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집

전집은 OCR 스캔 잡업으로 진행되어 오탈자가 있습니다.
오탈자를 발견하면 다음과 같이 등록해 주시면 관리자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 수정 요청을 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2. 본문을 읽는 중에 오탈자가 있는 곳을 발견하면 앞뒤 텍스트와 함께 마우스로 선택합니다.
3. 그 상태에서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하여 나타나는 창에서 수정 후 [수정요청]을 클릭합니다.
4. 각주의 경우에는 각주 번호를 마우스오버하여 나타난 창을 클릭하면 수정요청 창이 열립니다.

※ 컴퓨터 브라우저에서만 가능합니다.
처형

처음에 예수의 수난을 그의 삶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예수의 마지막 수난, 즉 체포에서 처형까지의 이야기는 문서적으로 다른 이야기들과 구별되어 전승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에 따르면 그것은 마르코복음 14장부터 시작된다. 그것을 항목별로 크게 나누면 대개 아래와 같다.

예수를 죽일 음모가 구체화되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한 여인이 예수에게 향유를 부음으로써 그의 죽음을 기리는 이야기, 제자들과의 최후의 만찬, 가리옷 사람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의 배신, 게쎄마니 동산에서의 최후의 결단, 체포, 산헤드린에서의 심문, 빌라도의 심문과 사형선고 그리고 십자가 처형의 순서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각기 한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가 옴니버스적인 수난사를 형성한다. 그 과정은 자연스럽게 연속성을 잘 유지하고 있다.50)페슈는 수난사에 속하는 자료들은 그 이외의 자료들(1, 1~8, 26)과 달리 따로 독립돼 있지 않았던 자료들이었다고 본다(R. Pesch, a.a.O., II, S. 11). 또 이것이 문서화되기 이전의 민중의 구전적 증언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전제할 경우51)페슈는 그것이 보고투의 이야기와 해석투의 이야기양식이었다고 본다(R. Pesch, a.a.O., II, S. 22). 어느 한 마당만 끊어서 이야기되었을 리 없고 시종(始終)을 엮어서 전승했을 것이라고 볼 때, 그 단편성을 강조함으로써 그 연결성을 와해시키는 작업은 옳지 않다.52)불트만은 수난사의 개별자료들은 본래 상호연관성이 없는 자료들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자료들은 마르코 이전에 수난사의 틀 속에서 서로 연관성을 띠게 되었는데, 이러한 연관성을 형성시킨 동인이 바로 케리그마였다고 한다(R. Bultmann, a.a.O., S. 282/ 한역본 348면). 물론 그 사이사이에 있는 편집구 또는 후기 첨가부분을 인정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중 베드로의 배신이야기 같은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서 후기 교회에 의해 형성되었으리라고 볼 수도 있다.53)이것은 베드로의 배신에 관한 전승아 독자적인 전승이었다고 보는 견해이다(R. Bultmann, a.a.O., S. 301/ 한역본 339면; M. Dibelius, Formgeschichte., S. 215f.). 그러나 페슈는 이 단화가 오래 된 수난설화의 문맥에 연결 되어 있었다고 본다(R. Pesch, a.a.O., II, S. 446). 그러나 게쎄마니 동산에서의 결단이야기가 요한복음에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하나의 동화라고 가볍게 결론지어 배제하는 자세54)R. Bultmann, a.a.O., S. 288f/. 한역본 336면 이하. 따위는 옳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는 각 마당을 점검하지 않고 누가, 왜 예수를 처형까지 몰고 갔는지 우리의 관심을 제한하여 집중해 보려고 한다. 