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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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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심판과 대비

그것은 마치 여행하는 사람이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가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잘 지키라고 명령한 것과 같다. 그러니까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모른다. 저녁일지 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또는 이른 아침일지 모른다. 주인이 갑자기 오더라도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게 하라(마르 13, 34~36).

이 이야기는 왕인 주인이 먼 여행길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일정한 자금을 나누어주면서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그것을 활용하라고 부탁했다가 돌아와서 일의 결과에 따라 중책을 맡기거나 응징을 하는, 위의 이야기와 같은 형식에 속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 강조하는 초점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길에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가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집을 잘 지킬 것을 명령하고 떠났습니다. 문지기를 따로 두고 집을 잘 지키라고 한 것을 보아 각 사람에게 맡긴 일은 단순히 집을 지키거나 평소에 하던 일을 맡겼다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일을 각자에게 맡겼다는 말에는 각 사람에게 그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분담했다는 뜻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종들이 많은 것을 보아 부자였을 터이니 할 일도 그만큼 다양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농사짓는 일체의 일, 어떤 사람에게는가축을 돌보는 일, 어떤 사람에게는 돈놀이나 재산을 늘리는 일 등을 맡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있을 때에는 비록 맡은 일은 다르더라도 일일이 주인의 뜻을 물어 그대로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없는 마당에 어느 정도의 재량권이 없으면 일을 해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에게 권한을 주었다는 말은 중요합니다. '권한'이라고 번역한 희랍 말 'eksusia'는 독자성을 상당히 강조하는 것으로서 권한의 원천은 하느님에게만 있다는 개념을 내포한 말입니다. 그러니 저들이 주인 없는 동안 독자적으로 맡은 일에 한해서는 주인과 똑같은 권한을 갖고 일을 추진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앞뒤에는 거의 똑같은 경고가 따르고 있습니다. 앞에는 "조심하고 깨어 있으라! 그때가 언제 이를지 너희가 모른다"라고 했으며, 그 다음에는 "그러니까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모른다. 저녁일지 밤일지 닭이 울 때일지 또는 이른 아침일지 모든다. 주인이 갑자기 오더라도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게 하라. 늘 깨어 있으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앞뒤의 말을 보면 여행을 떠난 그 주인이 언제 올는지 모르니까 자는 상태에서 그를 맞이하지 말고 깨어 있어서 그가 오면 영접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렇게 자상한 배려를 하는 주인이 돌아올 날짜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엇이나 일정한 날짜가 정해지면 그 기간에 어떤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계획할 수 있고 시간을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날이 이르기 전에 마음대로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주인에게 지시받은 것을 일시에 몰아서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시간을 이용할 자유가 주어지는 셈입니다. 따라서 "동료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만하는"(마태 24, 48~49) 경우처럼 방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을 모르면 언제나 대기하는 상태에서 자기 의무를 성실하게 해나가야 합니다.

따라서 그 주인에게서 비록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고 해도 긴장을 풀 수는 없습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집주인이 "저녁일지 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또는 이른 아침일지(그가 올 때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다리는 자의 상태입니다. 마태오에서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 끝에 "어느 때 도둑이 올지 집주인이 알았다면 집을 뚫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라는 말로써 그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면서 돌아올 날을 말하지 않는 '주인'과 집의 재물을 훔치려는 '도둑'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자의 입장에서 보면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면에서는 같습니다. 도둑맞은 경험이 많은 집의 사람들은 언제나 긴장합니다. 그래서 집을 나설 때뿐만이 아니라 집 안에서 휴식을 취할 때도 언제나 긴장하게 되고, 또 잠을 잘 때에도 조그마한 소리에도 긴장하여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노이로제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도둑이 올 때가 언제인지 알았다면 도둑의 침입에 대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처럼 주인이 언제 올지를 안다면 그의 눈에 들게 요령을 부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니 생활 전체가 깨어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당시에 사람들이 집요하게 물은 것은 '그날'이 언제 오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은 하느님 나라 도래의 날일 수도 있고, 세계의 심판자인 '인자'가 오는 날일 수도 있고, 박해당하는 사람에게는 불의한 세력이 멸망하는 날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가 임박했다고 거듭 설교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라는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제자들과 더불어 한 산에 올라 성전을 굽어보면서 "저 성전의 돌들이 어느 하나도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질 날이 올 것"(마르 13, 2)이라고 할 때 역시 제자들은 '언제', '어떻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 자신도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기다리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일 것입니다.

