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집

전집은 OCR 스캔 잡업으로 진행되어 오탈자가 있습니다.
오탈자를 발견하면 다음과 같이 등록해 주시면 관리자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 수정 요청을 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2. 본문을 읽는 중에 오탈자가 있는 곳을 발견하면 앞뒤 텍스트와 함께 마우스로 선택합니다.
3. 그 상태에서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하여 나타나는 창에서 수정 후 [수정요청]을 클릭합니다.
4. 각주의 경우에는 각주 번호를 마우스오버하여 나타난 창을 클릭하면 수정요청 창이 열립니다.

※ 컴퓨터 브라우저에서만 가능합니다.
부활이야기 분석

먼저 예수의 죽음 이후에 이어지는, 마르코복음의 기록을 중심으로 하여 복음서들의 부활증언을 분석해보자. 마르코의 전승내용(마르 16, 1~8a)은 극히 간단한데,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막달라 마리아를 위시한 세 여인이 예수가 처형되어 매장된 지 사흘만에 무덤으로 찾아갔다. 저들은 예수의 몸에 바르려고 향유를 가지고 갔다. 그런데 무덤에 이르렀을 때 저들은 무덤을 막아놓은 돌이 굴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무덤 안에 들어갔을 때 한 청년이 있어 이렇게 말했다.

놀라지 마라. 그대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찾고 있지만 그는 일어났고8)새번역에는 "다시 사셨고"로 되어 있으나 원문은 ήχέρθη로서 현재완료시제이다. 여기 계시지 않다. 보라 여기가 그를 모셨던 곳이다.9)시체라는 말은 원문에 없다. ίδε ό τόπος όπον έθηκαν αύτόν. 그대들은 지금 제지들과 베드로에게 가서 전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는 그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니 거기서 그를 뵐 것이라고 전하라.10)마르코는 16장 8절a에서 끝나고, 그 이하는 후대의 첨가인데 우리 성서(개역성서)도 이 부분을 괄호안에 넣고 있다. 여인들은 놀라 정신없이 무덤에서 나와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서워서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마르 16, 6~8).

우리는 이 짧은 보도의 성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갈릴래아에서 만나자고 했으면서도 거기서 만나는 장면을 보도하지 않는다. 이른바 현시전승(顯示傳承)이 전해지지 않는다.

2. 그런데 마르코는 예수가 부활하리라는 사실을 대전제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며11)마르 8, 31b9, 32b10, 34b를 참조. 갈릴래아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은 갈릴래아의 현시를 알고 있었음을 전제한다. 부활신앙과 빈 무덤 설화를 결부시킨 것은 마르코복음서에서 연유한다. 마르코복음서를 따른 복음서들 외에는 그 어디에도 부활증언과 빈 무덤 이야기를 결부시킨 데가 없다.12)복음서 이외에는 사도행전에도 서간들에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3. 빈 무덤의 증언자는 여인들뿐이다. 그런데 기록으로서는 이것보다 훨씬 먼저 형성된 이른바 공적인 부활 케리그마(고전 15, 7)에는 게파를 위시한 사도들이 부활사건의 목격자로 나타나고 여인들의 이야기는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무덤에서 저들은 부활한 예수를 만나지 못한 대신 한 사자를 통해 갈릴래아에서 비로소 부활사건을 체험할 것이라는 사신(使信)을 전달받는다.

5. 그런데 여인들은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죽음 후에 일어난 사건증언의 전부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제기한다. 왜 이 증언은 한 청년의 메시지만을 전하고 그것이 실현되는 현장보고를 하지 않았을까? 왜 부활의 사건이 그가 처형된 예루살렘에서 일어나지 않고 갈릴래아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가? 여인들은 왜 그 청년의 지시(마르 16, 7/ "전하라")에 응하지 않고 침묵했다고 하는가? 이 전승은 그 다음의 사건들이 새로운 마당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제한 듯하다.

