 내부에서 우리의 과제는 교회를 지키고 선교하는 것이 사명이기 때문에 정치경제적 차원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통일을 논하는 것은 교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른바 '북한 선교'라는 슬로건을 심심찮게 내세우는 교회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제 힘으로 통일하자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고 어떤 과정으로나 통일된 다음에 그곳에 상륙할 것을 전제한 것이기 때문에 한낱 공기를 진동하는 헛소리로 그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나는 한국의 교회가 통일 문제를 심각한 과제로 논의한 일이 없었다고 알고 있으며, 그것은 조국의 통일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견해가 사실이라면 한국의 교회는 이 민족사에서 떨어져나가서 자기 게토에 감금되어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는 이유를 찾는다면 '선교'라는 개념이 너무 협소한 데 있다고 본다. 가령 선교를 과거에 말해온 '전도'라는 개념과 일치시키는 것은 말을 통해서 상대방을 설득함으로써 그리스도 교회 일원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통일 문제는 다른 누군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통일 문제는 다른 누가 할 일이고, 통일된 후에 그곳에 가서 많은 교회를 세우는 것은 '우리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에 선교하기 위해서도 통일 문제는 중대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 교회가 자기 과제를 다하기 위해서 응고된 재래의 선교 개념에서 풀려나야 된다. 그렇지 않은 때는 이 민족 사회에서 한 부분 돌출된 굳은살처럼 유기체에서 소외된 채 쇠퇴해버리고 말 것이다. 민족 사회의 민중의 삶에서 나오는 비전과 관계없는 일체의 현상은 절대로 오래 가지 못한다. 통일 문제는 한국 교회가 나아갈 가장 중요한 한 단계의 방향 설정이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리스도교가 통일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해야 하는 당위성을 성서를 통해 점검함으로써 통일 문제의 서설로 삼으려는 것이다.

성서에서 본 민족 통일과 분열

이상하게도 우리가 경전으로 받아들인 『구약』에는 남북의 통일과 분열이 그 신학 형성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신약』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배경이 된다. 근경의 『구약』 연구가들은 『구약』에서 큰 두 주류를 구분하는데 그것은 북이스라엘 전통과 남유대 전통이다. 북이스라엘 전통의 근원은 출애굽 전통으로 소급되는데 그것은 민의에 바탕을 둔 이른바 계약전통이며, 동시에 해방의 전통이다. 이것이 가나안 정착시 이른바 부족 동맹을 통해 계승된 것이다. 부족 동맹의 특징은 왕권이 없는 말하자면 중앙 집권 체제가 아닌 협의체적 공존 체제다.

부족동맹 당시에는 신분적 지배자나 그런 계층이 없었다. 유사시에 카리스마적 인물이 등장하여 위기를 타개하면 그는 다시 하나의 평민으로 돌아가는 제도였다. 물론 상설 군사 체제도 없었다. 유사시에는 모두 방위 전선에 나섰다. 특수 집단으로서의 군대는 없었다. 이것은 모세가 이끌던 이스라엘의 본모습을 거의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이러한 체제는 하나님의 주권만이 이스라엘을 통치해야 한다는 기본 신념에 바탕을 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말하면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아래 인간이 없다는 것이고, 어떤 제도적인 것이 지휘자와 민중, 그리고 하나님과 민중 사이를 가로막는 일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른바 사사(판관)시대가 그러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배층은 가나안 일대의 주변 족속들의 왕권체제 수용을 추진하였다. 그 주요 이유로는 강력한 지배체제로써만이 부강할 수 있다는 결론에서였다.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엄연히 있었는데 사무엘은 바로 그들을 대표하여 다음과 같은 항변을 하나님의 계시로 선포한다.

