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집

전집은 OCR 스캔 잡업으로 진행되어 오탈자가 있습니다.
오탈자를 발견하면 다음과 같이 등록해 주시면 관리자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 수정 요청을 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2. 본문을 읽는 중에 오탈자가 있는 곳을 발견하면 앞뒤 텍스트와 함께 마우스로 선택합니다.
3. 그 상태에서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하여 나타나는 창에서 수정 후 [수정요청]을 클릭합니다.
4. 각주의 경우에는 각주 번호를 마우스오버하여 나타난 창을 클릭하면 수정요청 창이 열립니다.

※ 컴퓨터 브라우저에서만 가능합니다.
불의의 온상
―다윗 왕
삼상 12, 7-14
 
1. 왕국 창설자 다윗의 업적과 인간성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세 인물을 든다면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다윗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신약성서에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을 예수의 계보로 삼고 있으며, 예수는 다윗의 후예임을 강조한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것이 다윗에게 와서 과도적인 성취를 보았기 때문이며, 예수는 메시아로서 이 다윗 왕국의 세계화의 완수를 위해서 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서 다윗이 하느님의 종국적인 약속을 믿고 있었고, 한 예언자로 그리스도의 오심과 부활을 믿었다고 한다(사도 2장). 그랬기 때문에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 사람들은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메시아로 환영한다.

다윗은 유다 족속에 속한 '이새'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의 직업은 무기와 악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다윗은 막내아들로 태어났고 그가 하는 일이란 양을 지키는 것이었다. 히브리가 유대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그에게서 시작됐다. 즉, 이스라엘민족을 일컬어 유대민족이라고 한 것도 그가 유다족인 데서 온 것이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집트, 바빌론, 앗시리아와 같은 형태의 왕국을 건설한 오직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약 40년 동안 최대의 판도와 국가를 이루어 참 의미의 왕국을 건설한 왕으로서 이스라엘은 언제나 그 때를 그리워하고 그 때의 재건과 미래의 새 왕국의 희망을 결부시켰고, 그것은 마침내 메시아 사상과 결부되어 '장차 올 메시아는 다윗의 후예'라는 신앙이 생겼다.

그는 사실상 위대한 정치가요 군인이며, 또한 신앙과 정서의 인물이었다. 오늘 우리가 가진 시편 중 많은 것이 다윗의 신앙의 노래로써 전해지고 있다. 그의 생애는 사무엘상 16장-사무엘하 5장까지에 있다. 그리고 사무엘하 7장과 시편에도 나오고 있다.

시편 78장 70절에 의하면 그는 한 목동으로 양의 젖을 짜고 있을 때 대제사장 사무엘에 의해서 장차의 왕이 될 기름부음을 받았다. 사무엘은 사울왕이 벌써 타락해서 하느님께 버림받은 것을 알고, 이제 그 후계를 찾아 가만히 기름부은 것이다. 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다윗은 음악을 잘하고 무용과 구변이 능하고 잘 생긴 사람이었다(사무엘상 16, 18).

한편 사울은 죄 속에서 번뇌한다. 신하들이 음악을 잘하는 사람으로 다윗을 추천해서 그는 사울의 곁으로 오게 된다. 이렇게 등장한 다윗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무용을 떨침으로 적장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것으로 일약 사울의 신임을 받고 동시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의 깊은 우정을 맺는다.

그는 마침내 군대지휘자로 명명되어 가는 곳마다 승전한다. 민심은 다윗에게 쏠린다. 이에 사울이 질투했다. 다윗이 사울을 위해 수금을 타는 것에 질투해서 사울은 그에게 창을 던진다. 그러나 그는 사울에게 원한을 품지 않았고 사울이 사위를 삼겠다고 할 때,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족이나 내 아비의 집이 무엇이기에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다"로 거절하는 겸손을 보인다.

그러나 사울은 다시 그를 돌연히 죽이려고 하고 또 여러 차례로 위험한 전투에 보내서 죽이려고도 했으나 그 시도들은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울에 대해서 다윗은 언제나 관용했다. 그는 두번씩이나 추격하는 사울을 죽일 수 있었다. 한 번은 그와 그의 병졸들이 숨은 바위굴에 들어온 것을 부하들이 죽이려는 것을 막고 그 옷 한 끝만 자른 후 사울에게 자기는 이처럼 기회가 있으나 안 죽인다는 선의를 보였으며, 또 한 번은 그를 추격하는 사울의 진지에 들어가서 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술병을 가지고 나올 때 사울을 단번에 죽이려는 부하를 만류하면서 "하느님이 기름 부은 이를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소리를 반복한다.