마르코복음은 유월절과 무교절 이틀 전에 예수를 잡아 죽일 모의를 꾸몄다고 보도하는데(14, 1), 이것은 11장 18절과 연결되어 있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숙청한 행위를 그를 죽이려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 구체적인 계기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예루살렘 성전을 '숙청'한 것은 그 구체성에 대한 물음을 유보할 경우에 그 누구도 부정하는 이가 없다. 이 행위는 그 당시 민중 운동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당시에 젤롯당이나 에쎄네파 등은 물론 갈릴래아 민중의 반예루살렘 감정은 고조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미 위에서 서술한 예루살렘의 성격 자체 때문이었다. 특히 젤롯당은 마카베오 전쟁에 참가한 하시딤의 정신을 계승하여 예루살렘으로 진격, 그 숙청을 일차 목표로 삼고 있었다. 예수는 바로 이러한 민중의 투쟁선상에 선 것이고, 그것이 예루살렘 진입과 '성전숙청'이라는 행위로 구체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처형된 계기는 '성전숙청' 때문만이었을까? 성전숙청 때 예수가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의 집이 되어버렸기 때문에(11, 17) 거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매매행위를 추방한 것이라면 그것은 종교개혁적인 열정 이상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위에 대항한 사람들은 유다 종교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존의 귀족층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를 죽일 음모를 구체화한 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라고 지목한 것은 이에 상응한다. 그러면 왜 저들은 예수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살인까지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을까? 예수의 주장은 그들이 예언자로 높이 받드는 예레미야의 말로서(7, 11) 그것 자체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 사람들의 추측대로55)S. G. F. Brandon, Loc. cit. 예수가 민중의 힘을 빌려 그 일을 결행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해야 할까? 그것의 진상이 어떠하든간에 예수의 행위가 예루살렘 성전체제를 근본적으로 와해하는 위협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예수의 과격한 행위를 완화시켜 해명하는 말들은 본래적인 사건을 종교개혁적인 것으로 변칙시킨 전승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에 요한복음은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2, 19)는 말을 첨가한다. 그런데 그 말의 후반부를 빼면 마르코에도 같은 뜻의 말이 전해진다. 성전의 크기에 대해서 경탄하는 제자들에게 "이 큰 건물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포개 놓이지 않고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13, 2)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 말이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 교회에 의해 추가된 말이라는56)E. Lohmeyer, a.a.O., S. 268; J. Gnilka, Mk, II, S. 184/ 한역본 245면; R. Pesch, a.a.O., II, S. 271; Dieter Lührmann, a.a.O., S. 218 참조. 이들은 모두 예수의 이 말이 사후예언으로 추가되었다고 본다. 속단에 대해서 그것을 예수가 성전에서 행한 행위의 근본취지로 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57)이것은 저주받은 무화과나무가 "뿌리까지 말라버렸다"(마르 11, 20)는 말을 성전체제와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과 맥이 통한다.

