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집

전집은 OCR 스캔 잡업으로 진행되어 오탈자가 있습니다.
오탈자를 발견하면 다음과 같이 등록해 주시면 관리자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 수정 요청을 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2. 본문을 읽는 중에 오탈자가 있는 곳을 발견하면 앞뒤 텍스트와 함께 마우스로 선택합니다.
3. 그 상태에서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하여 나타나는 창에서 수정 후 [수정요청]을 클릭합니다.
4. 각주의 경우에는 각주 번호를 마우스오버하여 나타난 창을 클릭하면 수정요청 창이 열립니다.

※ 컴퓨터 브라우저에서만 가능합니다.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하늘나라는 마치 누룩과 같다. 한 여인이 그것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 속에 넣었더니 마침내 온 덩이를 부풀게 했다(마태 13, 33; 루가 13, 21~22).

이 이야기는 겨자씨 이야기와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그런 탓인지 마태오나 루가복음에는 이것을 나란히 싣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아주 짧은 것도 비슷하거니와 그 내용도 유사합니다. 그런데 맨 처음에 쓰여진 마르코복음에는 이 이야기가 빠져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르코시대에는 그런 이야기가 전승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마르코는 워낙 예수의 이야기보다 예수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했기 때문에 비슷한 이야기 중에 하나만 선택한 것일까요? 여기서 마르코복음의 성격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르코는 마태오나 루가와 비교할 때 양으로 보아 우선 반(半) 조금 못 미치는 작은 책입니다. 그중에 다른 복음서와 비교해서도 눈에 띄게 빠져 있는 것은 예수의 이야기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보아가는 비유만 해도 전체 40개 중에서 마르코에는 단지 6개만 들어 있습니다.

이것과 더불어 눈에 띄는 것은 마르코에서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사건과 사건 사이를 잇는 접속사를 '그리고', '그리고 곧' 등 아주 간단한 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아니면 저 앞에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을 빨리 보기 위해서 발걸음을 재촉하는 양, 마르코는 확실히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보다는 예수에 의해서 일어나는 사건에 더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예수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마태오나 루가도 대체로 마르코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에 예수의 말들 그리고 예수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수록하고 있으며 마르코에는 없는 같은 예수의 이야기가 많이 발견됩니다. 즉 마태오와 루가에만 함께 실린 예수의 이야기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편의상 누군가 이름지은 그대로 'Q자료'라고 부릅니다.

바로 이 이야기도 Q자료에 속한 것으로 마르코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이 이야기로 눈을 돌립시다.

마태오와 루가를 비교하면 이 둘은 내용상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가령 루가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라고 말하고 마태오는 '하늘나라'로 되어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내용상의 차이는 아닙니다. 마태오는 유다교의 관습을 따라 '하느님'을 직접 부르는 것을 피합니다. 그것은 존경의 표시로서 우리나라에서도 아들이 아버지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가령 구약에서 '하느님'이라고 씌어진 것도 유다 사람들은 '주님'이라는 뜻인 '아도나이'(adonai)라고 읽었습니다. 이렇듯 마태오도 '하느님'(theos)이라는 말 대신에 '하늘'이란 말을 쓴 것뿐입니다.

이 이야기는 음식을 만드는 데 쓰는 누룩에 관한 것입니다. 곡식의 낟알이나 누룩은 차이가 있으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둘 다 농사와 관련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둘은 '농사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같습니다. 그런데 '씨앗을 뿌린다'라고 하면 얼른 밭에서 일하는 남자 농사꾼을 생각하게 되지만 떡을 만드는 '누룩'이라고 하면 집 안에서 일하는 여자가 연상됩니다.

이렇게 보면 곡식과 사람 관계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묘하게 구분됩니다. 밭을 갈고 씨를 심고 가꾸어 마침내 열매가 맺으면 거두어들여서 낟알의 껍질을 벗기는 일까지가 남자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사람의 생명에 직접 필요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과정은 여자가 담당합니다. 우리의 입에 직접 들어갈 음식은 여자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잠깐 생각해 볼 일입니다.

갓난아기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도 남자들이 아니고 여자들입니다. 갓난아기에게 자기 몸의 일부인 젖꼭지를 물린 여자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젖'이 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직접 자기의 피를 먹여 생명을 기르는 여자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이렇게 보면 떡가루 반죽을 만드는 여자의 손끝에 생명이 달려 있다 하겠습니다. 둥지에 있는 갓난 새끼들의 한껏 벌린 입에 어미새가 부리를 맞대 먹이를 주듯이!

