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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마당
갈릴래아로
예수의 소명
넷째 마당
갈릴래아로
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이 마당의 주제를 '갈릴래아로'라고 했는데, 예수의 소명을 언급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대상으로서 그의 소명의식을 고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의 행태에서 그가 지향하는 바가 어떤 성격의 것이었나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이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서 공자와 석가의 소명관과 대조하는 것으로 출발하고자 한다.

석가는 실존적 고뇌를 해결하기 위하여 출가했다. 그는 삶, 곧 생로병사를 '고'(苦)로 보았다. 그는 이 '고'에서의 탈출을 모색한 나머지 고행자들인 한두 스승들을 찾았으나 얻은 바가 없어서 마침내 가야산 6년의 고행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득도치 못하고 있을 즈음, 한 여인이 사랑으로 바치는 유미죽(乳糜粥)으로 힘을 얻은 그는 마왕의 모든 유혹을 물리쳐 이기고 드디어 법열, 해탈의 경지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니르바나로 직행하려 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삶은 문자 그대로 자신의 실존적 고뇌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피나는 탐구였다. 그러한 그가 급전하여 중생제도를 위해 40년 동안의 설법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것은 갈릴래아로 대범대왕(大梵大王)의 간청으로 인하여 대자대비의 원력(願力)을 발휘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1)한글판 『八萬大藏經』, 1편 3~5장.

예수 역시 고행자인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그에게서 세례를 받은 뒤에 몸소 광야로 나아가 고행을 시작했는데2)마르코는 예수가 40일 동안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았다고 한다(마르 1, 12~13). 그런데 마태오복음과 루가복음은 예수가 금식으로 인해 배가 고팠다고 한다(마태 4, 2; 루가 4, 2). 이것은 또 다른 전승(Q)이 있었음을 입증한다. 이것은 싯다르타의 그것과 외견상 비슷하다. 그러나 내용에서 둘 사이에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세례자 요한은 비록 고행자이기는 했으나 그 고행의 원인이 인간의 실존적 고뇌 해결에 있었다는 흔적은 없다. 그에게는 세계의 심판, 곧 역사의 위기 앞에서의 고행이 있었을 따름이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그것은 그에게 공명한 바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쩌면 그가 얼마 동안 그의 집단과 함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얼마든지 가능하다.3)J. Becker, Johannes der Täufer und Jesus von Nasareth, 1972, S. 68. 그러나 마태오에 반영된 대로 종말론적 위기의식에 공감한 것 외에는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그의 삶의 자세는 세례자 요한과 대조적이다.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기 이전의 예수에 관해서는 알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 어록자료(Q자료; 마르코 외에 마태오와 루가에서 발견되는 공동어록자료)에는 예수가 받은 시험의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마태 4, 1~11 :루가 4, 1~13).

그 내용은 말의 순서 등이 약간 다를 뿐 동일한 자료임에 틀림없다.4)R. Bultmann, Die Geschichte der synoptichen Tradition, S. 272, 275/ 한역본 316면, 319면 이하.; E. Schweitzer, Das Evangelium nach Matthäus, NTD, Göttingen, 1976, S. 30/ 『마태오복음』 [국제성서주석 29], 한국신학연구소. 1982, 61면. 예수가 시험받았다는 것은 마르코도 언급했고(마르 1, 12~13), 히브리서에도 반영되어 있다(히브 2, 184, 15).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의 소명에 대한 해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첫째 유혹은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경제문제이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것은 그 유혹이 '배고픔'이라는 현실을 배경으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5)여기에서 광야의 합비루가 배고픔의 유혹에 빠졌을 때 만나를 내렸다는 이야기(출애 16, 15~36)가 반영되어있다. 둘째 유혹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이다.6)여기에서 시편 91, 11~13이 작용하고 있다. 성전을 사탄과의 투쟁장소로 설정함은 예루살렘 중심의 메시아 표상과 관계있는 듯하다(E. Schweitzer, a.a.O., S. 34/ 한역본 67면). 이것은 권위(έξουσία)의 소재의 문제, 곧 권력의 문제이다. 즉 자신이 하는 일이 하느님으로부터 인정받았느냐의 문제이다. 세 번째 유혹은 유혹자에게 절하면 온 천하와 그 영광을 다 주겠다는 것이다.7)온 천하를 준다는 것은 유다교의 메시아관과 상통한다. 로마이어와 슈마우흐는 둘째 유혹과 셋째 유혹의 역사적 자리가 갈릴래아의 가난한 사람들의 전승이었다고 본다(LohmeyerSchmauch, Das Evangelium des Matthäus, Göttingen, 1967, S. 61). 이것은 문제해결의 방법, 즉 전략문제이다. 그런데 유혹자의 말에는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전제가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메시아를 뜻하는가? 불트만은 그 유혹의 내용이 특별히 메시아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한다.8)R. Bultmann, a.a.O., S. 272f./ 한역본 316면. 그러나 메시아적이라고 보는 이들도 많다.9)J. Schniewind, Das Evangelium nach Mattaus, NTD, Got tingen, 1956, S. 30. 그러나 어떤 메시아냐에 따라서 판단이 달라질 것이다.