젤롯당을 위시한 반예루살렘운동은 하시딤처럼 성전에 대해서는 개혁파의 입장에 섰다. 그 점에서는 바리사이파도 비록 체제 안에 있었으나 다르지 않았으며, 예언자들 중에서 이런 입장에 선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예수를 유다교 개혁파로 단정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58)G. Theissen, Soziologie der Jesusbewegung, 제1장 참조. 그 이유로 다음 몇 가지 조건들을 지적할 수 있다. ① 예수의 종말의식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성전의 개혁 따위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대 율법관계나 윤리관계에서 보는 대로이다. ② 정결법논쟁에서 보여준 대로 그는 의식종교의 중심인 성전의 기능을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③ 예수의 행태에 성전의 위치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 나라의 도래 앞에서 예외없는 전체의 회개만을 구원의 조건으로 주창한 것처럼, 회개를 내세움으로써 율법과 함께 성전종교의 속죄권 독점 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성전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한 것이며, 바로 그것이 유다 지도층의 살의(殺意)를 구체화하게 한 것으로 봄이 옳다.

그러면 로마는 왜 예수 처형에 가담했을까? 예수의 행태가 단지 예루살렘 체제의 부정에 있었다면 로마제국의 이해관계와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로마제국은 민심을 얻기 위해 단순히 피동적으로 추인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은 무엇보다도 빌라도의 사람됨 때문에 배제된다. 빌라도는 오만성과 잔인성 특히 유다 민중에 대한 멸시로 유명한 사람인데59)둘째 마당 '예수의 시대상'을 참조. 그가 자주적 판단 없이 추인만 했을 까닭이 없다. 거기에 대하여 무엇보다도 예수의 죄명을 유다인의 왕이라 한 것과 그를 식민지 정치범에게만 적용하는 십자가에 처형했다는 사실 자체가 로마제국의 독자적 결정임을 시사한다. 그러면 이 두 세력이 어떻게 야합할 수 있었을까? 예루살렘 성전체제에 대한 부정이 십자가처형의 조건이 될 수 없으며,60)로마형벌인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사람들은 대역죄를 범한 폭도, 탈영한 군인, 성전강도 등의 중죄인들이었다. 더욱이 그런 행태에서 유다인의 왕이라는 죄목을 유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양쪽의 공동이해관계에서 볼 때 남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민중 소요로 인한 현체제 전복에 대한 불안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추측을 확인하기 위한 어떤 단서를 예수에게서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예수가 왜 예루살렘에 진입했나 하는 물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마르코복음은 예루살렘 진입과 거기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예비적 과정을 차근차근 보도하고 있다. 예루살렘 입성, 예수의 죽음과 관련시킨 한 여인의 기름 부은 이야기, 게쎄마니 동산에서의 결단들이 '성전숙청'사건과 연결된다. 이런 것을 마르코 기자 자신의 편집적 소산으로 취급해 버림으로써61)불트만 이래 수난사는 마르코 이전의 여러 가지 단편들이 수집, 편찬된 것이라는 견해가 널리 퍼졌다. 이런 관점에 서면 마르코의 보도에서 수난사의 역사 성을 끌어내는 것 자체가 부정될 수밖에 없다. 산헤드린에서의 재판과정에 대한 마르코의 보도(14, 55~64)가 마르코 15, 1의 이차적 확대로 보는 데서 이와 같은 관점이 극단화된다(R. Bultmann, a.a.O., S. 290/ 한역본 339면 이하). 이렇게 보게 되면, 예수의 재판과 처형의 필연성은 설명할 수 없고, 그 사건 자체의 우연성만이 부각될 뿐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는 예수의 처형이 우발적 사건이었으리라고까지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것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 연례적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고 최후결전의 때와 장소를 설정한 것이라는 중요한 기록으로서 마르코복음 10장 32절을 들 수 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예수께서 앞장서서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놀랐고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이 역사적 현장을 그대로 서술한 전기적 단편임을 의심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62)이 구절이 예루살렘을 향한 행진 때의 가슴 답답한 상태에 대한 수난사 전승자들의 회상이라는 것을 배제하지 않은 점에서 페슈의 견해는 정곡을 찔렀으나(R. Pesch, a.a.O., II, S. 150), 이를 단순히 감탄의 모티프와 직결시킨 것은 옳지 않다. 이 답답한 상황은 예루살렘을 향한 행진의 엄숙한 성격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도상에서 이방인(로마제국) 통치체제를 비판한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사람들의 집권자로 알려진 사람들은 백성들을 강제로 지배하고 또 고관들은 세도를 부리고 있다"(42절)는 말과,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예루살렘적 메시아사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다윗 자신이 그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12, 37)는 말 등은 예수의 예루살렘 진입 목적을 암시한 중요한 자료들로 보인다.