다윗은 결국 회심했다가도 다시 악해지는 사울을 피해서 이방에 가서 지나다가 사울이 블레셋족속에게 그 아들이며 자기 친구인 요나단과 함께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피 울면서 "이스라엘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며 울찌어다. 저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다"고 하면서 통곡했다. 이처럼 사울의 공로를 무시하지 않았고, 그를 구하지 못한 병정을 징계했다.

그는 오랜 시일 동안의 고통, 도피, 싸움 끝에 결국 이스라엘의 민심에 의해서 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다윗의 왕국의 판도를 넓힐 때까지 자기를 위한 집 한칸 없었다. 그러나 예언자 나단의 여호와의 뜻이라는 권고로 비로소 궁전을 지었다.

그 때까지 사울파(派)들과의 계속적인 싸움이 있었으나 주변은 속속 다윗에게 투항해 왔었다. 그런데 사울의 아들 하나가 끝까지 다윗과 대결하고 있었는데 그 부하들이 그의 목을 베어와서 다윗의 바위를 맞추려고 할 때, 다윗은 슬픔과 분노 때문에 오히려 저들을 죽이게 했으며 궁전 지은 후에도 사울의 후예들을 샅샅이 찾아서 저들을 특별히 구별하여 극진히 후대했다. 정말 소박하게 표현된 그의 모습은 용감, 신의의 사람이며 관용과 용서의 사람이며 위대하면서도 지극히 적은 일에 그처럼 가슴 아파할 줄 아는 인간으로 나타난다.

그는 민중을 위해 살았다. 그는 수십년을 그처럼 전선에서 살고 왕이 되었어도 자기의 처지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철저히 '하느님의 종'이라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개선장군으로 교만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전략을 믿지 않고 언제나 꼭 하느님께 묻는다.

그때 그때 행동할 때마다 그는 하느님의 뜻을 구했다. 더우기나 그가 하느님의 법괘를 예루살렘성에 모시고 기쁨의 축제를 베풀 때, 그는 왕으로서의 체신을 벌고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사울의 딸에게 조소를 당할 정도로 이런 말을 한다.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들에게 더 높임을 받으리라.

즉, 그는 여호와 앞에서 자기 위신을 지키는 것쯤은 문제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는 그 민중을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기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나의 백성"이 아니라 "여호와의 백성"이다.

둘째, 그의 집권은 제 힘으로 됐다고 보지 않는다. 아니, 하느님에게 위촉받은 것이라고 본다.

셋째, 그는 따라서 민중의 군림자가 아니라 그를 섬기는 자라는 의식을 가졌다.

이상은 모두 다윗에 의해 성립된 왕권파사가들에 의해 씌어진 다윗의 미화된 모습이다.

3. 민중이 전하는 다윗

이같은 위대한 인간 다윗이 씻을 수 없는 범죄에 빠진다.

그는 그의 부하 우리야의 아내에게 취해서 그를 임신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두려워서 외지(外地)로 출전한 우리야를 소환해서 그 아내와 동침하게 하여 속이려고 했으나 충직한 우리야는 다윗 왕을 지키기 위해서 끝끝내 진지에서 밤을 지샌다. 그래서 결국 다윗은 남의 아내를 뺏고 그것을 가리우기 위해서 우리야를 가장 위험한 격전지에 보내고 계획적으로 전사하게 만든다. 그러나 다윗은 우리야를 죽이고도 아무런 후회도 없다. 오히려 우리야의 아내를 새 아내로 맞이한다!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변한 것은 '왕'이라는 권좌에 안주하게 된 때문이라고 본다. 즉, 다윗의 타락된 모습을 다윗의 또다른 한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권좌'에 그 책임을 돌리려고 한다. 그런 뜻에서 본회퍼가 '안전보장'이 인간을 타락하게 한다고 본 견해나 일반인들이 말하는 대로 어떤 사람이 권력을 잡은 순간 그 사람은 권력에 의해 썩는다는 원리를 가지고 다윗 자신을 변호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400명의 졸도들을 거느리고 토비(土匪) 노릇을 했을 때에 이미 그런 짓을 밥먹듯이 했다. 그는 졸도들을 이끌고 부지런히 일해서 부농(富農)이 된 '나발'에게 식량공급을 강요했고 이에 응하지 않는다고 그의 것을 전부 약탈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아비가일'을 가로채어 자기 첩으로 삼아버렸다.