이 질문은 예수의 공동체(처음 교회)와 예수시대에서도 가장 절실했던 현장적인 문제이다. 로마의 학정 아래 시달림을 받고 있던 이스라엘 민중의 기대가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있으며, 동시에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문제이기도 했다.10)슈바이처는 유혹사화의 세 문제가 유다 전쟁시에 실제로 현실적인 문제로 부각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공동체는 젤롯당의 프로그램에 대항하여 Q자료를 수집했고, 이 수집물의 맨 앞에 유혹사화와 세례자 요한의 회개 촉구를 놓았을 것이라고 본다(E. Schweitzer, a.a.O., S. 32 / 한역본 64면). 이 시험서술은 유다교 서기관적 문답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그렇다고 교리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결단을 필요로 하는 내용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가지 갈림길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예수의 뜻이 어떤 것이냐를 묻는 데서 해결의 길이 열린다. 이 이야기에는 '굶주림'과 관련하여 야훼가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 베푼 만나(manna), '메시아'의 통치,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날 그리고 짐승과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낙원을 향한 환상과 갈망 등 많은 편영(片影)이 반영되어 있다. 궁지에 몰린 힘없고 가난한 계층은 체념, 봉기 아니면 기적을 기다리는, 그 어느 것에 치우치게 된다.

어록전승과 마르코의 것은 전혀 다른데, 마르코전승도 원래는 이와 비슷했던 것이 축약되었으리라는 설도 근거있는 추측이다.11)J. Schniewind, a.a.O., 해당부문 참조. 이 시험은 예수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민중이 당면했던 유혹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많은 요소가 복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당시의 민중운동과 젤롯당의 관련도 무시할 수 없다.12)S. G. F. Brandon, Jesus and the Zealots, Manchester, 1967, p. 311ff.; M. Hengel, Die Zeloten, S. 315. 예수 당시 젤롯당운동은 메시아운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그런데 앞 마당에서 본 것처럼 젤롯당운동의 주동자들 중에는 메시아 또는 메시아운동가로 자처하면서 기적을 약속함으로써 민중을 모은 자들이 많다. 어떤 자는 구원의 표적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에 군중을 모았고,13)Jos., Ant., 20, 5. 어떤 자는 그리짐 산에서 기적을 행할 것이라고 해서 수없이 많은 군중을 모이게 했으며,14)W. Förster, a.a.O., S. 75f./ 한역본 148면 이하. 어떤 이는 모세가 홍해를 가른 것같이 요르단 강을 둘로 가르겠다 하여 군중을 모았다.15)Jos., Ant., 20, 97. 또한 예루살렘 성을 예리고 성을 무너뜨리듯 무너뜨리겠다고 호언하여 민중을 모이게 하고 저들을 선동했는데,16)Jos., Ant., 20, 169; Bell., 2, 261. 이때마다 수많은 이스라엘 민이 피를 흘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요세푸스는 이런 사실들을 "사기꾼과 협잡패들이 등장했는데 그들은 마치 신의 영으로 충만한 듯이 행동했으나 그것은 오직 폭동과 봉기를 일으키게 하기 위해서 군중으로 하여금 그들의 말에 현혹되게 하려 함이었다"17)Jos., Bell., 7, 438ff.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는 당시 민중의 열망과 실망이 동시에 반영되어 있다. 이스라엘 민중은 굶주렸다. 특히 클라우디오(Kaiser Claudius, 주후 41~45년 재위)시대에 한재로 무서운 기근이 휩쓸었다.18)갭은 텝두니스 파피루스(Papyri von Teptunis)가 주후 45년 가을의 기록적인 밀가격 폭등을 입증한다고 지적했다(K. S. Gapp, "The Universal Famine under Claudius", HThR, 28, 1935, pp. 258~265). 그 당시 밀가격 폭동은 나일 강의 범람으로 인해 추수에 타격을 받았기 때문에 나타났다고 한다(Jos., Ant., 3, 320-321; 20, 51ff101; Eus., His., II, 12, 1). 이때의 기근상태는 예루살렘 교인에게도 크게 영향을 미쳐 바울로가 주동해 안티오키아 교회를 중심으로 모금운동을 편 이야기가 있다(사도 11, 27~30). 당시의 통치자나 부호들은 헬라 등지로부터 식량을 구입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에 극렬한 민족주의자와 경건주의자들이 반발하였다. 외부로부터 원조 받는 것을 민족적 수치로 간주한 것은 젤롯당이며, 우상 앞에 바친 제물을 최대의 금기로 삼는 경건주의자의 눈에는 밖에서 받아들이는 양식이 우상 앞에 바쳤던 제물일 수 있다는 기우에서 이에 반대하였다.19)M. Hengel, a.a.O., S. 204ff. 이러한 틈바구니 속에서 '돌이 떡이 되게 하는 기적'을 열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착이다. 이 같은 기대가 메시아 기대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저들은 역광적으로 예수에게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기적을 고대하는 분위기는 이미 이른바 거짓 메시아운동가들의 선동에 반영되어 있다. 그처럼 기적의 약속에 민중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 당시 민중의 갈망을 반영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스라엘 민중은 그들의 민족사이야기에서 기적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으며, 또 당시를 휩쓴 민속신앙인 묵시문학적 전승도 그런 기대로 차 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예수운동에 가담한 민중은 예수가 행한 많은 기적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또 예수가 악마를 추방하는 이야기 그리고 무엇 보다도 광야에서 5천 명을 먹였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20)마르 6, 30~44. 그러므로 돌로 떡이 되게 하라는 요구나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져도 상하지 않는 권위의 실증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런 요구는 예수의 제자들에게도 그리고 자신들에게도 기대해봄직하다.

