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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공동체—교회
민중의 공동체—교회

▶ 일반적으로 민중신학에는 교회론이 없지 않느냐라는 얘기를 목회 일선에 있는 분들이 많이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민중신학의 입장에서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 질문을 다음과 같이 구체화시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라 하면 구약성서에서는 거룩한 백성이다, 선민 공동체다, 또는 야훼의 공동체다, 이렇게 얘기하고 신약에서는 새로운 계약의 백성이라든지,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라든지, 그리스도의 몸이라든지, 성령이 거하는 집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교회에 대한 우리들의 전이해(前理解)가 있습니다만, 민중신학은 교회의 본질을 무엇이라고 보는지, 또 교회의 기능을 무엇이라고 보는지, 이것과 아울러서 민중신학은 교회의 주체를 누구라고 보는지, 이런 것이 하나의 질문이 되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민중신학이 생각하고 있는 교회관은 기존교회가 가지고 있는, 또는 서구 신학으로부터 우리가 주입받아왔던 교회론을 수용할 가능성 내지는 여지가 있는가, 만일 있다면 어떤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세 번째로는, 민중신학이 생각하는 교회, 가령 이름을 붙여서 민중교회라고 부른다면 그 민중교회의 제도나 조직형태 같은 것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하는 질문입니다.

다음은, 민중신학이 민중의 참된 해방을 얘기하는데, 일반 사회운동도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일반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자기들은 민중의 참해방을 추구한다고 얘기하며 자기들의 궁극적인 목표도 거기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일반 사회운동의 공동체와 민중신학이 말하는 교회의 차이는 과연 어디에 있으며, 만일 이들 상호간에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이 네 번째 질문입니다.

그 다음은, 민중교회는 기존체제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가, 말하자면 화해자로서의 관계인가 아니면 적대적인 관계인가 하는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민중신학이라고 해서 교회관이 없을 수 없지요. 그러나 그에 앞서서 우선은 민중신학을 발전시켜나가는 과제가 시급했기 때문에 '교회론'은 아직 다루지 못했습니다. 민중신학이 발전되어나가면 그것 자체가 기성교회에 대한 비판이 될 것이며, 동시에 참교회의 모습이 부각되게 될 겁니다. 지금 민중신학 전체에 깔린 것은, 서구에서 이루어진 교회관에 대한 비판정신이기 때문에 교회관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민중신학은 현재 교회론을 구체화하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교회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또한 교회에 대해 빨리 그 태도를 밝혀달라는 데 대해서 침묵만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민중신학이 생각하고 있는 교회론을 말하기 위해서는 그런 요청에 대해 '굳이 대답을 한다면' 하는 식의 전제가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지금 한 질문의 순서를 따르지는 않겠습니다.

교회(ecclesia)라는 말은, 바울로서신에서 46회나 사용되고 있어요. 그만큼 그에게서 교회의 비중이 커진 것입니다. 그런데 공관서에는 마태오복음에만 두 번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근원을 예수에게 돌릴 수 없어요. 맨 처음 씌어진 마르코복음에는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으며 심지어 마태오와 비슷한 시대에 씌어진 루가복음에도 안 나와요. 그러면 복음서의 편자들은 당시 '에클레시아'라는 말을 몰라서 그랬을까? 그랬을 리는 없어요. 시기적으로 봐서 바울로문서보다도 20~30년 후에 씌어진 루가복음이나 10~20년 후에 씌어진 마르코복음이 그 말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안 쓴 데는 그럴 만한 역사적 현실이 있었거나, 아니면 그 의도가 있을 겁니다. 이 사실을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어요.

하나는, '예수는 교회라는 것을 세울 생각이 없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신약학에 정론으로 돼 있어요. 그러므로 그것은 논의로하고, '마르코시대에는 교회가 엄연히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신앙 위에 세워졌는데 왜 언급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이미 제도화되어가는 교회에 대한 비판세력이 있었다는 증거로 봅니다. 그때 교회는 벌써 일정한 이념 내지는 도그마를 갖고 모였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거기서 중요한 요소는 교회의 의식화(儀式化)현상으로서 이것이 농후해졌을 때 이에 대한 비판세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식화는 바로 컬트(cult)화인데, 그중 중요한 것은 세례와 사랑의 만찬의 컬트화입니다.

