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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마당
세례자 요한과 예수
셋째 마당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마르코는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라는 말로 예수의 공생애 출발의 서두를 삼는다. 우리는 예수의 공생애 출발과 관련해서 이 간단한 편집구에 깊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구절은 "요한이 잡힌 후에"라는 말과 "갈릴래아에 오셔서"로 되어 있는데 이 둘은 깊은 관련이 있다. "요한이 잡힌 후에"라는 이 구절이 의미하는 현실을 집중적으로 다루려 한다.

먼저, 복음서가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정리해보기로 한다.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는 공관서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심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요한복음서까지도 많이 언급하고 있다. 네 복음서 외에 요세푸스도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이상의 자료에서 예수와 관련되는 역사적 사실에 접근해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 그 까닭은 뒤에서 자세히 살피겠지만 그의 운동은 예수운동과 같은 계보에 속했기 때문이다.

첫째, 세례자 요한은 신분상으로 사제계열이었다(루가 1, 5939). 이것은 역사적으로 부정할 이유가 없다. 세례자 요한은 에쎄네파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데, 에쎄네파가 사제계층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로 수긍이 된다. 그러나 성전에 전속되지 않았고 예루살렘에 살지도 않았으니 이미 주류는 아니었다.1)H. Kreissig, Die sozialen Zusammenhänge des judäischen Krieges, 1970, S. 107. 그는 "어머니 태에 있을 때부터 성령을 가득히 받을 것이며, 포도주와 강한 술은 입에 대지 않을 것이오"(루가 1, 15)라는 기록에 따르면, 그는 어렸을 적부터 '나지르'로서 성별되어 자랐던 것 같다.

둘째,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고행자로서 살았다(마르 1, 4~6). 그는 "낙타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다"는데, 이러한 그의 모습은 일면 구약의 엘리야를 연상케 하며, 그의 시대에서 보면 그의 삶은 에쎄네파 사람들의 삶과 공통된 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가 광야로 나갔다는 것은 에쎄네파처럼 탈예루살렘파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2)J. Klausner, Jesus von Nazareth, 1952, S. 332는 그를 나지르인의 경향을 가진 바리사이파라고 보고 예수를 같은 계열에 두나 예수에게 그런 흔적은 없다. 광야는 엘리야, 이사야(40, 3) 이래로 특수한 의미를 갖는데,3)M. Hengel, Die Zeloten, 1961, S. 250ff. 마카베오 이후로는 반체제의 상징처럼 되었다.

셋째, 그는 단독적인 은둔자가 아니라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마르 2, 18/ 병행; 루가 7, 18/Q; 요한 1, 35 참조). 그는 분명히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 근거로는 그가 제자들에게 '공동체의 기도'를 가르쳐주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루가 11, 1/ Q) 그리고 생활규율로서 정기적으로 금식을 시켰음을 상기하면 된다(마르 2, 8/ 병행). 이 점에서도 요한은 에쎄네파와 상통한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세례자 요한은 에쎄네파와 마찬가지로 묵시문학파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종말에 대한 사변이나 묘사는 찾아볼 수 없고, 다만 마지막 심판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종말의 임박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점에서 세례자 요한은 에쎄네파와 상통하며, 예수와도 상통하는4)G. Kittel, ThW, II, S. 655f.; J. Becker, Johannes des Täufer und Jesus von Nazareth, 1972, S. 20; M. Hengel, a.a.O., S. 255f. 일면이 있다.

