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만약 서구의 신학, 일본의 신학을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삶에서 신학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학에서 신학이 나오는 격이군요. 논리에서 논리로 이어지고, 그래서 방법적으로는 연역법이 되겠어요. 구체적 삶의 경험과 현실에서, 사건에서 귀납적으로 신학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에요.
나는 그들을 보면서, '한국에서 신학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하고 생각했어요. '나는 현장에서 신학하고 있구나!' 이것을 그들과의 대화에서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언제나 삶의 현장, 역사의 현장, 사건의 현장에서 질문을 얻어서 그 질문을 성서에 던진다. 그런데 성서에서 답이 들려올 때에도 언제나 현장에 의해 성서가 재조명되어 성서의 진리가 새롭게 드러나는 방식으로 그 답이 이끌어내어진다'그거예요. 별것 없어요.
▶ "성서에 대한 물음이 답을 결정한다"는 불트만의 말을 선생님께서는 즐겨 인용하시는데, 그것은 방금 말씀하신 현장의 물음에 의해서 성서가 재조명되어 답이 얻어진다는 말과 같은 뜻이지요?
그렇지요.쉽게 말하면, 서양 사람들은 아직도 플라톤(Platon)이 뭐라고 했나, 칸트(I. Kant)는 뭐라 했나, 헤겔(G.F.W. Hegel)은 무슨 말했나, 이런 맥락 속에서 내 신학, 내 사상의 위치를 자꾸만 찾거든요. 밤낮 그런 식으로 관념의 세계 안에서만 뱅뱅 돌아요. 결코 현실로 나가지를 않아요.
우리는 그런 버릇이 없어요. 과거엔 나는 그것이 우리의 약점인 줄로 알았어요. 그래서 동양적 사고로써는 학문이 성립 안 된다고까지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안 봐요. 생활의 장(場)과 학문 사이에 벽이 없는 것은 잘되어도 너무나 잘된 것, 아주 행복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네들은 학문의 이름으로 진실을 독점해가지고 현실의 장과 학문의 세계 사이에 두터운 장벽을 설치해놓고 그 특수계급의 고유영역에 일반인의 접근을 금하면서 저희들끼리 진리의 관리권을 독점해 누리자는 것이거든요. 그것을 깨야 해요. 서남동 선생이 "신학은 반(反)신학이 되어야 한다"고 갈파하셨는데, 사실은 반(反)학문에까지 나아가야 해요. 서구적인 의미의 학문(Wissenschaft)은 깨져야 해요. 일상적인 것, 보통사람의 생활 속에 널려 있는 것, 별것 아닌 것까지도 그들은 민중이 모르는 저들만의 소위 학문적 언어로 바꾸어 이상한 아성을 구축해놓고 그 속에서 특권적 지위와 명성을 향유하는 것 아닙니까? 그게 소위 학자들이 하는 짓 아닙니까? 난 신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학문이나 신학은 '우리만이 할 수 있다', 저들은 그렇게 생각해요.
▶ 선생님의 민중신학, 바꾸어 말하면 선생님의 현장신학인 '사건의 신학'과 서구의 상아탑 신학이 예각적(銳角的)으로 나누어지는 지점이 바로 거기라고 생각되는군요. 그러면 현장의 물음에 의해서 성서를 조명하는 선생님의 해석학적 방법과 서구 선학의 그것이 어떻게 다른가를 구체적인 성서의 구절들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신다면 이해하기가 쉽겠는데요.
그럼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마르코복음을 보면 안식일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게 되었는데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이삭을 잘라 비벼 먹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그때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를 공격합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예수는 대답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마르 3, 23~28).
이 구절을 서양 신학자들은 '아포프테그마'(Apophthegma)라고 분류해요. '아포프테그마'라는 것은 원래 그리스의 문학장르인데, 철학자나 성자(聖者)에 관한 일화를 그가 한 어떤 말을 중심에 놓고 묘사했을 때, 이러한 문학유형을 '아포프테그마'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후에 이 용어를 불트만이 신약성서학에 적용했어요. 그래서 오늘날 아포프테그마라고 하면 예수의 말씀이 중심이고, 그 전승의 과정에서 그 말씀에 역사적 상황이 덧붙여져서 오늘날의 예수 이야기의 모습이 나왔다고 하면서 예수의 사건을 상대화해버립니다.
그래서 아까 예로 든 안식일에 밀을 잘라 먹은 이야기에서 서구신학자들, 특히 양식사학자들은 사건 그 자체보다는 예수의 한마디 말씀만 중시해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예수의 말이 먼저 있었고 또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말을 전승하는 과정에서 상황에 대한 설명이 사후적으로 추가되어 현재와 같은 꼴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라는 거예요. 양식사학자들은 복음서를 예수의 말씀의 뜻 또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케리그마(kerygma)를 담고 있는, 그래서 그 케리그마를 드러내는 '틀'(frame) 정도로밖에는 보려하지 않아요. 불트만은 심지어 복음서를 "확대된 케리그마"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입장에 단호히 반대해요. 오히려 거꾸로지요.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사건입니다. 말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최초에 사건이 있었습니다. 즉, 나는 예수의 말 이전에 배고픈 예수의 민중이 밀이삭을 잘라 먹은 사건이 먼저 있었다고 보아요. 그래서 예수의 말보다는 '배고픈 민중의 현장'에 주목하고 그것을 중심에 놓아요. 민중의 배고픈 현실, 안식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참다못해 밀이삭을 잘라 먹는 민중에 대해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소위 기존 체제의 법(法)이라는 눈으로 그것을 보고 안식일법을 범했다고 단죄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가 배고픈 민중의 입장에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아야 예수가 한 말의 의미가 제대로 드러납니다. 배고픈 민중이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 먹은 데 대하여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느냐?"고 했을 때, 예수가나서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민중의 인권을 선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나는 이것을 좀 확대해서 '인권 제1차 선언'이라는 말을 썼지만, 아무튼 체제거나 제도거나 법이거나 그것이 민중을 위한 것이어야지 민중이 어떤 기존적인 것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위대한 선언적 의미가 거기에 담겨 있다는 것은 사건의 빛에 의해 비추어볼 때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서구 신학자들처럼 민중의 배고픈 현장을 쏙 빼어버리고 예수의 말만을 중시하는 것과 사건을 먼저, 중심에 두는 나의 방법과는 천양지차가 있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