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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 종족동맹
사사 5, 1-8
 
1. '히브리'들의 결속

인간의 삶의 유형에는 정착의 삶과 탈향(脫向)의 삶이 있음을 앞에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아담의 삶이 정착의 삶이라면, 아브라함의 삶은 탈향의 삶입니다. 이집트제국이 정착된 집단의 권력구조라면, 탈이집트한 히브리집단은 긴 탈향의 삶을 거쳤습니다. 모세가 바로 히브리 탈향의 상징인데 그는 정착지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느보 산에서 죽음으로 탈향의 마당은 막이 내렸습니다. 그 다음 마당이 모세를 이어받은 여호수아에게서 시작된 정착을 위한 투쟁의 장입니다.

오늘은 이 가나안의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구조와 "야훼만"(mono Yahwehism)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염원하는 민족 공동체의 기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에 관한 이야기는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서, 시편 등에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습니다.

초기 이스라엘 형성에 대해 여러 학설들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기를 중심하여 단순하게 읽어나가면 적과 계속해서 싸움으로 마침내 가나안을 뺏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성서학에서는 정복설이라 합니다(여호수아서를 보면 특별히 1장~11장에 나타나 있다). 히브리 집단이 야훼를 힘입어 용감하게 가나안의 많은 군주들과 싸워 이김으로 약속된 땅 가나안에 정착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서에서는 이처럼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다른 자료들이 많습니다. 가령 가나안 전부가 아니라 그 어느 분분만을 정복했다는 자료가(판관 1, 1-2; 5, 여호 14, 13-15; 15, 13-14) 있는가 하면 정복하지 못한 지역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여호 13, 1-7). 나아가 가나안의 원주민들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그들과 어울려 사는 기록들도 있습니다. 창세기는 출애굽 이후에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소급해서 반영한 것이라 보는 것이 정설인대 그렇게 볼 때 창세기 12-50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가나안 사람들과 평화스럽게 공존한 흔적이 뚜렷합니다.

따라서 정복설에 대해서 이주설을 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말하자면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들이 동시적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잠입하듯 이주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를 앞세우고 많은 군주들과 투쟁한 기록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히브리들이 군주들과 싸운 이야기들은 무려 15회나 나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기에는 히브리의 공격에 패한 군주의 이름이 31명이나 됩니다(12, 9-14). 그러면 왜 실제로 투쟁한 기록은 15회밖에 서술하지 않았을까? 여기에서 전승 과정에서 변형된 내용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 어떻게 열두 지파가 형성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히브리가 아집트 안에서 열두 지파로 나누어 졌다고 생각할 수도 없고 광야 40년 방랑 생활에서 형성되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열두 지파는 정착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기에는 이미 형성된 열두 지파에게 정복한 땅을 분배하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으나 사실은 정착된 지역을 구분함으로써 열두 지파가 형성되는 것이 순서입니다. 여기에서 성서학자들 중에는 혁명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나안에 있던 히브리, 즉 농노들이 군주들의 압박과 노동력 착취에 더 견딜 수 없어서 어느 시기에 공동전선을 펴 군주들과 싸움으로 독립된 집단을 형성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탈이집트한 히브리들의 가나안 정복설을 배제하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던져줍니다. 그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야훼신앙입니다. 야훼는 탈이집트하여 광야 40년의 고난의 역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정복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위에서 지적한 상반된 자료들 외에도 야훼의 신앙과 관련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의 이름입니다. 저들은 '야훼'라는 이름 외에 '엘'(el) 또는 그것을 근간으로 하는 명칭이 교차되면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엘'의 어원은 "주권을 행사한다" 하는 뜻입니다. 여기서 탈이집트 히브리들 신앙의 대상 외에 또다른 종족들의 신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 형성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즉 가나안에 많은 군주들이 있었습니다. 그 밑에 예속된 농노들은 군주들, 즉 부요한 자들이 섬기는 신 바알과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들도 히브리입니다. 히브리는 어떤 종족의 이름이 아니라 계급, 계층을 표시한 개념으로 성서 외에도 많은 지역, 특히 이집트 판도 내의 여러 곳에 산재해 있었고 그들을 토벌했다는 기록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들이 군주들에 대항하여 봉기하게 된 계기는 이집트를 탈출한 경험이 있고 40년 광야의 배회 과정에서 깊이 뿌리를 내린 야훼신앙을 가진 히브리들과의 접촉과 때를 같이 했을 것이라는 상상은 현실과 별로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들어온 소수의 히브리와 같은 계층적 조건을 가진 가나안 내의 히브리들 사이에 연대의식이 형성되고, 그것은 신앙의 통일로―야훼와 엘은 결국 같은 하느님이라는 인식의 합일—결속하여 군주들과 싸우면서 종족동맹 공동체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서구학자들은 '암픽티오니'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시리아-팔레스틴에 군주제도가 크게 강화됐는데 그렇게 되는데 분명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주전 1786년에 힉소스라는 군주국이 하나의 신흥세력으로 이집트에 맞서서 중동 일대를 제패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저들은 전차를 만들고 그것을 앞세워 공격을 해 왔습니다. 이렇게 조직화된 새로운 무력 앞에 가나안의 주민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가나안에 군주(추장)들이 군주제를 채택하고 부국강병을 주의(이념)로 채택하였습니다. 이것은 자동적으로 군주제가 군국제도로 바뀌어지게 한 요인입니다. 군주는 나라를 무력으로 지키기 위하여 군사력을 길렀으며, 무신(武臣)을 존중했습니다.

