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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성서해석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 그러면 이제 서구 신학의 공인된 성서해석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비판학의 공헌과 그 방법론적 한계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역사비판학이라는 말은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 양식사비평(Form criticism), 편집사비평(Redaction criticism) 등을 통틀어서 일컫는 매우 광범위한 말입니다. 문헌비평(본문비평)이란 고대문서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나 사용하고 있던 방법이에요. 이것은 고대문서가 원본은 없고 사본들만 남아 있고, 또 남아 있는 여러 사본들 사이에도 차이가 많기 때문에 그중에 어느 것이 원본에 가까운 가를 알아내려는 노력을 말합니다. 이것은 또 남아 있는 사본들도 오래 돼서 글자가 희미한 것이 많고, 어떤 사본은 한 부분이 삭아서 잘려져나간 것도 있기에 사본들끼리 비교하면서 원문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말합니다. 이건 비단 성서학에서만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성서학이 가장 철저하게 했다고 할 수는 있겠지요. 그것은 단순히 학문적인 동기만 작용한 것이 아니고,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보는 신앙적 정열과 사명감이 같이 작용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지요.

소위 역사비판학이라 할 때 '역사'라는 말에 악센트가 두어지는데 이것은 역시 역사비판학이 계몽주의의 영향 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근경에 와서는 역사비판학에 대해서도 그 자체에 이미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개입되어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요. '역사'라는 전제가 있고 또 '비판적'으로 본다고 하지만, 비판하는 자의 입장과 가치기준이 있게 마련이므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이라고 하기보다는 거기에는 이미 어떤 전제가 들어가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한때 사회과학이라고 하면 거의 무비판적으로 그것이 가장 객관성 이 있는 것으로 맹신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와 비슷하게 역사비판 학에 대해서도 그런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역사비판학이라는 이름 밑에서 각기 사용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인데 거개가 주관에 의해서 내세운 대전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하기 어려워요. 예를 들어 역사비판학에서 발전되어 나은 종교사학파(History of Religions School) 같은 것을 보면, 성서를 하나의 종교문헌으로 보고 '종교언어는 일반언어와는 다르다'는 전제하에서 성서의 어떤 언어나 개념을 밝히는데, '성서가 어떤 세계상을 가지고 얘기했나'를 밝히려고 했죠. 그런데 문제는, 성서는 종교적 문헌이라는 대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세계상을 종교에서만 찾았다는 거예요. 그것을 희랍종교에서, 중동이란이라크 종교들에서, 바빌론에서, 에집트에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추구했습니다.

그후에 여기서 일보전진한 것이 양식사비판(樣式史批判)이지만, 양식사비판 역시 종교사학파적인 입장을 제거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구성된 문서 자체에 양식이 있다. 설화면 설화의 양식이 있고 전설이면 전설의 양식이 있다'는 등등으로 양식을 분석해서 어떤 공동성을 발견해냈죠. 양식비판적인 관찰에서는 누구의 설화냐하는 게 중요하지 않고 양식 그 자체가 중요해요. 대표적인 것으로 불트만이 '아포프테그마'라는 말을 썼는데, 그것은 그리스의 문학장르의 하나거든요. 예수의 어떤 사건을 그는 '아포프테그마'라는 양식으로 파악하고 거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의 말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사건 자체의 의미가 희석되어버리고 말았어요. 이렇게 되면 성서 연구 자체가 성서의 본래적 의미와 유리되어버립니다. 몇 개의 양식을 발견해내어 그 틀에 맞고, 안 맞고를 따지는 데 재미가 붙어버려서 이 기록이 삶 자체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어요(여기서 안병무 선생은 예수가 밀밭 사이로 지나갈 때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이삭을 잘라 먹은 사건을 예로 들면서, 양식사학파 학자들이 소위 '말씀의 신학'이라는 좁은 눈으로 문제를 본 결과 이 사건의 민중적 삶의 의미가 어떻게 왜곡됐는지를 자세히 설명해나갔는데, 그 이야기는 이 책 1부에 실린 대담 「'민중'을 발견하기까지」에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 편집자).

그들은 예수의 말만을 중시하고 그것을 전승한 모체가 '교회'라고 했어요. 그러나 그들은 '교회라는 것의 사회학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교회가 어떤 계층에 의해 성립되었으며 그들의 사회적인 관심사가 무엇이었나?' 하는 것은 물어볼 생각을 안했어요. 다만 종교적 영역에서만 교회를 보았던 겁니다. 그들은 교회라는 것을 내세우면서도 사회학적 집단으로서의 교회는 무시해버렸어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간 것이 편집사적 연구입니다. 양식사의 성과에 근거하면서도 양식사에 의해 뿔뿔이 흩어져버린 파편들을 모아서 보려고 했어요. 그들은 복음서를 편집한 사람들의 편집의도, 즉 신학적 동기가 무엇인가를 물었지요. 그런데 여기서도 편집을 한 주체가 개인이냐, 교회냐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애매하게 넘어가고 있어요. 루가의 공동체, 마태오의 공동체를 말하기는 하지만 그 공동체의 신학을 물을 뿐, 그들의 사회학적 성격은 도외시하니까요.

