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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머리말

한국 교회는 1995년을 희년으로 선언하였고, 이 희년 선포에 따라 다채로운 희년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준비 태세로 보나 관습적인 교회 체질로 보아 희년 선포를 기념하기 위한 예배 등 잡다한 프로그램을 적당히 나누어 해치움으로써 그 선언의 허위성을 은폐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지금은 정부 차원에서 서로의 필요 때문에 남북 회담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이 마당에서 무엇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필자는 민족사적 차원에서 보나 역사의 책임을 져야 할 교회의 임무에서 볼 때 통일헌법 제정을 목표로 삼고, 희년으로 정한 그날을 전후해서 우리의 주장을 천하에 선포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주장이 신학적인 고백이 되고 동시에 통일한국의 초석이 된다는 의지를 구체화하는 것이 희년정신을 가장 구체적으로 한국 역사에 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통일론의 현단게

1. 오늘날 통일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이나 세력은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논의는 양 정부가 완전 독점하고 민은 전혀 이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남한 정부는 이제부터 상업적 거래마저도 정부를 유일한 창구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2. 남과 북의 통일 방안에서 특이한 것은 남북 정부들이 모두 점진적 통일론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잠정적인 공존 체제를 일차 단계로 하고, 그 다음 이를 기초로 하여 민족 통일을 이루어 나가자는 것이다. 일차 단계의 목표는 그 이름이야 어떻든 양쪽의 실체를 인정하는 협의 기구로서의 연합체 건설이다. 양측에 차이가 있다면, 북은 통합의 최초 단계로서 정치적 통합을 앞세우지만 그 다음 단계에서 어떤 통일 국가를 세워야 할 것인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데 반해, 남쪽은 먼저 두 체제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통합이 실현된 이후에 달성될 정치통합을 최종 단계의 통합으로 삼고 있으며, 그 바탕에 민족을 깔고 있다. 결국 남북 정부들 모두 너무나도 다른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체제로 양분된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기반을 말하지 못하고 있으며, 말하려고도 하지 않는 셈이다. 남한 정부가 말하는 민족통합은 결국 민족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표시이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상적이어서 대답이 되지 못한다.

남한의 현정부는 통일의 원칙으로 자주평화민주의 3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이루느냐가 문제이다. 그것을 내세운 헌법을 가지고서도 그것이 실현된 사회를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에게는 그러한 통일 3원칙은 여전히 공염불이다. 그 중에 가령 민주의 원칙을 설명하면서 민주의 원칙은 "민족 구성원 전체에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고 민주적 절차를 따라야 할 뿐 아니라 민족 구성원 전체가 주인이 되고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통일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했는데, 이 말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면서 남한 정부로부터 그렇게 하려는 의지를 좀처럼 엿볼 수 없다. 저들은 "통일을 이룩하는 전과정에서"라는 단서를 달았는데도 지금까지의 남북 통일의 움직임은 국민이 모두 참여하는 것은 고사하고 국회의 인준마저도 거치지 않았으며, 정부 내에서도 밀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민족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길은 전혀 열리지 않았다. 정부를 유일한 창구로 고집하는 것 자체가 이를 반영한다. 더 나아가 이 정부는 통일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보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민족의 염원인 통일 문제를 정권 강화나 정권 수호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의도를 짙게 드러내고 있다.

북한체제 역시 민족 통일을 이루겠다는 의사보다는 현정권을 유지하고 이미 내정된 세습 체제를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국제적 고립과 경제 문제의 타개를 위해 통일운동을 지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으나 민족 통일의 의지는 찾아 보기 힘들다. 북은 양 체제를 그대로 인정하고 연합체 결성까지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징조는 무엇보다도 세습 체제를 관철하는 양상이다. 정치체제에 어떠한 변화도 거부하고 그것의 기초를 이루는 이데올로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거듭 주장하고 이를 더 한층 강화하겠다는 의사표시도 그것을 보여 주는 징조이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 통일의 청사진으로서 민이 주체가 되어 견지해야 할 통일헌법 제정의 원칙을 기독교 신학의 관점에서 소략하게 밝혀 보려고 한다.

