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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상황

고대 경제는 구조적으로 쉽게 변동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한 100년간의 경제적 조건들은 특별히 시대구분을 하지 않고도 알 수 있을 만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헤로데왕가의 치하, 즉 로마 지배 이후부터 상당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유다 전쟁 전까지의 자료에서 예수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범위 안에서 그리고 앞으로 예수사건을 서술하는 데 중복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당시의 경제적 상황을 간략하게 서술하겠다.

팔레스틴은 농업 위주의, 이른바 준아시아적 생산양식을 지니고 있었다.55)'아시아적 생산양식'은 관개수로의 개발과 광범위한 노예노동에 근거한 독특한 생산양식이다. 팔레스틴에는 이와 같은 생산양식이 나타나지 않았으나, 팔레스틴 사회의 생산양식도 농민노동의 철저한 수탈을 바탕으로 삼고 있었다. '준아시아적 생산양식'은 이 점을 고려한 표현이다. 그런데 유다 지방은 박토여서 자급자족이 불가능하므로 비옥한 갈릴래아의 곡물에 의존했다.56)요세푸스는 갈릴래아 지방이 비옥한 푸른 정원 같다고 묘사했다(Jos., Bell., 3, 32). 농지의 절대량이 모자랐기 때문에 소작층이 다수였는데 그 자식들은 품팔이로 나서야 했으며 일자리가 없으면 자동적으로 떠돌이가 되는 현실이었다. 로마시대 농민들의 수입은 수확의 50퍼센트를 넘지 못했다. 그만큼 세금으로 빼앗겼기 때문이다.57)J. Klausner, a.a.O., S. 241; F.C. Grant, The Economic Background of the Gospel, 1926, p. 10f. 그랜트는 당시 유다인이 바친 세금이 총수입의 30~40퍼센트에 달했으리라 추산한다. 그런데 헤로데에 의해 건설되고 활성화되는 도시에 있는 부재지주의 격증과, 토지가 계속 부농에게로 넘어가는 데 제동을 걸 장치가 마비되고 있었다. 토지를 돌려주는 안식년이나 희년제도가 실시되지 않은 것은 권력과 야합한 부농의 거부로 인한 것이다. 팔레스틴에는 원래 부농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대지주로는 먼저 왕족들과 대사제족들이 다수를 차지하고58)J. Klausner, a.a.O., S. 239. 그리고 세력권에 붙어 있는 층도 포함되는데59)H. Kreissig, Die sozialen Zusammenhänge des judäischen Krieges, Berlin, 1970, S. 9; M. Hengel, Die Zeloten, 1989, S. 218. 저명한 라삐계층에서 대지주로 알려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한 라삐의 1년 수확은 예루살렘 시민이 10년 동안 먹을 정도의 것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어떤 사람은 고을 1천 개와 배 1천 척을 소유했다고 하며, 어떤 사람이 성전에 바치는 십일조가 송아지 1만 3천 마리였다고 하는 등의 믿기 어려울 정도의 전승이 있다.60)B. Joma, 35b(Bar.). E.R., II, 2 참조. 부농은 소농에게 토지를 담보로 종자 또는 돈을 빌려주고 기일내에 갚지 못할 경우에는가차없이 토지를 합법적으로 뺏는 일이 허다했다.61)J. Klausner, a.a.O., S. 239. 그렇게 토지를 빼앗긴 농부는 할 수 없이 자신과 가족을 노예로 팔게 된다. 이래서 신분상 노예 아닌 노예가 증가했다.