왕이 너희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알려주겠다. 그는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기마대의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 세워 달리게 할 것이다. 1천인 대장이나 50인 대장을 시키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거나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보병의 무기와 기병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다. 또 너희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를 만들게도 하고 요리나 과자를 굽는 일도 시킬 것이다.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좋은 것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곡식과 포도에서 10분의 1세를 거두어 자기의 내시와 신하들에게 줄 것이다. 너희의 남종과 여종을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좋은 소와 나귀를 끌어다가 부려 먹고 양떼에서도 10분의 1세를 거두어갈 것이며, 너희들마저 종으로 삼으리라(삼상 8:11-18).

이상이 출애굽 계약 전통에 바탕을 둔 부족 동맹의 입장을 집약한 것이다. 즉 왕권을 수립함으로써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생기고 노동 및 경제적 착취와 인권 유린이 생길 뿐 아니라 바로 그렇게 됨으로써 민의 주인 의식을 박탈하게 되리라는 것이고, 그런 체제는 군국주의로 되리라는 것이다. 이 같은 왕권 수립은 바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를 싫어하여 배척하는 것이며, 이집트에서 그들을 해방시킨 하나님을 저버리는 처사다(삼상 8:7-8). 즉 하나님의 주권에의 도전이며 출애굽 전통과 부족 동맹 정신의 거부를 뜻한다.

첫 번째 왕으로 추대된 사울까지만 해도 부족 동맹의 바탕 위에서 출발했다. 그는 전투 사령관과 흡사한 위치에 있었으며, 통치 체제도 확립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통치 영역도 분명하지 않았다. 그가 다윗과의 대결 관계에서 추태를 드러낸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그것은 다윗 왕조의 어용사가들에 의한 서술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데 다윗에게 와서 본격적인 왕권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때로는 숙적 블레셋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이스라엘에 대결해야 하는 입장에 서기도 하고 정략 결혼으로 영토를 확대하는 등 정도(正道) 아닌 수단까지도 불사하면서 북이스라엘을 유대지역에 흡수 통합했으며 예루살렘성을 빼앗아 개인 영지로 만들었고 또 그곳에 거대한 궁전을 세우는 한편 법궤를 그곳에 고정시킴으로써 신의 이름을 등에 업은 통치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는 유대지방인들에게 왕으로 추대되었으며 유대의 왕으로 출발했는데(삼상 2:1-2), 유대는 부족 동맹과 상관없는 지역이다. 그러므로 그는 사울의 왕위 계승자는 아니다. 그가 이스라엘 정통의 계승자로 자부한 것은 사울의 아들 이스바알의 영지를 교묘하게 박탈한 후부터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권까지 차지할 때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꺼져라, 이 살인자야 꺼져라, 이 불한당 같은 놈아, 사울 일족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은 놈, 그 원수를 갚으시려고 이제 야훼께서 이 나라를 네 손에서 빼앗아……"(삼하 16:5)라고 한 대목은 그의 권력 장악의 과정을 단면적으로 지적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법궤는 출애굽 전통의 상징이다. 그것을 빼앗아 예루살렘에 안치함으로써 예루살렘의 성전의 터전을 장만한 셈인데 그것은 역으로 보면 이스라엘 전통 신앙을 빼앗아 감금한 것이 된다. 예루살렘 성전 외에 그 어디에도 야훼신의 현존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윗에 의해서 외적으로 보면 이스라엘과 유대가 통일된 듯하나 그것은 힘에 의해서 잠깐 나타난 현상이었고 내부적으로 남북의 분열을 구체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출애굽 전통에 선 이스라엘의 신념과 다윗 왕조 중심적 체계주의로 갈라놓게 했다.

다윗 왕조는 3단계로 구분된다. 첫 단계는 다윗과 솔로몬(1005-926 BC)을 잇는 시기로서 이른바 통일왕국시대다. 그러나 이미 솔로몬시대에 분열의 조짐이 있었고 그의 다음 대에 분열되어 사마리아가 몰락된 북왕조 이스라엘시대가 그 다음 단계인데(926-722 BC) 그것은 일찍이 망해버렸다. 셋째 단계는 남유대왕국시대인데 그것은 많은 시련 끝에 기원전 587년에 끝장을 내고 만다. 그런데 이 분열은 다윗의 통치 시대에 시작된 내적 요인이 노출된 것일 뿐이다.