예루살렘의 성전 중심체제는 그 자체로서 야훼신앙을 부패하게 하고 유다 민족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고 그 위에 군림할 뿐 아니라, 로마제국의 유다 민족에 대한 압박과 착취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을 상기하면 예루살렘 성전체제의 부정은 바로 로마로부터 민족해방을 위한 일차적 과제가 된다. 예수의 예루살렘 진입과 성전숙청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예수운동의 구체적 양상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그것은 '성전숙청' 행위가 단순히 상징적인 것이었는가, 아니면 민중봉기운동의 일환이었는가? 후자를 견지하는 입장은 성전의 구조나 조건으로 보아 성서에 서술된 대로 예수 한 개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전제하고, 그것은 분명히 많은 민중에 의해 거사된 것이라고 보려는 것이다.63)S. G. F. Brandon, a.a.O., S. 333. 예수가 그의 거사일을 해방절로 선택한 것도 바로 민중봉기를 목표로 한 것이라 본다. 그러나 복음서 기자들은 그런 상상의 단서를 주지 않는다. 어쩌면 예수의 비판적 자세가 민중들에게 파급되어 약간의 충돌이 있었을 수도 있다. 가령 베드로가 체포의 장에서 칼을 썼다는(마르 14, 47) 보도가 그러한 상황이 와전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어떤 것이었든지간에 그리 중요하지 않다. 까닭은 예수운동은 일단 투쟁으로서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남는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예수는 예루살렘 체제를 철저히 거부하되 죽음에 이르기까지 했다.'

끝으로 수난사 구도에 나타난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그것은 수난사 전체가 어떻게 그토록 무신적 분위기로 일관되었나하는 것이다. 게쎄마니에서 골고다에 이르는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도 신의 개입은 없다. 그는 신 없는 현실에서 철저히 패배당하는 약자로서 서술 되었을 뿐이다. 유다 민족 일반은 물론이고 그의 소수의 제자들마저 배신하여 도망하며, 그중 하나는 예수를 모반한다. 마침내 하느님마저 그를 버린 현장이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 34)하는 비명은 그가 철저히 버림받은 자라는 사실을 잘 나타낸다. 불의가 판을 쳐도 어떻게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죽어 가는 예수! 갈릴래아에서 그토록 초인적으로 서술된 그를 어떻게 이렇게 초라하게 서술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다음 마당에서 시도해 보려고 한다.


List of Articles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2) 잃은 돈 찾은 여인
    3) 돌아온 아들의 아버지
3. 가치의 전도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4) 말만 하는 자와 실천하는 자
    5) 자신을 철저히 비운(空) 자
4. 집요한 투쟁(간구)
    1)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2) 닫힌 문
    3) 빚진 자의 엉뚱한 마무리
    4) 한 과부의 투쟁
    5) 친구를 위한 투쟁
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2) 그물 안에 든 고기
    3) 심판과 맡은 분깃
    4) 심판과 대비
    5) 너무도 어리석은 부자
    6) 한 부자와 거지
    7) 뜻밖의 심판의 기준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를 움직인 여인들
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민중현실에 바탕을 둔 신학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한국 교회의 재래의 성서이해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전통적 성서해석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성서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할 뿐
    민중신학이 본 성서의 맥
민중 예수
    극복되어야 할 서구 신학의 그리스도론
    고난의 종 그리스도
    구원은 민중을 통해서 온다
    예수는 오늘의 민중현장에 계신다
    제도적 교회는 민중현장에 계신 그리스도를 포기
    민중사건은 예수사건이다
    ‘구원’은 물질적 언어로 표현되어야
    성령의 역할은 인류해방에 있다
민중의 하느님
    신이 죽었다?
    서구 신학의 신관(神觀)
    동양인의 신관
    성서는 신을 어떻게 말하나
    해방의 신
    성전종교의 포로가 된 신
    예수 이후의 하느님
    민중의 하느님
    하느님 사건의 전거
민중의 공동체 一 교회
    교회의 주인공은 민중이다
    예수공동체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였다
    생활공동체에서 예배공동체로 전락
    교회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민중신학이 꿈꾸는 교회상
    제도적 교회론을 넘어서자
    해방공동체 구현과 교회의 계층성 극복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기존의 죄이해는 교권을 강화시킨다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바울로는?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위로
텍스트를 수정한 후 아래 [수정요청] 버튼을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