다섯째, 세례자 요한은 회개(μετάνοια)를 외치고, 세례를 주었다. 세례의식이 어디에서 기원했느냐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분명하다. 구약에는 세례와 비슷한 내용으로서, 가령 "옷을 빨고 목욕을 한 후에만 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민수 19, 7)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몸을 깨끗하게 하는 '정결법'의 일환으로서 세례의식과 일치시킬 수는 없다. 여기에 대해 그리스에는 에루시니안이라는 신비종교가 있었는데, 이 종교 공동체에 입단할 때는 세례식을 거행하는 풍습이 있었으므로 세례의식은 그곳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견해와, 한편 바빌론의 종교에서 전래된 것이라는 가설 등 구구하므로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에쎄네파는 그들의 공동생활에서 세례의식과 성만찬식을 시행했다는 점이다.5)J. Klausner, a.a.O., S. 280f. 그러면 세례 역시 에쎄네파에서 이어받은 것이라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요한은 '세례자 요한'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세례를 중요시했다. 다만 요한의 세례가 에쎄네파의 그것과 다른 점은 에쎄네파에서는 공동체의 일상행사로서 자기들의 회원에게만 국한한 데 비해 요한의 세례는 모두에게 요구되었고 또 일회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요한의 세례는 정결례로서 행한 것이 아니고 회개와 직결시켰다. 다시 말하면 세례는 회개의 표로서, 즉 낡은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산다는 의미의 의식이다(마르 1, 4; 마태 3, 8).

루가복음 3장 4~6절은 이사야서(40, 3~5)를 인용한 것으로서 세례의 정신을 잘 나타내고 있다. 회개란 마음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윤리적인 죄를 구체적으로 청산하는 것을 의미한다(루가 3, 10 이하). 요세푸스가 세례자 요한을 '정아(正我)의 사람', '완전주의자'로 규정한 것6)Jos., Ant., 18, 5, 2.은 이 점에서 상통한다.

여섯째, 세례자 요한은 예수에게 세례를 주었다(마르 1, 9/ 병행). 이것은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학자들 가운데는 이것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7)E. Haenchen, Der Weg Jesu, 1966, S. 58ff. 그러나 나는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본다. 까닭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그렇게 명예로운 일이 못 되었기에, 없었던 사실을 후에 첨가했을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오는 마르코의 입장을 그대로 따른다. 그런데 루가에서는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루가 3, 21a)라는 식으로 가볍게 언급하고 지나치려 하며, 요한복음서는 애당초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요한 3, 26 참조). 이런 경향으로 흐른 것은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 받았다는 일이 결코 명예로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일곱째, 세례자 요한은 마침내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서 체포처형됐다. 왜 그는 처형되었을까? 마르코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의 처형에 대해서 자세히, 길게 기록하고 있다(마르 6, 14~29). 마르코복음서는 이 사실을 그만큼 중요시하고 있다. 마르코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은 안티파스가 이복형제의 아내를 취한 불륜을 책망한 탓으로 체포되었다가, 헤로디아의 요구로 부득이 그를 처형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보면, 그는 결코 종교적인 이유로 체포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가 집권자의 구체적인 한 사건을 비판했기 때문에 체포되고 처형된 것처럼 그 이유를 제한한다. 그런데 그가 집권자의 불륜을 책망했다는 것은 그의 체포의 계기가 될 수 있었겠지만, 그가 체포될 수밖에 없었던 그 근본적인 동기는 세례자 요한 자신의 평소 자세의 일환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복음서 이외의 자료로서는 요세푸스의 증언을 들 수 있는데, 그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은 "그의 말에는 기적적인 마력이 있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로 모였고, 헤로데(안티파스)는 그를 존경하는 민중이 그의 말을 들음으로 소요를 일으킬 것으로 보여 모든 일이 위험한 지경에 들어가므로 이미 늦었다는 후회가 없도록 적기에 그를 제거해버리려 했다"8)Jos., Loc. cit.고 한다. 요세푸스가 친로마적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는 세례자 요한이 단순한 종교적 인물이 아니었음을 잘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민중에게 귀신처럼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요세푸스의 말은 복음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태오복음서에는 사람들이 그를 "귀신이 들렸다(δαιμόνιον έχει)고 말했다"(11, 18/ Q)는 보도가 있는가 하면, 마르코와 마태오에는 세례자 요한이 민중에게 참 예언자로 존경받고 있으므로 집권자들이 그의 영향력을 두려워하고, 그의 처치에 고심했다는 기록이 있다(마르 11, 32; 마태 14, 4~5). 루가는 민중이 세례자 요한의 말을 따랐으며, 지도계층을 거부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7, 28~29). 이처럼 복음서들은 요세푸스의 보도를 사실(史實)로서 입증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은 분명히 집권자에게 위험인물로 보였음에 틀림없다.9)J. Wellhausen(Israel und Jüdische Geschichte, 1958, S. 341)은 그가 처형 된 것은 단순히 종교적 열광 때문이 아니라고 하고 E. Meyer(Ursprung und Anfänge der Christentums, I, S. 857; II, S. 406)는 그의 하느님 나라 선포가 종교지도자들과 집권자에게 공포를 주었다고 하며, E. Lohmeyer(Soziale Fragen nach Urchristentum, 1921, S. 59f.) 등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표명한다. 이에 대해 H. Kreissig(a.a.O., S. 107)는 당시의 로마제국이 예언자나 그를 따르는 자들을 멸시했으나 적대시한 바 없다고 보고, 세례자 요한은 아무런 민중조직 없이 대항했을 것인데, 이러한 그를 집권층이 무서워했을까(aa.a.O., S. 110) 하고 물으며 그의 저항을 갈릴래아의 유다의 경우와 비교한다(a.a.O., S. 109).