이스라엘은 반왕권적 부족 동맹으로 한 하나님 신앙에 의해 결속되었으며 그 전통은 모세 계약 신앙에 뿌리를 박고 있는데 대해 유대는 왕권 중심으로 정치군사의 힘에 의존하는 '현실주의' 위에 세워진 것으로서 특히 다윗 왕조를 절대시하여 그런 측면에서 예루살렘을 성역화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내세워 야훼를 독점함으로써 신분 계층(어용적)을 사물화하고 그에 따라 메시아 사상마저도 메시아는 다윗의 후예라는 이론을 펴기에 이른 것이다. 이 둘의 대결을 단도직입적으로 규정하면 하나님 통치와 인간 왕권과의 대결이라고 하겠다. 이것이 이스라엘 분열의 핵심적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언자군(群)의 역할은 괄목할 만하다. 이스라엘 전통을 계승하고 이스라엘 지역에서 활동한 예언자는 사무엘 계보라고 할 수 있는 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그리고 호세아 등이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왕권에 대한 도전이요, 비판이다. 사무엘도 왕권 옹위에 적극 반대했지만 엘리야는 타락한 왕권과 싸운 거인으로 나타난다. 아모스는 일개 목동으로 혼자 왕권과 그 부정에 도전한 야인이다. 그가 그의 직업을 내세운 것은 벌써 왕권과의 대결의 필연성을 내세운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입장은 언제나 왕권 이전의 야훼의 민중으로서 부족 동맹 때의 전통에 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저들의 싸움이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왕국을 위한 것은 반(反)유대국적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민(民), 하나님의 민을 위한 것이었다. 왕에 의해 임명된 왕조의 어용 대사제와 대결하여 스스로 야훼로부터 직접 보냄받은 예언자로 나선 것인데 이 점에서는 엘리야의 이야기, 그리고 특히 아모스 전기에서 주제가 되어 있다. 그러한 의식적 표현으로 저들은 자신들을 왕권에 의해 인정된 나비(Nabi)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들은 적어도 8세기 중반까지 그들을 나비라고 한 기록이 없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예언자 나단을 위시하여 이사야, 예레미야 등을 정관사를 붙여서 '한나비'(Hannabi)라고 부른 것과 대조된다.

왕조를 위하고 고문적 위치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은 다윗 왕조와 시온을 축복함으로써 사실상 왕권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하였다. 비록 이사야 같은 예언자는 반(反)유대적인 예언을 해서 박해를 받기도 했으나 그것은 실은 '반'이 아니라 유대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비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유대의 예언자들이 맹목적으로 왕조에 예속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염원은 민족 통일이요, 하나님의 주권 침해를 비판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주권을 지향했다는 데서도 사제족과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두 조류의 대결에서 북이스라엘은 먼저 무너지고 말았다. 이것은 한국사에서 고구려가 쓰러진 것과 견줄 만한 비극으로서 그들의 불운의 역사를 운명지은 사건이다. 그후 유대도 무너졌으나 치욕과 비굴로서 명맥을 유지해옴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도 없애다시피 하고 '유대'로서 연명하여 유대주의를 발전시켜왔다. 이것은 다윗 왕조에 대한 향수 내지 예루살렘 절대주의와 유대적 메시아니즘으로 발전되었으며 철저한 배타주의로 극히 편협한 것이었다. 따라서 북이스라엘 영역이었던 사마리아 지방과 갈릴리 지방 등을 소외시킬 뿐 아니라 멸시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 통일을 의식적으로 저해한 요소다.

