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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 |
한국 민족 운동과 통일
(한국신학연구소)
통일은 민(民)의 손으로

815는 급작스럽게 기적과 같이 우리에게 왔다. 우리 세대는 일본이 아시아를 전부 삼킬 목적의 발판으로 이미 한국을 점령하고 극심한 식민지 정책을 펼 때였다. 어릴 때 듣기도 하고 실제 보기도 한 바 있는 공산군과 합작한 독립군 게릴라 운동에 대한 소식도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이미 끊겨버리고 집에서나 동리에서 쓰는 우리의 말과 전혀 다른 말과 글을 학교에서 배워야 했고, 일본은 만주국을 세우고 이른바 삼천만의 오(吾)민족으로 구성된 평화의 나라처럼 선전하고 일면 중국 대륙을 쳐들어가는가 싶더니 결국 미국, 영국 등에 선전포고를 함과 더불어 다분히 서구의 식민지였던 동남아를 속속 점령해 가기 시작했다. 이 침략 전쟁에 강제 징발되어 군인으로 노동자로 위안부로 전선에 내몰린 것은 한국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 정부라는 명목만 있는 단체가 중국에서 장개석 정부의 운명처럼 피난 정부로 떠돌아 다니는 것 외에 이 민족을 이끌어 갈 조직도 세력도 없었다. 그러므로 절대 다수의 국민은 체념으로 시들어 길든 짐승처럼 저들에게 혹사당했을 뿐이었다.

소위 민족의 지도자라는 대다수의 영리한 사람들은 일제의 강요와 감언이설에 승복하여 친일 전선에 나섰다.

우리에게 일본 세력은 영원히 우리를 지배하리라고 생각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일왕이 육성으로 무조건 항복한다는 의사를 천하에 공포했다. 그것이 바로 1945년 8월 15일, 물론 그때 신문을 정독하는 지식인들은 일본이 패망의 길로 달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급속하게 일본이 항복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까닭은 원자탄이라는 것이 있는 것도 몰랐지만 미국이 그것을 사용하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만세! 만세! 우리 나라 독립 만세! 마치 온 천하가 우리의 것인 양 우리 민족은 끝없는 희망이 내다 보이는 어떤 정상에라도 선 것처럼 광적으로 기뻐했다. 나는 이 광경을 어릴 때부터 청소년 시절을 보낸 연변(간도)에서 맞이한 것이다. 만주족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보다도 구경꾼 같은 입장이었으나 우리의 기쁨의 행렬을 대견하게 보아주었다. 이제 빨리 버리고 온 내 땅으로 돌아가리라. 돌아가서 일본의 모든 잔재를 물리치고 새 나라를 건설하리라. 그것이 그때 특히 교육을 받은 젊은 사람들이나 민족 의식을 끝끝내 지켜온 사람들의 일관된 부푼 포부였다.

815는 해방이 아니었다

해방된 우리 땅은 양 진영 군대로 분단점령되었다. 강대국들이 저희 멋대로 38선을 그은 것이다. 통일 한국을 위한 미소 군사 위원회가 줄다리기를 하는 듯했으나 계속 결렬을 거듭했다. 저들에게는 통일의 사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저들의 장기 신탁 통치안에서 잘 드러났다. 한국은 미소 냉전의 첨단이 된 것이다. 해방의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한국의 허리를 자른 분단선이 그어지며 미국, 소련의 지원을 받은 남북의 단독정부들이 세워졌다. 미국이나 소련에 우리의 독립을 위한 무엇을 기대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던가!

625전쟁이 터졌다. 이것 역시 우리 민족의 자주적 의지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미국은 한국 정부를 세운 다음 그것을 지킬 만한 어떤 무기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나버렸을 뿐만 아니라, 한국을 아주 버렸다는 듯이 국무장관의 입을 통하여 미국의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것을 천하에 공표했으며, 소련은 그들의 무기를 이북에 무진장 공급했을 뿐 아니라 군사 고문단의 명의로 계속 전쟁 지휘를 했고, 최근에 공개된 정보에 의하면 저들 자신도 전선에 참여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은 미소 냉전에서 정면 충돌의 전쟁터로 제공된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로 인해서 이 땅은 폐허가 되고 건국을 책임질 대부분의 인물들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해방은 우리 손으로 했어야 했는데 남의 손에 의존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니 625는 바로 그 대가를 지불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민족의 미래는 생각지 않고 권력욕에 도취한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들을 호위병처럼 거느리고 독재를 펴다가 학생들이 일으킨 419에 쓰러졌다. 419를 일으킨 민중들의 통일에로의 절규와 투쟁은 군사 쿠데타로 좌절돼 버렸다. 그로부터 현재까지 우리의 민의는 군사정권의 총칼 아래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우리는 30여 년의 군사정권 아래서 우리 민족의 수준으로 보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창피스러운 역사를 빚어왔다. 국민의 뜻을 거역하면서 일본과의 국교 정상이라는 미명 아래 돈 몇푼 얻어 쓰며 얼마 동안 나뉘어졌던 아버지를 만나는 듯한 박 정권의 추태는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통일이라는 우리 민중의 최대의 염원을 악용하여 영구 집권을 노린 유신 체제, 박정희가 죽자 권력 싸움의 일환으로 광주학살사건을 일으켜 공포 정치로 민의 기를 꺾으려는 전두환 시대의 잔인무도한 만행, 그 세력을 이어받은 이른바 6공화국, 국민과의 약속이나 신의 따위는 헌신짝같이 버리고, 아니 이 국민의 뜻을 총칼로 대항해 가면서 영구 집권 체제를 향해 공작 정치와 국민의 세금을 마구 뿌려대는 이 판국에까지 이르렀다.

