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수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는 예수의 삶을 전승한 기록이기는 하나 전승사적으로 볼 때 변질된 과정을 거듭했기 때문에 복음서가 서술하고 있는 그대로를 예수의 삶에 적용할 수는 없다. 서구에서 자유주의가 만발할 때 교회가 강요한 교리와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분리시킴으로써 마침내 '예수전(傳)'을 다룬 문학작품이 홍수같이 쏟아졌다. 그 흐름의 중추는 윤리적 인간 예수에 대한 관심이었다. 이 '예수전'운동의 문헌들을 추적한 슈바이처(A. Schweitzer)는 복음서의 결정적 바탕은 종말론임을 확실히 하여 윤리적 차원에서의 예수에 대한 관심에 찬물을 끼얹었다.1)A. Schweitzer, Geschichte der Leben-Jesu-Forschung, Tübingen, 1951.
그후 켈러(M. Kähler)는 『이른바 역사적인 예수』라는 책에서 독일어 히스토리(Historie)라는 말과 게시히테(Geschichte)라는 말을 구별하여, 히스토리로서의 역사 그 자체는 의미가 없으며 그 자체의 재현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나아가 게시히데를 '해석된 역사'라고 풀이함으로써 실증적 역사주의를 거부하고, 복음서는 해석된 예수의 역사라고 규정했다.2)M. Kähler, Der sogenannte historische Jesus und der geschichtliche, biblische Christus, 1956. 이런 주장을 전후하여 이른바 역사비판학이 활발히 전개됐는데 그 열매로 양식비평방법이 복음서 분석에 적용되었다. 이 연구방법의 총결산이 불트만의 『공관복음서전승사』이다.3)R. Bultmann, Die Geschichte der synoptischen Tradition, Göttingen, 1957. 그런데 역사의 예수를 밝히려고 출발한 이 연구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회의론에 빠졌다. 마침내 불트만은, 복음서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케리그마의 집산이고, 그 안에 있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는 이 케리그마의 확대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4)R. Bultmann, "Der Verhältnis der urchristlichen Christusbotschaft zum historischen Jesus", in : EXEGETICA, Tübingen, 1967, S. 467f.(허혁 역,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선포와 역사적 예수의 관계」, 『학문과 실존 I』, 성광문화사, 1981, 350면). 그의 주장이 이론적으로 너무도 정연하므로 그 이후 학문적인 차원에서 예수의 생애를 취급한 책은 적어도 3년 동안 단 한 권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54년에 그의 제자 케제만(E. Käsemann)이 역사의 예수를 묻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론은 영지주의자(靈知主義者)들의 가현설(Docetism)5)예수는 육체를 가진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며, 육체를 통한 나타남은 역사적 실체가 아니라는 영지주의적 주장.에 빠지고 만다는 반론으로 케리그마의 배후를 물을 수 없다는 터부를 깨버렸다.6)E. Käsemann, "Das Problem des hist orischen Jesus"(ZThKS51, 1954), in:Exegetische Versuche und Besinnungen, Göttingen, 1965, Bd.I, S. 187ff. 그후 다시 역사의 예수에 대한 물음이 활발하게 진행됐는데, 이에 대한 총괄적인 응답으로 불트만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선포와 역사적 예수의 관계'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역사의 예수에 관한 문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조심스럽게 예수의 행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특징적인 것은 귀신추방, 안식일 금기의 파괴, 정결법의 침범, 유다인의 율법성에 대한 논쟁, 세리(稅吏)나 창기 들과 같은 소외된 사람들과의 연대, 아이들과 부인들에 대한 관심 등이다. 또한 예수는 세례자 요한처럼 한 고행주의자가 아니라 먹기를 탐하고 약간의 술도 마셨다는 것이 인정된다. 이에 더해서 그는 후속자(Nachfolge)를 불러 몇몇 추종자들―남자들과 여자들―을 모았다는 사실을 첨가할 수 있을 것이다.7)R. Bultmann, op. cit.
불트만은 이와 더불어 예수가 선포한 내용 일부를 첨가하고 있다. 정말 이른바 학자라는 사람이 분석한 결과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예수사건과 그 운동의 전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정도의 내용 파악으로는 도저히 예수사건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리그마는 역사적 예수와의 만남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기에 그 안에 역사적 핵심이 있다. 그것은 예수와 그의 추종자 중 어느 한편에 의해서만 형성된 산물이 아니라 더불어 이루어진 것이다. 이루어진 것은 '사건'이다.8)"태초에 사건이 있고, 케리고마는 그 뒤를 따른다." 바로 이것이 필자의 기본입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안병무, 「예수사건의 전승모체」, 『신학사상』, 1984년 가을호, 748~751면 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건분석에서 역사적 현실을 보다 더 많이 그리고 깊게 추구해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서 안에서 허락되는 범위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