이 같은 배경을 갖고 볼 때 예수가 갈릴리 지방을 그의 활동무대로 삼았다는 사실은 새로운 의미를 제시한다. 민족사적으로 볼 때 그는 북이스라엘의 영역을 그의 중심무대로 선정했다는 말이 되며, 정신적으로 볼 때 왕권주의적 유대주의 이전의 출애굽 전통에 뿌리박은 야훼의 민으로서의 부족 동맹의 계보에 섰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미 국토가 외세에 의해 계속 점령됨으로써 유대와 이스라엘을 나눌 수 없었으나 정신적으로는 이들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대 지방 사람들은 사마리아 지방과 그 주민을 이단시하여 상대하지 않았으며 갈릴리 일대를 '이방인의 땅' '버려진 땅'으로 간주해버렸다. 유대 땅의 심장은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이 성전의 바탕은 법궤였으며 그것은 왕조 이전 이스라엘 신앙의 상징이었는데 그것을 뺏아 독점함으로써 그 우위론의 근거로 삼았던 것이며 그런 우월권 아래 저들은 산 야훼를 성전에 가두고 그것을 뜯어먹고 사는 형편이 된 것이다.

그러면 왜 예수가 유대 지방,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를 무대로 선택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마가복음 편자는 분명한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갈릴리를 계속 강조하며 예루살렘과 대립시킨다. 예수와 그 일파를 '갈릴리 사람'이라고 부를 만큼 갈릴리적인 것을 내세우며 예수의 적대자들은 예루살렘과 직결시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막 3:22, 7:1 등)이라고 못박는다. 그뿐만 아니라 갈릴리(이스라엘)는 예수가 절대 환영받은 장소요 예루살렘은 예수를 죽인 장소다. 부활한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죽고 그곳에 묻혔는데도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한다(막 14:28, 16:7). 미래의 약속의 장(場) 역시 갈릴리고 예루살렘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 같은 일련의 사실을 지방 감정의 노출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통일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왕권 수립 이전으로, 즉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고 야훼의 민으로서 출애굽시킨 하나님 신앙을 지킨 부족 동맹 정신에로 돌아가자는 기본 자세라고 해석해야 한다. 이것은 다윗주의에 대한 거부(막 12:35-37), 예루살렘 성전 숙청 행위, 그리고 유대적 민족주의 소멸 현상 등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 같은 입장이 관철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예루살렘 우월론(눅 24:47, 행 1:4)과 다윗왕조 고수주의(막 11:10, 마태 누가의 족보)가 횡행했던 것이다.

한국의 민족통일 문제

이상에서 신구약을 통한 민족 통일과 분열의 과정을 보면서 그 분열의 이유와 시비에 대한 단면적 고찰을 했다. 이스라엘의 민족 분열과 통일의 과제를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에서 최소한 다음 몇 가지 방향 제시를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첫째, 민족 분열은 '민(民)'이 아니라 권력 야욕을 가진 집권계층에 의해서 초래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분열이 국제 정치의 장난의 산물인 것은 그 일차적 원인이다. 그러나 남북이 '민'의 자세를 견지했더라면 남들이 그렇게는 못했을 것이다. 북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집권욕에 단독 정부를 재빨리 수립했고 남에서는 이승만 주도로 역시 단독 정부 수립을 밀고 나갔다. 이 같은 정권욕에 의한 두 정권 수립이 이 민족의 분열을 기정 사실화해버렸던 것이다.

둘째, 통일을 군사력과 통치체제의 강화로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오히려 민족 분열을 심화시켰다. 우리의 경우도 이 점에서 같았다. 북의 공산주의 정권은 '해방'을 내세우면서 무력 통일을 유일한 길로 알았다. 그래서 625동란을 자행한 것이다. 이승만도 무력 통일을 구호로 내세웠을 뿐이다. 그 결과는 외적 분열보다 근원적인 내적 민족 분열을 초래했다. 특히 625는 민족 사이에 깊은 상처를 가져다주었고 그것은 상호간에 절대 불신의 계기를 가져다 주었다.

이상은 분열의 원인에서 소극적인 면이다. 이 같은 현장에서 민족 통일의 길은 무엇이겠는가?

