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집

전집은 OCR 스캔 잡업으로 진행되어 오탈자가 있습니다.
오탈자를 발견하면 다음과 같이 등록해 주시면 관리자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 수정 요청을 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2. 본문을 읽는 중에 오탈자가 있는 곳을 발견하면 앞뒤 텍스트와 함께 마우스로 선택합니다.
3. 그 상태에서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하여 나타나는 창에서 수정 후 [수정요청]을 클릭합니다.
4. 각주의 경우에는 각주 번호를 마우스오버하여 나타난 창을 클릭하면 수정요청 창이 열립니다.

※ 컴퓨터 브라우저에서만 가능합니다.
6. 그는 누구인가?

이상에서 예수의 행태의 한 측면을 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근본적인 질문은 남는다. 그는 누구인가? 그것은 그러한 생애가 그 다음에 그 같은 엄청난 역사적 사건으로 점화될 것이라는 필연적 내용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의 공생애는 일반적으로 3년이라는 게 통념이나 그것은 요한복음에 의한 것이고, 공관서에 의하면 1년에 한번 있는 해방절이 한 번밖에 적혀 있지 않기 때문에 1년을 초과하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 1년 동안 무명의 가정에서 배우지 못한 약 30세의 청년이 변두리 지역인 갈릴래아 지방에서 그 당시에는 혼하게 볼 수 있는 자들 중의 하나로 몇몇 무식한 사람들을 몰고 다니면서 민중과 더불어 살며 그들에게 환영받고 그들의 친구로 희망을 주고 병도 고쳐주는 행각에서 자주 유다 민족의 지도자들과 충돌하기도 했다. 마침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의분에 찬 청년답게 성전을 숙청했으나, 유다인들의 상류층, 나아가서는 민중에게도 지지받지 못하고 결국 야합한 힘에 의해서 체포되어 로마의 죄수로 초라하게 죽었다. 그것으로 한 사람의 생이 끝난 것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이보다 더 용감하게 민중을 규합하고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메시아의 도래와 하느님의 직접 통치를 설교하면서 로마와 그의 앞잡이들과 싸우다가 잡혀서 십자가에 처형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모두 역사에서 사라지고 어째서 유독 나자렛 예수 운동만이 세계를 뒤집어 놓았을까?

흔히 빌라도가 예수를 군중 앞에 끌고 나와 "이 사람을 보라!"고 한 말을 인용하는데, 그 사람은 참 초라했다. 그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가 필립보 가이사리아 도상에서 제자들에게 자기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 일이 있는데,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신하여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다. 그때 예수는 가부를 대답하지 않고 그저 수난 예고를 했다. 그것은 너무 예상 밖의 발언이기에 베드로는 그 길을 만류하다가 심한 책망을 듣는다(마르 8, 27). 이 장면은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이 예수의 실상과 달랐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예수는 그리스도다"라는 고백으로 그가 누구냐에 대답한 것으로 알면 베드로와 같이 사탄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는 교훈이다. 그러므로 그런 칭호 속에서 그를 추상화하지 말고 그 내용을 물어보는 것이 옳다.

분명히 예수를 저버린 제자들을 중심으로 그의 사람들이 갑자기 '부활한 사람들'처럼 변모하여 일어났다. 저들은 '부활한 예수'를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부활한 예수는 우리의 언어영역에 들어오지 않으며, 따라서 역사적 서술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무엇이 저들에게 부활의 경험을 하게 했으며, 위에 간간이 언급한 예수의 생을 새로운 눈으로 해석하게 했는가? 특히 십자가사건의 의미에 눈을 뜬 것이 그들의 부활경험의 내용인데, 그것은 그저 하나의 특수한 종교적 경험으로 묻어둘 것이 아니라, 역사의 예수에게서 그럴 수 있는 원인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저들을 그렇게 실망시킨 예수! 그렇게 초라한 최후를 마친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확신과 함께 저들 자신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증언은 저들의 주관적인 것일 수 있기에 회의를 안고 계속 물을 수 있으나, 저들이 살아나서 천하에 그의 복음을 전파하는 기적은 역사적 사실이기에 그 까닭을 묻는 것은 역사의 예수의 물음을 계속하는 것이 된다.

