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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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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잃은 돈 찾은 여인

또 어떤 여인이 드라크마 열 닢을 가졌는데 그중의 하나를 잃으면 동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며 그것을 찾기까지 정성스럽게 찾아보지 않겠느냐? 그리고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합시다.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느님의 천사들은 크게 기뻐할 것이다(루가 15, 8~10).

이 이야기는 양 치는 남자가 나오고 목동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준 앞의 이야기와 외형상 비슷한 내용인데 주인공이 여자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 두 이야기가 쌍둥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형식이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이 담백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읽고 생각하면 형식은 비슷하면서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내용이 상당히 다릅니다.

한 마리 양을 찾아 떠나는 목동의 이야기는 마태오에도 실려 있는데 이것은 마태오에는 없고 루가에만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이 두 이야기는 원래 연결되어 있었는데 마태오가 빠뜨린 것이라고도 하고, 원래는 목동의 이야기만 있었는데 후에 예수의 이름을 빌려 만든 것이라고 짐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짐작도 고집할 만한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이제 두 이야기가 쌍둥이라든지 목동 이야기를 모방해서 만들어 냈다는 짐작은 잘못된 것임을 밝혀가겠습니다.

한 여인이 돈 열 드라크마를 갖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그중 한 닢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이 잡 듯 구석구석 쓸어 결국 찾아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돈을 찾은 여자는 저 목동과 같이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합시다.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았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잔치를 벌였다는 뜻입니다. 그 여자가 잃어버린 돈보다 더 많은 돈이 들게 마련인 잔치를 벌일 정도로 그 한 닢이 그렇게도 소중했을까요? 왜 그렇게 소중했을까요?

'드라크마'는 헬라의 은돈입니다. 그것은 한 '데나리온' 정도로 하루의 일삼 정도입니다. 주전 300년 때 기록에 한 드라크마로 양 한 마리를 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을 특별한 경우가 아닌 통상적인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드라크마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의 지배시대가 지나가고 로마제국이 지배할 때는 그가 치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 드라크마래야 은 4.3g의 무게이므로 그 자체로 보아서는 그렇게 값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가 한 드라크마를 찾은 기쁨에 동리사람들과 친구를 불러 모아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은 저 목동의 경우처럼 수지계산에는 맞지 않습니다. 목동이 생명의 위협을 당했던 한 마리의 양을 찾아냈 다는 사실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의 경우는 한 닢의 돈을 찾았다고 해서 그보다 몇 배 혹은 몇십 배의 돈을 들여 잔치를 연다니 우매하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잃은 것은 같으나 양의 경우와 달리 돈을 잃은 것은 생명의 차원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여자의 기쁨은 비록 잃어버린 돈 한 닢을 찾은 것이나 돈 자체의 가치 때문에 그렇게 기뻐했을 리는 없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드라크마 열 닢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팔레스틴 여인들의 장식품 중에 가장 귀한 것은 시집을 때 머리에 장식했던 것입니다. 그 장식품은 은돈인 드라크마 열 닢을 은줄에 꿰어 머리에 치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상징이요 결혼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부모의 품을 떠나 다른 가정으로 옮겨왔다는 표식이기도 하며,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권리를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치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잘 때도 그 장식품만은 풀어놓지 않았으며, 아무리 악독한 빚쟁이도 그것만은 뺏어갈 수 없다는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결혼반지에 비교할 수 있을까요.

그 여자는 그 열 닢 중에 하니를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잃어버렸다는 면에서는 양의 경우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 양은 생명의 위기 앞에 있기 때문에 시간을 다두어야 하는 데 대해, 돈 한 닢 잃은 것은 그것과 비교되지는 않습니다. 열 닢으로 비로소 온전한 장식품이 되는데 그중 하나가 없어지면 그것은 곧바로 남은 아홉 닢에 직접 영향을 끼칩니다. 말하자면 장식품의 구실을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이 한 닢은 전체의 10분의 1에 불과하나 그 전체를 살릴 수도 있는 열쇠가 되는 셈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한 닢의 드라크마를 잃어버림으로 해서 남은 아홉 드라크마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보화 같은 장식품이 되느냐 아니면 언제라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흔해 빠진 돈푼으로 전락하느냐 하는 위기에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점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경우와 다른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의 경우에는 100마리의 양이 있어야 비로소 가치가 있게 되는 것이 아니므로 남은 양 99마리에게 그 한 마리 양은 없어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한 닢의 드라크마는 그 장식품 자체의 가치를 깰 뿐만 아니라 그 여자로부터 아내로서의 권리의 상징을 뺏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여자는 결사적으로 잃어버린 한 닢의 돈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 여자는 그 한 닢을 찾기 위해 등불을 켜들고 헤맸다고 합니다. 그것은 밤이어서가 아닙니다. 팔레스틴의 가난한 서민들의 집에는 창문이 없습니다. 그래서 낮에도 방안이 캄캄해서 무슨 일을 하거나 떨어뜨린 것을 찾으려면 등불을 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담긴 예수의 관심에 우리는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떡 반죽을 하는 여인의 손끝을 보면서 하느님 나라의 비밀을 생각하던 예수는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던 시대에 한 여자가 아내라는 권리의 유일한 표식인 머리 장식품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것도 화려한 궁전에 있는 왕녀나 고관의 귀부인이 아니라 이름 없는 민중 속에 묻혀 사는 너무도 소박한 여인의 권리 옹호의 속마음을 읽고 있습니다.