그러다가 최근에―물론 전에도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이른바 사회학적 성서해석이 등장했죠. 전통적인 역사비판적인 연구방법에서 양식사와 편집사의 전통을 이어받고 그러면서 이것을 보완하여 사회학적인 시각에서 성서를 해석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타이센(G. Theissen)입니다. 그는 교회를 말할 때 막연히 '교회'가 아니고 교회 안에도 여러 그룹이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방랑하는 설교자들(Wandercharismatiker)의 그룹이 그 하나인데, 이들은 소유를 완전히 포기하라는 예수의 극단적인 말씀을 문자 그대로 철저히 실천하면서 집과 가정과 그 밖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런 말씀은 종말론적 요구라고만 이해했는데, 타이센은 그런 것이 아니고 현실생활 속에서 그대로 따라야하는 윤리로서 예수가 그것을 요구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는 실제로 그것을 실천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에 의해서 예수의 그 말씀이 전승되었다고 보았어요. 그 말씀을 전승한 사람들은 그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에, 즉 자신의 삶의 양식이 그 말씀과 일치했기 때문에 그런 라디칼(radical)한 말씀을 전승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한편 사회학적 성서해석을 보다 철저화한 성서해석 방법이 있는데 흔히 유물론적 해석이라고 부르지요. 원래는 materialistische Auslegung인데, 우리말로 '유물론적'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물질적 해석'이 옳지요. '물질'의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문제이지만, 어쨌든 이방법이 마르크스(K. Marx)로부터 받은 영향의 소산입니다. 가톨릭의 떼이야르 드 샤르댕(P. Teihard de Chardin) 같은 사람도 "태초에 하느님이 '물질'을 창조했다. 그 물질 속에 세계와 인간역사의 발전 가능성을 하느님이 창조했다"고 보았지요. 또 벨로(F. Belo)라는 사람은 평신도인데 유물론적 방법으로 마르코복음서를 해석했습니다.

성서를 물질주의적인 시각에서 해석하는 것은 우리 동양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절실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독일을 중심으로 한 서구 신학계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것을 관념적으로보는 습관이 고질적으로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좀 물질주의적으로 라디칼하게 나가지 않으면 도저히 구제받지 못합니다.

이상에서 개략적이나마 역사비판학적 해석방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역사적이고 비판적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역시 거기에도 각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언제나 깔려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자기 입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역사비판학적 방법이지 그 자체가 객관적 진리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절대로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회의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꼭 그들이 걸어간 그 길을 가야하는 건가?' 그런데 우리들 신학하는 사람들은 선악과를 따먹은 사람처럼 이미 그 방법을 알아버렸으니까 어쨌든 그 극복을 하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일단 거치지 않을 수 없게 돼 있어요. 그러나 일반 평신도들에게까지 이방법을 전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재검토를 해야 할 것입니다.

▶ 방금 선생님께서는 역사비판학 그 자체도 엄밀하게 객관적인 도구가 아니고 그 밑바닥에는 각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고 하셨는데, 양식사나 편집사의 경우 방법 그 자체가 어떤 이데올로기에 의해 제약되고 있다기보다는 그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이데올로기가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예를 들면, 일본의 다가와(田川健三) 같은 사람은 편집사적 방법을 가지고 상당히 민중적인 관점에서 해석을 하고 있는가 하면, 같은 편집사적 방법을 가지고도 전혀 우파적인 견지에서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듯이 말입니다.

아니, 방법도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어요. 역사비판학적이라는 그 자체도 객관적 도구가 아니란 말이에요. '역사적'이란 말 자체도 그 당시의 역사를 어떤 입장에서 본 것이고, '비판적'이란 말 자체도 어떤 편에 서서 비판한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 객관성을 가진 도구가 아닌데 그걸 너무 맹신하는 경향이 있어요. 거기에 낙관론과 '도그마'(dogma)가 아울러 들어가 있단 말예요.

원래 역사비판학의 출발은 객관적이어야겠다는 노력, 중립적(neutral)이어야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세상에 어디 중립적인 것이 있나요. 중립적이라고 자처하는 그 자체가 이미 어느 편을 들고 있는 것인데요. '중립성', 그런 것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그건 불가능해요. 우리가 당파성(Parteilichkeit)을 미리 전제하고 시작할 필요는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느 편을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점을 불트만도 알고 있었어요. 그가 역사주의를 극복할 때 "우리는 역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역사를 결코 객관화할 수 없다"고 분명히 못을 박았거든요.