메시아에 대한 기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실천적인 방법의 문제였다. 즉 폭력으로 정면대결을 꾀하느냐, 아니면 정면대결을 피하면서 타협으로 실리를 추구하느냐, 혹은 하느님의 처분만을 기다리느냐, 그것도 아니면 다른 고차원적 대응방법을 모색하느냐 등의 문제였다.

젤롯당은 폭력으로 대결하기로 결정한 행동부대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실리적인 길을 택했다. 그래서 젤롯당과 바리사이파 사이에는 언제나 논쟁이 계속되었다. 그들 사이의 알력은 다음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갈릴래아 사람(젤롯당 사람을 가리킨다)이 바리사이파 사람에게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여, 내가 그대들을 고발한 것은 그대들이 이혼증서에 세상의 주권자 이름을 쓰면서 모세의 이름을 함께 쓰기 때문이다"라고 비판이유를 말했다. 이에 대해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갈릴래아의 이단자들아! 우리가 그대들을 고발하는 것은 그대들이 주권자의 이름과 함께 하느님의 이름을 쓰기 때문이다"21)M. Hengel, a.a.O., S. 58f.라고 응수한다. 이것은 출애굽기 5장 2절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러나 파라오는, '야훼가 누군데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내보내겠느냐?' 하며 거절하였다"는 말인데, 순서로 보아 파라오가 먼저 있고 야훼 이름이 나중에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22)Loc. cit.

