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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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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마치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밀이 싹이 나고 알이 찰 때에 가라지도 보이니 그의 종들이 주인에게 와서 '주인이여, 당신이 밭에 뿌린 것은 좋은 씨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말했다. 주인이 종들에게 '원수가 그랬구나' 하고 대답했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뽑아 버릴까요?' 하고 종들이 말하니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먼저 가라지를 뽑아 단으로 묶어 불태워버리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라고 하겠다' 하고 주인이 대답했다"(마태 13, 24~30).

고용된 어떤 농부가 정성껏 밭을 갈고 모든 잡것은 다 제거하고 흙을 고르고 부드럽게 하고 골을 단정하게 만든 다음 그 위에 정성 껏 골라낸 밀알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그 밭 주인에게 어떤 이유로 앙심을 품은 원수가 그 위에 가라지 씨를 뿌려놓았습니다. 이 농부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밀이 싹이 나고 알이 차기 시작할 무렵에 보았더니 뜻밖에도 밀과 비슷한 가라지들이 많이 섞여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가 밭을 정성껏 가꾸고 또 주인에게서 받은 밀알을 정성껏 골라 심은 것을 눈여겨본 밭 주인에게 좋은 씨만 골라 심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하소연했습니다. 아마도 이 소작인은 주인에게 책망이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주인이 그에게 가라지가 나게 한 책임을 지울지도 모를 것이라는 두려움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소작인이 씨를 정성껏 뿌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조금도 그를 탓하지 않고 아마 원수가 한 짓일 거라고 말했습니다. 소작인들은 주인의 눈치만 살펴야하고 때로는 지주들이 온갖 잘못을 뒤집어씌워서 다른 일로 불편한 자신의 심기를 종이나 소작인을 대상으로 마구 분풀이하기 일쑤인데, 이 주인은 그런 자들과는 거리가 먼 선량한 사람입니다. 이 한마디 말이 그 종에게 안도감과 해방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 주인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차 있었을 것이며, 더 충성스럽게 자기가 맡은 일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농부는 자진해서 주인에게 지금 당장 가라지를 다 골라 뽑아내겠다고 제의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마태 13, 29~30).

참으로 인자한 주인다운 반응입니다. 또 주인의 말이 옳기도 하구요. 가라지를 뽑다가 함께 자라는 곡식마저 뽑아버리듯이 사람이 감정에 자기를 내맡기면 남을 상하게할 뿐 아니라 자신도 상하거나, 원수에게 해를 입히려다가 자신도 손해를 입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곡식의 성장을 방해하는 가라지가 공존하게 그대로 두라니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 주인은 곡식과 가라지를 언제나 그대로 내버려두겠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때가 되면 가라지는 뽑아 따로 단으로 묶어 불태워 버리고 밀은 밀대로 골라 곳간에 거두어들이겠다고 합니다.

