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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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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예수께서 헌금궤 맞은편에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많은 부자가 와서 돈을 많이 넣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렙톤' 두 푼, 곧 한 '코트란트'를 넣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놓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궤에 돈을 넣은 사람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많이 넣었다. 모두 다 넉넉한 데서 넣었지만 이 여인은 구차한 중에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 넣었으니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넣은 것이다"(마르 12, 41-44; 병행 루가 21, 1-4).

예수의 이야기를 읽어오면서 거듭 농부나 어부, 촌부들이 일하는 현장에서 경험한 것을 듣고 그것을 소재로 삼았거나 아니면 예수가 직접 경험했을 수도 있다는 짐작을 반복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이야기만은 직접 예수가 목격한 사실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이중의 목격담입니다. 한 눈은 예수 행태를 주목하는 눈이고 또 한 눈은 헌금하는 사람들을 주목하는 예수의 눈입니다.

어느 누군가가 성전에서 행동하는 예수를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성전 내부는 계층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지성소 안에는 제사장 이상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자들은 성전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그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간과 이방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맨 마지막 외곽 사이에 또 하나의 장벽이 있었는데 여인들이 들어가는 문은 잘 꾸며져 있어서인지 '아름다운 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예수는 이렇게 담벽으로 막힌 성전 안과 밖을 드나들면서 헌금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헌금은 성전을 가꾸고 사제계급을 먹여 살리는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 당국은 헌금량으로 사람의 경건성(신앙)을 측정하는 잣대로 삼았습니다. 많이 내면 낼수록 축복이 보장된다고 주장했으며, 성전의 당사자들은 헌금을 낸 양만큼 그 사람을 대접했습니다. 헌금궤가 여기저기 놓여 있는데 자기 신분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그에 걸맞게 많은 돈을 자랑스럽게 사람들 눈에 잘 띄도록 냈습니다.

예수는 "헌금궤 맞은편에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라고 합니다. 어떤 눈이 헌금궤를 지켜보는 예수의 눈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깊은 생각에 잠긴 우울한 눈이었거나 감추고 숨긴 속마음까지 꿰뚫어보는 칼끝 같은 예리한 눈초리였을 것입니다. 부자들이 로마 돈을 보라는 듯이 소리를 내며 헌금궤에 넣는 것을 보는 예수는 헌금액수보다는 헌금하는 자의 마음을 쏘아보았을 것입니다. 아니, 액수를 주목하면서 그가 가졌을 만한 재산의 몇 천, 몇 만분의 일이나 되나하는 생각에 잠겼을 수도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헌금하는 손을 얼마 동안 지켜보던 예수는 성전 밖에 여자들이 모인 이른바 '아름다운 문'의 뜰에 나왔습니다. 거기에는 13개의 헌금궤가 적당히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남자 위주의 사회에서 모두 천대받는 존재들이지만 거기 모인 여자들 사이에도 신분이나 집안 사정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헌금궤가 놓인 맞은편에 앉아 헌금하는 여인들의 손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박탈당한 여인들인지라 양으로 보아 남자들의 헌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액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헌금의 양이 그 신분을 나타내듯이 여자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눈에 다 떨어진 옷을 걸친 몰골이 가난에 찌든 한 여인네가 들어왔습니다. 예수의 눈빛은 갑자기 전과 달라지며 그 여인을 주목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홀로 가정을 지탱해나가거나 그 날 그날 하루 끼니 마련에 시달리며 고생하는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야무리 가난해도 남편이 있다면 저렇게까지 초라하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 여자를 '과부'라고 했습니다. 그녀에게 물어서 안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모습에서 읽은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과부'라고 단정한 말은 과부임에 틀림없다고 고쳐 읽어도 될 것입니다.

저런 여자가 무얼하려고 헌금궤 앞으로 갈까? 아무리 보아도 끼니를 많이 걸러서 얼굴이 누렇게 뜬 것 같은데! 그런데 이 여자는 돈 두 푼(렙톤)을 조심스레 끄집어내어 두 손 모아 헌금궤에 바쳤습니다. 예수는 그것이 그 여자가 가지고 있는 전 재산임을 한눈에 보고 알았던 것 같습니다.