얘기가 좀 옆길로 나갑니다만, 가령 동양에서 역사비판학적 방법에 의미가 있는가 할 때, 서양에서처럼 그렇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동양에서는 책을 읽는 방법이 아주 달라요. 한때 유학이나 불교를 하는 사람들과 접해보면 그들의 사고가 그렇게 산만할 수가 없고 비과학적으로만 보였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나는 후에 자기반성을 했어요. 내가 한국신학연구소를 시작한 것과 비슷한 시기에 같은 건물 안에서 불교연구원을 시작했던 이기영 교수와무척 가깝게 지냈고, 우린 때로 성서나 불전(佛典)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지요. 한번은 내가 이 교수에게 요한복음의 어느 구절을 주면서 "이것 해석해보시오"했더니, 해석하는데 너무나 비(非)역사 비판학적이에요. 그래서 내가 이 교수에게 설명을 해줬는데, 그 양반은 역사비판학의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거예요.

또 하나 예를 들어보면, 유영모 선생에게 내가 영향을 받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요한복음을 해석하는데 나의 역사비판학적인 눈으로 보기에는 아주 주관적인 해석을 맘대로 막 하신단 말예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라는 구절에서 '나'(我)는 곧 나, 즉 유영모 선생 자신이라는 거예요. 내가 "선생님, 그렇게 해석하시는 것이 설사 옳다고 하더라도 이 텍스트 자체에서 '나'는 예수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단 그것을 구별해놓고 봐야 될 것 아닙니까?" 하고 말씀드렸더니, 이렇게 나오셔요. "난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성서를 해석하는 사람아오." 이 한마디하고는 더 이상 다른 말 못하게 하신단 말이에요. "난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내겐 네가 말하는 그런 거 필요없다"는 말씀이셨어요. 나는 아무 말도 더 못했어요. 그에겐 역사비판학적 해석 따위가 필요없었던 거지요. '아하, 이 양반에게는 이것이 필요없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함석헌 선생도 마찬가지예요. 지금도 함 선생님과 마주앉아서, "선생님, 성서에서 이건 예수의 말이 아닙니다. 교회의 필요에 따라 이렇게 만들어진 겁니다" 하면, 함 선생님 말씀이, "그게 뭐 그랬을까? 꼭 그렇게 봐야 하나?" 그러신단 말예요. 여기서 내가 느낀 것은 '아하, 역사비판학적인 분석이 이분에게는 필요하지 않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왜 역사비판학을 필요로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어요. 결론은, 우리가 서구적인 맥락에 강제로 편입되어 있으니까 그렇지, 그렇지 않았다면 해석학에서 서구의 학문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서구에서는 그 방법이 필요했어요. 특히 계몽주의 이후 이성이 강조되면서 성서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굉장히 중요하게 됐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게 아니에요. 도(道)나 학(學)이라고 하는 것은 서양의 학문, 즉 Wissenschaft와는 맞지 않아요. '학'은 어디까지나 '학'이지 Wissenschaft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동양 사람들이 억지로 역사비판학적 방법을 쓴다는 건, 서구의 학문전통과 맥을 잇고 그들과 접촉을 하려니까 부득불 그렇게 되는 것이지,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눈으로 본다고 하면 꼭 그 방법으로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길이 아니란 말이지요!


List of Articles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2) 잃은 돈 찾은 여인
    3) 돌아온 아들의 아버지
3. 가치의 전도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4) 말만 하는 자와 실천하는 자
    5) 자신을 철저히 비운(空) 자
4. 집요한 투쟁(간구)
    1)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2) 닫힌 문
    3) 빚진 자의 엉뚱한 마무리
    4) 한 과부의 투쟁
    5) 친구를 위한 투쟁
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2) 그물 안에 든 고기
    3) 심판과 맡은 분깃
    4) 심판과 대비
    5) 너무도 어리석은 부자
    6) 한 부자와 거지
    7) 뜻밖의 심판의 기준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를 움직인 여인들
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민중현실에 바탕을 둔 신학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한국 교회의 재래의 성서이해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전통적 성서해석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성서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할 뿐
    민중신학이 본 성서의 맥
민중 예수
    극복되어야 할 서구 신학의 그리스도론
    고난의 종 그리스도
    구원은 민중을 통해서 온다
    예수는 오늘의 민중현장에 계신다
    제도적 교회는 민중현장에 계신 그리스도를 포기
    민중사건은 예수사건이다
    ‘구원’은 물질적 언어로 표현되어야
    성령의 역할은 인류해방에 있다
민중의 하느님
    신이 죽었다?
    서구 신학의 신관(神觀)
    동양인의 신관
    성서는 신을 어떻게 말하나
    해방의 신
    성전종교의 포로가 된 신
    예수 이후의 하느님
    민중의 하느님
    하느님 사건의 전거
민중의 공동체 一 교회
    교회의 주인공은 민중이다
    예수공동체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였다
    생활공동체에서 예배공동체로 전락
    교회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민중신학이 꿈꾸는 교회상
    제도적 교회론을 넘어서자
    해방공동체 구현과 교회의 계층성 극복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기존의 죄이해는 교권을 강화시킨다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바울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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