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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위한 민족 교육의 방향
—지금의 통일 교육은 오히려 반(反)통일 교육

독일 사람들과의 집단적 모임이나 개인적 대화에서 쉽게 시작되는 거의 공식화된 말이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분단된 국가의 성원이기 때문에 공동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습니다"가 그것이다.

두 나라는 분명히 분단되었으되 이른바 공산 진영과 자유 진영으로 분단되어 대치하고 있다. 그러나 저들이 우리 처지를 자명하게 이해하리라는 기대는 착각이다. 그것은 저들과 우리의 분단 동기나 조건들, 그리고 상황이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 사람들이 우리와의 접촉에서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중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의 '통일에의 염원'이 그렇게 간절하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모든 것에 '민족'을 그처럼 앞세운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통일에의 염원은 날로 고조되어 지금은 지상의 과제로 여론화되고 있다. 이 염원을 반대하는 어떤 소리도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 사회에는 통일 논의가 그렇게 표면화되어 있지 않으며, 오히려 통일 염원은 무의미한 것이라는 입장을 굳힌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 사회당 이 국회에서 서독의 헌법 가운데 통일을 전제한 조항들을 삭제하자는 제안을 한 것은 이 같은 풍조의 발로이다. 서독 사회당은 공산 진영과의 평화 공존을 정책화하고 있으며 통일 독일을 전제하는 것은 동독 주권을 잠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기에 저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을 전제한 현헌법은 긴장을 조장할 뿐 비현실적인 환상이라는 견해이다. 한마디로 저들은 통일을 포기해도 좋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러한 주장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통일을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자는 역적으로 몰릴 것이다. 까닭은 통일이 바로 우리가 자주적인 민족이 되느냐 못 되느냐의 열쇠라고 보기 때문이다.

독일의 젊은이들 중에는 독일인이라기 보다는 유럽인으로서 자기 아이덴티티를 내세우는 이들이 많다. 이런 이들은 세계주의자는 아니 지만 적어도 민족주의자로 낙인찍히기를 싫어하는 부류들이다. 그것은 나치가 게르만 민족(Volk)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자국 내의 인권은 물론 전 유럽을 짓밟았던 죄과가 아직 생생히 고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민족주의가 날로 고조되고 있으며 적어도 외적으로 그것을 거부하는 소리는 용인되지 않는다. 그만큼 분단에 의한 우리의 민족적 비애가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밖에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통일을 부르짖고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데도 우리는 반통일, 반민족의 담만 계속 높이 그리고 두텁게 쌓아 올려왔다. 통일이나 민족을 표면에 내세우지 않는 독일 민족은 민족의 동질성과 그 유대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점령국들이 그처럼 음성적인 압력을 가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분단 이후 오늘까지 저희들 간의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분단된 이후에도 그리스도교 교회만은 계속해서 통일 된 독일 교회를 제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속하기 위한 노력과 투쟁을 계속했고, 권력에 의해 자리를 같이할 수 없을 때에도 이른바 부재자 투표형식으로 대표를 선출하는 등의 투쟁으로 그 연대성 고수를 과시했다.

양쪽 국민들의 끈질긴 투쟁은 정치적 폭력에 의한 극한 긴장 상태에서도 편지 내왕과 전화 사용을 차단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성탄이나 부활절과 같은 명절에는 막대한 선물이 주로 서독에서 동독으로 보내졌으며, 상호간의 방문에 필요한 입국 허가 등을 얻어내는 등의 실력을 발휘해 온 것이 마침내 서독 수상의 동독 방문을 가능하게 했고 동독 수상도 소련 눈치를 보면서도 서독 방문 계획을 포기하지 않게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서독에서 교회 기구를 통해 동독의 정치범들을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 비밀리에 인수해 온 사실도 있다. 작년 84년만 해도 4백만 이상이 내왕했고 60억 불 이상의 경제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앞서 말한 분단극복의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국토는 분단됐어도 민족은 분단되지 않았다.

이에 비해서 통일만이 살길이라고 하며, 민족적 독립은 그때부터라고 절감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40년 분단 시대는 분계선을 요새화하고, 국민 의식을 상호 철저히 원수화하는 데 온갖 정력을 바쳐왔다. 국토 분단보다도 분단 정책의 가속화가 민족 정력의 소모를 계속하게 했다. 북한은 남한 국민의 코가 모두 미국인의 그것처럼 높아지기라도 한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미국의 앞잡이가 된 것으로 악선전하는가 하면 남한에서는 북한의 국민들은 모두 붉은 피부에 뿔 달린 괴물처럼 전체를 매도해 왔다. 한마디로 통일을 구두선(口頭禪)으로 반복했으나 통일을 향한 교육은 오히려 반통일을 지향했을 뿐이다. 그것도 애절한 통일의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말이다.