셋째, 다윗에 의한 군사 통치적 통일은 내적으로 민족 분열을 가져 왔다. 이 말은 민족 통일은 중앙 집권적 강권 발동으로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설령 어느 쪽이 군사적으로 성공해서 통일을 이루었다고 해도, 비록 그것으로 국토의 통일은 이룰 수 있을는지 몰라도, 그것은 잠깐뿐이고 내적으로는 오히려 민족의 분열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 통일은 어디까지나 '민'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넷째, '민에 의한 통일'이란 말은 성서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절대적 조건으로 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야훼의 주권'이 민의 공동의 염원이었다. 우리에게 이 원리를 적용시킨다면 '민의 공통 분모'를 통일의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것은 공산주의자들이 이데올로기로 내세운 정략적 구호인 '프롤레타리아'와는 절대로 다르다. 공산세계에서 언제 프롤레타리아가 독재했나? 단지 프롤레타리아의 이름을 악용하는 지식층의 한 그룹이 독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민'을 강도한 자들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상의 과제처럼 갈망하는 것이다. 그것이 서구 자유진영의 산물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염원하는 민주주의는 민이 하나님의 직접 통치 아래 돌아가서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체제를 의미한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통일의 실천도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북은 논의의 여지가 없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남한에서도 통일론은 언제나 정권 주도, 아니 정권만의 독점물로 삼아왔던 것이다. 그것은 단적으로 민주주의 제도가 확립되지 않았다는 증거며, 따라서 민에 의한 통일의 길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민에 의한 통일의 구체적인 방법은 어떤 것이냐가 문제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구체적인 방법론에 개입할 수 없거니와 필자에게 그럴 힘도 없다. 단지 '아니'를 지적한다면, '연방 제도'니 이른바 민간 단체의 대량 참여 따위의 이북측의 제의는 '아니'라는 것이며, 또 정권 사이의 합의면 된다는 사고도 '아니'라는 것이다. 까닭은 '연방제'가 기존 정권을 전제한 것이라는 점과 기존의 '민간 단체'는 자율성도 없거니와 참 의미의 '민'의 대표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 민에 의한 통일을 지향한다면 어떻게 출발해야 할 것인가는 분명하다. 그것은 통일 문제를 민 사이에서 계속 활발하게 토론하고 중의를 모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부터 선행시켜야 한다. 그것은 또다시 관 주도의 계몽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민에 의해 자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 이를 경우, 그리스도교도에게 주어진 과제는 막중하다.

그리스도교는 역사적으로 보나 또는 공산주의와의 부정적 긍정적 관계에서 보나 우리의 통일 문제를 민의 입장에서 추진하는 데 주체가 될 수 있는 여건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것을 위한 내실화가 성취되었을 때의 말이다.

그리스도교는 다음 몇 가지 단계로 통일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있고 그럴 의무가 있다. 첫째는 공산주의에 대한 계몽 운동이다. 지금까지 교회는 잠정적인 '반공'이라는 구호 하나로 반공의 임무를 끝낸 것 같은 자세를 취해왔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반공이 될 수 없다. 이제는 공산주의의 진상을 알아야 할 때다. 이미 공산주의 신화 시대는 지나갔다. 그러므로 겁낼 것 없다. 더욱 그리스도교로서는 그렇게 수세적 자세를 취하도록 강요받을 이유가 없다. 교회는 정부에게 공산주의와의 '대화있는 대결'을 위한 노력을 인정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리스도교 교회에게까지 그 문제 취급의 허용을 위험시한다면 민에 의한 통일의 길은 전혀 배제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그리스도교는 공산주의가 내세우고 있는 이른바 '주의'의 내용을 피하지 말고 역으로 실천에서 쟁취함으로써 그것을 무력하게 하는 적극적 자세에 서야 한다. 가난한 자를 위한다면 그리스도교야말로 '가난한 자의 편'에 서도록 되어 있다. 우리가 우리 본래의 의무를 내세우고 실천할 때 저들의 허상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인민 해방' 따위의 구호를 왜 무서워할 것인가. 오히려 우리가 성서에 입각해서 실천에 옮기면 그것이 바로 승공의 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정권 차원에서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가능하며 또 그런 특권을 정부가 이해하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통일 문제를 큰 주제로 하는 공인된 기구를 설치하고 치밀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선교 자세를 기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맺는 말