군주는 자신을 위해서 농노의 노동을 착취할 뿐 아니라 자신의 손발인 무인들을 봉건제도의 봉신으로 삼고, 그들에게 많은 농토를 주었습니다. 그들의 소유가 된 농토의 경작은 역시 농노들의 노동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농노들은 이중적인 착취를 당해야 했고 가나안 땅이 봉건주들에게 분할되게 되었을 것입니다. 주전 1590년경에 힉소스의 세력이 쇠퇴해 버렸습니다. 이때에 이집트 제국은 온 중동을 제압하는 세계의 제국으로 군림했습니다. 많은 군소 군주들처럼 가나안(시리아, 팔레스틴)군주들도 이집트를 싫어하면서도 정면으로 대결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이집트의 속국과 같은 정책을 취하지 않은 군주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주전 1490-1430년에 걸쳐 가나안을 정복하여 완전 지배하에 두었습니다. 이 무렵에 중동지역 일대에 부각된 사회계층이 'pr'을 근간으로 하는 이름인 '아피루' 또는 '하피루'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성서외의 역사적 사실들이 이스라엘은 히브리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라는 주장을 더욱 뒷받침합니다. 그렇다면 '히브리'라는 말 자체가 밑바닥의 사람들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의미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군주를 위한 가진 자들이 지배하는 집단과는 당초부터 다른 공동체인 것입니다.