이 자료를 전수받은 그외의 복음서들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펼치는데, 그 묘사는 다양하며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마르코의 전승을 약간씩 수정하기도 한다. 마태오는 갈릴래아에서 만나자는 사신을 받아 갈릴래아에서 만난 것을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마태 28, 16~20). 열한 제자가 갈릴래아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에서13)마르코에는 없는 내용으로 어쩌면 마태오는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될 때 첫 설교를 했던 바로 그 산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부활한 예수를 만나뵙고 그에게 엎드려 절을 했더니 부활한 그 예수는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8~19)라고 말한다. 이 내용은 이미 공교회화(가톨릭화) 되어가는 교회의 자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은 교회, 이것은 마태오적인 교회관으로 마태오복음서 앞부분에서 이미 그리스도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예수가 했다는 말(마태 6, 18~19)에 반영된 그대로이다. 그 당시에는 이미 이방 선교가 기정사실화되고, 성례전이 규정되었으며, 교권이 정립되기에 이른 것이다.14)사도권 주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마태오는 예수에게서 이와 같은 권한을 받은 수권공동체 자체가 바로 부활한 예수의 실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르코의 내용을 약간씩 수정한다. 여인들이 무덤으로 찾아갈 때 향료를 바르려고 들고 갔다는 것을 삭제한 것이라든지15)이것은 팔레스틴 기후를 잘 알고 있던 기자가 부패한 시체에 향유를 바르는 것의 비현실성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묵시문학적 서술을 가미한 것(마태 28, 2~3), 곧 청년을 천사로 바꾼 것,16)이것은 부활한 현장이 그 무덤인데 아무것도 못 보았다고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끝으로 무덤현장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는 것(마태 28, 9), 나아가 여인들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했다는 보도를 "여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급히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려고 달리기 시작했다"(마태 28, 8)는 내용으로 대체한 것 등이 바로 그 예이다.