우리는 이날까지 정권마다 경직화되는 데서 많은 수난을 당해왔는데 그렇게 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역시 분단 상황이다. 이북 공산정권이 지금껏 지구상 유례없는 사도(邪道)를 걸을 수 있는 것도 이 분단 상태가 방패 구실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대외의 존도가 날로 상승하는 것을 비판하나 이것도 '분단 상황'이 가져다주는 비극이다. 남한의 일년 예산에서 35퍼센트를 초과하는 양을 국방비에 출혈하는 판이니 결국 경제 성장을 아무리 내세워도 동강난 허리에서 그렇게 출혈되는 한 적자만 늘어날 수밖에 없다. 1974년 국제수지 적자가 20억 달러이던 것이 1980년에는 55억 달러에 외채 이자 상환액이 25억달러, 현재는 400억 달러의 빚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비극을 말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만일 남북 대결로 군사력에 의한 출혈을 막는다면 벌써 일본 수준에 이르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은 경제 난국의 해결의 열쇠이며 동시에 우리의 염원인 민주주의 사회 실현의 열쇠다. 그런데 우리는 단순히 그 같은 정치 체제를 궁극 목적으로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민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 두는 새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다.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TAG •

List of Articles
동양의 한 시각에서 본 서구신학 비판
종교고발
성서와 종교
해방과 참여의 신학
정치신학의 동향
혁명의 신학
정치적 예배
민중신학을 묻는다
 
제3부 개혁을 위해 성서를 다시 본다
I 새로 보이는 성서
성서의 '영'(靈)이란 무엇인가
신약성서에서 본 회개
하나님, 이웃, 나의 관계
의식 종교와 사랑
율법을 지키는 일과 참 복종
전통(유전)과 하나님의 뜻
두 질서
예수에 있어서 결혼과 이혼
순교자 개념의 어제와 오늘
신약에서 본 교회사의 한 단면
II 성서 본문과 설교
성서와 설교
성서 해석의 과정
비유와 설교(1)
비유와 설교(2)
혁신과 보수
하나님의 나라
 
제4부 한국 신학의 과제
한국의 신학의 현황과 과제
한국 교회의 예수 이해
한국 그리스도교와 종교개혁
한국 그리스도교의 자기혁명
한국 교회의 구미신학의 유산과 그 한계
 
제5부 도피냐 구원이냐
기독교의 본의(本義)
도피냐 구원이냐
인간혁명
개인구원이냐 사회구원이냐
공관서의 구원론
부활신앙과 혁명
대담 | 기가 막힌 세상
 
제6부 하느님의 선교와 새로운 공동체의 모색
목회론
평신도의 목회
선교신학의 성서적 핵심
하느님의 선교
새로운 공동체
전달자와 해석자
프로테스탄트 교회관과 일치운동
1980년대 교회의 선교적 과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교회상
예수공동체의 신앙고백
한국 교회는 민족의 과제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1부 메시아를 기다리며
때 (시편 39, 5-13)
진통하는 역사 (로마 8, 18-27)
밤이 오면 (로마 13 , 11-14)
아침을 기다리며 (로마 13, 11-14)
밤과 새벽의 분계선 (로마 13, 11-14)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루가 11, 2)
내가 속히 오리라 (묵시 22, 12-13)
마라나타 (묵시 22, 10-20)
성탄절에 보내는 글 (요한 1, 14)
미래의 크리스마스 (루가 2, 1-38)
 