1. 통일헌법 제정에서 견지되어야 말 기독교 신앙의 원칙이 글에서 필자는 통일헌법을 세밀하게 작성하거나 제시하는 데 있어서 제도적 과정이나 장치를 명문화할 의사는 없다. 단지 기독교의 입장에서 통일헌법에 절대로 포함시켜야 할 요소들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북의 연방제 통일방안이든 남의 국가연합 통일방안이든 그 방안들이 실질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제1단계의 연합체 건설 방안과 그 원칙에 관련된 비공식 논의들이 있는 줄 알지만, 여기서 필자는 이 단계뿐만 아니라 완전한 민족 통일 국가로 가는 과도 체제와 민족 통일국가의 완성 단계에서 일관되게 관철되어야 할 원칙을 말해 보려는 것이다.

2. 첫째 원칙은 통일이 민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원칙은 통일헌법의 전문에 명시되어야 할 정도가 아니라, 통일헌법의 제정은 물론 통일헌법 제정 과정에서도 민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을 좀더 명확히 하자. 민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첫째, 통일이 민의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실현되야하고, 둘째, 궁극적인 민족 통일 국가로 나아가는 여러 과정에서 언제나 민이 주체적으로 관여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셋째, 이 원칙은 민족의 살림을 밑바닥에서부터 떠받치고 민족 문화를 실질적으로 지탱해 온 주체인 민중으로서의 민을 앞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이 원칙은 반면에 분단 상황에 기생하여 비대해진 세력, 헌법의 규정을 저버리고 반민중적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하여 권좌에 앉거나 권력과 유착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하루아침에 재벌이 된 자들과 같이 분단 체제에 기생하는 세력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본질에서 반통일적인 세력은 통일운동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민의 조직 운동을 계속 분쇄해 왔으며, 그것을 주도할 만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새 순을 자르듯 잔인하게 짓밟아 버렸다. 그리스도교 교회도 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통일운동에 가담했었으나 국제적 급변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부 탄압에 이기지 못하여 크게 위축된 상태이다. 우리는 전교회적 차원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이 민의 운동을 일으키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현 정부는 "민족 성원 전체에게 참여할 기회를 보장한다"고 공표한 말이 얼마나 거짓된 말인가를 계속 폭로하고 있다. 지금도 정권에 밀착한 인사들의 교류는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입 노릇만을 하지 않는 개인이나 단체의 교류는 법으로, 정치적 압력으로 다스리고 있다. 이번 NCC 총회에 북측 대표단의 입국을 허락하려는 듯한 자세를 보였으나 갑자기 태도를 표변해서 북측에서 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무산시킨 것이 그 예이다.

현재 교도소에는 문익환 목사, 임수경 씨, 농부의 대표, 신부 등 자의로 월북했다가 정죄받는 민이 수두룩하다. 이것은 이른바 정부를 통일의 유일한 창구로 한다는 논리에서 비롯된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에 의한 통일운동의 관철을 위하여, 민이 자유롭게 자기들의 관심에 따라 접촉할 자유를 찾게 하는 운동부터 해야 한다. 종교계, 경제계, 문화계, 학계 등등에서 시민으로 인정받고 민이 수용하는 단체에 소속 된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교류를 할 수 있게 해야 민간 교류부터 시작하자는 현정부의 제안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될 것이다. 정당법 규정에 따라 조건을 갖추어 등록한 정당인 한, 정당들도 자율적으로 북한을 왕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통일헌법 작성 과정에서부터 그 제정에 이르기까지 민이 참여할 길은 완전히 막혀 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이북에 대한 정보마저도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데 정보 없는 운동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안법, 안기부법 등을 철폐 또는 개정해야 한다. 그 까닭은 정부가 통일의 유일한 창구라고 고집할 아무런 합헌적 명분이 없는데도 이런 기관이나 특별법을 무기로 삼아 민을 협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둘째는 통일헌법의 초석을 놓는 기본 원칙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통일헌법에 우리가 믿는 하나님 사상을 어떤 형태로든 밑바닥에 깔고 또 이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과학 시대인 21세기를 향해 새로 탄생하는 나라의 통일헌법에 신을 어떻게 전제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의구심이 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현대 헌법은 합리성을 그 생명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헌법들의 표면에 나타난 것이 합리적인가? 이북은 김일성을 사실상 살아있는 전능의 신으로 삼고 이른바 사회과학적 정치를 한다고 공언한다. 신이 절대자라면 김일성 역시 그렇다. 놀랍게도 사회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보다 절대자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훈련을 거친 사회다. 소련만 해도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등이 살아 있는 신으로 군림했고,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이북에서는 김일성이 그 자리를 지켜왔는데, 그 체제를 세습까지하는 과정을 착착 진행시키는 이 마당에도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아무런 민의 저항이 없다. 이것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북의 민이 비합리적 절대의 자리를 수용하는 데 익숙해졌음을 말한다.