815는 해방이 아니었다. 815는 민족 독립의 날도 아니었다. 815는 세계 강대 세력이 우리를 희생의 제물로 바친 날이었다. 일제시대에는 적이 분명하므로 우리 민족의 목표도 하나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온갖 국제적 이해 관계가 복합적으로 우리를 세뇌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도 민족의 대열로서 가져야 할 통일된 목표가 날로 희미해져가고만 있다.

오늘까지 지배하는 군사정권은 경제적 발전을 이룩한 것을 그들의 큰 업적인 양 내세울 뿐 아니라 그로 인한 그 정도의 인권 유린은 감내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부는 정권과 밀착된 극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또 그것은 군사정권이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니라 산업전선에서 노동자들의 피와 땀의 결과이며 그 성과 자체도 결코 우리만의 것이 아닌 것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파장은 전세계의 구석구석에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소련 자체는 물론 동구 전역, 아시아 전역, 심지어 네팔이나 몽고같은 오랫동안 세계 무대에서 가려져 있는 듯한 소수 민족들마저 민중들이 궐기하여 새 시대의 주인으로서의 준비를 갖추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여러 글에서 누누이 언급했듯이 페레스트로이카는 고르바초프 개인의 머리에서나 지배 집단에 의해서 산출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탈린 이래로 지배 집단에 의해서 수난당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형성된 생존권을 위한 투쟁의 백서같은 것이 수용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것은 결국 소련 혹은 공산 진영에만 파장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까닭은 세계사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이것이 하나의 돌출구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역사는 우리 편에 섰다

과거와 같이 군사력 팽창에 의한 세계의 평화라는 망상이 인간을 마침내 전멸시킬지 모르는 파국에 몰아넣고 풍요를 구가하는 판국이면서 매일같이 수천 만이 넘는 기아 군상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이런 모순 구조를 심화시켰던 것이다. 형식상으로는 전쟁이 중단됐었으나 실제로는 무기 판매전으로 보다 더 큰 전쟁의 길을 가속해 왔던 것이다.

지구를 몇 번씩 초토화시키고도 남을 파괴적인 기존의 무기들을 하루 속히 무용지물로 만들고 무기 제조에 쏟던 모든 능력들을 인간 생존을 위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 건설에로 바꾸지 않으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 판이 왔기에 미국을 위시한 세계가 이에 호응하는 것이다. 한국에도 물론 이 바람이 파급되고 있다. 그러나 아주 기묘한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현 정권은 이에 뇌동하여 올림픽을 계기로 소련 동구 등에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소련 특히 고르바초프와의 면담 등을 마치 조선 시대에 중국 대륙의 군주를 '알현'하는 영광이나 되는 듯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김영삼과 박철언 사이의 추태를 보라! 노 대통령이 미국과 소련이 만나는 틈에 잠깐 끼어들었던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고 모든 언론 매체들이 그렇게 광란을 했는가? 그래서 얻은 것이 무엇이지? 그것은 좋다.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서슴없이 강행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국민의 동의를 받아 형성된 권력 구조를 밀실에서 야합하여 개헌선을 넘는 수를 확보하고 국민 탄압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심화되어 감옥은 정치범으로 초만원이다. 뻑 하면 사전 영장, 단순한 시위도 국가보안법에 걸어서 국민의 기를 죽이려고 한다. 최근에 내무부장관 이름으로 보낸 국민훈령의 내용을 보라. 이것은 파쇼적인 발상의 일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4당 시대에 약속했던 법들은 모두 묵살해 버리고 국민 앞에 한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데 아무런 자책도 두려움도 없다. 야합에 의한 의회석의 양적 비대를 철저히 이용해서 유신정국과 같은 횡포를 감행하고 있다. 지자제나 광주학살 사건의 해결, 민생고의 생존적인 위협 따위를 폭력으로 억누르고 자기들 멋대로 처리해 버림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망상이 문제다.

통일 의지는 실제적으로는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세계 개방의 물결과 이에 맞서려는 의지 사이에서 이들은 남북 교류 문제에서 얼마나 갈팡질팡하고 있는가!

분단 고착화 세력이 우리의 적이다

우리의 당면 문제를 성격화한다면 역시 분단이라고 할 것이다. 45년 간의 분단의 역사가 바로 해방의 기쁨에 대한 역조 현상이 아니겠는가?

