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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의미

이상에서 부활현실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볼 수 있다. 마르코복음의 간단한 내용, 즉 빈 무덤 경험을 전제로 하는 데는 공통되나 예수의 부활 자체를 풀이하는 데는 각기 독자성을 갖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1. 마르코복음에서 빈 무덤 이야기는 예수는 죽어서는 안 되고 죽을 수 없다는 예수의 민중의 요청적 신념과 뗄 수 없는 경험인데, 무엇보다도 불의한 권력에 의해 살을 찢기고 피를 흘려 죽인당해 묻힌 바로 그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염원이 일관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20)이 이야기가 고전 15, 4 "무덤에 묻혔다가"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그닐카의 주장(J. Gnilka, Mk, II, S. 339/ 한역본 448면)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여인들의 이야기가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위에서 말한 민중의 염원은 주전 3세기에서 2세기로 접어드는 시기에 등장했다. 이 영원은 다니 12, 2~3을 거쳐 마카베오시대로 전해졌다. 부활 신앙은 점차적으로 더욱 고정된 형식을 취했고 보편성을 확보해나갔다. 에녹 51, 1~3을 보면, "그날이 오면 땅에 모인 사람들이 땅을 되돌려줄 것이요, 셰올은 받아들인 모든 것을 되내어줄 것이다. 음부는 되갚아야 할 것을 끌어내어줄 것이다. 선택받은 사람들은 그날이 오면 나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이 염원의 밑바닥에는 민중의 억울한 죽음이 깔려 있다(D. W. Bousset, a.a.O., S. 270f.). 이것은 불의한 세력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며 시위이다. 어떤 불의한 세력도 그의 가는 길을 막을 수 없다는 뜻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어 무덤에 묻힌 그와 다른 어떤 존재가 아니라 그렇게 힘없이 참패했다고 보이는 바로 그가 본래의 존재양식대로 살아나야 한다는 염원이 일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사건을 객관적 사건으로 파악하려 해본다면, 그 사건을 시위하려는 의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예수가 현시하는 장은 어디까지나 이미 그의 편에 섰던 그의 민중일 뿐이다. 그 사건이 시위적인 것이라면 무엇보다도 그를 처형한 빌라도와 예루살렘 지배층에 현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흔적도, 의도도 없다. 그 점에서는 고린토전서 15장 3~7절의 부활 케리그마도 같다.

3. 그러나 네 복음서 어느 것도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그 다음부터 전개될 부활사건에 눈을 돌리고 있다.21)특히 마르코의 빈 무덤 이야기의 끝이 사실상 열려 있음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마르코에서 갈릴래아에서 만나자고 한 것은 처형 이전의 '갈릴래아의 봄'22)이것은 르낭의 말로 갈릴래아의 공생애가 가장 순탄했으며, 민중과 더불어 사는 삶이 뿌리를 내렸다는 뜻이다.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 아니고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사건을 전제한 것이며, 마태오나 루가 그리고 요한까지도 그 다음에 전개될 예수공동체의 향방을 부활사건의 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만일에 과거지향적인 면이 다소라도 있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복수하는 행태를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줄 것인데, 그런 흔적은 전혀 없다.

4. 예수의 부활사건이 공동체적으로 구현전개된다는 입장은 같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관심은 부활한 나자렛 예수의 향방에 중심이 있지 않고 공동체의 진로에 관심을 쏟는 것이다. 공동체의 진로는 각기 그 역사적 상황에 있어서 다르다. 따라서 현시사건의 내용이 그렇게 다른 것이다. 이것은 저들이 빈 무덤사건에 고착화되지 않고 부활사건을 자율적으로 이해하고 풀이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런 성격은 사도행전 서술에서 잘 드러난다. 사도행전은 한마디로 예수 부활사건의 구체적 확산이다. 120명 정도의 예수의 민중들과 그들 앞에 선 제자들은 그렇게 비겁하고 무능하여 예수를 배신하고 뿔뿔이 도망쳤으나 일변하여 부활한 예수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저들은 공포와 죽음까지도 극복한 집단으로 전진할 따름이다. 저들은 예수가 부활했다고 증언함으로써 자신들이 부활한 것이다(사도 2, 32~33). 그러나 부활사건에 대한 고백의 또 다른 흐름이 있다. 그것은 이른바 부활 케리그마이다. 이는 복음서 이외의 자료로서 부활했다는 사실(Dass)만이 아니라 누구에게 현시했느냐를 기록한 유일한 자료다. 고린토전서 15장 3절 이하에서 바울로는 이것을 전해받은 가장 중요한 것이라 전제하고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ύπέρ τώνάμαρτιών ήμών)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신 것과 성서에 기록 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일입니다. 이리하여 게파에게 나타나 보이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는데 그중에 더러는 세상을 떠났으나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의 사실적인 기록이라고 볼 때 우선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복음서의 그것과 전혀 다르거나 새로운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복음서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여인들의 부활증언이 빠져 있다. 그리고 500명에게 현시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며, 주의 형제 야고보에게 현시했다는 것은 공관서의 맥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23)복음서에서는 예수에 대한 찬척들의 태도가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마르 3, 214, 31~35). 이러한 나열들은 민중전승을 억누르는 위치에서 이루어진 인위적인 배열임에 틀림없다.24)H. Conzelmann, Der erste Brief an die Korinther(K. Meyer), Göttingen, 1981, S. 303은 바로 이런 전제 위에 선다. 그것은 바로 교권적인 위계질서의 반영이다.