이에 반해 루가에서는 그 이야기가 훨씬 다르게 진전되고 있다. 빈 무덤을 목격한 이야기는 '한' 사자가 '둘'로 바뀐 것(루가 24, 4) 외에는 대체로 마르코의 그것과 같다. 그러나 그 사자의 말은 "갈릴래아로"가 아니라 "갈릴래아에서 한" 말로써 예수의 고난예고를 상기시켰고, 이 말을 둘은 여인들이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와서 말했는데, 대부분이 여인들의 말을 믿지 않고 베드로만이 달려가서 빈 무덤을 확인했다고 한다(24, 12). 그리고 이와 별도로 엠마오로 가는 익명의 두 제자가 도상에서 한 나그네와 떡을 나누는 순간 부활한 예수를 경험한 이야기(루가 24, 13~35; 특히 30~32절)와, 열한 제자에게 유령처럼 나타난 부활의 예수가 자신은 유령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몸을 보이고 음식을 나눈 다음에(루가 24, 40~42) 자신의 고난과 부활은 이미 구약에서 예언된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치면서(루가 24, 44~46),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므로 너희는 위에서 오는 능력을 입게 될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 있으라"(24, 27~49)하고 하늘로 올랐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이마 케리그마화한 교회의 교의를 볼 수 있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고전 15, 3~4)라는 내용이 이미 기록되어 있었다. 이것은 예수에 대한 교리가 경전화되어가고 있는 흔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17)사람들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라는 어구를 이사 52, 13~53, 12 혹은 시편 118, 22; 신명 21, 22 등등과 관련시키려고 하나 그 어느 것도 가당치 않다(C. K. Barrett,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ENC), LondonWorcester, 1971, p. 338/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 『고린토전서』, [국제성서주석 35], 한국신학연구소, 1985, 388면 이하 참조). 그리고 부활한 예수가 직접 말하면서 나의 이름이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된 것은(루가 24, 47a) 이런 고백문이 이미 있는 것을 인용했다는 뚜렷한 흔적이다. 그런데 루가는 마태오와는 달리 이미 교권화된 교회를 말하지 않고 이제 성령을 받음으로써(펜타코스트) 부활사건의 실체로서의 갈릴래아 민중운동이 조직적으로 일어날 것을 지시하고 있다.18)사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야기는 그리스도교회가 예루살렘에 조직되는 이야기이지만, 그 내용은 갈릴래아 민중운동조직이 공적으로 선언, 인정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요한복음에서도 수난사만은 그 골격에서 공관서와 여러 가지로 병행되었는데, 부활에 대한 기사도 공관서와 같은 자료를 사용했거나 아니면 그중 어느 한 복음서에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19)C.K. Barrett,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p. 560f./ 한역본 『요한복음 II』[국제성서주석 32. 2], 466~467면. 바레트는 빈 무덤 이야기와 막달라 마리아에게 현시한 이야기를 요한이 결합했다고 보고, 특히 여기에는 마르코의 영향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요한복음에서도 여인(들)이 부활경험의 첫 목격자로 되어 있다. 단 막달라 마리아만 거명한다(요한 20, 1). 무덤의 돌이 옮겨졌다는 것도 마르코와 같다. 그러나 어떤 청년과의 만남 이전에 베드로와 또 한 사람, 이른바 사랑하는 제자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그들과 더불어 무덤에 가서 시체가 없어진 것을 확인한다(20, 2~4). 그후 그 제자들은 가고 마리아만이 무덤 밖에서 울고 있을 때 두 천사가 나타난다(20, 11~12). 그러나 그 천사들에게서 어떤 메시지를 받는 대신 현시한 예수를 만난다(20, 14). 당황한 여인이 그에게 다가서려고 하자 그는 "나를 만지지 마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내 하느님 곧 너희의 하느님께로 울라간다고 말하라"(20, 17)고 하여, 여인은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한다(20, 18). 그 다음 제자들이 함께 모인 데서 두 번 나타나는데, 그 첫 현시에서 저들은 마태오복음서에서와 비슷한 지시를 받는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으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20, 21).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여주면 사하여질 것이고, 사하여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20, 22~23). 요한복음서에서는 부활한 예수가 유령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은 루가와 같은데 그 표현은 훨씬 강렬하다. 제자들에게 상처 입은 두 손과 옆구리를 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토마의 이야기를 등장시켜 그의 상처들을 만지라고 함으로써 육으로서의 부활을 강조한다(요한 20, 24~27). 그러나 부활이 운동적인 사건으로 실현되는 것은 그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세상으로 보냄을 받음으로써 시작되는데, 그 과제는 사람들을 죄로부터 해방시키는 전권이 부여되었다는 것(20, 23)으로 집약된다. 끝 부분의 것을 제외하면 마태오의 것과 병행하나 성령을 받는다는 것과 세상에 보낸다는 것은 그의 결별설교에서 밝혀진 내용이다(16, 7). 죄를 사하는 권한을 주었다는 것은 루가복음 24장 47절과 상통 하나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단서도 빠져 있고, 죄 사할 권한을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전권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은 부활과 예수의 뒤를 아은 공동체운동의 전개와 그 내실을 표현한 것임이 틀림없으나 마태오에서 보는 것같이 공교회의 교권을 바탕으로 하는 집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List of Articles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2) 잃은 돈 찾은 여인
    3) 돌아온 아들의 아버지
3. 가치의 전도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4) 말만 하는 자와 실천하는 자
    5) 자신을 철저히 비운(空) 자
4. 집요한 투쟁(간구)
    1)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2) 닫힌 문
    3) 빚진 자의 엉뚱한 마무리
    4) 한 과부의 투쟁
    5) 친구를 위한 투쟁
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2) 그물 안에 든 고기
    3) 심판과 맡은 분깃
    4) 심판과 대비
    5) 너무도 어리석은 부자
    6) 한 부자와 거지
    7) 뜻밖의 심판의 기준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를 움직인 여인들
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민중현실에 바탕을 둔 신학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한국 교회의 재래의 성서이해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전통적 성서해석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성서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할 뿐
    민중신학이 본 성서의 맥
민중 예수
    극복되어야 할 서구 신학의 그리스도론
    고난의 종 그리스도
    구원은 민중을 통해서 온다
    예수는 오늘의 민중현장에 계신다
    제도적 교회는 민중현장에 계신 그리스도를 포기
    민중사건은 예수사건이다
    ‘구원’은 물질적 언어로 표현되어야
    성령의 역할은 인류해방에 있다
민중의 하느님
    신이 죽었다?
    서구 신학의 신관(神觀)
    동양인의 신관
    성서는 신을 어떻게 말하나
    해방의 신
    성전종교의 포로가 된 신
    예수 이후의 하느님
    민중의 하느님
    하느님 사건의 전거
민중의 공동체 一 교회
    교회의 주인공은 민중이다
    예수공동체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였다
    생활공동체에서 예배공동체로 전락
    교회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민중신학이 꿈꾸는 교회상
    제도적 교회론을 넘어서자
    해방공동체 구현과 교회의 계층성 극복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기존의 죄이해는 교권을 강화시킨다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바울로는?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위로
텍스트를 수정한 후 아래 [수정요청] 버튼을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