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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창세 25, 19-24
 
1. 종주권의 갈등

둘째 아들로 태어난 아벨이 자기 형의 손에 죽었다. 자기의 기득권인 종주권을 지키려다 살인자가 된 카인은 추방되어 영원한 방랑족의 선조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 형제는 다 함께 망해 버렸다.

아브라함으로 새 시대의 막이 열렸다. 고향과 집과 혈육을 떠난 새 출발이다. 그런데 백 세가 다 되도록 혈육이 없었다. 그것은 새로 시작한 혈맥이 끊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아내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서 첫아들을 가지게 된다. 그 아이는 당연히 아브라함의 혈맥을 이을 장자권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신분계급제도가 생긴 것이다. 종과 상전의 철저한 구별이 그 중의 하나였다. 아무리 살을 섞고 그의 혈육을 낳았어도 종은 여전히 종이라는 고정관념에 구속된 아브라함이었다. 그러므로 그 사이에서 낳은 이스마엘은 아들이면서도 아들로 인정할 수 없었다. 뒤늦게 본처인 사라에게서 이삭이란 아들을 얻었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종주권을 넘겨 주기 위해 일에 방해가 될 이스마엘을 그를 낳은 하갈과 더불어 물 한 병과 떡 한 덩이를 주며 내쫓아 버렸다. 정처도 없는 이 추방은 사실상 죽음에로 모는 것이다. 민중은 이 쫓겨 가는 하갈의 뒤를 밟아 그 한 많은 여인과 아이의 걸음을 추적하지만 사라는 물론 아브라함마저도 그들의 운명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는 단 한 구절도 찾을 수 없다. 종주권에 대한 관념이 아브라함을 잔인한 사람으로 둔갑하게 한 것이다. 그 뒤에, 단산상태에 있던 사라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 이삭을 통해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 땅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리라는 신의 약속을 받는다. 이것은 바로 그의 종주권을 공식화한다는 뜻이 된다. 즉 정처(正妻)에게서 낳은 이삭에게 후손을 잇게 하는 정통적인 종주권이 주어지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종주권 약속 바로 앞에는 이 아이도 죽여 제물로 바쳐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이야기는 여러 다른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으나 결국, 종주권에 대한 관념이 흔들린 흔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 종주권의 대결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난다. 그들은 동시에 한 어머니의 배에서 출산했으나 먼저 나온 자가 장자(종주)권을 자동적으로 이어받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었다. 에서가 먼저 나왔으니 그는 종주권을 지니고 태어난 셈이다. 그러나 야곱은 세상이 철칙과 같이 당연시하는 이 관례에 도전한 것이다. 그의 도전은 치열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그 장자권을 뺏고 한 종족의 조상이 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우여곡절과 야곱의 너무나도 민중적인 삶이 실사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의 싸움은 숙명과 같은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은 쌍둥이인 에서가 먼저 나올 때 뒤따라 나오는 야곱이 에서의 발꿈치를 꼭 틀어쥐고 나왔다고 한다. 이미 태 속에서 장자권의 싸움이 계속됐으며 그 싸움은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임을 민담적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장자권 싸움이 전개될 것을 예고한다. 장자권을 이어줄 권리를 가진 사람은 부권을 가진 이삭이다. 그는 장자인 에서를 특히 사랑했다. 이에 대해서 그의 아내면서 이 쌍둥이를 낳은 리브가에게는 장자권에 관여할 아무런 권한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녀는 야곱을 편애했다. 그녀는 기득권적 차원에서 보면 약자의 편에 선 셈이다.