유다 지방은 기후가 나쁘다. 그래서 한재가 몇 년 동안 계속되는 경우가 있다. 부농들은 자기들의 수확은 물론 소농의 작물을 사들였다가 곤궁기에 방출해서 막대한 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값을 평균치의 16배를 넘게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62)H. Kreissig, a.a.O., S. 38. 이런 때 대부분의 소농들은 자기 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계속 늘어난 부재지주는 도시인들이었다.63)E. Lohmeyer, Soziale Fragen nach Urchristentum, 1921, S. 55f. 저들은 농민에게 농노처럼 농지를 관리하게 한 것이다.64)S. W. Baron, A Social and Religious History of Jesus, Bd. 1, Philadelphia, 1937, p. 278. 소작인들은 대지주에게 계속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65)M. Hengel, Die Zeloten, S. 341. 헤로데는 로마정부와 마찬가지로 부상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는데66)Loc. cit. 그것은 동시에 그 부농들이 권력에 편승해서 부를 축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수탈방법 또한 다양했으리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문제는 상층부에 있으며 저들의 사욕이 민중을 도탄에 빠뜨렸다는 결론이 된다. 헤로데는 그의 유서에서 아르켈라오에게 600, 안티파스에게 200, 필리푸스에게 100 그리고 살로메에게 60달란트의 연봉을 주게 했다고 한다.67)Jos., Ant., 17, 7, 1. 그러면 그 자신의 연수입이 적어도 1천 달란트를 넘었으리라는 계산이 나온다. 요세푸스는 그의 사유재산이 1,500달란트라고 했는데,68)Jos., Ant., 17, 12, 4~5. 그것은 아마도 그의 유서에 황제에게 1천 달란트 그리고 로마에 있는 그의 찬지에게 500달란트를 할당한 것69)Jos., Ant., 17, 7, 1.에 의거한 추산일 수 있다. 여기서 저들에게 지불되는 재원이 세금 외의 토지였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르켈라오가 추방될 때 그가 소유했던 땅을 로마의 황제가 차압했다가 다시 팔았다는 기록이 있는데70)Jos., Ant., 18, 2, 1. 그것은 헤로데왕가에 사유지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헤로데가 자기 자식들과 손자들에게까지 연봉 외에 땅을 할당했으며,71)헤로데가 땅을 할당한 일에 관해서는 Jos., Ant., 18, 31과 Bell., 2, 167을 참조. 심지어 그의 심복에게 한 지역을 봉토한 것72)Jos., Ant., 17, 10, 9. 그 밖의 다른 예들에 대해서는 M. Hengel, Die Zeloten, S. 329 참조. 등을 보면 민중에게 돌아갈 땅이 남아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헤로데는 건설사업을 통해 그의 명예욕을 채웠다. 그러므로 팔레스틴만이 아니라 남의 나라 도시 10여 곳에도 웅대한 건물을 세웠는데 그중에는 희랍의 아테네도 포함된다. 그리고 그의 화려한 궁전에는 많은 후궁이 있었으며 군대, 첩보원 등 자신의 정권안보를 위해 지출되는 비용이 엄청났을 텐데 그 돈은 결국 여러 명목으로 국민에게서 몰수한 것일 수밖에 없다.73)J. Klausner, a.a.O., S. 254. 그의 40년간의 허영과 야욕은 이스라엘 경제질서를 완전히 병들게 했다.

로마제국은 점령지역의 경제착취를 특유한 방법으로 했다. 그것은 세금액을 청부로 주는 방법이다. 예외는 있으나 로마의 기사 출신 중에 경제에 밝은 사람에게 청부를 주는 것이 통례였다. 예로 유다 지방에 600달란트를 책정했는데 그 청부를 맡은 자는 그 이상의 세금을 거두어들였고, 결국 그 차액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수탈에 결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그들은 세금징수의 하청까지를 주었는데 그것에 종사하는 유다인들을 속칭 세리라고 했다. 저들의 임무가 얼마나 가혹했는지 유다 사회에서는 그들을 강도, 살인자, 사기꾼과 동일시했다.74)A. Büchler, Der galiläische Am-Haaretz, Wien, 1906, S. 8. 로마는 세리를 시켜 물세, 시장세, 생활필수품세, 통행세, 집세까지 물리고75)Jos., Ant., 19, 6, 3. 각 지역의 경계마다 물건에 대한 통과세를 물려서 로마에서 오는 물건이 팔레스틴에서는 백 배나 비싸졌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76)J. Klausner, a.a.O., S. 251. 저들이 법으로 정한 것 외에도 현지에 파견된 총독들이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자세로 임했으니, 티베리우스는 그런 진상을 알고 부패에 의한 파멸을 어느 정도 방지하기 위해 주둔자들을 자주 교체하는 정책을 고안하기까지 이른 것이다.

주목할 만한 기록이 있는데 그것은 예루살렘 시민이 갈릴래아 농민에 비해서 그들의 풍요함을 자랑했다는 사실이다.77)Sabbat, 62b.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예루살렘 중심체제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데, 뒤에서 언급할 것이다.


List of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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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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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2) 닫힌 문
    3) 빚진 자의 엉뚱한 마무리
    4) 한 과부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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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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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물 안에 든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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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심판과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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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한 부자와 거지
    7) 뜻밖의 심판의 기준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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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래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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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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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민중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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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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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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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을 발견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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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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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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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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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바울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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