남한에도 그런 것이 있는가? 가령 1961년 군사 정권이 권력을 장악한 다음 총력을 기울인 것이 경제 건설이었다. 경제 건설의 철학은 극히 단순하다. 이를 잘 말해주는 것이 있다. '새마을 노래'의 '잘산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잘산다'의 내용은 시종일관 물질적인 것이고, 그 어디에도 이를 넘어선 가치를 보여주는 구절이 없다. 1960년대에 시작된 군사 문화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세력을 이루고 있는 이때, '절대적인 것'은 무엇인가? 욕망인가, 혹은 돈인가? 하여간 합리적인 것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신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새삼스럽고 불가능한 전제는 아니다. 물론 우리는 구약 성서에서처럼 모든 것을 야훼에게 돌리고 모든 역사 과정을, 그분의 뜻이 실현되는 것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또한 통일헌법에서 통일 국가가 종교국가가 되도록 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오직 신만'이라는 신념과 주장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풀이하여 그것을 헌법에 살려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야훼만의 신앙'으로 그들이 처한 고난의 길을 극복해 왔고, 예수의 외마디 소리와 같은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선포였는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풀이하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만을 받아들인다 또는 믿는다는 신념의 토로이다. 그것을 좀더 풀이하면,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권력과 물질을 독점하고 사유화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말이다. 인간 위에 군림하는 인위적인 모든 것에 대한 거부다. 이것을 집단으로서의 국가 형태에 적용시키면 어떠한 독재 체제도 거부하는 것이며, 개인에게 적용하면 인간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어떤 권력도 거부한다는 성명이다. 더 나아가 물질의 독점과 사유화에 대한 엄정한 거부의 선언이다.

또한 이 신앙은 가치관 설정의 기초가 된다. 1989년 9월 작성한 남한의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이라는 해설 소책자를 보면, 통일의 원칙으로 자주평화민주를 내세우고 있다. 앞에서도 일부 언급했지만, 이 책자에서 '민주'의 원칙은 "통일을 이룩하는 전과정에서 민족 구성원 전체에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고 민주적 절차를 따라야 할 뿐 아니라 민족 성원 모두가 주인이 되고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통일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한 설명에서 그 일부가 드러나고, 통일 국가의 모습과 관련해서는 "통일된 우리의 조국은 민족 성원 모두가 주인이 되는 민족 공동체로서 각자의 자유와 인권과 행복이 보장되는 민주 국가여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부각되는 것은 민족 공동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소책자 전체를 살살이 훑어 보아도 남북이 두 나라로 공존하는 방도는 말하고 있으나, 통일 국가를 이루는 데 당장 충돌을 일으키거나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될 이념 문제나 사회 제도의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