제2부 넓은 문과 좁은 문
해방자 예수 (루가 4, 18-19)
우리는 모두 사찰당하고 있다 (마르 3, 1-6, 22)
"악마!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르 5, 1-15)
분단의 극복 (요한 4, 21-23)
다 팔아 보화를 산다 (마태 13,44-46)
평화와 칼 (마태 10, 34-39)
좁은 문 넓은 문 (마태 7,13-14)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루가 11, 3)
기도의 사건화 (루가 18, 1-8)
인간봉화(人間峰火) (마르 8, 31-38)
"십자가를 지고"의 뜻 (마르 8, 34-38)
신의 침묵은 심판이다 (로마 1, 18-32)
복음의 전진 (필립 1, 12-18)
사건의 신학 (고후 11, 23-33)
 
제3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
오늘의 그리스도 (마르 15, 27-37)
오늘을 사는 청년 예수 (마르 2, 15-17)
그리스도 (마르 8, 27-33)
우리를 지키시고 구해 주시는 이 (고후 1, 8-11)
새로운 존재 (요한 3, 1-12)
이제 다 끝났다 (요한 19, 28-34)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마태 6, 32-33)
예수 그리스도一세상의 생명 (로마 8, 18-28)
문 두드리는 소리 (묵시 3, 14-22)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고전 6,1-11)
권위와 행동 (루가 20, 8)
현존의 그리스도 (히브 13, 12-13)
 
판권
 
판권
 
판권
 
판권
 
판권
제1부 옳은 민족 옳은 역사
서양사람 한국사람
구라파에서 본 조국
사상의 주체성
세계 속의 한국
   
제2부 한국의 민족 감정
민족 감정
아키히토 방한과 민족 감정
히로히토가 엄존하는데
민족적 염원
'조국 근대화'와 민족문화
민족 정신 문화 불식시키는 외래 종교
   
제3부 한국의 민족 운동
3•1절과 민족사적 고백
8•15와 해방
3•1 운동과 기독교
민중 운동의 새 기원
4•19혁명과 민주주의의 갈망
4•19의 혼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4부 한국 민(民)과 종교
민족적 과제와 교회
그리스도교와 민족 공동체
개화기의 한국 교회의 위치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주체성과 신앙
더 이상 종교는 침묵일 수 없다
   
제5부 민족 자결
민족 자결의 민족주의
민족 문제와 민중신학
혼선된 역사
   
제6부 분단과 평화
해방은 통일로써만
한국전쟁과 평화
6•25전쟁은 언제 끝나나!
이 땅에 평화를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
   
제7부 통일의 주체
민족 통일 문제의 성서적 조명
통일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통일은 민(民)의 손으로
씨알과 민족 통일
   
제8부 평화의 길
평화와 칼
아시아 평화와 일본
함석헌의 평화 사상
통일을 위한 민족 교육의 방향
평화의 실현
분단 극복과 평화
새 국면에 선 민족 통일과 기독교
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판권
제1부 절망 속의 희망
실락원 (창세 2-3장)
종주권과 민중의 투쟁 (창세 4, 1-16)
카인의 후예 (창세 4, 1-26)
아브라함과 종주권 (창세 16, 3-12)
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창세 25, 19-24)
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탈-향(脫-向)의 인간사 (창세 12, 1.7)
절망 속의 희망 (창세 22, 1-13)
   
제2부 지성소
바벨탑 (창세 11, 1-9)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창세 18, 22-33)
지성소(至聖所) (출애 3, 5)
나는 나다 (출애 3, 13-15)
탈향(脫向)의 기수 (출애 3, 7-10)
지평선 너머 (신명 32, 48-52)
   
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고대 이스라엘 종족 동맹 (사사 5, 1-8)
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믿음의 조상 (히브 11, 17-19)
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제4부 남은자의 믿음
다윗 왕권의 죄 (삼상 8, 4-18)
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위로
텍스트를 수정한 후 아래 [수정요청] 버튼을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