이제 야곱은 리브가와 더불어 정통적인 장자권(종주권)에 도전하는 투사로 등장한다. 에서는 강대한 몸을 가진 힘센 자로 부각된다. 그가 사냥꾼이라는 것은 그가 무술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는 몸에 짐승과 혼돈할 만큼 털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강한 야생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부모의 뜻을 어기고 이방 여인과 결혼했다. 그는 이미 부모를 떠난 자식이다. 이에 반해 야곱은 장자권에서 밀려난 상태인데 성격마저도 '차분한', 말하자면 온순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그가 집안 일을 돌보는 사람으로 부각된다. 그가 죽을 끓이고 있었다는 것이 그 일면을 반영한다. 그 후에는 목동이 됐으나 집에 있는 동안에 그의 직업은 특별히 반영된 것이 없다. 그의 유일한 배경은 어머니 리브가다. 에서와 그가 태 속에서부터 갈등관계에 있는 것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창세 25, 28)는 사실로 그 숙명성이 구체화되었다.

어머니의 위치는 부권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부권에 맞설 힘이 없다. 야곱은 장자권에 도전해야 할 숙명적인 위치에 있으나 주어진 무기는 없다. 그러므로 민중들이 생존권을 위해서 빈주먹으로 싸워 가듯 그도 스스로 배워 가는 생활의 지혜를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첫 도전은 에서가 장자권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에서가 먼 사냥길에서 허기진 상태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야곱은 팥죽을 끓이고 있었다. 이것은 야곱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허겁지겁 팥죽을 달라는 에서에게 야곱은 흥정을 한다. 팥죽은 주겠으나 그 대신 장자권을 자신에게 이양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 다짐은 법적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결정은 아버지가 하는 것이다. 아니 아버지도 마음대로 못한다. 사회제도가 그것을 허락지 않다. 그러나 장본인인 에서에게서 이 언질을 받는 것은 이 싸움의 순서다. 허기진 에서는 장자권이 안중에 없었다. 그에게는 생존권만이 중요했다. 이렇게 보면 장자권이란 인간 존재에 결부된 필수적인 것이 아니고 한 질서를 위해 덧붙여진 것에 불과하다. 야곱은 에서의 생존권을 뺏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포장한 것을 제거함으로써 인간과 인간으로 마주하자는 것 이상의 요구를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장자권을 뺏고 도도한 가장이 되어 재회했을 때에 에서에게 군림하려는 흔적은 전혀 없는 데서 볼 수 있다.

다음에 그에게 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남았다. 그것은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는 일이다. 축복의 내용은 거의 고정된 것이다. 그것은 그를 통해 자손이 번성하고 그들이 살 땅[大地]에 대한 축복이다. 이삭은 이런 축복을 장자인 에서에게만 해주어야 하는 위치에 있었고 또 자신도 그것을 자명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야곱은 그의 어머니 리브가의 지시대로 에서로 분장하여 눈이 흐린 아버지를 속여 이 축복을 가로챘다. 이 축복은 신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므로 번복되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은 다분히 주술적인 성격을 띤 것이었다. 그러므로 속임수로 된 것도 번복할 수 없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로써 장자권을 뺏는 두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에서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사냥해 온 짐승의 고기로 만든 맛있는 음식을 아버지에게 바치며 자기에게 축복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이미 말한 대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울며불며하는 간청에 마지못해 주는 이삭의 '축복'은 이렇다: "네가 살 곳은 땅이 기름지지 않고 하늘에서 이슬도 내리지 않는 곳이다. 너는 칼을 의지하고 살 것이며, 너의 아우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애써 힘을 기르면, 너는 그가 네 목에 씌운 멍에를 부술 것이다."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그런데 주목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가 아우를 섬길 것을 '선언' 하는데 그것은 바로 '목에 씌운 멍에'라고 한다. 이로써 장자권은 종주권으로 형제라도 노예처럼 혹사할 수 있는 권리임을 밝힌다. 그러나 그 다음 중요한 가능성을 예시한다. 그것은 에서가 하기에 따라 장자권을 이양받은 야곱이 그의 "목에 씌운 멍에를 부술 것이다"는 말이다. 그를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킬 열쇠는 야곱에게 있다는 말이다.