2. 반군주제(反君主制), 민(民)의 자치

이렇게 출발된 고대 이스라엘은 그러므로 군주가 없는 공동체로 출발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이 공동체의 주인은 바로 민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군주 제도가 아닌 집단 일반에서 보듯이 이 공동체도 일차적으로 혈연적 집단을 단위로 구성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의 단위는 가족(bed)입니다. 이 가족은 한 울타리에 다섯 세대까지 수용된 대가족입니다. 그 다음 단위가 '미스바하'라고 불리우는 것인데 이것은 씨족(우리의 예로 말하면 문중) 또는 적은 규모의 종족입니다. '미스바하'는 혈연을 중심으로 한 것이지만 어떤 동기에 의해서 운명적인 공생애 과정을 가진 사람들도 포함될 수 있었습니다. 가령 외세가 침범할 때 공동으로 싸웠거나 피해를 받으므로 연대감이 형성되었거나 지리적 조건으로 공동의 장소에서 서로 협력함으로써만 살 수 있는 과정에서 결속되었거나 또는 어떤 계층에 의해서 천대받다가 도망친 사람끼리 연대의식을 갖고 살 길을 개척하는 등의 과정에서 결속된 경우도 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혈연만이 아닌 숙명적 공동체입니다. 이 족속은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 안에서 그 확고한 자율성을 지녔습니다. 그 독자성은 오래 존속되어 왕권이 수립되었을 때마저도 그 자율성을 침해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가령 다윗이 사울의 지시를 거부하는 방패로써 문중에 대한 의무를 내세웠는데 그것이 용납될 만큼 그 독자성이 인정되었습니다. "다윗이 문중(미스파하)의 주년제가 있어 속히 고향 베들레헴에 다녀올 수 있도록 휴가를 청하더라고 말해주게"(삼상 20, 1)라는 구절이 이런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 다음 단위가 이른바 지파(세베트)입니다. 한 지파는 족속 50개 정도로 확대된 단위라고 합니다. 이 지파는 혈연보다는 다른 동기에서 이루어진 요인이 더 강합니다. 말하자면 함께 박해를 받았거나, 함께 이주했거나, 함께 천재지변 등으로 모든 것을 잃고 새로운 삶을 위해 공동으로 삶의 터전을 개척했거나 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연대적 공동체입니다. 이 지파는 상부의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독자적 결단에 의해서 연합전선에 자율적으로 가담했으며, 법적 처리도 어디까지나 자치적으로 설정, 판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지파는 이스라엘 전체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여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의 방향이나 어떤 위기의 대책을 논의하는 주체적인 권리를 가졌습니다. 이것은 현대적 의미에서 말하면 지방자치제의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곧 열두 지파이며, 열두 지파는 이스라엘이었던 것입니다.

3. 민주공동체의 원칙

우리는 이와 같은 사회 구조를 이룬 이스라엘의 특징을 다음 몇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이스라엘에는 군주가 없었다는 것이 계속 반복됩니다(판관 17, 6; 18, 1; 19, 1; 21, 25 등), 군주에게서 탈출한 이스라엘의 공동체가 군주를 거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로 권력 남용으로 히브리의 노동력을 착취한 군주권하에서 탈출하여 이룬 공동체가 아닙니까!

둘째, 이 공동체는 야훼의 신앙으로 결속된 "종교적" 공동체였습니다. 저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또는 공동의 제사 의식을 통해서 군주에게서 해방시킨 야훼를 거듭 재확인하였습니다. "야훼만"(mono Yahwehism)이라는 신념의 선포는 군주치하에서 탈출한 때와 동시에 강조되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모노-야훼이즘을 종교간의 경쟁에서 야훼만이 가장 옳은 신임을 주장했으리라는 견해도 있으나,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야훼만"은 사람 위에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며 사람들이 어떤 사람에게 예속될 수 없다는 염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따라서 "야훼만"은 군주들의 횡포를 거부하는 핵심적인 거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염원이 구약 특히 법전들에서 역력히 나타나는데 그것은 십계명의 첫 부분만 바로 이해하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나 외의 어떤 신도 섬기지 말라' 그리고 '어떤 형상으로 된 것이든지 우상화하지 말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남용하지 말라' 등은 신적인 절대권을 행사하는 군주들, 신의 대리자로 횡포하는 군주들 또는 스스로 신으로 자부하는 군주들에 대한 제재를 뚜렷하게 밝힌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에서 계속해 등장한 신정정치(Theocracy)를 영원히 거부한 선언입니다.

셋째, 군주지배를 탈출한 이 공동체가 평등 사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 공동체는 계층이 없었습니다. 경제에서 법제도에 이르기까지 평등주의가 철저했습니다. 성결법전, 신명기법전, 레위기법전 등에 이러한 원모습의 회복을 위한 노력이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여러 계명의 결정체인 십계명을 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십계명은 한마디로 눌리고 가난한 자를 보호하고 강자의 횡포를 억제하려는 정신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가령 안식일법 같은 것은 농노나 피고용자들을 위한 것이고 사람의 노동력을 부리는 계층에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간음이나 도적질, 남의 것을 탐내는 것을 금한 것도 약자를 겨냥한 것이 아니고 권력으로 횡포할 수 있는 강자들을 겨냥한 계명입니다. 이상은 상호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넷째, 따라서 이 공동체에는 상존하는 지배 구조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판관들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들은 평소에 지파, 종족 또는 가족의 단위로서 자율권을 만끽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공동체 전체에 어떤 위험이나 난제가 주어졌을 때는 하느님에게 특별한 은혜(지명)를 받은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나타나 총지휘하도록 하고, 열두 지파가 그의 지휘 아래서 위기를 타개해 나갔습니다. 이들을 판관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일반과 똑같은 신분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농부, 목동 그리고 서출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판관들은 그 사명을 끝내면 도로 평범한 일상생활로 돌아갑니다. 다시 말하면 농부는 농부로, 목동은 목동으로 되돌아 갑니다(단 사무엘만은 왕권에로 넘어가는 마지막 판관으로 상존하는 지도자로 부각된다). 상존적인 지배 구조를 두지 않았다는 것은 권력을 사람에게 독점시키지 않겠다는 투철한 의지의 반영입니다.