루가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은 '도덕적 설교자'의 위치를 넘어서 구체적인 현실문제에 관여한다. 무엇보다도 경제문제를 언급하며, "속옷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과 나누어 가지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라"(3, 11)고하는가 하면, 군인들에게는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거나 속여 빼앗지 말라"(3, 14)고 하고, 세리들에게는 "너희에게 정해준 것보다 더 받지 말라"(11, 13)고 한다. 그는 추상적인 도덕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잘못된 것을 경고하고 책망한 것이다. 그 성격은 가난하고 약한 자의 편에 서고, 강제할 위치에 있는 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이다.10)F. F. Bruce, New Testament History(Zeitgeschichte der N.T. I, S. 162). H. Kreissig(a.a.O., S. 109)도 이 점을 강조한다.

그에게는 또 하나 다른 중요한 면이 있다. 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은 초기에 엘리야의 재현이라고 거듭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엘리야가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다시 올 것이라는 기대가 유다 민중사에 민속적인 전설로서 널리 퍼져 있었다.11)J. Klausner, a.a.O., S. 334f. 말라기(3, 23~24)에 의하면, 엘리야의 재현을 예언하는데, 그 목적은 망할 운명에 처한 이스라엘을 최후 순간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형론(Typology)의 입장에서 볼 때, 루가(1, 17) 등의 서술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엘리야야말로 북왕국 이스라엘 왕권과 정면으로 대결했던 전형적인 예언자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합왕이 엘리야를 향해 "그대가 이스라엘을 망치는 장본인인가?" 하고 말했을 때, 엘리야는 "내가 이스라엘을 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왕 자신과 왕의 가문입니다"(열왕상 18, 17~18)라고 맞섰다.

아합왕이 왕의 권력으로써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밭을 빼앗고 항거하는 그를 처형했을 때, 엘리야는 "네가 사람을 죽이고 그의 땅마저 빼앗는구나…… 나봇의 피를 핥던 개들이 같은 자리에서 네 피도 핥으리라"(열왕상 21, 19)고 힐책했다. 여기에 엘리야의 기본자세가 잘 표명되었다. 그는 권력자의 불의를 결코 용납하지 않고, 눌린 자의 편에 서서 누르는 자에 대항했던 예언자였다. 엘리야에 대한 그러한 전승에서 이스라엘 민중이 엘리야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를 지녔는지를 잘 짐작할 수 있다.12)J. Klausner(a.a.O., S. 333)는 엘리야를 반(反)도시문화자로 보고 이 점에서 세례자 요한과의 유사성을 지적한다(a.a.O., S. 335). 그렇기 때문에 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 그리고 예수 운동을 엘리야와 연결시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많은 뜻을 함축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령 예수의 변모설화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등장하는데, 그는 예언자의 대표로서 나타난다.