아무튼 이 이야기의 다음 마디가 나오기 전에 우리는 벌써 한 여자를 연상합니다. 이 여자가 밀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집어넣었습니다. '가루 서 말'이라는 것은 창세기 18장 6절에서도 보듯이 '필요한 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가루 서 말'은 그 여자가 책임진 식구들이 충분히 먹을 만한 양을 표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겨자씨의 이야기로 미루어보거나 또 이 이야기의 내용으로 보아서 '누룩'이라는 말에 '아주 적은' 또는 '한줌의' 누룩이라는 형용어가 붙으면 그 본뜻이 더 실감날 것입니다.

'누룩'은 유다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누룩은 그 성격상 영향력이 아주 널리,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빨리 퍼지는 상징으로 사용했습니다. 물론 그 영향력은 대상에 따라 악한 영향력일 수도 있고 선한 영향력일 수도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신약성서에는 누룩을 악한 세력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쓴 것이 많습니다. 고린토전서 5장 6~8절 사이에 바울로는 '누룩'으로 고린토교회 안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누룩 자체도 변질되면 사람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바울로는 변하지 않은 '새 누룩'과 변해버린 '낡은 누룩'을 구별합니다. 낡은 누룩은 악한 영향을 끼쳐 전체를 더럽힐 것이므로 빨리 없애버리고 새 누룩으로 반죽하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복음서에서는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마태 16, 6) 또는 "바리사이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마르 8, 15)라는 말도 전해읍니다. 이렇듯 '누룩'은 하나같이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쓰였고 여기서는 바리사이파나 헤로데왕가 또는 사두가이파는 이미 낡은 것으로 변질됐기 때문에 악한 영향을 미치므로 그런 것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오염되고 만다는 뜻으로 썼습니다. 그러나 지금 말하는 누룩 이야기에서는 누룩이 악하거나 선하다는 의미는 반영되지 않고 단지 그 영향력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가 한줌의 누룩을 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고 반죽을 했더니 그것이 가루 서 말 전체에 퍼져서 부풀게 했습니다. 보통 누룩은 떡가루를 몇 배로 부풀게 합니다. 가히 마술과 같은 위력을 가진 셈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말 새번역에 '부풀다'는 말 대신에 사용된 "가루 전체에 누룩 기운이 퍼졌다"는 표현입니다. 원문에는 '기운'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기운의 '기'(氣)라는 말을 자명하게 알고 쓰고 있으나 현대 서양사람들은 이에 해당되는 말을 쓰지 않을 뿐더러 이 같은 개념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고대 히브리어나 희랍어에는 우리가 쓰는 '기'라는 말뜻과 꼭 같은 것이 있습니다. '기'에는 '숨', '바람', '힘' 등의 뜻이 있는데, 구약에서 "하느님이 사람의 모양을 흙으로 밪고 숨을 불어넣으니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 됐다"는 그 '숨'이 '기'와 똑같은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에제키엘서에서는 환상으로 나타난 해골들에게 하느님의 '숨'을 불어넣으니까 핏줄이 재생되고, 살이 생기고, 마침내 산 인간이 되어 군인 같은 대열을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숨'이 바로 이 '기'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의 십자가처형 이후에 실의에 빠져 죽은 듯이 지하에 숨었던 예수의 민중들에게 바람과 같은 것이 일고 불길 같은 성령(pneuma)이 임했다고 했는데, 그 '성령'이라는 희랍 말이 구약의 '숨'이나 우리가 말하는 '기'와 똑같은 뜻을 담은 단어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로서는 단순히 '부풀었다'는 표현보다 '기운이 퍼졌다'는 표현이 더욱 실감나는 적절한 표현입니다.

예수는 남자입니다. 그는 농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상적인 눈으로 보아서는 그냥 단순하게 넘겨버리기 쉬운 자명함 때문에 오히려 그 안에 숨겨진 사실을 적발해 내는 것을 보았는데, 이 이야기에서는 일을 하고 있는 한 여자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자상한 남자입니까! 그가 보고 있는 여자는 아마 농사짓는 부인이겠지요. 한 여자가 쭈그리고 앉아서 나무그릇에 밀가루를 붓고, 물을 알맞게 붓고, 한줌의 누룩을 섞어 반죽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면서 어린 아이에게 젖을 빨리는 어머니를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는 종이나 다름없는 부엌데기가 아니라 식구들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위대한 존재로서 이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이름없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의 일상적인 행위를 그렇게 섬세하게 주목한 예가 이것만은 아닙니다.