이상과 같은 특성이 지속된 것은 그들의 야훼신앙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해방의 신 야훼, 언제나 역사에 개입하여 간섭하고 또 질투하는 야훼. 그러므로 어떤 제도나 계층이 특권을 주장하여 정죄하지 못하도록 여러 각도에서 노력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공동체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자연히 가진 자와 못가진 자로 나누이기 쉽고 또 가진 자는 그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해 권력화되기 쉬우며, 나아가서는 '보다 더'라는 욕심이 약자를 유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동체의 유지는 계속적인 개혁, 원상복귀의 혁명 과정이 있을 때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의 원모습은 이스라엘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인간 집단의 본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고대 한국 사회를 보아도 이런 특성과 유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대 한국의 신석기 시대에는 씨족 동맹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박혁거세 전설에는 6촌(여섯 마을)회의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지파 동맹과 비슷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이 6촌회의에서 그들은 대표자를 뽑았던 것입니다. 단군 씨족은 곰을, 박씨족은 말을, 김씨족은 닭을 토템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여러 종족들을 말하는 것으로 그것들이 연합하여 종족동맹을 맺는 과정이 있었으며, 청동기 시대에는 부족동맹 국가가 출현합니다. 위씨조선, 부여, 고구려 등은 다섯 부족 동맹공동체였습니다. 저들에 있어 선출된 자는 왕이라기보다 그 동맹의 의장격이었습니다. 점차 왕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세습화되어 갈 때에도 실제 정사에 임하는 수장직은 다섯 부족에서 천거하였습니다. 삼한도 역시 부족 동맹 시대입니다. 신라도 초기에는 가야동맹(연맹)이었으며 화백제도도 부족동맹의 흔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역사의 흔적은 중앙집권을 거부한 원형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역사와 이스라엘 역사는 다른 길을 걸었을까? 그것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회염원과 연계된 신앙의 대상이 불투명한 데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각 종족에는 그들 나름의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앙이 바로 구현된 흔적이 희미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형성된 "야훼만"의 신앙은 이스라엘 민족을 어떤 상황에서도 주체성을 지켜준 바탕입니다. 삶과 유리되지 않은 야훼신앙 그것은 후기에 국가가 완전히 망했어도 민족으로서는 와해되지 않게 하는 주축이 된 것입니다. 특히 초기 이스라엘의 야훼신앙은 정치적 결단과 깊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억압받은 계층이 다시는 사람으로서 사람에게 예속되지 않으려는 염원에서 '야훼여! 당신만이 우리의 왕입니다'고 절규하고 그 신념을 확고하게 틀어잡고 대대로 그 신앙을 여러 형태로 계승했습니다.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한 신, 가령 세계 제1원리로서의 신,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신, 즉 사변의 신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야훼! 그러니까 다시는 어떤 인간에 의한 독재도 용인할 수 없다는 정치적 정의감과 야훼신앙은 동전의 앞뒤와도 같습니다. 이 야훼는 가령 일본이 만들어 낸 '아마데라스 오오미까미'(天照大神) 같은 것과는 다른 신입니다. 그 신은 자체 내의 국민뿐 아니라 다른 민족을 침략하기 위해 만든 신으로서의 상징입니다. 이에 대해서 야훼는 압제 밑에 사는 민중을 해방시킨 신, 그러므로 다시는 어떤 불의한 권력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고백의 대상입니다.