에서는 분노했다. 그는 아버지 이삭이 죽는 날을 야곱을 죽이는 날로 정했다. 그렇게 되면 장자권의 싸움은 카인과 아벨의 경우처럼 둘 다 망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 올 수밖에 없다. 이것을 예감한 리브가는 야곱을 그의 친가가 있는 먼 곳으로 도피하게 했다.

3. 도망자의 고통

집을 떠난 야곱은 기약 없이 배회해야 하는 나그네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막연하게 지역과 이름만 알고 떠난 야곱의 길은 험난하고 고달픈 삶이었다. 그런 도상의 삶 한 토막이 이를 잘 반영한다.

어느 날 밤 광야에서 밤을 맞이했다. 인가 없는 광야는 특히 밤이 되면 맹수들의 무대가 된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아무 방비 없이 아무 데나 쓰러져 자야 했다. 그때 베고 잔 돌이 유명해진 '돌베개'였다. 장준하도 일제에 의해 죽음의 길일 수 있는 전쟁터로 끌려갈 때 그의 아내에게 '돌베개'를 암호로 선정했다. '돌베개', 그것은 품이나 가정의 상반개념으로 고독과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 이 돌베개가 바로 집을 떠나 도망치는 야곱의 처지를 잘 드러낸다.

야곱의 은신처는 그의 외가인 라반의 집이다. 외가라고는 하나 그는 외국인으로 고용된 머슴으로 취급당한다. 덕을 볼 장소가 아니라 노동력과 끈질김 그리고 삶에서 얻은 지혜로만 생존할 수 있는 현장이다. 라반은 야곱을 친척이 아니라 노동력으로 수용한다. 당시의 외인 노동자에게는 일정한 일삯을 주고 때로 '데릴사위'로 삼는 경우도 있었다.

라반은 야곱에게 일삸 계약을 하자고 하는데 야곱은 라반의 둘째 딸을 아내로 달라는 조건으로 7년 간의 노동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라반은 처음부터 지킬 생각이 없는 약속을 수락한다. 우선 그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본다는 계산이다. 7년 간 야곱은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여 라반의 재산을 크게 늘렸다. 그런데 라반은 처음 계획대로 약속을 깨고 신혼 첫날 밤에 신부를 맏딸로 교체해 버렸다. 다음날 아침 비로소 이 사실을 안 야곱의 항의에 라반은 "큰 딸을 두고서 작은 딸부터 시집보내는 것은 이 고장의 법이 아닐세"라고 하면서 7년 간 더 일하는 조건으로 둘째 딸을 주겠다는 것이다. 야곱의 노동력의 대가로 딸들을 팔겠다는 것이다.

야곱은 첫사랑을 이루기 위해 머슴생활을 7년 간 더 연장하고 또 늘어난 식구들을 거느릴 가산을 위해 다시 6년을 연장한다. 그때부터 라반과 야곱 사이에 재산증식을 위한 암투가 벌어진다. 고용주와 삯꾼의 싸움이다. 그렇기에 라반이 큰 것만도 열 번이나 약속을 위반했어도(31, 7) 야곱은 감수해야 했다. 이 마당에 야곱에게는 생존을 위한 꾀 밖에 다른 무기는 없었다. 그 결과 합리적으로 자기 목축을 늘릴 수 있었다. 이제 그는 자기 고향 "나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도 큰 과제가 남았다. 그것은 처자들을 데리고 가는 일이다. 그는 의인인지라 라반의 뜻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노심초사 끝에 온 가족과 짐승들을 거느리고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향할 수 있었다. 빈주먹으로, 도망자로, 20여 년의 노예 생활을 한 민중의 '자수성가', '금의환향'의 전형적 모습이다.

4. 신과의 결투

도망친 그가 이제는 대식구와 재산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불안한 과제가 있었다. 그것은 형의 분노를 어떻게 무마하고 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양떼들을 여럿으로 나누어 그 일진을 에서의 마음을 회유하는 선물로 앞세워 보냈다. 그러나 그 전에 장자권에 대한 궁극적인 보장을 재확인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그것은 직접 신에게서 다시 다짐을 받는 일이다. 야뽁 강에서의 '신과의 결투'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이야기야말로 전형적인 민중의 이야기다.