바리사이파의 반박은 물론 궤변이다. 그들이 비록 출애굽기 5장 2절을 들고 있지만 바로 그 궤변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주권자와 타협하고 있음을 자인한 셈이다. 이것은 예수 이전부터 예수 당시에 이르기까지 자주 일어났던 일이다. 위에서 본 대로 마카베오의 요나단이 셀류커스와 싸울 때는 하느님만이 우리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는데 어느덧 그 싸움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프톨레매오 세력이 보내는 대사제복과 금관을 받았는가 하면,23)마카상 10, 15~21. 야손은 박해자였던 안티오쿠스 4세에게 은 440달란트를 주고 대사제직을 사기도 했고,24)마카하 4, 15. 또 히르카누스 2세는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형제와 경쟁하던 중, 예루살렘에 진격하는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에게 안에서 성문을 열어줌으로써(주전 63년) 대사제직을 따냈으나 그로써 민족을 로마에게 팔아먹는 결과를 가져왔다.25)A. H. J. Gunneweg, a.a.O., S. 166/ 한역본 276면; Jos., Ant., 14, 2, 4.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러한 전례가 있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응수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이스라엘 민중의 분노를 크게 샀는데 이러한 유혹은 당시에 상당히 만연되어 있었다. 그중 헤로데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로마에 추파를 보내 종주국으로 받들고 헬레니즘화를 꾀했을 뿐 아니라 이른바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를 통해서 세계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를 신봉했으며, 도시를 건설해서 로마황제의 이름을 붙이는 등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헤로데는 그의 지배의 판도를 다윗왕 때의 그것과 같은 것으로 넓히게 되었고, 또 유다와 예루살렘의 전통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유다사람에게 어느정도의 종교적 자유까지도 확보할 수 있게 해주었다.26)Bo Reicke, a.a.O., S. 74/ 한역본 113면. 이리하여 예루살렘파 사람들인 사제계급(사두가이파 사람들)과 장로들은 헤로데의 수완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들은 그의 체제의 그늘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쎄네파나 젤롯당 사람들은 반헤로데와 반예루살렘 운동에 철저히 투신하게 되었다. 이런 현장은 '하느님만'을 관철하느냐 아니면 '현실'에 타협하느냐를 결단지을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예수는 이 세 가지 시험을 물리쳤다. 이 거부를 곧 젤롯당의 방향을 거부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옳은가?27)S. G. F. Brandon, a.a.O., S. 311ff.; M. Hengel, a.a.O., S. 315. 만약 그런 판단이 옳다면 마지막의 경우는 '예루살렘파'를 거부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28)예수시대에는 거짓 예언자들이 기적을 행한다고 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킨 예가 많다. 사도행전 5장 36절에도 언급되는 튜다스(Josephus von Theudas)는 자기의 말 한마디로 요르단 강을 가른다고 하였고, 마술사 시몬(Simon Magus)은 공중을 날 수 있다고 호언했다(사도 8, 9~11). 따라서 이 두 가지 유혹들의 거부는 예수가 마술사가 아니라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변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 처리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처음 두 가지 유혹의 거부는 마술적인 것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그것은 그런 행동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배곯은 자가 빵을 달라는 것을 일축한 게 아니다. 떡으로만(mono)은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만'(only)에 대한 부정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을 경고한다. 이것은 젤롯당도 예루살렘도 동의해야 할 내용이다. 가난 때문에 물질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은 하느님이 어떤 위기에서도 구출하느냐에 대한 확증을 보기 위해서이다. 이에 대해서 그럴 수 있는 보장이 있다 또는 없다고 말하지 않고 그 자체가 바로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부한 것이다. 이 거부는 기적능력에 대한 부정도, 기적에 대한 기대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게 "거기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믿겠다"(마태 27, 42)는 것과 상통한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내려 오지 않은 것처럼 성전 꼭대기에서도 뛰어내리지 않았다.

세 번째 유혹의 거부는 젤롯당의 입장과 그대로 통한다. 젤롯당을 위시해서 탈예루살렘파들이 예루살렘파를 혐오한 것은 바로 저들이 어떤 외세와도 손잡고 자기보존을 꾀했기 때문이다. 헤로데 가는 바로 외세에 절하고 '천하'를 얻어 영화를 누리면서 실상은 이스라엘을 망친 전형적인 예이다. 하느님에게만 복종하고 그외 어떤 것에도 절할 수 없다는 것이 젤롯당의 신념이다. 예레미아스는 이 세 유혹이 모두 정치적인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물리친 것이라고 한다.29)J. Jeremias, Die Gleichnisse Jesu, Göttingen, 1970, S. 105f. 그가 '정치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모르나 그것이 적용된다면 세 번째 유혹일 것이지만 정치적 부정이란 맞는 말이 아니다. 이 유혹에 대한 극복은 바로 "가난한 자"(anawim)의 경건성을 표출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데30)W. Sattler, Festgabe für A. Jülicher, 1927, S. 10. 맨 처음 유혹의 동기인 굶주림을 빼면 그 어느 유혹이나 대답도 가난한 자와 연결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의 대답이 모세의 말로 된 것에 대해 단순히 그것이 라삐적 창작이라고 보거나 경건성을 표시한 것으로 보지 말고 모세의 이야기가 그 당시 민중에게 어떤 상을 심어주었는가를 고려에 넣어야 할 것이다.

모세는 처음부터 개인의 실존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인물로 등장하지 않고 '합비루라는 계층'31)구약에서는 합비루가 히브리로 불리는데, 그것은 본래 민족의 명칭이 아니라 계층의 명칭이다(W. Zimmerli, Grundriss der alttestamentlic hen Theologie, Stuttgart., 1972, Kap. 2/ 김정준 역, 『구약신학』, 한국신학연구소, 1988, 25면 이하); N. K. Gottwald, The Tribes of Yahweh : A Sociology of the Religion of Liberated Israel, 1250~1050 B.C.E., Maryknoll, 1979, pp. 401~409).의 해방자로 부각된다. 그는 에집트에서 합비루인 자기 동족이 받는 학대를 못 참고 저항하다가 쫓겨났고, 그 후 다시 그는 '해방자'의 소명을 안고 에집트에 들어갔다. 그때 그가 받은 뜻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내 백성이 에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 소리가 들려온다. 또한 에집트인들이 그들을 못살게 구는 모습도 보인다. 내가 이제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에집트에서 건져내어라(출애 3, 7~10).

