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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 |
한국 민족 운동과 통일
(한국신학연구소)
히로히토가 엄존하는데

내 생애를 두고 경험했고 또 경험하고 있는 것 중에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다. 그것은 현실이면서 나에게 역사적 착각을 거듭하게 하는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그것은 바로 일황 히로히토라는 존재이다. 히로히토가 일본 제국주의와 더불어 반신적(半神的)인 권위로서 나에게 군림한 것이다. 그의 일본 통치가 금년으로 59년이라니 내가 말을 잘 알아 듣지 못할 때부터이다.

소학교에 들어서면서도 그의 얼굴을 교과서에서, 교실 벽에서 보았으며 그에게 충성하도록 세뇌당했다.

일본 군인들은 바로 그 히로히토를 위해 목숨을 바칠 서약을 했기 때문에 용감하다는 것이었으며, 죽을 때는 그의 만세를 부르며 쓰러진다고 했다.

그의 군대가 만주사변을 일으켰고 중국으로 쳐들어갔으며, 마침내 세계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고 아시아 일대로 돌격했다. 그 일을 위해 우리 청년들을 마구 끌고가서 총알받이로 삼거나 종처럼 부렸으며, 우리의 처녀들을 끌어다가 욕망 충족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의 이름으로 우리가 가졌던 것은 탕진됐으며, 우리의 민족 정신, 민족 문화는 마구 짓밟혔다.

그 일본이 서구의 독일과 이태리처럼 거꾸러졌다. 파시스트의 이태리가 망할 때 무솔리니는 거리에서 목이 매인 채 그 시체가 오가는 사람들의 조소거리가 됐으며, 유럽을 석권하던 히틀러는 그 시체도 가려낼 수 없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은 저들의 시대와 저들에 대해 옛말처럼 회상하면서 악몽 같은 그런 때가 다시는 오지 않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를 짓밟았던 히로히토는 지금도 건재하다니! 아니 일본이 패한 지 4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니.

도대체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일본 도쿄에 가면 전쟁 전에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그는 그대로 살면서 추앙받고 있다.

그러므로 '일제시대'란 과거가 아니고 현재도 진행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가 미국에 항복하는 마당에 그 자신은 더 이상 신이 아니고 한낱 인간이라는 선언을 했다.

그러나 그랬다고 달라진 게 없는 건 웬일인가. 그는 지금도 '천황'이라고 불리우고 그의 혈통에게 제사함으로써 그의 신성(神聖)을 고백하는 신사(神社)가 건재하며, 지금의 일본 수상 나까소네가 그의 내각을 거느리고 도도히 '참배'하고 있는 판인데 무엇이 달라졌다는 것인가.

한쪽에서는 국수주의자들이 헌법상으로 천황의 권리를 전전(戰前)과 마찬가지로 되돌리자는 운동을 펴고 있다.

그에게 헌법상 권한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다. 헌법의 문구 몇 자만 고치면 히로히토의 역사는 2차대전 종결과 아무런 상관없이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희한한 일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새삼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리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함에 있어서 히로히토를 만난 것을 일본 신문은 큰 특혜라도 베푼 듯이 보도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히로히토와 만나는 것을 두고 그의 '말씀(오고또바)'이 어떨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히로히토가 일본의 천황으로 60년 동안 건재한 것은 그의 개인의 수명이나 위치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일본은 비록 참패하여 무조건 항복한다는 글에 조인했고, 헌법을 고쳤으나 저들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으며 내적 변화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까지 저들이 여지없이 짓밟은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에게 사죄하는 것을 거부한 데서 표출됐다.

과거에 대한 분명한 청산이 없이 어떻게 새 출발이 가능한가. 그런데 저들은 끝내 사죄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625동란으로 다시 경제적으로 고개를 들면서부터 그 교만을 다시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피를 흘리는 동안 저들은 살이 찐 것이다. 그런데도 한일 국교 정상화를 획책할 때 한국 정부 대표들에게 한푼 쥐어 주는 듯한 오만한 태도와 발설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정부 차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일본 국민 다수의 자세를 노출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 그리스도교의 한 대표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사죄문을 발표했다가 파문을 일으켜 그 연합 기구가 마비 상태에 이르렀고, 오늘날까지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 상태다. 이른바 종교인들마저 사죄를 거부했으니 저들에게서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으랴.

지난번 일본 나까소네 수상이 왔었다. 일본 정부 대표로는 처음 우리 땅을 밟은 것이다. 그런데 그는 "양국 간의 불행한 과거를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과거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불행한 과거를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지 그때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모호한 표현은 한국인이 불행을 자초한 것이라고 밀어붙인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었다.

나는 사죄는 찾아와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일황이 '오고또바'로 애매하게 몇 마디 과거에 대해 언급한 것은 기대에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독일은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다. 특히 유태인에 대한 범죄는 두고두고 속죄해야 할 것이다. 저들은 그 사실을 안다. 공식적 사죄는 물론이요 그것을 경제적으로 보상하되 철저히 하여 이스라엘 건국에 큰 몫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저들이 유린했던 재독 유태인 개개인의 공민권 재산을 상환 보상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나치스의 죄악상을 계속 학교 사회 교육에서 폭로함으로써 그런 역사가 다시 없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오늘의 유태인의 원한이 다 해소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일본은 어떤가?

저들이 살금살금 학생들에게 익히는 교과서에는 그의 과거를 없애거나 미화하던 작업을 해 온 것이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너무 과거에 매일 필요가 없다는 말들을 한다. 하기야 저들이 과거에 대해 사죄를 한다 하더라도 과거를 보상하지 못하는 한 대수로울 게 없다. 단지 저들은 그 자신의 졸렬함을 노출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저들과 접근하려고 하는 마당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샘터』 1984. 10)


| 평론 |
한국 민족 운동과 통일
(한국신학연구소)
List of Articles
표지
 
제1부 옳은 민족 옳은 역사
서양사람 한국사람
구라파에서 본 조국
사상의 주체성
세계 속의 한국
   
제2부 한국의 민족 감정
민족 감정
아키히토 방한과 민족 감정
히로히토가 엄존하는데
민족적 염원
'조국 근대화'와 민족문화
민족 정신 문화 불식시키는 외래 종교
   
제3부 한국의 민족 운동
3•1절과 민족사적 고백
8•15와 해방
3•1 운동과 기독교
민중 운동의 새 기원
4•19혁명과 민주주의의 갈망
4•19의 혼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4부 한국 민(民)과 종교
민족적 과제와 교회
그리스도교와 민족 공동체
개화기의 한국 교회의 위치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주체성과 신앙
더 이상 종교는 침묵일 수 없다
   
제5부 민족 자결
민족 자결의 민족주의
민족 문제와 민중신학
혼선된 역사
   
제6부 분단과 평화
해방은 통일로써만
한국전쟁과 평화
6•25전쟁은 언제 끝나나!
이 땅에 평화를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
   
제7부 통일의 주체
민족 통일 문제의 성서적 조명
통일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통일은 민(民)의 손으로
씨알과 민족 통일
   
제8부 평화의 길
평화와 칼
아시아 평화와 일본
함석헌의 평화 사상
통일을 위한 민족 교육의 방향
평화의 실현
분단 극복과 평화
새 국면에 선 민족 통일과 기독교
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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