통일의 방향은 가치관이 설정될 때 비로소 설정할 수 있다. 그런데 위의 해설 소책자는 통일의 3대 원칙으로서 자주평화민주를 내세우고 있다. 통일원이 내놓은 통일 방안의 해설 논문집에서는 이 3대 원칙이 자유평등복지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자주평화민주의 내용이 실제로 어떤 것이어야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통일된 입장을 세우기 어렵다. 해설 논문집은 이를 실현하는 것과 관련하여 정의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국가라고 한다. 그러나 국가 자체는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또 해설 논문집은 자유평등복지 등의 실현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이라고 말했는데, 이보다 더 추상적인 말은 없다. 무엇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결국 이와 같은 통일 방안에는 가치관의 기준이 없다. 가치관의 기준이 없는 한 위에서 말한 모든 단어는 공허한 개념에 불과하다. 이런 언어들을 가지고 각기 만들어온 초안들을 놓고 쌍방의 정부가 주도하는 여러 기구들을 통해서 마침내 통일헌법을 작성하겠다고 나설 때, 무엇이, 혹은 누가 그 시비를 가려내는 심판자 또는 가치 기준이 될 것인가? 바로 이런 상황을 내다 보면서 우리는 절대자로서의 하나님 신앙을 공통분모로 인정할 수 있도록 통일헌법 작성 과정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4. 셋째 원칙은 공(公)사상을 적용하는 것이다. 통일 국가를 눈앞에 두었을 때 가장 화급한 문제는 땅의 문제다. 이북에서 땅은 모두 국가의 소유이고, 이남에서는 사유제도로 인해 갈기갈기 찢겨있다. 통일을 이룩하고자 하는 마당에 이런 모습을 그대로 끌고 갈 수는 없다. 어떤 형태로나 토지 개혁은 있어야 한다.

토지의 국가 소유 체제는 사회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군주 시대까지 토지는 왕의 것이라는 기본 사상이 계속 이어져 왔는데, 그것은 바로 땅이 국가에 소속된 것이라는 뜻이다. 이 사상은 봉토를 둘러싼 갖가지 편법에 의해 결국 껍데기만 남고 말았지만, 봉토는 엄밀히 말해서 언제든지 국가가 회수할 수 있는 경작권 부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일본에 의해 강요된 토지조사 사업에 의해 토지의 사유화가 제도화된 것이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볼 때, 토지는 물론 사유화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아니,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땅은 내 것이요, 너희는 나에게 몸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레 25:23). 이 선언이 절대 군주제가 당연시되어 도처에 군주국이 둘러서 있는 판국에 한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선언은 가히 필사적인 것이다. 고대의 신정주의 정치에서는 전제 군주들이 신의 대리자로 자처하며 민에게 횡포를 부린 역사가 길었으나, 바로 그 현장에서 "너희는 나에게 몸붙여 사는 한낱 식객에 불과하다"는 말은 기슴을 겨눈 화살과도 같은 것으로서 '너희'라는 말에는 군주도 제외될 수 없는 것이다.

땅의 사유화를 인정한 것은 일본의 침략과 더불어 구체화됐으나, 오늘날 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땅의 문제가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그래서 사유재산권을 바탕으로 한 현행 헌법 하에서도 토지의 공개념을 공공연히 내세우게 되었다. 결국에 가서는 토지 거래와 관련된 정부의 재량권이 확대되는 것으로 그치고 말았지만, 토지의 공개념 자체는 넓은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통일헌법 제정에서는 소유의 기초가 되는 토지의 공개념을 확립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기독교의 입장에서도 이것은 환영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남북의 판이한 토지 제도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공개념은 토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성서는 "땅만이 아니라 하늘과 하늘 위에 또 하늘 그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것 모두가 너희 야훼 하나님의 것이다"(신 10:14)고 하고, 시편 50편은 땅 위에 있는 모든 생명과 물질의 이름까지 열거하면서 이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성서는 또한 야훼가 이 모든 것의 유일한 소유자일 뿐만 아니라 또한 유일한 통치자임을 강조한다(대상 29장). 우리는 이런 기본 전통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결부시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공개념은 자본주의 제도를 개혁하는 마스터 키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공개념은 땅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본과 용역의 사적 집중을 방지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관리하여 민의 생활권을 실현하는 전 부문과 관련된 것이다. 공개념과 관련하여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공산주의 사회가 개방되자 마자 붕괴의 위기를 맞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권력의 절대 독점화'에 있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혁명 전략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사실상 그것은 엘리트에 의한 당의 독재였고, 좀더 첨예화하여 일인 독재를 수용할 수밖에 없게 했다. 아래로부터 민의 주권이 실질적으로 강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민의 주권이 사회적 생산에서 자본의 기능과 노동의 기능이 공동결정의 형태를 취하는 제도로 구현되고, 생산 과정에 대한 생산자의 주권으로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민의 주권은 소비자 주권으로도 실현되어야 한다. 그래야 생산과 분배가 민의 요구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체가 실체화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 생산자 주권이 실현되고 있는가, 환경에 대한 과도한 부담이 나타나지 않는가를 실질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 그런 원칙이 실현되지 않는 생산 단위에서 생산된 상품은 안 사면 되므로!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의사 결정의 작은 단위로부터 큰 단위에 이르기까지 민의 주권이 막힘 없이, 왜곡과 굴절 없이 관철되어 모든 정치적 의사 결정이 민의 주권 아래 놓이는 것이다.

