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이후의 하느님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하느님 자신이 달라졌다기보다 하느님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는 것이 정확한 말입니다. 그렇게 된 데는 무엇보다 역사적 조건들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중 몇 가지를 예거해봅시다.
우선 한 나라를 구성하는 요소인 조건들을 박탈당했습니다. A.D. 66년에 로마의 침공을 받아 A.D.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됨으로써 비록 어용성을 띠긴했으나 그래도 민족을 대표하던 지도체제가 붕괴되고, 이스라엘의 이념적 중심이 되고 있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스라엘과 유다 땅에서 추방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안전하거나 수난당해도, 심지어 포로로 잡혀가도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를 이스라엘의 신이라고 믿을 수 있었던 근거를 흔들어놓은 것입니다.
둘째, 이와 더불어 이스라엘민은 대부분 유랑민으로서 이방 정치와 문화권에서 방황하면서 이방에서 제 살 길을 개척해야 했습니다. 이 마당에 배타적 민족주의적 신론을 고집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저들은 이미 헬레니즘의 공세를 받아왔고 그 동안은 견디어갔었는데, 지금은 헬레니즘의 언어, 즉 세계관의 틀에서 하느님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성전종교가 없어지고 배타적 율법의 아성이 무너짐으로써 새로운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를 변증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습니다.
야훼는 더 이상 한 민족인 이스라엘의 신으로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세계, 아니 우주의 신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구약의 야훼가 인류역사의 신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바울로는 그의 목적론적 구속사관으로 설명했습니다. 그 자신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부름받았다"는 의식이 투철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야훼의 특수관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편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개념을 정신화했습니다. '혈연적' 이스라엘에서 '정신적' 이스라엘로서의 그리스도인이 참이스라엘이라고 하는가 하면, 그리스도인을 아브라함의 후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그는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의 우위성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민이 비록 야훼를 배반했어도 하느님은 그와의 약속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이 확신(소원)이 이방인에게 먼저 설교됨으로써 이스라엘민에게 질투를 일으켜 저들도 마침내 회개함으로 구원될 때가 오리라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종말의 때라는 것입니다(로마 11, 25).
하여간 첫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을 탈(脫)이스라엘화하는 것이 큰 과제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야훼가 세계(우주)의 신임을 입증하는 첫 과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야훼를 결코 헬라화하지는 않았습니다 : 신은 결코 이데아(Idea)나 원리 같은 것으로 기존질서를 존속케 하는 보장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 신은 인간을 잘못된 세상에서 해방(구원)하기 위해 사건을 일으키는 실재입니다. 그러한 목적론적 행위가 그리스도 사건으로 구체화됐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신론의 전개에 대신하여 그리스도론에 총집중한 것입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은 '보편', '합리'여야 함에 반해 '편애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점은 구약의 야훼와 같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야훼는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편애한 데 대해서 예수를 통해 나타난 하느님은 눌린 자, 가난한 자, 불우한 자 즉 민중을 편애하는 신으로 나타납니다. 예수의 출신, 행위, 그의 운명 모두가 이 점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아주 새로운 신인가? 두 가지 면에서 대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신은 바로 히브리의 야훼와같습니다. 야훼는 이스라엘의 민(民)을 선택함으로써 갈등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신약의 신은 무조건 민중 편에 섬으로써 갈등을 가져왔습니다. 여기서 약자의 편에 섰다는 측면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점은 구약의 신은 사랑을 해도 포물선을 긋는 데 비해, 예수의 신은 사랑의 일직선을 긋습니다.
▶ 구약의 신과 예수에게서 나타난 신은 포물선을 긋는 신과 일직선을 긋는 신이라 함으로써 그 차이를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대로는 구약의 신이 예수에게서 최종적으로 자기를 완전 계시한 분이기 때문에 그 신은 결국 동일한 분이라고 보는데요. 그 모습이 다르게 나타난 것은 계약공동체(이스라엘)에서 왕조시대로 넘어오는가운데 왕조사가들이 지배계층의 이해관계에서 투영한 왜곡의 탓일 따름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