예수 당시 어떤 이는 예수를 가리켜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하고, 또 세례자 요한을 가리켜 엘리야가 다시 살아났다고도 했는데(마르 6, 14~15), 이것은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에게 엘리야적 풍모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엘리야가 살아났다"고 했을 때, 민중은 이미 민중 편에 서서 집권자의 권력과 불의에 대항한 예언자를 연상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전승들에서 주목할 것은 민중의 의식 속에는 엘리야, 예수, 세례자 요한이 한 계통으로 연상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계보적으로 볼 때 세례자 요한은 어디에 속했을까?

이미 우리는 위에서 세례자 요한이 에쎄네파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여기에 몇 가지 점을 첨가할 수 있을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에쎄네파의 '탈예루살렘'입장과 같이 예루살렘 성전을 위시해서 유다교의 공적 전통을 부정했다. 그는 "너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 말라. 하느님은 돌로도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게 할 수 있다"(마태 3, 9)고 해서 이른바 유다 민족의 선민권을 부정한다. 그리고 "나는……" 하고 말하는 형식의 언어가, 에쎄네파의 공동체를 이끌었던 '의로운 스승'과 유사하다.

또한 그는 회개를 필수요건으로 내세워 이스라엘 전체의 특권을 부정했다. 뿐만 아니라 세례자 요한이 활동했던(세례를 주었던) 요르단강 주변의 지역과 에쎄네파의 공동체가 있었던 지역이 동일하다.13)1QH, 5. 8 비교. 이런 사실은 모두 세례자 요한이 에쎄네파와 아주 가깝다는 사실을 거듭 나타낸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이 에쎄네파의 저 '의로운 스승'이라고 단정하는 견해도 있다.14)1QH, 5, 23f. 그러나 이것은 추측에 그칠 뿐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주는 견해는 아니다.15)J. Jeremias, Der Lehrer der Gerechtigkeit, 1964, S. 34, 296ff. 클라우스너도 그가 에쎄네파와 뿌리를 같이 한다는 전제를 하면서도 그 차이점을 지적한다. 에쎄네는 시험과 선택의 과정을 거쳐 약간의 새 회원을 수용하는데 대해서, 세례자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다. 에쎄네는 광야에 정착하여 그 시대의 소용돌이를 피하고 단지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렸음에 반해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직접적 제자 외에도 많은 민중을 모아 가르침으로 메시아 도래를 촉진했다. 에쎄네는 기본적으로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는데, 세례자 요한은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대항했듯이 안티파스의 불의에 대결했다16)J. Klausner, a.a.O., S. 334ff.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에쎄네파가 대중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빼고는 이 양자 사이에 엄격한 차이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까닭은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공동체 조직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기 때문이고, 또 에쎄네도 유다 전쟁 마지막 단계에 봉기했기 때문이다.

하여간 어떤 경우에도 분명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적어도 에쎄네파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가 한때 그 공동체에 머문 데 지나지 않았다고 해도 적어도 에쎄네파는 그의 정신적 모태였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복음서에서 에쎄네파에 관해 전혀 언급이 없는 반면, 세례자 요한파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이것은 여러 가지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우리는 이렇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에쎄네파에 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세례자 요한파가 에쎄네파와 대립된 위치에 놓여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세례자 요한파에 큰 관심을 기울인 것은 세례자 요한을 에쎄네파와 동일시하면서도 그가 민중운동을 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수 있다.17)이 사실은 무엇보다도 복음서에서 계속 반영되는 예수운동과 세례자 요한파의 그것을 경쟁적으로 다룬 데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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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2) 잃은 돈 찾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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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치의 전도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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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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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2) 그물 안에 든 고기
    3) 심판과 맡은 분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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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를 움직인 여인들
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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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민중현실에 바탕을 둔 신학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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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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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적 성서해석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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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신학이 본 성서의 맥
민중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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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의 역할은 인류해방에 있다
민중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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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 사건의 전거
민중의 공동체 一 교회
    교회의 주인공은 민중이다
    예수공동체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였다
    생활공동체에서 예배공동체로 전락
    교회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민중신학이 꿈꾸는 교회상
    제도적 교회론을 넘어서자
    해방공동체 구현과 교회의 계층성 극복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기존의 죄이해는 교권을 강화시킨다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바울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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