이 정권은 계속 무력통일만 반복했고, 박 정권은 정권 장악 후 통일 과제를 10여 년이나 금기로 삼아 오다가 비밀리에 공작하여 이른바 74성명을 성립시켜 국민을 놀라게 했으나 실은 통일이라는 국민의 가장 절실한 염원을 일인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그후 여러 차례의 남북 회담, 적십자 회담이 있었으나 번번히 국민을 희롱했을 뿐 단 한가닥의 분단의 줄도 풀지 못했다.

현재까지 통일 문제는 역대 정권의 독점물이었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국토 통일보다 민족 통일인데, 민족의 사실상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통일 논의나 통일 운동이 금기처럼 되어 왔다. 이같은 정책에 대해서 수동적인 오랜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일이 통일 교육의 제일 과제다.

12년만에 재개된 적십자 회담에서 내놓은 과제가 왜 혼선을 빚고 있는가? 국민 차원에서는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는데 왜 정권 차원에서는 안 되는가! 바로 그 진상을 냉철하게 투시하는 데서 우리의 통일을 위한 교육의 방향이 드러난다.

첫째, 통일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들 자신의 힘으로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 정부는 양쪽을 막론하고 냉전체제 유지의 하수인으로 예속되어 있다. 국민의 뜻 위에 서지 않은 정부일수록 강대국에 종속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정권 유지가 민족의 이익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은 제도적으로 외세에 예속되어 있지 않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족 이익을 위해 결행할 수 있다. 우리끼리 터놓고 살겠다는 데 어떤 외세가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통일의 주체가 국민들 자신이라는 신념이 투철하면 정부의 간섭 없이 직접 통일을 모색하는 중심체를 제도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며 또 그래야 한다.

둘째, 우리는 강대국들에 위해 형성된 냉전 논리에서 해방되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정부는 정권 유지가 일차적 관심이기 때문에 냉전 논리에서 안보 논리, 안보 논리에서 정권 안보를 지향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국민은 냉전 체제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 경쟁에 희생될 필요가 없다. 칼 마르크스의 사상과 레닌 이후 정권을 장악함으로 형성된 이데올로기로서의 공산주의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반공주의가 민족의 방향으로 강요되므로 민족 위에 놓인 현실을 더 이상 묵인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반공이 우리 민족 통일을 가로막는 것이 될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우리 민족 통일의 주역이어야지 냉전체제의 고용병일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 우리 민족에 대한 확신이다. 그것은 우리가 한민족으로서 생존하는 것이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한다는 확신이며, 우리 민족은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고 우리 민족애가 모든 체제나 이데올로기를 초월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74공동성명은 그 동기가 어떻든 명분을 찾기 위해서 진실을 담고 있다. 특히 제3항에서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며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가 바로 그것이다. 확실히 민족적 대단결은 모든 이념과 제도를 초월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성명을 낸 정권들은 정권욕을 초월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 남북 적십자 회담에서도 계속 민족적 유대를 강조했다. 27일 저녁 만찬회의 얼음 조각에 새겨진 "혈육 상봉"이란 말이 이것을 호소했으며 28일의 만찬회에서도 주최측이 혈육의 한에 호소하는가 하면 북측은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간다 해도 사상과 이념에 앞서 민족을 생각한다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응수했다. 신문 사설들도 결국 민족 연대성에 호소했다. 그런 소리는 바로 민족 감정 자체를 원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저들이 그것으로 정권적 이해 관계를 초월할 수 있다는 기대는 착각이다. 그러나 민족의 실체인 국민들에게는 민족적 염원 앞에 이념이나 제도가 문제되지 않는다.

끝으로 민족 통일 운동이 바로 민족 독립 운동의 연장이라는 분명한 의식이다. 그것을 분리시키므로 통일은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는 착각에서 살게 한다. 통일 없이 자주적 민족이 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치나 경제적으로 통일만이 외세에서 해방되는 첩경이며 또한 안보 논리로 부당한 정권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열쇠이다.

이상과 같은 의식이 국민적 차원에서 운동화될 때 우리 사회는 통일을 향한 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고대신문, 1985. 6. 3/『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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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평화
6•25전쟁은 언제 끝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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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창세 25, 19-24)
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탈-향(脫-向)의 인간사 (창세 12, 1.7)
절망 속의 희망 (창세 22, 1-13)
   
제2부 지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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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창세 18, 22-33)
지성소(至聖所) (출애 3, 5)
나는 나다 (출애 3, 13-15)
탈향(脫向)의 기수 (출애 3, 7-10)
지평선 너머 (신명 32, 48-52)
   
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고대 이스라엘 종족 동맹 (사사 5, 1-8)
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믿음의 조상 (히브 11, 17-19)
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제4부 남은자의 믿음
다윗 왕권의 죄 (삼상 8, 4-18)
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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