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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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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자 선택

예수는 이러한 민중 속에서 열두 제자를 뽑았으며 저들이 예수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길을 터 놓았다. 예수는 초기에는 민중 전반과 더불어 살다가 후기에는 이 제자들에게 집중했다. 마치 그들에게 그의 사명의 비밀을 계승하려는 듯이! 저들은 예수운동의 핵으로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저들의 사회적 신분은 후에 수제자로 승격된 베드로를 위시한 네 명이 어부였다는 것과, 그리고 한 사람은 젤롯당에 속했던 사람이고 또 하나는 세리라는 전력(前歷)을 가졌다는 것 외에는 알 길이 없으나, 그중에서 세 어부(베드로, 야고보, 요한)가 주역임을 보아 저들의 지적 수준이나 사회성분을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하류계층의 민중들이다. 놀라운 것은,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도라고 불린 예수의 제자의 사회신분을 미화하는 것은 고사하고 저들이 천한 계층의 출신이며 무식했다는 사실이나 실수를 거듭했다는 사실을 은폐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특히 영웅숭배에 젖은 헬레니즘 영역에서 볼 때 중요한 특색이다. 저들은 민중운동가이며 자신들이 민중임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예수가 왜 12라는 수를 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12라면 이스라엘 12지파를 표시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민족주의적 색채인데, 그것은 예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메시아'라는 마태오복음적 견해가 예수에게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 중에는 열두 제자가 역사적인 수냐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그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 외에도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록 열두 제자라고 하나 실제로는 언제나 세 제자만 예수와 동행한 것으로 부각되고 나머지 제자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필립보, 토마 그리고 가리옷 사람 유다는 무대의 엑스트라 격으로 간간이 등장할 뿐, 그저 12라는 수 안에서 무명으로 별 역할이 없다. 이와 병행해서 또 하나 주목을 끄는 것은 사도행전의 기록이다. 가리 옷 사람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고 자살한 후 제자들이 열둘이라는 수를 채우기 위해서 마티이라는 사람을 투표로 선정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처음 그리스도교회가 12라는 숫자에 큰 미련을 가진 증거이다. 끝으로 지적되는 것은 열두 제자라고는 하나 복음서마다 그 이름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중 이름 때문이라고 강변하는 이들도 있으나 그것은 억지다.

이상의 이유들을 들어서 예수는 열두 제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수는 후기에 채워진 것이라는 주장들을 한다. 그러나 그런 이유들도 반드시 12사도가 예수가 선정한 제자가 아니라는 결정적 증거는 되지 못한다. 12라는 수가 우연일 수도 있으며, 세 제자가 주로 등장하는 것은 오히려 후대에 그들의 위치가 상승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고, 열두 제자의 이름에 차이가 있는 것은 후기에 사도권에 대한 견해에 혼선이 생겼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요는 예수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는데, 그것이 얼마만큼이나 확고한 규율로 결속된 집단이냐가 문제다. 적어도 세례자 요한파나 에쎄네파와 비교해볼 때 예수의 제자 집단을 그러한 계율적 훈련체라고 볼 수는 없다. 당시에 제자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엄격한 규율이 있고 또 밀폐된 특수영역에서 훈련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일정한 곳에 정착해서 훈련받은 흔적은 없고 공개적으로 예수를 따라다녔다. 그들에게만 특별히 요구된 신성 불가침의 계율도 볼 수 없다. 금욕주의도 고행주의도 그리고 무엇보다 율법 전체나 그중의 어느 부분을 행동강령으로 강요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행동은 법 질서에서 볼 때 너무 자유스러워서 규탄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안식일법 준수와 그때의 규정에 따른 정결법 중 식사 직전에 손 씻는 법 등은 바리사이파를 위시해서 이른바 경건한 자들은 모두 당연한 의무로 알았는데 예수의 제자들은 그런 것을 안중에 두지 않아 비판의 대상이 되자 예수는 오히려 그들을 변호하기까지 한다(마르 2, 237, 2 이하). 또 일주에 한 번 이상의 금식은 경건한 생활의 중요한 의무로 지켜왔으며 바리사이파는 물론 요한의 제자들도 그래 왔다(마르 2, 18). 그러나 예수는 그런 비판을 단호히 거부한 것으로 보아 금식법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보인다.

단지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문은 있었다. 당시 여러 운동체들은 각기 고유의 기도문을 갖고 있었는데 세례자 요한도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준 것이다. 그러나 이 기도문이 반드시 그 제자들한테만 주어졌다는 흔적은 볼 수 없다. 또 루가에 따르면, 예수가 처음부터 기도문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요청하므로 가르친 것이라고 서술한 것은(루가 11, 1) 그것이 페쇄성을 지닌 기도문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려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예수의 제자 훈련은 일단 실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마르코 편자는 그렇게 폭로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저들은 계속 그들의 무지만 드러내어 스승의 책망을 들었고, 스승의 뜻과 그의 방향이 어디로 무엇을 위해 가는지도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수가 예루살렘에 죽으러 가는 도상에서도 그들은 자기들의 지위 다툼만했고, 게쎄마니에서 최후의 고투를 하는 스승을 두고 잠에 빠져들었고, 스승이 체포되니까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열두 제자라는 적은 수에서 한 사람의 배신으로 스승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이다. 위와 같은 예를 살펴보면 그런 결론을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는 것이다. 예수는 확실히 제자 훈련에 실패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못난 것들'에 의해서 그의 뜻이 계승되어 가을 풀의 불처럼 세계로 퍼져나간 것을 고려하면, 성급한 결론은 내릴 수 없을 것이다.


List of Articles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2) 잃은 돈 찾은 여인
    3) 돌아온 아들의 아버지
3. 가치의 전도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4) 말만 하는 자와 실천하는 자
    5) 자신을 철저히 비운(空) 자
4. 집요한 투쟁(간구)
    1)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2) 닫힌 문
    3) 빚진 자의 엉뚱한 마무리
    4) 한 과부의 투쟁
    5) 친구를 위한 투쟁
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2) 그물 안에 든 고기
    3) 심판과 맡은 분깃
    4) 심판과 대비
    5) 너무도 어리석은 부자
    6) 한 부자와 거지
    7) 뜻밖의 심판의 기준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를 움직인 여인들
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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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민중현실에 바탕을 둔 신학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한국 교회의 재래의 성서이해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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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는 오늘의 민중현장에 계신다
    제도적 교회는 민중현장에 계신 그리스도를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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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 죽었다?
    서구 신학의 신관(神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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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의 하느님
    하느님 사건의 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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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공동체에서 예배공동체로 전락
    교회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민중신학이 꿈꾸는 교회상
    제도적 교회론을 넘어서자
    해방공동체 구현과 교회의 계층성 극복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기존의 죄이해는 교권을 강화시킨다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바울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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