희랍의 제일 적은 돈의 단위인 두 '렙톤'이라면 로마의 제일 작은 동전인 한 '코트란트'에 해당되는데, 두 '렙톤'으로는 겨우 1리터도 못 되는 밀을 살 수 있는, 글자 그대로 '푼돈'입니다. 이 따위 푼돈이 성전사업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그 푼돈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무시하듯, 이 여자의 존재를 무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한 눈만은 그와 정반대로 그날 부자들이 바친 모든 헌금보다 더 큰 무게를 이 푼돈에 주었으며,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비중 보다 이 여자의 존재를 더 높이 샀습니다.

이러한 풀이는 헌금궤를 주목하는 예수의 그 눈을 주목한 눈에 반영된 예수를 헤아린 것입니다. 헌금궤가 보이는 맞은편에서 헌금하는 사람들을 응시하던 예수는 한 과부가 헌금하는 모습을 본 다음 자리를 옮겨 제자들과 마주앉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궤에 돈을 넣은 사람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많이 넣었다. 모두 넉넉한 데서 넣었지만 이 여인은 구차한 중에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넣었으니,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넣은 것이다(마르 12, 43~44; 루가 21, 3~4).

여기서 또 한 번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서 판결문을 읽듯하는 예수의 선언을 볼 수 있습니다. 저 바리사이파와 세리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세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고 돌아갔다'고 선언하던 그것과 꼭 같은 판정입니다.

어떤 학자가 공관서를 연구하고는 예수 자신은 '신'이라는 생각은 물론 '메시아'라는 의식조차 한 흔적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예수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판단을 합니다. "예수는 마치 자신이 하느님이기라도 하듯 하느님의 전권자라도 된 듯 단호한 권리를 가지고 선언하고 행동했다"고.

확실히 예수의 판정기준은 일반에게 적용되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책감도 없이 자기의 생을 자랑할 수 있고 자선도 하여 일주일에 한 번만 하면 되는 금식을 두 번씩이나하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고, 스스로 자책하여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하고 말문도 막혀 "오!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비명 같은 한마디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을 죄인으로 규정해야 마땅한데 그 기준을 뒤집어 엎은 것처럼, 돈의 가치는 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준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헌금의 가치를 그가 가진 것과 비교해서 판정을 내림으로써 물질적 평가를 물질의 양으로하지 않고 삶으로 전환해서 헌신의 정도를 기준으로 삼는 예수의 판단은 상식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예수의 판정은 영원히 진실한 판정입니다. 부자의 헌금은 과부의 헌금에 비해 양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으나 그가 가진 재산에서 보면 푼돈에 불과하고, 과부가 바친 두 '렙톤'은 부자들이 바친 헌금과 비해 훨씬 적으나 돈을 바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삶 전체를 바친 것입니다. 즉 예수가 온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평가한 그 생명 전체를 바친 것입니다. 바울로는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라"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과부야말로 푼돈을 헌금궤에 넣은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신의 제단에 바친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2) 잃은 돈 찾은 여인
    3) 돌아온 아들의 아버지
3. 가치의 전도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4) 말만 하는 자와 실천하는 자
    5) 자신을 철저히 비운(空) 자
4. 집요한 투쟁(간구)
    1)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2) 닫힌 문
    3) 빚진 자의 엉뚱한 마무리
    4) 한 과부의 투쟁
    5) 친구를 위한 투쟁
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2) 그물 안에 든 고기
    3) 심판과 맡은 분깃
    4) 심판과 대비
    5) 너무도 어리석은 부자
    6) 한 부자와 거지
    7) 뜻밖의 심판의 기준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를 움직인 여인들
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민중현실에 바탕을 둔 신학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한국 교회의 재래의 성서이해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전통적 성서해석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성서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할 뿐
    민중신학이 본 성서의 맥
민중 예수
    극복되어야 할 서구 신학의 그리스도론
    고난의 종 그리스도
    구원은 민중을 통해서 온다
    예수는 오늘의 민중현장에 계신다
    제도적 교회는 민중현장에 계신 그리스도를 포기
    민중사건은 예수사건이다
    ‘구원’은 물질적 언어로 표현되어야
    성령의 역할은 인류해방에 있다
민중의 하느님
    신이 죽었다?
    서구 신학의 신관(神觀)
    동양인의 신관
    성서는 신을 어떻게 말하나
    해방의 신
    성전종교의 포로가 된 신
    예수 이후의 하느님
    민중의 하느님
    하느님 사건의 전거
민중의 공동체 一 교회
    교회의 주인공은 민중이다
    예수공동체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였다
    생활공동체에서 예배공동체로 전락
    교회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민중신학이 꿈꾸는 교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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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공동체 구현과 교회의 계층성 극복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기존의 죄이해는 교권을 강화시킨다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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