이것은 하느님이 한 말로 되어 있으며 모세의 소명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민족의 비명 속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개인의 구원이 아니라 집단의 구원을, 영혼의 구원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 속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만일 예수가 응수했던 대답을 모세와 연결시킨다면, 예수는 모세처럼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자로서 소명을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마태오복음의 입장이다. 따라서 예수의 해방자로서의 소명은 정치경제적인 맥락(context)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의 소명과 공자의 그것은 비교할 수 있을까? 공자는 석가와는 달리 정치적인 소명을 띠고 활동한 사람이다. 공자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문에 게으르지 않았으므로 관직에 들면서 점차 승진했다. 『논어』에는 그의 내적인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간단한 자전적인 글귀가 있다.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삼십에 서고, 사십에 유혹을 받지 않게 되었고, 오십에 천명을 알게 되었으며, 육십에 귀가 순해지고, 칠십에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吾有十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耳順, 七十而從心於怒不足兪拒).

이것을 예수와 피상적으로 비교하면 서른 살에 "섰다"(立)는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예수가 섰다는 것은 학문이 섰다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뛰어든 것으로, 바로 '천명'(天命)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후 예수는 불과 일 년 내외에 죽었으니 공자가 말한 40~70세의 과정은 무의미하다. 문제는 천명이 무엇이냐인데, 공자가 말한 천명이란 싯다르타가 말한 '깨달음'(覺法悅)과는 분명히 다르다. 공자의 천명이란 정치현실과 직결된 것이다. 그는 중국의 분열을 슬퍼한 나머지 주(周)시대의 문물에 의하여 분열된 중국을 다시 통일시켜보고자 당시 할거했던 군주들을 모두 찾아다니면서 호소했다. 그것은 주나라 체제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것은 다윗왕조의 복귀를 전제로 한 이스라엘의 메시아사상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자는 봉건적인 왕조체제의 통일정치를 이상으로 했던 데 반해, 예수는 하느님의 주권을 수립함으로써 인간의 왕권을 끝내는 것을 그 궁극적인 목표로 하였다. 공자는 이러한 그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깨닫고 제자를 기르는 데 열중하다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 안연이 죽자 "하늘이 나를 버렸다"고 슬퍼했다.32)『論語』, 先進 八. 「噫! 天喪予! 天喪予!」 만년에 그는 기다리던 기회(때)가 끝내 오지 않자 하늘이 때를 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해버린다.33)『論語』, 先進 八.

공자는 그의 생애에서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외형적으로 보아 예수와 비슷한 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는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마지막에는 슬픈 최후를 보냈다. 그러나 예수는 공자처럼 관리를 양성하지도 않았고 정치적 엘리트를 기르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며 민중 편에 섰다.34)안병무, 「마가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앞의 책, 151면 이하. 결국 소명에 있어서 예수가 석가나 공자와 기본적으로 다른 것은 예수가 "세례자 요한이 죽은 후에 갈릴래아로 가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다"는 이 사실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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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를 움직인 여인들
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민중현실에 바탕을 둔 신학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한국 교회의 재래의 성서이해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전통적 성서해석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성서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할 뿐
    민중신학이 본 성서의 맥
민중 예수
    극복되어야 할 서구 신학의 그리스도론
    고난의 종 그리스도
    구원은 민중을 통해서 온다
    예수는 오늘의 민중현장에 계신다
    제도적 교회는 민중현장에 계신 그리스도를 포기
    민중사건은 예수사건이다
    ‘구원’은 물질적 언어로 표현되어야
    성령의 역할은 인류해방에 있다
민중의 하느님
    신이 죽었다?
    서구 신학의 신관(神觀)
    동양인의 신관
    성서는 신을 어떻게 말하나
    해방의 신
    성전종교의 포로가 된 신
    예수 이후의 하느님
    민중의 하느님
    하느님 사건의 전거
민중의 공동체 一 교회
    교회의 주인공은 민중이다
    예수공동체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였다
    생활공동체에서 예배공동체로 전락
    교회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민중신학이 꿈꾸는 교회상
    제도적 교회론을 넘어서자
    해방공동체 구현과 교회의 계층성 극복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기존의 죄이해는 교권을 강화시킨다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바울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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