예수가 대담하게 성전 숙청을 했을 때 그의 적대자들이 "당신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마르 1, 27). 이에 대해 예수는 대답을 거부했다. 권위(eksusia)란 그럴 수 있는 공인된 자리에 있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하느님에게서 받은 권한임을 입증하는 기적을 보여주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그 권위를 제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예수가 권위 있는 자처럼 행하니까 사람들 중에는 그는 배우지 못했고 우리와 함께 사는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자가 아니냐고 그를 배척했다(마르 6, 1 이하). 그러나 그럴 적마다 "나는 ……이다"라고 분명히 자기의 권위(신분)를 댄 일이 없었다. 사실상 사회 신분상으로 그는 수공업자 목수에 불과했다(마르 6, 3). 마태오나 루가 등에는 그가 다윗왕의 혈통이라는 것을 내세우려고 하고, 마르코에도 예수에게 그런 전제에서 말을 거는 자들이 등장하나, 예수가 스스로 다윗의 후예라고 한 데는 없고 오히려 이사야는 다윗의 후예라는 교리에 대한 소견을 묻는데 대해서 "다윗이 그(메시아)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마르 13, 37)고 일격한다. 그런데 이 말은 예수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일반인처럼 가정을 이룬 흔적이 없으며, 아무 소유도 없고 집도 없는 떠돌이 설교자였을 뿐이고, 당시엔 그런 자들이 많아서 유다 사회에서 귀찮은 존재로 경원당한 것이다.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태 8, 20)고 한 고백은 그의 삶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갈릴래아에서 한동안 민중의 환영을 받았으나, 결국에는 그중에서 선택된 12명의 하나에게 배신당했으니 스승으로도 성공한 인물이 못 된다. 그는 그렇게 아무 지지도 못 받은 채 맥없이 일부의 기대를 외면한 채 처형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전혀 다른 면이 있었다.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다 버리되 이른바 인륜적(人倫的) 의무마저 뒤돌아보지 말라고 할 정도로 강경했다(루가 9, 59~60). 누구든지 그를 따르려면 아버지, 어머니, 아내, 자식, 형제, 그리고 자매를 다버리라고 했다(루가 14, 26).

그는 자신뿐 아니라 그의 말이 인간의 운명도 결정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그를 시인하지 않는 것이 장차 심판과 직결된다고 했고(루가 12, 8~9), 그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지 않는 존재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고 했다. 그는 당시 유다 사회의 법이되 신의 권위로 뒷받침된 모세의 법에 대해서도 그것이 사랑하는 자유와 충돌될 때에는 주저없이 폐기하고 침범했다.

그는 그 사회에서 범죄자 내지 우범자들로 규정된 무리들과 휩싸여 살 뿐 아니라 바로 저들을 위해서 왔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저들을 박해하는 자들과 정면 대결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 15~17)는 그의 선언은 당시 체제에 대한 구체적 도전인 것이다.

또한 그는 현재의 심판권을 위임이라도 받은 듯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서 체제에서 용인되지 않는 기준으로 선언한다. 최후심판의 기준으로 지극히 작은 자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고, 떠돌이가 되었을 때 영접하고,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고, 병들었을 때 돌보고, 감옥에 갔을 때 찾아준 것을 내세운다. 그리고 바리사이파와 민족의 반역자로 규정된 세리의 기도를 보고 세리가 의롭다고 인정되었다고 선언한 것(루가 18, 14) 등이 그런 특권자의 선언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때를 악마의 시대로 보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함과 동시에 사탄의 시대를 종결짓기 위한 전선 사령관처럼 싸운다는 의식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위에서 이미 인용한 "내가 하느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임했다"(루가 11, 20)는 말씀은 그의 위와 같은 소명감을 뚜렷이 나타낸 것으로 크게 받아들일 말씀이다.

이 같은 그가 죽음을 예고하면서, '나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는, "죽었다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는 선언을 한 것이다. 당시 많은 메시아 운동가들도 장엄한 죽음으로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싸우다 죽었다. 그런데 예수는 죽이기 보다 스스로 악한 것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의 수난의 모습은 당시 민중의 수난의 극치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어느 누구의 삶과도 비교될 수 없는 고유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종합적 개관으로부터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의 제자들이 그가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이해와 더불어 절망에서 부활할 거점이 되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List of Articles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2) 잃은 돈 찾은 여인
    3) 돌아온 아들의 아버지
3. 가치의 전도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4) 말만 하는 자와 실천하는 자
    5) 자신을 철저히 비운(空) 자
4. 집요한 투쟁(간구)
    1)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2) 닫힌 문
    3) 빚진 자의 엉뚱한 마무리
    4) 한 과부의 투쟁
    5) 친구를 위한 투쟁
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2) 그물 안에 든 고기
    3) 심판과 맡은 분깃
    4) 심판과 대비
    5) 너무도 어리석은 부자
    6) 한 부자와 거지
    7) 뜻밖의 심판의 기준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를 움직인 여인들
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민중현실에 바탕을 둔 신학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한국 교회의 재래의 성서이해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전통적 성서해석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성서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할 뿐
    민중신학이 본 성서의 맥
민중 예수
    극복되어야 할 서구 신학의 그리스도론
    고난의 종 그리스도
    구원은 민중을 통해서 온다
    예수는 오늘의 민중현장에 계신다
    제도적 교회는 민중현장에 계신 그리스도를 포기
    민중사건은 예수사건이다
    ‘구원’은 물질적 언어로 표현되어야
    성령의 역할은 인류해방에 있다
민중의 하느님
    신이 죽었다?
    서구 신학의 신관(神觀)
    동양인의 신관
    성서는 신을 어떻게 말하나
    해방의 신
    성전종교의 포로가 된 신
    예수 이후의 하느님
    민중의 하느님
    하느님 사건의 전거
민중의 공동체 一 교회
    교회의 주인공은 민중이다
    예수공동체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였다
    생활공동체에서 예배공동체로 전락
    교회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민중신학이 꿈꾸는 교회상
    제도적 교회론을 넘어서자
    해방공동체 구현과 교회의 계층성 극복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기존의 죄이해는 교권을 강화시킨다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바울로는?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위로
텍스트를 수정한 후 아래 [수정요청] 버튼을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