공개념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자연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 과도하게 지배되고 수탈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의 공존, 공생의 관계에 있다. 통일헌법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5. 넷째 원칙은 민의 압력권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헌법은 국가의 형태를 결정하는 골격이다. 헌법이 한 민족 집단을 이끌어가려면 헌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공권력이 주어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 공권력은 헌법 자체에 의해 부여된다. 법의 기반은 약속에 있다. 민의 합의의 실체가 바로 법이다. 이 사상은 민주주의의 이름을 표방한 나라에서는 일단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제대로 운영 되고 있는가? 우리 나라는 처음부터 민주 헌법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짧은 역사에서 지배자가 교체될 때마다, 아니 한 지배자의 집권 야욕이 발동될 때마다 헌법 자체가 부정되고 변경되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헌법의 해석권이나 운영권은 통치 세력에 의해 남용되어 왔다. 민주주의를 말하지 않는 나라가 없지만, 사실상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 없다는 것은 극단적인 표현일까? 따라서 통일 헌법을 애써 제정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통일헌법을 수호하고 그 정신 대로 운영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권력의 횡포를 막는 길은 법의 집행자보다 법 자체가 상위에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경험한 대로 말하자면 삼권분립조차도 그 실효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런 위험은 통일국가에서도 언제나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권력의 횡포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압력 세력을 법적으로 보장하느냐 하는 것이 통일헌법의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다. 민주 사회에는 입법부가 있고 입법부의 성원은 국민들이 선출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권한이나 기능은 바로 국민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당 중심의 입법부마저도 제도적, 인간적 한계가 있다. 통일헌법은 입법부 선출의 개혁을 위한 노력을 담아야 할 것이나, 이를 포함해서 모든 세력들을 관리하고 압력을 가하고 때로는 교체하고 민의 뜻을 직접 전달하고 그것을 논제로 삼아야 할 의무를 가지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는 전문가를 포함한 우리의 연구 과제이다.

예를 들면, 독일 교회에는 교회의 입장에서 국가의 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그 결과를 총회를 통해 국회에 제출하는 전통이 있다. 이것은 한 정당이나 정부 또는 국회의원 자격으로 법률안을 내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것은 민이 정책 수립에 직접 참여하는 하나의 예이다. 이와 같이 종교 단체건 문화 단체건 권력지향적이 아닌 어떤 사회 단체가 이미 권력이 부여된 기관을 통하지 않고 민의 뜻을 입법부에 직접 제출하여 공론에 붙일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민의 압력권을 법제화하는 하나의 길일 것이다. 또 하나의 길은 희랍의 폴리스 정치처럼 직접 민주주의 제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스위스의 경우처럼 정부가 묻는 것을 국민이 대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의 뜻이 정부 당국에 전달될 뿐 아니라 정부 당국이 그것을 반드시 공론화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법률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아니면 애초부터 공인된 각 기관, 전문성을 가진 각 기관, 학교, 종교 기관, 기업체 등에게 완전한 자율권을 주는 것도 또 하나의 길일 것이다. 하여간 대의제도만으로는 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민의 뜻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위반하는 경우에 처벌하고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길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할 것이다.