게파라고 부르는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미 대표성을 일찍 확립하였고, 이른바 주의 형제 야고보는 사실상 실력자로 군림하고 있었다.25)사도 1, 1412, 1715, 13 등. 사도 12, 17과 관련해서, 베드로는 자신의 부재시를 대비하여 야고보를 자신의 대리자로 임명했다고 해석하기도 하고(G. Stählin, Die Apostelgeschichte, NTD, II, Göttingen, 1976, S. 169f.), 베드로가 결국 야고보에게 공동체 지도권을 넘겼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갈라 2, 7에서는 야고보가 게파와 요한보다 먼저 언급되고 있으며, 예루살렘 교회에서 "기둥처럼 존중히 여김"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H. D. Betz, Galatians. A Commentary on Paul’s letter to the Churches in Galatia(Hermeneia), Philadelphia, 1979, p. 99f./ 김홍수 역, 『갈라디아서』, [국제성서주석 37], 한국신학연구소, 1987, 233면 참조. 공관서에는 예수가 처형된 후의 사도들을 하나같이 열한 제자라고 한 데(마태 28, 16; 마르 16, 14; 루가 24, 33) 비해 여기서 열두 사도라고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의 반영보다 사도권이라는 권위가 관철된 것을 나타낸다.26)불트만은 "12제자"라는 표현에서 "신자들= 종말적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의 관념이 드러난다고 본다(R. Bultmann, Der erste Brief an die Korinther, Göttingen, 1969, S. 303, 각주 78). 그러나 이보다는 사도권이 매우 일찍부터 교회 안에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교회가 매우 급속하게 교권화되었고 이 교권의 핵심이 사도권이었다는 것은 이마 갈라 2, 8에서 엿볼수 있다.

이 부활사건이 그의 수난과 깊은 관계가 있으나 그가 어떻게 누구에게 죽었느냐는 말 대신 "성서에 기록된 대로"라는 말로 처리한 것처럼, 그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부활했다는 사실 지적에는 관심도 없다. 더욱이 이런 전승에 더해 바울로도 자신을 부활사건 목격자의 반열에 놓음으로써 부활성격의 초시간적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바울로는 이 같은 예수의 부활 케리그마의 바탕 위에서 인간의 미래(부활)에 대한 확신을 전개하는데(고전 15, 12 이하), 또한 그는 거꾸로 부활이란 사실은 그 자체로 엄연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도 부활했다는(13절), 예수의 부활과 상관없이 전통적인 유다의 부활신앙을 반복한다.27)이에 대해서는 열두째 마당 각주 20)을 참조.

그러면 자료상으로 다른 두 전승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사람들 중에는 부활 케리그마가 형성될 때까지 복음서의 여인들의 부활체험 보도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하거나 또는 그것은 그보다 훨씬 후에 "무덤에 묻혔다"는 고린토전서 15장 4절의 기록에 근거하여 발전시킨 이야기라고 판정한다.28)그닐카는 포괄적으로 이러한 입장에 서며(J. Gnilka, Mk, II, S. 346/ 한역본 457면), 캄펜하우젠(H. von Campenhausen, Der Ablauf der Osterereignisse und das leere Grabe, 1958)도 이 입장이다. 이런 견해들은 복음서가 부활 케리그마보다 연대적으로 훨씬 늦게 되었다는 것을 내세워 그 주장을 정당화하고 있으나 문서화된 연대가 곧바로 전승의 시작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것은 불트만이 말한 바대로 케리그마가 먼저 형성되고 복음서가 그것을 확대한 것이라는 대전제에 사로잡힌 견해일 뿐이다. 케리그마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건이 먼저 있었다. 수난과 부활의 경우도 예외일 수가 없다. 불트만은 예수의 수난 예고의 확대가 바로 수난이야기라고 하는데29)R. Bultmann, Die Geschichle der synoptischen Tradition, S. 298/ 한역본 348면. 놀라운 것은 수난이야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게쎄마니 동산 이야기부터 십자가에 처형 되는 이야기까지 그 어디에도 부활을 반영한 데가 없다. 제자들은 물론이고 예수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보이며 수난의 목격자이고 부활의 첫 증인으로 부각되는 여인들마저도 그런 전제를 가진 흔적이 전혀 없으며, 심지어 수난당하는 예수 자신의 행태에서마저도 그러한 흔적이 없다.