그는 여자의 손끝에서 반죽되는 그 물체에 관심을 옮깁니다. 누룩을 넣은 가루는 잠깐 후에 숨을 불어넣은 흙덩이가 꿈틀거리듯, 살아 움직이듯 부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줌의 누룩이 그 많은 가루 반죽에 고루고루 퍼져나간 것입니다. 이것은 매일 밀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는 일이어서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일쑤지만 예수는 그것을 보고 마력과 같은 성장의 비밀을 발견했고, 그 충격을 마음에 간직했을 것입니다. 일상의 껍질을 뚫고 거기에 잠복된 '기'를 발견하면서 받은 충격, 예수는 바로 그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이야기는 너무도 평범한 사실을 그대로 전할 따름입니다. 그 자체로는 신비함도 새삼스럽게 충격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궁극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러한 일상적인 일 속에서도 번갯불같이 스쳐가는 어떤 진실을 예민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는 반죽을 하는 한 여자에게서 하느님 나라의 비밀을 본 것입니다. 땅에 심은 겨자씨는 사람의 눈에 보일 수 있게 바깥으로 싹을 틔워나갑니다. 그러나 누룩은 가루 속에 숨어들어가서 조용히 보이지 않게 그 전체를 변화시킵니다. 여자라는 존재처럼!

이것은 조용한 혁명입니다! 소리내고 시위하는 그런 혁명이 아닙니다. 조용히 지하에서 흐르는 생수처럼 보이지 않는 데서 퍼져나가 전체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그 놀라운 사건!

예수는 이 이야기로 하느님 나라의 조용한 혁명을 알리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는 민중과 더불어 변질되어 독(毒)성을 뿜어내어 전체를 오염시킬 뿐아니라 죽음으로 몰고 가는 현장에서 이제 새로운 누룩이 가루 전체에게 '기'를 뻗치듯이 하느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생명의 운동이 급속도로 퍼져나가서 썩은 세력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오염되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해방하고 살려내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2) 잃은 돈 찾은 여인
    3) 돌아온 아들의 아버지
3. 가치의 전도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4) 말만 하는 자와 실천하는 자
    5) 자신을 철저히 비운(空) 자
4. 집요한 투쟁(간구)
    1)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2) 닫힌 문
    3) 빚진 자의 엉뚱한 마무리
    4) 한 과부의 투쟁
    5) 친구를 위한 투쟁
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2) 그물 안에 든 고기
    3) 심판과 맡은 분깃
    4) 심판과 대비
    5) 너무도 어리석은 부자
    6) 한 부자와 거지
    7) 뜻밖의 심판의 기준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를 움직인 여인들
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민중현실에 바탕을 둔 신학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한국 교회의 재래의 성서이해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전통적 성서해석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성서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할 뿐
    민중신학이 본 성서의 맥
민중 예수
    극복되어야 할 서구 신학의 그리스도론
    고난의 종 그리스도
    구원은 민중을 통해서 온다
    예수는 오늘의 민중현장에 계신다
    제도적 교회는 민중현장에 계신 그리스도를 포기
    민중사건은 예수사건이다
    ‘구원’은 물질적 언어로 표현되어야
    성령의 역할은 인류해방에 있다
민중의 하느님
    신이 죽었다?
    서구 신학의 신관(神觀)
    동양인의 신관
    성서는 신을 어떻게 말하나
    해방의 신
    성전종교의 포로가 된 신
    예수 이후의 하느님
    민중의 하느님
    하느님 사건의 전거
민중의 공동체 一 교회
    교회의 주인공은 민중이다
    예수공동체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였다
    생활공동체에서 예배공동체로 전락
    교회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민중신학이 꿈꾸는 교회상
    제도적 교회론을 넘어서자
    해방공동체 구현과 교회의 계층성 극복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기존의 죄이해는 교권을 강화시킨다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바울로는?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위로
텍스트를 수정한 후 아래 [수정요청] 버튼을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