야곱은 그 식구들과 소유물들을 앞세워 보내고 뒤에 처졌다. 그것은 신과의 대결을 위해서였다. 어두운 밤이었다. 그는 신과 결투를 한다. 그가 얼마나 집요하게 싸웠는지를 이 전승은 그 신이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신은 그에게 '반칙'을 한다. 그는 야곱의 엉덩이뼈를 친 것이다. 그래도 야곱은 끝끝내 물고 늘어진다. 도망가려는 신의 다리를 붙잡고 자기에게 종주권을 준다는 약속을 받을 때까지 후퇴하지 않을 기세다. 그 신은 이 민중의 애원에 항복했다. 결국 신은 "너의 이름은 야곱이 아니고 이스라엘이다"(창세 32, 28)하고 축복을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됐다는 선언이다. 그때 "날이 밝고 해가 솟아올라 그를 비추었다"(창세 32, 31). 이것은 그의 새로운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다. 야곱에게 내린 이 축복이 35장 11절에서 다시 분명하게 반복된다. "너는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다. 한 민족과, 많은 갈래의 민족이 너에게서 나오고 너희 자손에게서 왕들이 나올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말한 것과 내용상 같다. 이리하여 에서의 기득권을 제치고 아브라함이삭야곱이라는 계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야곱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한 민중의 이야기다. 그의 싸움은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에 의해 눌린 상태에서 해방되려는 투쟁이다. 기득권자에게는 자기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무기가 있다. 도덕윤리질서권위명분 그리고 필요하면 폭력 등등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민중에게는 아무 무기도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뿐이다. 부지런함과 성실함, 강인함 그리고 투지 등등이 그의 재산이요 무기일 수 있다. 생존권을 위한 싸움을 무력하게 하는 것은 기존의 윤리도덕 그리고 '양심' 따위다. 그런 것들은 기득권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위성이 많다. 자신들은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그런 것으로 민중을 묶어 놓는 데 이용한다. 야곱은 이런 그물에 걸려 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속임수전략 따위를 기존 윤리적 시각에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짓밟힌 상태에서 질식하지 않고 모든 난관을 헤쳐 가며 마침내 신과도 결투하고 신의 축복을 받아 냄으로 이스라엘의 종주권을 차지하는 이 한 민중의 모습에서 역사의 실질적 담지자를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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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참여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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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개혁을 위해 성서를 다시 본다
I 새로 보이는 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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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에서 본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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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성서 본문과 설교
성서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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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한국 신학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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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예수 이해
한국 그리스도교와 종교개혁
한국 그리스도교의 자기혁명
한국 교회의 구미신학의 유산과 그 한계
 
제5부 도피냐 구원이냐
기독교의 본의(本義)
도피냐 구원이냐
인간혁명
개인구원이냐 사회구원이냐
공관서의 구원론
부활신앙과 혁명
대담 | 기가 막힌 세상
 
제6부 하느님의 선교와 새로운 공동체의 모색
목회론
평신도의 목회
선교신학의 성서적 핵심
하느님의 선교
새로운 공동체
전달자와 해석자
프로테스탄트 교회관과 일치운동
1980년대 교회의 선교적 과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교회상
예수공동체의 신앙고백
한국 교회는 민족의 과제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1부 메시아를 기다리며
때 (시편 39, 5-13)
진통하는 역사 (로마 8, 18-27)
밤이 오면 (로마 13 , 11-14)
아침을 기다리며 (로마 13, 11-14)
밤과 새벽의 분계선 (로마 13, 11-14)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루가 11, 2)
내가 속히 오리라 (묵시 22, 12-13)
마라나타 (묵시 22, 10-20)
성탄절에 보내는 글 (요한 1, 14)
미래의 크리스마스 (루가 2, 1-38)
 