'아내'임을 나타내는 머리장식은 반지보다 훨씬 더 불편하고 위험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남편들이 결혼한 여자를 박해할 때 쉽게 그것을 잡아 낚아채 버렸습니다. 그 순간 그것은 결혼의 징표가 아니라 하찮은 돈푼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그럴 적마다 달리 반항할 힘이 없던 여자들은 말없이 흩어진 그 돈들을 모아 은줄이 없으면 다른 줄로라도 꿰어서 머리에 꽂음으로써 다시 권리의 상징으로 바꾸어놓습니다. 가부장적 시대에 여자들은 이런 경우를 계속 당했을 것입니다. 하기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 장식품이 사용된다면 그런 경우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가 왜 결혼을 하지 않고 죽기까지 단신으로 살았는지는 그 자신이 말하지 않는 한 짐작만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여자를 무시했다거나 불필요한 존재로 보아서가 아닙니다. 그 증거는 복음서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남자 위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즐겨 창세기 1장과 2장의 별도의 자료로 실린 남녀관계의 이야기 중 1장을 그의 입장으로 삼았습니다.

1장은 이른바 'P자료'인데 태초에 하느님께서 남녀를 창조했다고 간단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편 'J자료'인 2장에서는 남자인 아담이 먼저 창조되고 그가 외로워 보이니까 그를 위로해 줄 상대로 그의 갈빗대 하나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렇게 2장에서 남녀의 차이를 출발부터 종속관계로 표현한 것과 비교하면 1장에서는 너무도 뚜렷하게 간단한 말로 '남녀동등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창조자와 여자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남자가 그 중간에 확고한 자리를 갖고 있는데 반해, 1장에서는 남자나 여자가 동시에 평등하게 '주체'로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는 이런 입장에 섰기 때문에 남자들이 여자를 마음대로 아내로 소유할 수도 있고 불필요하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던 그 당시 남성 위주의 여성 독점권을 인정하는 통상적인 사고를 물리쳤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입장을 가진 예수가 드라크마 열 닢으로 장식한 여자의 권리옹호의 상징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깊은 관심을 가졌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드라크마 한 닢을 찾은 여자를 땅에 묻힌 보물을 발견한 어떤 사람의 이야기와 비깁니다. 그것은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었다'는 비슷한 행동 때문인데, 그러나 찾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은 같으나 소중한 이유는 다릅니다. 그 사람은 뜻밖에 밭에 묻힌 보화를 찾아 '횡재'한 셈인데, 이 여자는 잃어버린 기본권을 도로 찾은 것입니다.

그때 결혼한 여자에게는 '아내'라는 권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나'로서의 자기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내 된 사람이 '아내'라는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은 죽음과도 같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결혼에서만 존재의미를 찾는 여자에게는 남편에게 버림받아 이혼당하는 것을 생명을 뺏기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비록 법적으로 이혼당하지 않았다고 해도 어떤 실수로 남편에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에 아마 정조 문제가 가장 뚜렷한 경우일 것입니다. 강간이든 화간이든 단 한 번이라도 혼외관계를 가지면 그 결혼 전체를 깨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런 경우를 한 닢의 드라크마를 잃은 경우와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닢을 잃은 것이 그 장식품 전체를 망칠 뿐 아니라 아내의 권리를 뺏기는 결과가 된다고 가정할 때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그 여자가 어두운 방에 등을 켜고 구석구석 쓸면서 잃은 것을 찾으려는 노력은 복권운동을 방불케 합니다. 남자 위주로 만든 정조문제로 뺏긴 권리를 회복하는 열쇠는 남자가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깨진 인간관계를 다시 찾는 것은 잃어버린 인권을 찾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데 그것은 평등권을 찾는 운동과 연계됩니다.

어떤 이들은 현대인의 맹점을 비판합니다. '돈 얼마를 잃었다', '가졌던 물건을 잃었다'는 것에는 예민한네 '자신'을 잃은 것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것을 제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마침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만이 아니라 팔아버리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시각에서 볼 때, 현대인이 자신을 되찾는 일은 바로 이 여자가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것과 비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2) 잃은 돈 찾은 여인
    3) 돌아온 아들의 아버지
3. 가치의 전도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4) 말만 하는 자와 실천하는 자
    5) 자신을 철저히 비운(空) 자
4. 집요한 투쟁(간구)
    1)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2) 닫힌 문
    3) 빚진 자의 엉뚱한 마무리
    4) 한 과부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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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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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심판과 맡은 분깃
    4) 심판과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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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한 부자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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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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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를 움직인 여인들
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민중현실에 바탕을 둔 신학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한국 교회의 재래의 성서이해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전통적 성서해석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성서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할 뿐
    민중신학이 본 성서의 맥
민중 예수
    극복되어야 할 서구 신학의 그리스도론
    고난의 종 그리스도
    구원은 민중을 통해서 온다
    예수는 오늘의 민중현장에 계신다
    제도적 교회는 민중현장에 계신 그리스도를 포기
    민중사건은 예수사건이다
    ‘구원’은 물질적 언어로 표현되어야
    성령의 역할은 인류해방에 있다
민중의 하느님
    신이 죽었다?
    서구 신학의 신관(神觀)
    동양인의 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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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의 신
    성전종교의 포로가 된 신
    예수 이후의 하느님
    민중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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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공동체 一 교회
    교회의 주인공은 민중이다
    예수공동체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였다
    생활공동체에서 예배공동체로 전락
    교회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민중신학이 꿈꾸는 교회상
    제도적 교회론을 넘어서자
    해방공동체 구현과 교회의 계층성 극복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기존의 죄이해는 교권을 강화시킨다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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