우리는 인간이 야누수적으로 두 얼굴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에 관한 미화들이 거짓으로 꾸며졌거나 아니면 그의 추잡한 면모를 전승한 것이 악의(惡意)에서 온 허위라고 단정해야 한다. 그럴 용기가 없다면 이 두 면으로 그의 선악이 상쇄되고 남는 것은 유능한 군사정치가라는 것뿐이다.

4. 다윗은 회심하지 않았다

나단이라는 예언자가 있었다. 그는 다윗을 찾았다. 그는 다윗에게 어떤 동리에 부한 자와 가난한 자가 있었는데, 그 부한 자가 손님이 오니까 자기의 많은 양을 두고 집식구처럼 기르는 가난한 집의 단 한 마리 양을 뺏어 잡았으니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이 말을 듣고 다윗은 노해서 그런 사람은 죽여버리라고 한다. 다윗은 남을 볼 눈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볼 눈을 잃고 있다. 그는 벌써 권력에 의해서 자기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이 때 나단이 다윗에게 말한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다!"

"어떻게 하느님을 그렇게 배신할 수 있느냐!"

다윗은 그 앞에 항복하는 듯했다. 그는 하느님 앞에 범죄한 것을 인정했다.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회개의 사람이기에 위대하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야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이가 죽자 그의 슬픔과 참회의 장면은 가히 사람들을 감동시킬만 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윗의 그런 행위가 회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참회한 그가 우리야의 아내를 자유하게 되돌려 보낸 일도 없었을 뿐 아니라 많은 여자 중에 바로 우리야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솔로몬을 모든 장애물을 물리치고 그의 계승자로 삼아 자신의 대권을 인계했기 때문이다. 그 솔로몬은 무엇을 했는가?


List of Articles
동양의 한 시각에서 본 서구신학 비판
종교고발
성서와 종교
해방과 참여의 신학
정치신학의 동향
혁명의 신학
정치적 예배
민중신학을 묻는다
 
제3부 개혁을 위해 성서를 다시 본다
I 새로 보이는 성서
성서의 '영'(靈)이란 무엇인가
신약성서에서 본 회개
하나님, 이웃, 나의 관계
의식 종교와 사랑
율법을 지키는 일과 참 복종
전통(유전)과 하나님의 뜻
두 질서
예수에 있어서 결혼과 이혼
순교자 개념의 어제와 오늘
신약에서 본 교회사의 한 단면
II 성서 본문과 설교
성서와 설교
성서 해석의 과정
비유와 설교(1)
비유와 설교(2)
혁신과 보수
하나님의 나라
 
제4부 한국 신학의 과제
한국의 신학의 현황과 과제
한국 교회의 예수 이해
한국 그리스도교와 종교개혁
한국 그리스도교의 자기혁명
한국 교회의 구미신학의 유산과 그 한계
 
제5부 도피냐 구원이냐
기독교의 본의(本義)
도피냐 구원이냐
인간혁명
개인구원이냐 사회구원이냐
공관서의 구원론
부활신앙과 혁명
대담 | 기가 막힌 세상
 
제6부 하느님의 선교와 새로운 공동체의 모색
목회론
평신도의 목회
선교신학의 성서적 핵심
하느님의 선교
새로운 공동체
전달자와 해석자
프로테스탄트 교회관과 일치운동
1980년대 교회의 선교적 과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교회상
예수공동체의 신앙고백
한국 교회는 민족의 과제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1부 메시아를 기다리며
때 (시편 39, 5-13)
진통하는 역사 (로마 8, 18-27)
밤이 오면 (로마 13 , 11-14)
아침을 기다리며 (로마 13, 11-14)
밤과 새벽의 분계선 (로마 13, 11-14)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루가 11, 2)
내가 속히 오리라 (묵시 22, 12-13)
마라나타 (묵시 22, 10-20)
성탄절에 보내는 글 (요한 1, 14)
미래의 크리스마스 (루가 2, 1-38)
 