본래 예수는 세례와 새크러먼트(sacrament)화된 성찬을 민중들에게 베풀지 않았습니다. 최후의 만찬, 그것은 본래 새크러먼트로서의 성찬이 아닙니다. 또 예수가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가 세례자 요한과 경쟁이라도 하는 듯이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이 나오는가 하면(요한 3, 22), 동시에 예수 자신이 세례를 준 일이 없다는 기록도 있습니다(요한 4, 2). 그러니까 새크러먼트를 포함한 예배장소로서의 에클레시아와 일치시킬 수는 없어요. 그러므로 일부에서 변질되는 교회에 대한 비판정신이 작용했는데, 그 비판의 주체는 바로 제도적 교회의 중심에 있지 않은 민중이었다고 봅니다. 저들의 비판의 근거는 바로 예수와 더불어 살던 현장경험 이지요. 그러므로 그 원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염원이 예수사건을 계속 상기시키는 구전운동(口傳運動)으로 전개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 결과는 의식화되어가는 교회제도에 대한 비판세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지요. 그중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사도권이었어요. 벌써 A.D. 50~60년대에 쓴 바울로의 편지에 이미 교회 안에서 '사도'라는 것의 권위가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저들은 이미 단순히 어떤 집단의 지도자가 아니라 카리스마적 권위를 주장했어요. 그것이 바로 교권의 시작이지요. 이 교권의 바탕은 바로 가르침의 특권의식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바울로의 사도권 주장과 그와 사도들 사이의 긴장에서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바울로도 사도권을 존중했기에 사도권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사도권도 인정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사도권은 곧 가르치는 자의 권위문제입니다.

그런데 민중의 전승이 중추가 된 마르코복음에서는 바로 이 사도들에 대한 비판이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마르코복음에 묘사된 사도들은 전혀 예수의 뜻을 모르는 자들로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가 그들에게 한 책망은 대단합니다. 특히 예수의 고난예고에서 저들은 '사탄'이라고까지 책망받습니다. "저들은 예수의 고난의 의미도 몰랐고, 그의 고난에 참여하지도 않고 도망해버렸으며, 부활경험도 못했던 자들이다"라는 식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제자들에 대한 이런 비판적 서술은 바로 사도권에 대한 민중적 저항이요 고발이라고 봅니다.

예수가 그의 추종자들을 모아 어떤 제도적인 인스티튜트(institute)를 만들려 했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당시의 에쎄네파나 세례자 요한파와 분명히 다른 점들입니다. 그런데 마태오에는 에클레시아라는 말이 두 번 나오고(마태 16, 18 ; 18, 17), 그 교회의 터전은 바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도들의 신앙으로 돼있어요. 이에 비해 마르코는 물론 루가에도 이런 흔적이 없어요. 한편 루가는 사도행전에서 교회탄생의 과정을 서술하는데, 그것은 교회의 탄생이 예수 이후 오순절사건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벌써 제도적 교회가 예수의 민중과 거리가 생긴 것은 물론이요, 이것에 대해 민중은 이질감을 느껴 저항한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바울로에 의해서 기초되고 발전된 교회(에클레시아)론이 민중신학에서는 일단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다른측면에서 볼 때, 교회의 적극적 의미를 생각지 않을 수 없으며, 또 그것은 큰 과제입니다.


List of Articles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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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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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닫힌 문
    3) 빚진 자의 엉뚱한 마무리
    4) 한 과부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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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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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심판과 대비
    5) 너무도 어리석은 부자
    6) 한 부자와 거지
    7) 뜻밖의 심판의 기준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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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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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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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판권
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민중현실에 바탕을 둔 신학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한국 교회의 재래의 성서이해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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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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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신학이 본 성서의 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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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도적 교회는 민중현장에 계신 그리스도를 포기
    민중사건은 예수사건이다
    ‘구원’은 물질적 언어로 표현되어야
    성령의 역할은 인류해방에 있다
민중의 하느님
    신이 죽었다?
    서구 신학의 신관(神觀)
    동양인의 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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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전종교의 포로가 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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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의 하느님
    하느님 사건의 전거
민중의 공동체 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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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공동체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였다
    생활공동체에서 예배공동체로 전락
    교회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민중신학이 꿈꾸는 교회상
    제도적 교회론을 넘어서자
    해방공동체 구현과 교회의 계층성 극복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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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교는 죄를 어떻게 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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