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두 가지 대조적인 예수의 행태가 눈에 띈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과 예루살렘 성전 숙청에 관한 서술이 그것이다.
예루살렘 입성은 어느 모로 보나 평화의 상징이다. 예수가 나귀를 타고 입성한 것은 역사적 사실인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어떤 이들은, 이것은 즈가리야의 기록대로(9, 9) 왕임을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가 왕이라는 것을 증거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의 서술법이라고 본다. 그런데 예언자들 중에는 세상이 말을 듣지 않는 경우에 상징적 행동으로 관심을 끌어 꼭 알려야 할 내용을 전달한 예가 많다. 예레미야가 그 나라의 위기를 아무리 설교해도 지배층이 전혀 듣지 않으니까 제 목에 멍에를 걸고 거리를 나다녔고(예레 27, 1~11ᆞ28, 10 이하), 에제키엘은 계속해서 해괴한 행동으로 제 민족에게 위기를 경고 했다(에제 4, 5장).
예수 또한 예언자의 전통을 이었다면 예수가 사람들에게 알릴 뜻을 행동으로 하지 않았을 이유는 없다. 그러면 그는 자신이 왕이라는 뜻으로 나귀를 탔을까? 당시 먼 길에서 나귀를 타고 오는 것은 그리 이례적(異例的)인 일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판단할 근거는 없다. 설령 그가 왕이라는 시위로 나귀를 타고 입성했다고 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은 평화를 상징하는 것이지 도전적인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왕들도 평화시에는 나귀를 타고 다니는 일이 흔했는데다 전쟁시에는 반드시 말을 탔기 때문이다. 더욱이 복음서 편자는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어린 나귀"(마르 11, 2)라고 서술하여 도전적인 뜻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분명히 위험을 알고도 도도하게, 공개적으로 나귀를 타고 입성했다는 것은 당당한 대결의 자세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적어도 복음서 편자들은 한결같이 그의 입성이 민중의 대대적인 환호 속에 이루어졌으며, 그를 평화의 왕처럼 환영했다고 서술한다. 이에 예루살렘 세력을 상징하는 바리사이파가 반감을 보여 예수에게 도전하면서 그런 환영을 묵인하는 예수에게 항의했으며, 예수는 이에 맞서 "사람들이 잠잠하면 둘들이 소리지를 것이다"라고 응수한 기록도 있다(루가 19, 39~40). 어쩌면 요한복음이 전한 대로 이미 예수에게 체포령이 내려진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요한 11, 56). 이러한 긴장된 상황에서 적어도 수백만의 군중이 모이는 유월절의 도시로 당당하게 들어간 것은 주목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당신의 반(탈)예루살렘파들의 일차 공격목표가 예루살렘의 더러워진 어용 세력이었다는 것을 상기할 때, 비록 그것이 무력적 돌입이 아니더라도 예루살렘 세력을 당황하게 하는 행태였음에는 틀림없다.
그러한 예수가 입성해서 성전에 들어가 상인들을 몰아내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부를 것이다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렸다"(마르 11, 17)고 책망했다. 이 마지막 말은 예루살렘 어용세력에게 비수를 꽂은 것과 다름없으며, 특히 그 내용이 젤롯당을 위시해서 반예루살렘파들의 분노와 비판의 소리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기에 심상하게 넘길 수 없는 것이다. 마르코 편자는 이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를 없앨 방도를 찾고 있었다"(11, 18)고 하는데, 예수의 책망이 사실이라면 틀림없는 반응을 보도한 것이리라.
사실상 성전 뜰에서 짐승을 사고 팔며 돈을 바꾼 행위는 대제사장을 위시한 성전 책임자들의 짓이다. 그들은 수입을 위해서 외국 돈을 부정하다는 이유로 환전하게 함으로써 폭리를 거두고 또 짐승은 정결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사실상 희생제물이 될 짐승을 독점 판매하여 이득을 취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장사를 금하면 성전을 매개로 한 수입에 치명타를 입히는 것이다.
요세푸스는, 네로시대 어느 해인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몰려오는 유다인의 수를 보고하도록 했는데 그 임무를 맡은 제사장들이 제물로 256,500마리의 양이 팔렸다고 보고 했다고 한다. 이것은 사람 수가 하도 많아서 그때로서는 셀 수 없으므로 이런 계산법을 취했던 것이다. 그 당시 일반율로는 평균 10명이 양 한 마리를 바쳤다고 하므로 그 수는 엄청난 것이다. 또한 아주 가난한 층은 비둘기를 바쳤다. 그 수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저들이 판매권을 총괄한 증거가 아닐 수 없으며 그 수익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또 그들이 얼마나 폭리를 취했는가는 예수의 그 다음 말씀 "강도의 소굴로 만든다"에서 폭로되고 있다. 저들은 종교(정권)를 독점하고 민중의 호주머니를 여러 방법으로 강탈한 셈이다. 이런 현장을 묵과할 예수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혼자서는 그 같은 성전 숙청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의 추종자들과 더불어 행동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는 성전지기들과 무력충돌을 하려 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예수가 폭력행사를 계획했다고 한다면, 산상수훈을 위시한 많은 예수의 말씀을 버려야 한다. 그 말씀들을 귀중한 예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한, 계획적 폭력행위를 했다고는 볼 수 없다. 우리는 복음서가 전하는 것 이상의 다른 자료가 없기 때문에 세밀한 진상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으나, 예수의 행태와 비판은 준엄했으며, 복음서에서 예수가 체포될 수밖에 없는 직접적인 단서가 있다면 바로 이 행동이다.
그러나 예수는 예루살렘 시내에서는 여전히 유유히 활보했다. 그것은 적대자들이 민중을 두려워하여 그를 뜻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마르 11, 18), 이 역시 근거가 있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