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추구는 나의 일생의 과제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인 집념이 아니라 나의 추구와 유리되지 않는 과제이다. 해석자는 관조자가 아니라 참여자이다.
이 일을 위해서 나는 예수에 대해서 증언한 원초적인 자료인 공관서(마르코, 마태오, 루가)를 일생을 거쳐 탐구했고, 그 해석서를 내 시간과 손이 미치는 대로 탐독해왔다. 그러기 위해서 영어나 독일어는 물론 희랍어, 히브리어 그리고 아람어를 배워야만 했다. 그러나 내가 유럽 유학의 길에 나섰을 때는 역사의 예수 탐구에 대한 거부가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때였다. 당시의 신약성서신학은 역사의 예수에 대해서 불가지론(不可知論)에 빠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공관서의 구조상 증언의 형식으로 된 이른바 케리그마의 배후, 즉 역사의 예수를 묻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인식이 정론(定論)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방법론을 배워 꼭 같은 자료를 취급하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 이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수를 알겠다는 나의 집념을 어느 한 순간도 포기해본 일이 없다. 그것은 나를 찾는 일과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의 오랜 연구의 결과 나는, 그러나 '그는 알 수 없다'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결국 결론을 얻지 못한 채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나는, 화살을 맞은 짐승처럼 상처를 안은 채 서구인들이 풀이한 것을 학생들에게 전달해주는 매개인(媒介人)으로 자처하면서 밥을 먹고 살았다. 대안을 갖지 못한 나에게는 이러한 체념적인 생활밖에 다른 선택의 길이 없었다.
군사정권의 폭거가 가중됨과 더불어 그러나 나에게는 커다란 전환기가 왔다. 그것은 역사를 위시한 모든 사물을 전혀 다르게 보는 눈이 제공되는 것이었다. '민중'을 만난 것이 바로 그 사건이다.
수난의 도상에서 민중과 만나면서 나는 오랫동안 거미줄 같이 나를 휘감았던 서구적 사고의 틀에서 해방되어 주체적으로 공관서를 다시 읽게 되었다. 지금까지 못 만나던 예수를 나는 만나게 되었다.
예수의 행태에서 먼저 발견되는 것은 '오클로스'라는 단어였다. 우리 번역으로 '무리'라고 하는 이들이 언제나 예수를 싸고 돌았는데, 전에는 이들이 실체 없는 그림자인 양 나의 인식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무리가 무엇인가? 그것은 한낱 초상화를 돋보이게 하려는 배경인가?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았다. 이들이 없는 예수는 상상되지 않는다. 이들이 있었기에 예수가 있었고, 또 예수가 있어서 이들이 모였다. 예수는 모든 관심을 저들에게 쏟고, 저들과의 사이에 어떤 종교적이거나 윤리적인 담을 쌓는 일이 없었다.
나는 학문적으로 계속 이들을 조명하면서 밝아오는 예수를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 2,000년 전 팔레스틴 한구석에서 일어난 이 장면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장과 맥이 통하는 것을 경험했다. 그로부터 여러 각도로 공관서 분석에 힘을 쏟았는데, 그럴수록 이 민중의 무게는 더해갔다. 이들의 실상을 더 상세히 파악하기 위해서 이들의 상황인 정치ᆞ경제ᆞ사회적인 조건들을 밝혀내는 데 주력해야만 했다. 이 같은 기반을 이루는 사실들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 가면서, 여러 번 시도했다가 중단했었던 『갈릴래아의 예수』를 쓰기로 결단한 것이다.
이 책을 쓰는 데에는 마르코 1장 14, 15절이 열쇠가 되었다.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가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때가 찼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서구의 성서학자들은 14절은 편집구(編輯句)라고 가볍게 처리해 버리고, 15절이 예수의 설교의 집약이라고 정식화 했으나, 나에게는 오히려 14절이 더 중요하게 인식되어 그 현실을 밝혀내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예수의 선구자격인 세례자 요한이 체포됐다는 정치적인 사건이 일어난 사실, 그리고 그것과 때를 맞추어 바로 그가 세례자 요한을 체포한 장본인 인 헤로데 안티파스가 지배하는 영역인 갈릴래아로 가되 민중에게로 갔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고, 그 전제가 바탕이 되어 있기에 15절에서의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얼마나 폭발적인 의미를 가졌나하는 것이 밝혀졌으며, 이로써 예수의 참 면목이 선명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맨 처음 마르코복음의 오클로스만을 다루고 볼 때에는 저들을 가난하고 눌린 자들로서 약하고 무능하여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혜자로서의 그들의 조건만을 보았는데, 재조명한 이들은 비록 그런 위치에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예수를 예수로 만든 거대한 힘의 담지자라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나는 이 책에서 영웅주의적인 가치관에서 예수를 주격으로 하고 민중을 객체로 삼는 잘못에 반(反)하여, 오히려 예수의 행태를 결정하는 주체는 민중인 것을 재확인 하였고, 그 사이의 어떤 매개물도 제거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그의 실패나 그의 승리나 한 개인의 전기적(傳記的) 사건이 아니라 민중사건이며, 그것은 오늘 한국의 현장에서 재현된다는 인식 속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국의 민중운동에서 자극을 받으면서 쓴 것이 이 책이었다.
1992년 가을
안병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