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집

전집은 OCR 스캔 잡업으로 진행되어 오탈자가 있습니다.
오탈자를 발견하면 다음과 같이 등록해 주시면 관리자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 수정 요청을 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2. 본문을 읽는 중에 오탈자가 있는 곳을 발견하면 앞뒤 텍스트와 함께 마우스로 선택합니다.
3. 그 상태에서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하여 나타나는 창에서 수정 후 [수정요청]을 클릭합니다.
4. 각주의 경우에는 각주 번호를 마우스오버하여 나타난 창을 클릭하면 수정요청 창이 열립니다.

※ 컴퓨터 브라우저에서만 가능합니다.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하늘나라는 마치 이와 같다. 열 처녀가 저마다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다. 그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잔은 가지고 있었으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도 가지고 기름 담은 그릇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늦도록 오지 않아 처녀들이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소리가 났다. '보라 신랑이 온다. 나와 맞으라.' 그때 처녀들은 모두 일어나 '각기 등잔 등불이 꺼져가니 기름을 좀 나누어주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이 대답했다. '안 되오. 그러면 우리에게나 그대들에게나 다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가게에 가서 쓸 만큼 사오는 것이 좋겠소.' 미련한 처녀들이 와서 '주여, 주여,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고 청했으나 주인은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 시간을 알지 못한다'(마태 25, 1~13).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들어왔던 얘기들이나 앞으로 보게 될 얘기들과 비교해 보면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이것은 마태오에만 전해진 것인데, 마태오는 본래 간단한 이야기에 없던 부분들을 첨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르코나 루가의 것과 비교해 보면 그런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결혼식과 관계된 것인데 유다 사회에서 결혼식은 가장 기쁜 날입니다. 이날은 결혼하는 집만이 아니라 동리 전체의 잔칫날이 됩니다. 그래서 이날만은 종교행사도 면제되고 라삐들이 성경연구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날은 여섯 살에서 예순 살까지의 사람들이 이 혼인식에 참석해 먹고 마시고 춤을 춥니다. 사람들은 신랑이 올 때까지 동리에서 여러 처녀들을 뽑아서 신부의 시중을 들며 신랑맞이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처녀 열 명이 저마다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이하려고 나갔다는 말로 시작되는데, 끝까지 신부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바로 저들이 신부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옛 풍속에서도 그렇지만 아무리 한 남자가 여러 아내를 거느리던 시대라고 해도 한 번에 열 처녀와 한 고장에서 결혼할 수는 없습니다.

시집가는 처녀는 자기 집에서 다소곳이 기다립니다. 신랑이 오면 고개도 못 들고 그의 뜻에 따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이 얘기에서는 열 처녀가 신랑을 맞으러 등불을 들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자가 가부장제도 아래서 천시받는다고 해도 결혼식 때만은 여왕과 같은 대접을 받습니다. 우리나라도 비록 상민(常民)이라 해도 그날만은 왕과 왕후의 의복과 비슷한 혼례복을 차려 입고 귀한 대접을 받는데 유다 사회에서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화장을 하고 신부옷을 입고 머리를 장식하는 데서부터 신랑을 맞이할 모든 준비는 동리에서 뽑힌 들러리 처녀들이 다 해주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는 신부들이 몸소 등불의 기름을 장만하고 그것을 들고 신랑을 맞이하러 나갔다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사실은 저들이 신부 될 처녀들이 아니고 신부의 들러리로 신부 대신 환영의 뜻을 전하러 간 것입니다.

또 아무리 유다 문헌을 뒤져보거나 유다 풍속을 보아도 밤중에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어떤 과부를 납치해 가거나 전쟁 따위의 위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으나, 결혼식은 동네 사람들이 증인처럼 둘러싼 가운데서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잔치를 베풀기 위해서라도 낮에 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유다인들은 결혼식 후에 실컷 먹고 마시며 춤을 춥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처녀들이 한집에 있다가 경쟁이라도 하듯이 밤중에야 오는 신랑을 앞다투어 마중 나가고 저희들끼리 다툴 뿐, 부모도 등장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종 하나도 나타나지 않으며, 동네 사람 하나도 언급되지 않은 것이 마치 도둑결혼이라도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여기서 등잔이라고 번역한 것은 나무꼬챙이에 꿰어 기름을 묻혀 길을 밝히는 횃불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한 15분만 지나면 말라버리므로 기름 담은 그릇을 함께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랑을 마중 나가는 처녀들이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은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기름이 없는 것을 뒤늦게 안 다섯 처녀들이 기름을 가진 처녀들에게 그것을 나누어달라고 하거나 또 기름을 가진 처녀들이 그것을 거절하고 이제라도 거리에 가서 사오면 될 것이 아니냐는 말도 가당치 않습니다. 그 밤중에 어디에서 기름을 살 수 있단 말입니까!

