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가운데는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지만 주류를 이룬 것은 엘리야, 이사야, 아모스, 예레미야 등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예언자는 아모스였습니다. 예언자들의 주류는 왕권에 의해서 유린되고 박제되고 변질된 야훼신앙을 원상으로 복귀시키고 그것을 순수한 형태로 지키려는 맥이었어요. 그들의 야훼신앙은 히브리적 사회의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어떤 예언자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히브리적인 사회의식이 얼마나 강하고 밀도 있는가가 바로 그 예언자를 재는 '바로미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기준에서 보면 예레미야나 이사야는 상당히 약했고, 역시 아모스가 예언자였지요. 가령 엘리야를 예로 들면, 모든 사람들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굴복하고 말았을 때, 그는 분연히 일어나서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 7천 명을 하느님이 감춰두고 계신다고 외쳤어요. 그 7천 명의 맥이 성서에 그대로 흐르고 있어요. 아들에 의해서 보존된 신명기법 전, 레위기법전 등은 가난한 자, 눌린 자를 위한 계명을 담아 전했지요. 부분적으로는 다윗왕조 사가들에 의해 왜곡되기도 했지만 끝끝내 '야훼만'을 지키려고 애쓴 전승의 맥들이 면면히 흘러 내려오고 있어요.
소급해서 창세기로 올라가면―실은 창세기가 더 후대에 만들어졌습니다만―역시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죠. 선악과(善惡果) 이야기도, 나는 '공'(公)인 것을 사유화(私有化)한 것이 죄였고 인류의 타락의 출발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어요. 바벨탑 이야기,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등에도 그런 맥이, 물론 상당히 위축된 형태이긴하지만 여전히 흐르고 있어요.
그리고 '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의 맥은 하시딤(Chasidim), 에쎄네파(Essener), 세례자 요한으로 그 계보가 이어져서 예수에게 와 닿았다고 생각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로 나누어볼 때, 갈릴래아는 본래 지역적으로도 이스라엘에 속했던 땅이고, 정신적으로도 고대 이스라엘의 야훼신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어요. 예수 당시 갈릴래아는 민중들이 사는 지역이었고, 예루살렘은 다윗 이래 부패 한 정권과 야합하고 하느님을 납치해서 민중을 등쳐먹는 지역이었습니다. 예수가 나타나서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했다!"고 첫소리를 지른 것은 바로 갈릴래아에서였습니다.
예수가 하느님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말한 것은 없습니다. 한마디도 안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예수가 한 행동과 그의 삶 전체가 하느님 신앙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가 본래적 의미에서의 '야훼만'을 회복시킨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이 갈릴래아 민중과 더불어 사는 그의 삶에서 드러났어요. 그가 갈릴래아를 중요시하고, 갈릴래아 민중과 더불어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다음에는 부활해서도 제자들과 만날 장소를 갈릴래아로 한 것 등은 바로 '야훼만'의 전통에서 봐야만 바로 보입니다. 나는 마르코복음 10장 42절의 "이방 세력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라는 말이 예수가 군주체제를 부정하는 중요한 증거라고 보고 있어요.
또 하나 중요한 전거(典據)로서는, 마르코가 처음으로 언급한 다윗 후계로서의 그리스도론을 거부한 것입니다. "오실 메시아가 다윗의 후예라면 어떻게 다윗이 그를 주님이라 하겠는가?"라는 이 앞뒤 문맥 없이 돌출된 말이 굉장히 중요한 자료라고 나는 보고 있어요.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은 이 맥에서 보면 필연적이에요. 불트만처럼 애매한 소리를 할 필요가 없어요.
예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의 생애의 마지막을 예루살렘에서 지냈어요. 예루살렘 성전을 붙들고 울고불고한 에쎄네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예수는 어떤 형태로든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체제의 종식을 위해 행동했던 거예요. '다윗에 의해 세워진 예루살렘, 그 예루살렘에 감금된 성전, 그것은 끝장이 나야 한다!' 이것이 예수의 마지막 행동의 의미입니다. 예루살렘과 갈릴래아는 이런 맥에서 봐야 합니다. 결국 '야훼만'은 예수에 와서 다시 구현됩니다. 예수 후에 갈릴래아 민중을 중심으로 해서 '야훼만'은 '예수 그리스도만'이라는 신앙과 민중의 사회적 해방과 불가 E의 관계를 갖고 발전되었고, 그것이 로마제국의 관인(官認) 종교화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200년 동안 또다시 고대 이스라엘의 히브리가 역사에 모습을 드러냈던 거예요. 이런 측면에서 나는 구약과 산약의 통일성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선생님의 책에서 '갈릴래아'와 '예루살렘'을 대칭적으로 놓고 분석하신 데를 읽어보면 정치사적인 분석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사적인 분석도 해놓으셨더군요. 갈릴래아 민중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당시의 종교ᆞ정치적인 지배자들, 이 양자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정치적인 지배ᆞ피지배관계인 동시에 경제적인 착취ᆞ피착취의 관계였지요. 그렇다면 갈릴래아 민중의 맥에 따라 소급해서 얘기해 볼 때 예수에 의해서 다시 회복되고 재현되었던 '야훼만'은 정치적인 지배권력에 대한 부정으로서만이 아니고 사회경제적인 수탈에 대한 부정으로서의 의미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트발트를 위시하여 사회경제사적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구약학자들의 분석을 보면, 출애굽에서 시작하여 지파동맹, 사사시대에까지 관철되고 있었던 '야훼만'이 왕조시대로 넘어오면서 깨어지자 과거의 지파동맹시대의 이념과 사회체제를 회복하려는 운동들이 줄기차게 전개되었고, 그것은 정치적인 동기뿐만 아니라 과거 평등주의적 생산양식을 회복하려는 사회경제적인 동기까지를 내포한 그런 운동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더군요. 선생님께서 아까 '야훼만'을 주로 정치적인 데 역점을 두어 말씀하셨는데 역시 사회경제적 의미까지 포함된 것으로 봐야 하겠지요?
그것은 물론 전제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도 권력과 경제가 분리되지 않았어요. 그것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거지요.
▶ 조금 소급되는 질문입니다만, 아까 성서의 통일성을 어떤 교리적 도식을 전제해서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성서신학에서 추구해왔던 '약속과 성취'라는 도식이라든지 유형론적 해석(Typological Interpretation)이라든지, 이런 신학적 도구들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요? '구약'(옛 약속)과 '신약'(새 약속)이라는 명칭 자체가 그런 신학적 전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글쎄요, 내 머릿속에서는 '약속과 성취'라는 도식은 별로 작용 안 해요. 나는 소위 약속과 성취니, 구속사니, 그런 개념을 가지고 성서를 볼 마음이 전혀 없어요. 나는 구약시대에는 그리스도 사건이 미래에 올 어떤 약속으로서만 추상적으로 주어져 있다가 예수가 오십으로써 그 약속이 성취되었다, 이런 식으로 보지 않아요. 그리스도 사건은 2천 년 전에 한 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출애굽에서도 일어났고, 고대 이스라엘의 부족동맹에서도 일어났고, 예언자들에게서도 일어났고, 예수시대 팔레스틴에서도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어요. 단 한 번 일어난, 유일회적 사건으로는 결코 보지 않아요. 그리스도 사건은 화산맥처럼 역사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내려오면서 계속 분출하고 있어요. 다만 그것이 결정적으로 터진, 그래서 우리들의 신앙의 가장 확실한 거점이 된 것이 예수사건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