글을 마치며

이상에서 말한 몇 가지 원칙의 대전제는 희년 사상의 핵심인 원상태로의 회귀, 복권 운동이다. 이 원칙을 합리적으로 법제화하기 위해서 전문가들과 신학자들 그리고 교회의 뜻을 반영할 수 있는 사람들로 통일 헌법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신학사상』 1992. 봄/『희년신학과 통일희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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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루가 11, 2)
내가 속히 오리라 (묵시 22, 12-13)
마라나타 (묵시 22, 10-20)
성탄절에 보내는 글 (요한 1, 14)
미래의 크리스마스 (루가 2, 1-38)
 
제2부 넓은 문과 좁은 문
해방자 예수 (루가 4, 18-19)
우리는 모두 사찰당하고 있다 (마르 3, 1-6, 22)
"악마!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르 5, 1-15)
분단의 극복 (요한 4, 21-23)
다 팔아 보화를 산다 (마태 13,44-46)
평화와 칼 (마태 10, 34-39)
좁은 문 넓은 문 (마태 7,13-14)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루가 11, 3)
기도의 사건화 (루가 18, 1-8)
인간봉화(人間峰火) (마르 8, 31-38)
"십자가를 지고"의 뜻 (마르 8, 34-38)
신의 침묵은 심판이다 (로마 1, 18-32)
복음의 전진 (필립 1, 12-18)
사건의 신학 (고후 11, 23-33)
 
제3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
오늘의 그리스도 (마르 15, 27-37)
오늘을 사는 청년 예수 (마르 2, 15-17)
그리스도 (마르 8, 27-33)
우리를 지키시고 구해 주시는 이 (고후 1, 8-11)
새로운 존재 (요한 3, 1-12)
이제 다 끝났다 (요한 19, 28-34)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마태 6, 32-33)
예수 그리스도一세상의 생명 (로마 8, 18-28)
문 두드리는 소리 (묵시 3, 14-22)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고전 6,1-11)
권위와 행동 (루가 20, 8)
현존의 그리스도 (히브 13, 12-13)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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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옳은 민족 옳은 역사
서양사람 한국사람
구라파에서 본 조국
사상의 주체성
세계 속의 한국
   
제2부 한국의 민족 감정
민족 감정
아키히토 방한과 민족 감정
히로히토가 엄존하는데
민족적 염원
'조국 근대화'와 민족문화
민족 정신 문화 불식시키는 외래 종교
   
제3부 한국의 민족 운동
3•1절과 민족사적 고백
8•15와 해방
3•1 운동과 기독교
민중 운동의 새 기원
4•19혁명과 민주주의의 갈망
4•19의 혼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4부 한국 민(民)과 종교
민족적 과제와 교회
그리스도교와 민족 공동체
개화기의 한국 교회의 위치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주체성과 신앙
더 이상 종교는 침묵일 수 없다
   
제5부 민족 자결
민족 자결의 민족주의
민족 문제와 민중신학
혼선된 역사
   
제6부 분단과 평화
해방은 통일로써만
한국전쟁과 평화
6•25전쟁은 언제 끝나나!
이 땅에 평화를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
   
제7부 통일의 주체
민족 통일 문제의 성서적 조명
통일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통일은 민(民)의 손으로
씨알과 민족 통일
   
제8부 평화의 길
평화와 칼
아시아 평화와 일본
함석헌의 평화 사상
통일을 위한 민족 교육의 방향
평화의 실현
분단 극복과 평화
새 국면에 선 민족 통일과 기독교
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판권
제1부 절망 속의 희망
실락원 (창세 2-3장)
종주권과 민중의 투쟁 (창세 4, 1-16)
카인의 후예 (창세 4, 1-26)
아브라함과 종주권 (창세 16, 3-12)
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창세 25, 19-24)
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탈-향(脫-向)의 인간사 (창세 12, 1.7)
절망 속의 희망 (창세 22, 1-13)
   
제2부 지성소
바벨탑 (창세 11, 1-9)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창세 18, 22-33)
지성소(至聖所) (출애 3, 5)
나는 나다 (출애 3, 13-15)
탈향(脫向)의 기수 (출애 3, 7-10)
지평선 너머 (신명 32, 48-52)
   
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고대 이스라엘 종족 동맹 (사사 5, 1-8)
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믿음의 조상 (히브 11, 17-19)
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제4부 남은자의 믿음
다윗 왕권의 죄 (삼상 8, 4-18)
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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