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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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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엄격한 의미에서 예수의 공생애는 바로 세례자 요한의 체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이 체포된 이유를 아는 것은 예수의 공생애 출발의 동기를 아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마르코복음은 갈릴래아의 봉건주 안티파스(Antipas)가 이복형제의 아내를 가로챈 불륜을 책망한 탓으로 세례자 요한을 체포했다가 본의 아니게 그를 처형할 수밖에 없었다는 기록을 전한다(6, 14~29). 그러면 그것은 안티파스의 개인적 감정 때문이었나? 성서 외의 자료로서 요세푸스의 기록이 있다. 그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은 반로마선동의 정치범으로 처형되었다고 하며, 그는 "군중을 귀신처럼 현혹하는 정열적 능력을 가진 자"라고 덧붙인다. 한걸음 나아가서 그는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운동을 일으킬까 염려하여 사전 예방으로 체포한 것이라고 한다.

그에 의하면, 안티파스는 단순히 자신의 개인 감정 때문에 세례자 요한을 희생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로마에 대한 위험인물로 체포함으로써 로마의 신임을 두텁게 하자는 속셈이었다고 한다. 공관서에도 요세푸스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람들 이 그를 "귀신이 들렸다"(마태 11, 18/ Q)고 했다는 것과 민중이 그를 참 예언자로 존중하기 때문에 집권자들이 민중이 두려워 그를 처치하는 문제로 고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마르 11, 32). 이쯤 되면 그는 정치범으로 체포되었다고 주장할 충분한 근거가 있다. 하기는 집권자를 정면으로 공격 비판하는 것은 그 이유야 여하간에 정치적 행위로 간주되는 것이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상례다.

그가 당시의 민중에게 다시 온 엘리야라는 비어(輩語)의 대상이 된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주목할 일이다. 왜 그를 다시 살아난 엘리야(마르 6, 14~15)라고 했을까? 이미 말라기(3, 23~24)에 엘리야의 재림을 예언하고 있는데, 그 목적은 망할 운명에 처한 이스라엘을 최후 순간에 건지기 위해서이다. 그것을 유형론으로 보면 다른 의미가 있다. 엘리야는 왕권과 정면으로 대결한 전형적 예언자이며 그런 뜻에서 정치적 예언자이다. 아합왕이 "그대가 이스라엘을 망치는 장본인이냐?"라고 묻자 그는 "내가 이스라엘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왕 자신과 왕의 가문이다"(왕상 18, 18)라고 맞선 일이라든지, 아합왕이 왕권을 악용하여 자기 궁전 주변의 포도밭을 강탈하자 이에 항거하는 민(民)을 처단해버렸을 때 그 앞에 나타난 엘리야가 "네가 사람을 죽이고 그의 땅마저 빼앗는구나. 나봇(학살당한 자)의 피를 핥던 개들이 같은 자리에서 네 피도 핥으리라"(왕상 21, 19)고 한 일갈은 목숨을 내어놓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항거이다. 이것은 엘리야의 기본자세로서 권력자의 불의를 용납하지 못하며 목숨을 걸고 눌린 자의 편에 선 예언자의 모습이다. 이러한 전설에 젖은 당시의 민중이 세례자 요한을 다시 살아난 엘리야라고 한 '비어'는 위의 판단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세례자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사실과 예수의 공생애의 출발을 연관시킬 때 곧 연상되는 것은 예수가 어떤 정치적 상황 속에 자진해서 들어갔느냐 하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이 체포된 때를 그의 공생애의 계기로 삼았다는 것은 정치적 대결, 아니면 적어도 정치적 박해를 표출한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기를 주저할 필요가 없는 것은, 첫째 예수가 바로 세례자 요한을 체포한 안티파스의 통치구역에 들어갔다는 것(후에 다시 언급), 둘째 민중이 예수를 세례자 요한에 적용하던 표상과 같이 다시 살아난 엘리야(마르 6, 158, 28)라고 한 점, 끝으로 안티파스가 예수를 다시 살아난 세례자 요한이라고(마르 6, 16) 했다는 것 등이다. 또 비록 한 낱말이 주는 암시이기는 하나 세례자 요한이 잡혔다는 낱말(paradidoni)이 예수가 체포될 때에도 똑같이 씌어졌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면 예수는 세례자 요한의 길을 따랐으며 제자가 스승이 가던 길을 이어받듯이 그의 배턴을 받고 그의 시체를 넘어 전진했다는 뜻인가? 그렇지는 않다. 예수와 세례자 요한 사이에 유사점이 있는 반면에 차이점도 그만큼 크다. 무엇보다 예수 자신의 말씀을 들으면 그 기본적 차이와 관계를 짐작하는 데 기준이 될 것이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 사람들이 '그는 귀신이 들렸다'고 말하고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기도 하니 '보라! 저 사람은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자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한다"(루가 7, 33~34).

이상의 언급은 세론을 반영한 것인데, 그것을 분류한다면 다음 몇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세례자 요한은 금욕주의자인 데 대해서 예수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세례자 요한이 일반인들과 거리를 두고 배타적 공동체를 구성하고 광야에서 산 데 대해(그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것[마태 11, 2/Q; 마르 6, 29;요한 1, 35~37], 그리고 그 제자들이 함께 주마다 금식하며 또 기도문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등으로 보아) 예수는 비록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으나 개방적으로 민중 속에서 그들과 더불어 살았다는 것, 세례자 요한은 금욕주의자였는데 예수는 오히려 민중과 삶을 나누었다는 것, 그리고 예수에 대한 비판에서 미루어 볼 때 세례자 요한은 에쎄네파처럼 정결법을 소중히 함으로써 죄인들과 부정한 것을 멀리한 데 대해서 예수는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유다 사회의 계급적 담을 깨고 저들도 똑같은 형제로 대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외에도 세례자 요한과 예수는 둘 다 종말사상을 갖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으나, 세례자 요한은 도덕적 기준에서(루가 3, 16 이하) 심판에 역점을 둔 데 대해(루가 3, 7 이하) 예수는 그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며 그것의 축복과 구원의 의미에 역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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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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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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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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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심판과 맡은 분깃
    4) 심판과 대비
    5) 너무도 어리석은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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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뜻밖의 심판의 기준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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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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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권
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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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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