우리는 이 두 전승이 별개의 것으로 병행되어왔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실 부활 케리그마를 생성한 이들이 민중의 부활전승을 몰랐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그들 중에는 베드로를 위시한 다른 목격자들도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활 케리그마에는 뚜렷하게 교회의 위계질서가 보인다. 그러면 그것은 교회의 지도층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 교회의 위계질서는 남성 위주의 것이기 때문에 여성의 자리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남성을 배제한 여성만의 체험사실을 거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또 한편 이것이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풀이됨으로써 반육적(反肉的)인 사상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30)구약성서의 인간학적 중심개념은 육과 피(baśar), 혼(nepeš), 영(rûah)이었다. 이것들은 모두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따라서 그 어느 것도 실체화 되지 않는다. 영도 하느님의 생기(rûah)가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요, 사람이 죽으면 하느님의 생기는 하느님에게로 되돌아갈 뿐, 인간의 영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관념은 없었다. 그러나 헬레니즘 문화의 영혼불멸설은 영의 정신화와 실체화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헬레니즘의 영향 아래서 구약성서의 전통적인 혼과 영의 구별은 약화되고(혼이 영에 통합되었음) 영과 피안의 구원이 서로 연결되었다(D. W. Bousset, a.a.O., S. 400f.를 참조). 그러나 유다인들의 인간관에서 육체를 떠난 삶이라는 표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육체를 제외한 삶, 즉 부활을 선포할 수 없는 일면도 있다.31)헬레니즘적 유다교에서도 몸의 부활에 대한 희망, 부활 때까지 죽은 자들이 잠들어 있다는 신앙이 분명히 살아 있었다는 것이 그 증거라 하겠다(D. W. Bousset, a.a.O., S. 401). 그러므로 바울로는 유다 전통과 이원론이 지배하는 헬레니즘 전통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을 도처에서 볼 수 있는데, 그의 부활관에 있어 특히 그렇다. 고린토전서 15장 12절, 데살로니카전서 4장 13절 이하에서 예수처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일어날 것을 강조한다. 데살로니카전서에는 분명하게 묵시문학적인 부활의 표상이 제시된다. "천사장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주께서 친히 호령하시면서 하늘로부터 내려 오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살아나고……"(데전 4, 16). 이는 분명히 육의 몸이 무덤을 헤치고 일어난다는 표현이다. 그런가 하면 고린토전서에도 죽음에서의 부활은 강조하면서도 단지 부활한 실체의 모습이 다를 것이라는 구구한 설명을 하다가 결론은 "형제들이여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살과 피로 된 존재로서는 하느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으며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이어받지 못합니다"(고전 15, 50)라고함으로써 육체(σάρξ)의 부활을 거부하고 그 대신 몸(σώμα)의 부활을 강조한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사건이 이런 것으로 설명되었는가? 이제 예수의 수난을 어떻게 이해했나 하는 것을 재조명해봄으로써 그 대답을 모색해보려고 한다.


List of Articles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2) 잃은 돈 찾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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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치의 전도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4) 말만 하는 자와 실천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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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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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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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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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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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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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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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민중현실에 바탕을 둔 신학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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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의 재래의 성서이해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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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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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의 종 그리스도
    구원은 민중을 통해서 온다
    예수는 오늘의 민중현장에 계신다
    제도적 교회는 민중현장에 계신 그리스도를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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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하느님
    신이 죽었다?
    서구 신학의 신관(神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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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의 신
    성전종교의 포로가 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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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 사건의 전거
민중의 공동체 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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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공동체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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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신학이 꿈꾸는 교회상
    제도적 교회론을 넘어서자
    해방공동체 구현과 교회의 계층성 극복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기존의 죄이해는 교권을 강화시킨다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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