또다시 예수는 농부들의 노동현장인 밭에 시선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는 알알이 영그는 소담한 밀밭을 순결과 풍요의 상징으로 대견하게 보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추수에 임박한 무렵에 그 밀밭을 다시 보았을 때 뜻밖에도 많은 가라지가 뒤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그는 구경꾼으로서가 아니라 농부의 고민을 읽고 동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는 그 밭을 가꾼 농부도 사이 사이에 돋아난 가라지를 보고 분노를 느꼈을 것이나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한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곡식을 아끼는 마음 때문일 것이라고 인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곡식과 가라지는 엄격히 구별되는 날이 올 것을 내다보았습니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너무나 평범한 애기를 예수는 무엇 때문에 하고 있을까요? 물론 농사짓는 이야기를 가르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현실 속에서 어떤 문제를 놓고 결단을 해야 할 마당에 한 밀밭을 응시하다가 어떤 결론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열쇠는 바로 곡식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현장에 있습니다. 세상에는 언제나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악한 것과 선량한 것, 불의한 사람들과 의로운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악한 것이 선한 것을 점점 오염시키고 불의한 것이 의로운 것을 몰아냅니다.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의분(義憤)의 칼을 뽑아 악하고 불의한 세력을 한꺼번에 없애버리고 싶은 충동을 갖게 됩니다. 그 충동을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 바로 폭력에 호소하는 '혁명'입니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위해서 적은 것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이론을 폅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회는 얽히고 설켜서 그렇게 염소와 양을 가려내듯이 쉽게 가를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예수는 민중들에게서 이 더러워진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불의한 놈들을 하루빨리 칼로 자르듯 처단해버려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예수의 일행이 갈릴래아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하려는 것을 그 주민들이 방해할때, 그의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이 "우리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다가 그들을 태워버리겠다"(루가 9, 54)고 흥분하는 경우처럼, 이러한 민중의 요구를 가슴에 담은 채 곡식이 무르익어가는 발을 보면서 거기에 함께 난 가라지를 뽑아내려는 충동을 일으킨 농부를 연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아니'였습니다. 사실 분노를 못 참아 함부로 칼을 뽑는 것은 죄없는 사람들의 희생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는 성급하고 무모한 처사입니다. 아흔아홉 마리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나서는 목동의 이야기로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다수를 위해 소수쯤은 희생돼도 좋다는 생각을 그는 용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기다리는 마음은 바로 '악과 선이 공존하는 사회모순이 절정에 이를 때까지 가만두어 보자'는 심정과도 비길 수 있습니다. 예수에게는 사람들이 말하는 혁명이란 바로 '심판'입니다.

심판은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 심판은 희생을 감수하는 그런 심판이어서는 안 됩니다. 혹과 백을 가르듯이 의롭고 선량한 것을 다치지 않고 불의만 처단되는 그런 심판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가라지만 묶어서 불에 태우고 알곡은 따로 거두어 곳간에 거두어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 이야기도 "'하늘나라는 마치 이와 같다"는 머리말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심판'이 주제입니다.

마태오는 이야기의 내용상 '심판'이 그 주제인데, '하느님 나라의 비유'라는 단서를 붙인 것이 그 어느 복음서보다 많습니다. 그러면 이 심판을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순서로 보면 하느님 나라가 전혀 새로운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심판이 있은 다음에 비로소 전개되는 현실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근세부터 특히 갑오농민혁명 이후로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이 말 안에는 낡은 시대는 완전히 소멸된다는 종말의 뜻과 더불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세계가 전개된다는 뜻을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종말을 추수로 비유한 것에서 선악이 공존하는 현실이 아니라 선과 의로움만이 존재하는 현실이 바로 하느님 나라라고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2) 잃은 돈 찾은 여인
    3) 돌아온 아들의 아버지
3. 가치의 전도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4) 말만 하는 자와 실천하는 자
    5) 자신을 철저히 비운(空) 자
4. 집요한 투쟁(간구)
    1)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2) 닫힌 문
    3) 빚진 자의 엉뚱한 마무리
    4) 한 과부의 투쟁
    5) 친구를 위한 투쟁
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2) 그물 안에 든 고기
    3) 심판과 맡은 분깃
    4) 심판과 대비
    5) 너무도 어리석은 부자
    6) 한 부자와 거지
    7) 뜻밖의 심판의 기준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를 움직인 여인들
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민중현실에 바탕을 둔 신학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한국 교회의 재래의 성서이해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전통적 성서해석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성서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할 뿐
    민중신학이 본 성서의 맥
민중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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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의 종 그리스도
    구원은 민중을 통해서 온다
    예수는 오늘의 민중현장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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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하느님
    신이 죽었다?
    서구 신학의 신관(神觀)
    동양인의 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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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의 신
    성전종교의 포로가 된 신
    예수 이후의 하느님
    민중의 하느님
    하느님 사건의 전거
민중의 공동체 一 교회
    교회의 주인공은 민중이다
    예수공동체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였다
    생활공동체에서 예배공동체로 전락
    교회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민중신학이 꿈꾸는 교회상
    제도적 교회론을 넘어서자
    해방공동체 구현과 교회의 계층성 극복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기존의 죄이해는 교권을 강화시킨다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바울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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