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요한이 잡힌 후에 갈릴래아로 갔다. 그런데 그는 갈릴래아의 도시로 간 것이 아니라 농촌으로 갔다.1)G. Theissen, Soziologie der Jesusbewegung, München, 1977, S. 47. 우리는 이러한 지정학적인 데 관심을 가져왔다. 이런 관심은 역사의 예수를 좀더 가까이 알기 위해서다. 이것은 형이상학적 추구와는 길을 달리한다. 현재까지 서구에서 주도된 신학은 예수가 그리스도(예배의 대상)로 된 것에 모든 관심을 집중했다. 그것은 신학을 말씀의 신학이라고 보는 전제와 이와 관련해서 이른바 케리그마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과 함수 관계에 있다. 이른바 말씀이나 케리그마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의미이다. 사실(사건)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을 고정화해 버리면 도그마가 되고 만다.
케리그마 신학자들은 복음서 형성의 기본자료가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설교라고 보았는데, 그 설교란 역사의 예수의 행태나 말씀을 반복한 것이 아니라 설교한 예수가 누구 또는 무엇이냐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고 이해해 왔다. 그럼으로써 의미로서의 그리스도가 신학의 전부인 것처럼 되고 사실로서의 역사의 예수는 주변으로 밀려났다. 특히 슈미트(Schmidt)가 『예수의 말씀의 틀』2)K. L. Schmidt, Der Rahmen der Geschichte Jesu, 1919.이라는 책을 냄으로써 복음서에 있는 예수의 사건들을 예수의 단편적인 말씀들을 부각시키기 위한 보조적 가치 이상의 것이 없는 것으로 보고 예수의 사건들을 인정하지 않게 되었으며, 불트만은 이것을 아포프테그마라는 희랍문학 양식의 틀에 맞추어(디벨리우스는 파라디그마) 슈미트의 결론을 지지ᆞ발전시켰다.3)R. Bultmann, Die Geschichte der synoptischen Tradition, S. / 한역본 9면. 그럼으로써 그들에게는 역사의 예수는 무의미해지고 의미로서의 케리그마만이 성서학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케리그마를 형성하게 한 바탕이 되는 역사의 예수의 사건은 찾아낼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을 묻는 것은 불신앙이라고까지 단언했다(불트만).
왜 그래야만 했을까? 왜 복음서의 거의 전체를 차지하는 이야기들은 무시했을까? 그것은 이른바 학문의 세계에서는 이야기를 경시하는 풍조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내용 그대로는 지식사회에서 수용 되지 못한다는 인식이 작용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관념론에 사로잡힌 결과라고 판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예수를 찾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누구와 더불어, 누구를 위해, 어떤 사람을 상대로 싸웠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 첩경이다. 예수가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했는가를 묻는 것이 그 말의 생동하는 뜻을 파악하는 지름길이다. 말은 독백일 수 없다. 전달되지 않는 말은 말이 아니다. 그 말이 어떤 사람에게 전달되었는가를 아는 것은 그 말의 뜻의 반 이상을 아는 길이다. 말하는 자나 듣는 자는 상황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상황을 밝히면 그만큼 그 말의 뜻이 밝혀질 것이다.
예수는 은둔자가 아니다.4)에쎄네파와 세례자 요한파를 비교해보면 이 점이 뚜렷이 부각된다. 또 그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신비주의자로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방언(方言)을 말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형이상학적 철학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그러니 그의 동반자들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복음서는 처음부터 '홀로'의 예수를 소개하지 않고 '더불어'의 예수를 서술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람들은 그를 유아독존적 존재로 착각해 온 듯 그와 더불어 있던 사람들은 배제하고 그만 '홀로' 부각시켰다. 그와 더불어 있는 존재들을 인식했어도 한 초상화의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배경 정도로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역사성이 상실되었다. 우리는 역사의 예수를 추구하기 위해서 그와 '더불어'있던 사람들을 주목할 것이다. 단순히 그와 더불어 있기만 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그가' 더불어 산 이들이다. 그들은 누군가?
흔히 그리스도교는 박애주의라고 말하고, 예수는 모든 사람을 하나같이 사랑했던 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예수를 박애주의자로 규정하는 대표적 전거로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비추어주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마태 5, 45)라는 말을 예로 든다.5)이 말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지시의 거점이지, 하느님의 본질을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목자의 이야기(마태 18, 12~14)와 한 푼의 돈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를 쓴 여인의 이야기(루가 15, 8~10), 잃어버렸던 아들을 찾아 기뻐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루가 15, 11~32) 등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예수는 단순히 그런 내용의 전달자가 아니라 바로 그 실현자였다. 위의 이야기들은 반드시 잃은 자만이 아니라 잃은 자도 그렇지 않은 자들과 '더불어'라고 풀이하는 이들이 있다.6)이 본문은 14절 이하의 교훈에 비추어 해석해서는 안 된다. 14절 이하의 교훈은 전체에서 어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인데, 이 비유는 아흔아 홉 마리를 놓아두고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떠난다는 데 특수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 비유와 14절 이하의 해석을 연결시키는 경향은 슐라터 이후에 강해졌다(A. Schulater, Der Evangelist Matthäus, 1929, S. 552f.). 슈니빈트는 이 비유와 교회의 삶의 자리에서 형성된 14절 이하를 구별하지 않고 잃은 양을 교회 안의 죄인으로 간주함으로써 이 비유가 그 죄인들마저 수용하여 전체를 살려야 한다는 교훈을 제시한다고 본다(J. Schniewind, a.a.O., S. 299f).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그렇다면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 17)라든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태 11, 28)고 하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평안하고 안정된 사람이 아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을 구별하는데, 이러한 계층적 구분은 복음서 여기저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예수의 뜻을 가장 잘 나타낸다는 여러 비유들 가운데서 제사계급과 사마리아 사람(루가 10, 25 이하), 부자와 거지(루가 16, 19 이하), 원한에 찬 과부와 악한 재판관(루가 18, 1 이하), 바리사이파와 세리(루가 18, 9 이하), 기득권자와 거리의 떠돌이를 대립시킨다(루가 14, 15 이하). 루가는 특히 "들의 설교"에서 가난한 자와 부자, 우는 자와 웃는 자, 배곯는 자와 배부른 자, 멸시받는 자와 이름난 자를 뚜렷하게 대립시키고 있다(루가 6, 20 이하).
우리는 예수의 행태를 집약하는 두 가지 자료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는 예수의 공생애 출발의 첫 발언이 된 루가복음 4장 18~19절 내용이며, 또 하나는 예수가 "오실 그이 "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루가 4, 18)에게 자유를 주며 은혜의 해를 전하기 위해서 왔다는 선언에 대해 소경, 앉은뱅이, 문둥이, 귀머거리를 고치고, 가난한 자와 더불어 살며, 죽은 자를 일으키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그의 삶의 구체적 구현이라는 것이다. 이 둘은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공통된 것은 그가 상대한 이들이 의로운 자, 준법자, 진리를 위해 애쓰는 자 등 그 시대에 모범이 되거나 인정받는 그런 계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7)이와 같은 사실은 가난한 자와 가진 자의 공존을 중시하는 루가의 입장에서 특히 부각된다(안병무, 「가난한 자」,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 윤리』(현영학 교수 정년퇴임 기념논문집), 문학과지성사, 1986, 299~324면을 참조). 그들은 누구인가? 사회학적 개념으로 집약한다면 '민중'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민중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유다 사회의 전통에서부터 근원을 찾아보는 것이 순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