제2부 넓은 문과 좁은 문
해방자 예수 (루가 4, 18-19)
우리는 모두 사찰당하고 있다 (마르 3, 1-6, 22)
"악마!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마르 5, 1-15)
분단의 극복 (요한 4, 21-23)
다 팔아 보화를 산다 (마태 13,44-46)
평화와 칼 (마태 10, 34-39)
좁은 문 넓은 문 (마태 7,13-14)
우리에게 일용할 배고픔을! (루가 11, 3)
기도의 사건화 (루가 18, 1-8)
인간봉화(人間峰火) (마르 8, 31-38)
"십자가를 지고"의 뜻 (마르 8, 34-38)
신의 침묵은 심판이다 (로마 1, 18-32)
복음의 전진 (필립 1, 12-18)
사건의 신학 (고후 11, 23-33)
 
제3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
오늘의 그리스도 (마르 15, 27-37)
오늘을 사는 청년 예수 (마르 2, 15-17)
그리스도 (마르 8, 27-33)
우리를 지키시고 구해 주시는 이 (고후 1, 8-11)
새로운 존재 (요한 3, 1-12)
이제 다 끝났다 (요한 19, 28-34)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마태 6, 32-33)
예수 그리스도一세상의 생명 (로마 8, 18-28)
문 두드리는 소리 (묵시 3, 14-22)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인가? (고전 6,1-11)
권위와 행동 (루가 20, 8)
현존의 그리스도 (히브 13, 12-13)
 
판권
 
판권
 
판권
 
판권
 
판권
제1부 옳은 민족 옳은 역사
서양사람 한국사람
구라파에서 본 조국
사상의 주체성
세계 속의 한국
   
제2부 한국의 민족 감정
민족 감정
아키히토 방한과 민족 감정
히로히토가 엄존하는데
민족적 염원
'조국 근대화'와 민족문화
민족 정신 문화 불식시키는 외래 종교
   
제3부 한국의 민족 운동
3•1절과 민족사적 고백
8•15와 해방
3•1 운동과 기독교
민중 운동의 새 기원
4•19혁명과 민주주의의 갈망
4•19의 혼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4부 한국 민(民)과 종교
민족적 과제와 교회
그리스도교와 민족 공동체
개화기의 한국 교회의 위치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주체성과 신앙
더 이상 종교는 침묵일 수 없다
   
제5부 민족 자결
민족 자결의 민족주의
민족 문제와 민중신학
혼선된 역사
   
제6부 분단과 평화
해방은 통일로써만
한국전쟁과 평화
6•25전쟁은 언제 끝나나!
이 땅에 평화를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
   
제7부 통일의 주체
민족 통일 문제의 성서적 조명
통일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통일은 민(民)의 손으로
씨알과 민족 통일
   
제8부 평화의 길
평화와 칼
아시아 평화와 일본
함석헌의 평화 사상
통일을 위한 민족 교육의 방향
평화의 실현
분단 극복과 평화
새 국면에 선 민족 통일과 기독교
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판권
제1부 절망 속의 희망
실락원 (창세 2-3장)
종주권과 민중의 투쟁 (창세 4, 1-16)
카인의 후예 (창세 4, 1-26)
아브라함과 종주권 (창세 16, 3-12)
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창세 25, 19-24)
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탈-향(脫-向)의 인간사 (창세 12, 1.7)
절망 속의 희망 (창세 22, 1-13)
   
제2부 지성소
바벨탑 (창세 11, 1-9)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창세 18, 22-33)
지성소(至聖所) (출애 3, 5)
나는 나다 (출애 3, 13-15)
탈향(脫向)의 기수 (출애 3, 7-10)
지평선 너머 (신명 32, 48-52)
   
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고대 이스라엘 종족 동맹 (사사 5, 1-8)
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믿음의 조상 (히브 11, 17-19)
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제4부 남은자의 믿음
다윗 왕권의 죄 (삼상 8, 4-18)
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위로
텍스트를 수정한 후 아래 [수정요청] 버튼을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