이러한 야훼신앙을 토대로 우리는 예수와 이스라엘 신앙에 관해 일별할 수 있습니다.

4. '야훼만'의 이념 전승

마르코 복음에는 중요한 예수의 말씀이 전승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사람들의 집권자로 알려진 사람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또 고관들은 세도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너희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크게 되려고 하면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주인이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온 것이다(마르 10, 42-45).

우리는 이 말씀을 추상적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길고 깊은 역사적 전통과 맥을 같이하는 말씀이며, 예수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그것에 대한 예수의 자세를 뚜렷하게 반영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반권력주의, 반군국주의 정신이 다윗 왕조 이래로 유린당했던 것인데, 예수는 원초적인 이 신앙을 다시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고대 히브리가 당했던 처지와 방불하게 로마제국의 압제와 그 세력에 아부하여 권력의 일부를 하청받은 예루살렘 세력 밑에 신음하는 민중과 더불어 갈릴리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가 다윗 왕조 이후에 성립된 메시아관, 즉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날 것이라는 주장을 일격하고(마르 12, 35 이하) 예루살렘 세력과 대결하다가 마침내 예루살렘에 돌진하여 거기서 처형된 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야훼신앙과 밀접하게 연계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서구에서 이루어진 이른바 두 나라설(즉 영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는 다르고 그것을 다루는 주체가 다르다는 설) 또는 정교 분리설을 그대로 수행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불의한 횡포에 대해서도 오불관하는 것이 교회나 그리스도인의 자세여야 한다는 생각이 상당히 만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원래적인 야훼신앙에서 예수에게로 이어지는 신앙과 그 뿌리를 달리하는 현상입니다. 야훼를 믿는다는 일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은 불의한 권력에 대한 거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참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가진 공동체라면, 하느님에게만 속한 권력을 가로채어 민중을 압박하는 권력과의 대결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야훼만"의 공동체의 평화를 파괴하는 주범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불의한 권력과의 투쟁은 바로 야훼만이 우리의 주님이라는 고백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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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기다리며 (로마 1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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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보내는 글 (요한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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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정신 문화 불식시키는 외래 종교
   
제3부 한국의 민족 운동
3•1절과 민족사적 고백
8•15와 해방
3•1 운동과 기독교
민중 운동의 새 기원
4•19혁명과 민주주의의 갈망
4•19의 혼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4부 한국 민(民)과 종교
민족적 과제와 교회
그리스도교와 민족 공동체
개화기의 한국 교회의 위치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주체성과 신앙
더 이상 종교는 침묵일 수 없다
   
제5부 민족 자결
민족 자결의 민족주의
민족 문제와 민중신학
혼선된 역사
   
제6부 분단과 평화
해방은 통일로써만
한국전쟁과 평화
6•25전쟁은 언제 끝나나!
이 땅에 평화를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
   
제7부 통일의 주체
민족 통일 문제의 성서적 조명
통일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통일은 민(民)의 손으로
씨알과 민족 통일
   
제8부 평화의 길
평화와 칼
아시아 평화와 일본
함석헌의 평화 사상
통일을 위한 민족 교육의 방향
평화의 실현
분단 극복과 평화
새 국면에 선 민족 통일과 기독교
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판권
제1부 절망 속의 희망
실락원 (창세 2-3장)
종주권과 민중의 투쟁 (창세 4, 1-16)
카인의 후예 (창세 4, 1-26)
아브라함과 종주권 (창세 16, 3-12)
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창세 25, 19-24)
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탈-향(脫-向)의 인간사 (창세 12, 1.7)
절망 속의 희망 (창세 22, 1-13)
   
제2부 지성소
바벨탑 (창세 11, 1-9)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창세 18, 22-33)
지성소(至聖所) (출애 3, 5)
나는 나다 (출애 3, 13-15)
탈향(脫向)의 기수 (출애 3, 7-10)
지평선 너머 (신명 32, 48-52)
   
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고대 이스라엘 종족 동맹 (사사 5, 1-8)
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믿음의 조상 (히브 11, 17-19)
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제4부 남은자의 믿음
다윗 왕권의 죄 (삼상 8, 4-18)
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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