기다림은 크게 두 가지 측면을 지닐 것입니다. 하나는 불의한 기존 질서 아래서 희생자로서의 복수심이 그 계기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그리움일 것입니다. 이 둘은 물론 동전의 양면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지금 이대로의 질서나 체제에 대한 부정이라는 점에서는 하나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예수에게도 심판과 하느님 나라 도래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한데 엉켜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심판'은 불의한 기존질서에 대한 증오심과 분노에 더 초점을 둔 데 대해서,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과 대립된 새 나라에 대한 희망과 그리움의 발로입니다. 이 점에서 루가의 해석은 주목할만 합니다.

루가(12, 35~40)는 이 마르코의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하는 Q자료(마태 24, 45~51) 비유를 이렇게 성격화합니다. 먼저 주인은 결혼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출타했다는 것입니다. 결혼잔치는 어느 민족이나 기쁨을 나타내는 최고의 상징입니다. 하느님 나라도 결혼잔치와 비유된 데가 여러 곳 있습니다. 그런데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은 언제 올지 기약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르코에서와 같이 "밤중에나 새벽에 오더라도"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또 도둑이 오는 것처럼 주인이 올 것이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감쪽같이 올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루가에서 특별한 것은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을 들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이나 결론 부분을 보아 서는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이 돌아왔을 때 깨어 있지 않은 종들은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깨어서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은 이런 심판, 즉 형벌을 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혁명적인 경험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주인이 종이 되고 종이 주인이 되는 그런 혁명입니다. 허리를 동이고 대기하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주인을 섬기는 종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주인이 그렇게 하고 자기가 앉을 식탁에 그종들을 앉히고 시중을 들 것이라 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질서와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예수는 이 세상에서의 주인과 종의 관계를 이렇게 말한 일이 있습니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돌아왔을 때에 '어서 와서 식탁에 앉으라' 하고 종에게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도리어 그에게 '너는 내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를 동이고 시중들고 너는 나중에 먹도록 하라'고 말하지 않겠느냐? 명령한 대로 종이 행했다고 해서 주인이 종에게 고마워하겠느냐?(루가 17, 7~9)

이것이 현실인데 루가의 이야기에서 주인의 행동은 이와 너무나 대조적인 글자 그대로 혁명적인 행동입니다. 이것은 일한 대로 갚는다는 현실을 뛰어넘은 장면입니다. 종이 밭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도 주인은 고마워할 의무도 없거니와 계속해서 그를 섬길 것을 요구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말하는 데 반해서, 이 종들은 돌아온 주인에게 문을 열어준다는 너무나 당연한 일을 했는데도 그 주인이 종들을 주인처럼 섬긴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심판이라는 영역을 벗어난 새 질서, 새 세계 즉 하느님 나라가 그러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해석을 뒷받침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온 것이라고 한 말(마르 10, 45)입니다. 이것을 그림처럼 표현한 것이 요한복음에 있습니다. 예수가 그의 최후를 앞두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스승이 종처럼 제자의 발을 씻어주는 현실, 이것은 분명히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고 새로운 세계를 앞당겨 사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심판과 하느님 나라는 동전의 양면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기존질서의 연장은 물론 아니고, 그것의 반동적인 현실도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루가의 이 이야기는 마르코의 이야기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2) 잃은 돈 찾은 여인
    3) 돌아온 아들의 아버지
3. 가치의 전도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4) 말만 하는 자와 실천하는 자
    5) 자신을 철저히 비운(空) 자
4. 집요한 투쟁(간구)
    1)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2) 닫힌 문
    3) 빚진 자의 엉뚱한 마무리
    4) 한 과부의 투쟁
    5) 친구를 위한 투쟁
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2) 그물 안에 든 고기
    3) 심판과 맡은 분깃
    4) 심판과 대비
    5) 너무도 어리석은 부자
    6) 한 부자와 거지
    7) 뜻밖의 심판의 기준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를 움직인 여인들
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민중현실에 바탕을 둔 신학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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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전통적 성서해석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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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복되어야 할 서구 신학의 그리스도론
    고난의 종 그리스도
    구원은 민중을 통해서 온다
    예수는 오늘의 민중현장에 계신다
    제도적 교회는 민중현장에 계신 그리스도를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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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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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인의 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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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주인공은 민중이다
    예수공동체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였다
    생활공동체에서 예배공동체로 전락
    교회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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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도적 교회론을 넘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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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기존의 죄이해는 교권을 강화시킨다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바울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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