제2부 넓은 문과 좁은 문
해방자 예수 (루가 4, 18-19)
우리는 모두 사찰당하고 있다 (마르 3, 1-6, 22)
"악마!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르 5, 1-15)
분단의 극복 (요한 4, 21-23)
다 팔아 보화를 산다 (마태 13,44-46)
평화와 칼 (마태 10, 34-39)
좁은 문 넓은 문 (마태 7,13-14)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루가 11, 3)
기도의 사건화 (루가 18, 1-8)
인간봉화(人間峰火) (마르 8, 31-38)
"십자가를 지고"의 뜻 (마르 8, 34-38)
신의 침묵은 심판이다 (로마 1, 18-32)
복음의 전진 (필립 1, 12-18)
사건의 신학 (고후 11, 23-33)
 
제3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
오늘의 그리스도 (마르 15, 27-37)
오늘을 사는 청년 예수 (마르 2, 15-17)
그리스도 (마르 8, 27-33)
우리를 지키시고 구해 주시는 이 (고후 1, 8-11)
새로운 존재 (요한 3, 1-12)
이제 다 끝났다 (요한 19, 28-34)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마태 6, 32-33)
예수 그리스도一세상의 생명 (로마 8, 18-28)
문 두드리는 소리 (묵시 3, 14-22)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고전 6,1-11)
권위와 행동 (루가 20, 8)
현존의 그리스도 (히브 13,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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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옳은 민족 옳은 역사
서양사람 한국사람
구라파에서 본 조국
사상의 주체성
세계 속의 한국
   
제2부 한국의 민족 감정
민족 감정
아키히토 방한과 민족 감정
히로히토가 엄존하는데
민족적 염원
'조국 근대화'와 민족문화
민족 정신 문화 불식시키는 외래 종교
   
제3부 한국의 민족 운동
3•1절과 민족사적 고백
8•15와 해방
3•1 운동과 기독교
민중 운동의 새 기원
4•19혁명과 민주주의의 갈망
4•19의 혼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4부 한국 민(民)과 종교
민족적 과제와 교회
그리스도교와 민족 공동체
개화기의 한국 교회의 위치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주체성과 신앙
더 이상 종교는 침묵일 수 없다
   
제5부 민족 자결
민족 자결의 민족주의
민족 문제와 민중신학
혼선된 역사
   
제6부 분단과 평화
해방은 통일로써만
한국전쟁과 평화
6•25전쟁은 언제 끝나나!
이 땅에 평화를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
   
제7부 통일의 주체
민족 통일 문제의 성서적 조명
통일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통일은 민(民)의 손으로
씨알과 민족 통일
   
제8부 평화의 길
평화와 칼
아시아 평화와 일본
함석헌의 평화 사상
통일을 위한 민족 교육의 방향
평화의 실현
분단 극복과 평화
새 국면에 선 민족 통일과 기독교
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판권
제1부 절망 속의 희망
실락원 (창세 2-3장)
종주권과 민중의 투쟁 (창세 4, 1-16)
카인의 후예 (창세 4, 1-26)
아브라함과 종주권 (창세 16, 3-12)
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창세 25, 19-24)
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탈-향(脫-向)의 인간사 (창세 12, 1.7)
절망 속의 희망 (창세 22, 1-13)
   
제2부 지성소
바벨탑 (창세 11, 1-9)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창세 18, 22-33)
지성소(至聖所) (출애 3, 5)
나는 나다 (출애 3, 13-15)
탈향(脫向)의 기수 (출애 3, 7-10)
지평선 너머 (신명 32, 48-52)
   
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고대 이스라엘 종족 동맹 (사사 5, 1-8)
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믿음의 조상 (히브 11, 17-19)
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제4부 남은자의 믿음
다윗 왕권의 죄 (삼상 8, 4-18)
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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