또 기름 없는 처녀들이 기름을 구하러 갔다가 뒤늦게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문이 잠겨 있었다는 것도 사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잔칫집은 거지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열려 있게 마련이요, 그리고 거절당한 처녀들이 "주여, 주여, 문을 열어주십시오"라고 한 그 '주'가 그 집주인을 부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 잔치의 주인공인 신랑을 의미하는지도 아리송합니다. 신랑을 의미한다고 해서 그 신랑이 문을 닫고 여는 권리를 행사한다는 것도 부자연스럽습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예수의 얘기처럼 구체적인 현실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경고를 하기 위해 만들어낸 얘기로 보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인들에게 누군가가 예수의 뜻을 살리려 그의 권위를 빌려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으리라는 연구가들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됩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이미 문이 닫혀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그 점에서 위의 얘기와 꼭 같으며 문 닫힌 후에 온 사람들이 아무리 문을 두드리며 애걸해도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라고 하며 단호하게 거절한 점에서 똑같은 형식입니다.

예수의 민중들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더불어 예수의 재림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곧 도래하리라던 하느님 나라의 징조는 보이지 않고 예수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올 징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활경험 직후 다락방에 모였을 때만 해도 이제 그이가 곧 다시 오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세상은 그와 정반대로 날로 험악해만 갔습니다. 로마제국이나 유다교 지도층의 박해는 날이 갈수록 더해가고 몇 안 되는 교회들마저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밥술이나 먹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 사이에, 예수를 가까이 모셨던 사람들과 그를 직접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과의 간격이 생기기 시작했고, 본토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그 밖에 로마 점령지 안의 이방 땅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 사이에도 예수에 대한 견해가 각각 달랐습니다. 심지어는 베드로파니 야고보파니 바울로파니 아폴로파니 하는 식으로 지도자를 중심으로 그룹을 형성해서 서로 반목하는 현상까지 벌어졌습니다. 마침내 순교당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예수의 민중들이 로마에 대한 태도가 불투명한 데 불만을 가진 젤롯당을 위시해 비판의 소리가 드높아졌습니다.

이런 마당이니 그리스도인들은 동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들은 기다림에 지쳤고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도 속출했습니다. 마침내 젤롯당이 주동한 반로마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유다인의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서 로마는 에집트에 주둔한 대부대를 팔레스틴에 급송해서 살육과 방화를 시작했습니다. 그 싸움은 6년이나 끌며 진행됐습니다. 글자 그대로 유다 사회는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로마에 저항하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지도층은 교인들을 이끌고 피란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 갈수록 회의가 가중됐을 것이 뻔합니다. 마침내 주후 70년에 로마군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예루살렘 성전은 깡그리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하느님 나라는 고사하고 예수 재림의 징조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예수가 재림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분격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신랑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알레고리입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는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합니다. 그중의 반은 그래도 언젠가는 그가 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항상 대비하고 있는데 반해 나머지 반은 더 기다리지 않고 회의 정도가 아니라 체념의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와 슬기로운 다섯 처녀, 기름을 언제나 준비해 두고 그가 올 날을 고대하는 처녀들과 이미 체념했기 때문에 긴장을 풀어버린 게으른 처녀들은 바로 교회 안에 둘로 나뉜 사람들의 두 가지 경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비록 신랑이 와야 할 낮시간을 넘기고 밤이 되었으나 그 신랑은 밤중에라도 꼭 오고야 말 터인데, 그때 가서 아무 준비 없던 사람이 갑자기 그를 영접하려고 하면 이미 때가 늦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 이 이야기의 목적입니다.


List of Articles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2) 잃은 돈 찾은 여인
    3) 돌아온 아들의 아버지
3. 가치의 전도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4) 말만 하는 자와 실천하는 자
    5) 자신을 철저히 비운(空) 자
4. 집요한 투쟁(간구)
    1)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2) 닫힌 문
    3) 빚진 자의 엉뚱한 마무리
    4) 한 과부의 투쟁
    5) 친구를 위한 투쟁
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2) 그물 안에 든 고기
    3) 심판과 맡은 분깃
    4) 심판과 대비
    5) 너무도 어리석은 부자
    6) 한 부자와 거지
    7) 뜻밖의 심판의 기준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를 움직인 여인들
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민중현실에 바탕을 둔 신학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한국 교회의 재래의 성서이해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전통적 성서해석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성서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할 뿐
    민중신학이 본 성서의 맥
민중 예수
    극복되어야 할 서구 신학의 그리스도론
    고난의 종 그리스도
    구원은 민중을 통해서 온다
    예수는 오늘의 민중현장에 계신다
    제도적 교회는 민중현장에 계신 그리스도를 포기
    민중사건은 예수사건이다
    ‘구원’은 물질적 언어로 표현되어야
    성령의 역할은 인류해방에 있다
민중의 하느님
    신이 죽었다?
    서구 신학의 신관(神觀)
    동양인의 신관
    성서는 신을 어떻게 말하나
    해방의 신
    성전종교의 포로가 된 신
    예수 이후의 하느님
    민중의 하느님
    하느님 사건의 전거
민중의 공동체 一 교회
    교회의 주인공은 민중이다
    예수공동체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였다
    생활공동체에서 예배공동체로 전락
    교회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민중신학이 꿈꾸는 교회상
    제도적 교회론을 넘어서자
    해방공동체 구현과 교회의 계층성 극복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기존의 죄이해는 교권을 강화시킨다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바울로는?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위로
텍스트를 수정한 후 아래 [수정요청] 버튼을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