나의 어린 시절은 도쿄에서 베이징까지 차표 하나로 달릴 수 있었다. 일본, 한국, 만주를 횡단하여 중국 본토에까지 갈 수 있었다—물론 일본 제국주의의 힘이 작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오늘 우리 학생들이 가는 가장 장거리 여행이라고 해야 다섯시간도 못 미치는 서울서 부산이나 광주면 끝이다. 오늘 우리의 젊은이들은 얼마나 숨가쁜 영어의 생활을 하고 있는가. 세계 청년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항에 든 물고기로나 비교할까? 왜 세계 어디나 갈 수 있다면서 유독 북한만 가면 죄인이란 말인가? 아마 대다수의 우리 젊은이들은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막고 북한만을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것은 자기 국토에 대한 애착심도 작용하겠지만 무엇보다도 45년 내리 계속된 분단 상태를 향유하고 있는 집단들에 대한 저항심 때문이다.

분단 상태를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집권을 기도한 것이 해방 후 역대 집권자들의 한결같은 방법이었다. 그것은 결코 국토 분단이 아니라 민족 분단 정책이다. 저들은 계속 이북 사람 전체를 빨갱이 집단으로 규정하고 어떤 형태의 접촉도 철저히 금지해 왔으며,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는 영호남의 분단 작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각 분야의 통계를 내놓지 않더라도 집권자 자신들이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이다.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극소수의 기업주들과 결탁하여 세계의 부의 절상권에 들어갈 수 있는 몇 명의 사람을 낼 만큼 재력을 과시하는 반면, 실제 생산 전선에서 이 재력을 가능케 한 노동자들에게는 굶주린다는 비명조차 내지 못하도록 억눌러 왔던 것이다.

농촌과 도시와의 격차, 지방과 지방과의 격차 등등은 모두 분열과 통치라는 차원에서 이용해 왔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민족 사이를 가로막는 앙금을 어떻게 풀 것인가?

광주 사건이 일어난 지 10년이 지난 오늘에 이 정권의 작태를 보면 저들에게는 아무런 민족 통일의 의지도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저들은 할 수만 있으면 이미 철폐하기로 합의된 바 있는 보안법이나 안기부법을 고수하려 하고 있으며, 광주 문제 해결이나 지자제 법 실시 등을 지연하려고 안간힘을 다 쏟고 있지 않는가!

국민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작년에 내가 잘 아는 독일 교수 몇 사람이 한국을 찾아온 일이 있다. 그들은 내가 독일에 갈 적마다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한국에 관한 얘기를 많이 들어온 사람들이다. 한국을 한 일주일 돌아본 후 나를 만난 저들은 첫마디부터 공격했다. 그것은 내가 전한 한국의 현실과 자기들이 본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중진국이 아니라 선진국에 들어섰으며, 그 화려함은 자기들 나라의 빰을 칠 정도라고 했다. 그들이 놀란 것은 무엇보다도 모모 백화점의 시설과 거기에 모여든 사람들에 대한 인상이었다. 사실상 유럽의 백화점이란 서민들의 생활 필수품을 파는 실질적인 매점이다. 따라서 거기에 모여드는 사람들도 어디까지나 대중적이다. 그런데 한국의 백화점들은 외국제를 위시한 고급품으로 메워져있다. 그리고 일반 물품에 대한 값도 일반 상가에서보다 훨씬 비싼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러기에 서민들은 백화점을 기웃거리려고도 하지 않고 거기 모여든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중산층 이상임을 자부하는 사람들이다. 물건마다 포장도 고급화되어 고객들이 한 아름씩 사서 안고 가는 모습은 화려하기까지 하다. 적어도 독일에서는 이런 화려한 백화점도 없거니와 이렇게 성황을 이루는 경우도 없다.

정말 한국 사람은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것처럼 그렇게 실력을 갖춘 것인가? 국제 경제적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광경에 놀라는 것은 결코 한국의 경제적 실력을 인식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이런 풍조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모순 투성이의 경제 구조, 피라미드형의 경제력 소유 체계, 무역의 해외 의존도와 그 전망에서 볼 때 이 같은 생활 양식도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여론 조사의 신빙성을 상대화한다고 해도 발표될 적마다 한국 사람의 절대 다수가 자신을 중산층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그 숫자는 자기 집을 소유한 숫자와 엄청난 격차를 나타낸다. 이것은 집 한 칸 없는 압도적인 다수가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한다는 단적인 예이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된 나라이면 집의 소유가 곧 생활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나라에서는 저렴한 은행 이자로 얼마든지 집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물어가는 집값 자체와 은행 이자를 합한 것이 남의 집세를 물어가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서구적 의미의 시장 경제도 아닌데 한국의 소비성은 아마 따라갈 나라가 있을는지 의심스럽다.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외국 사치품 수입과 그 소비성을 보라. 단지 그것이 외국 상품이라는 것 외에는 국산품과 아무런 질적 차이도 없다. 집 전체를 외국산 자재로 짓고 모든 가구들도 그렇게 하는 것은 편리하거나 견고해서가 아니라 한마디로 열등감의 다른 표현이다. 그런 물건들을 수입하는 재벌 기업들의 횡포도 분노스럽지만 거기에 놀아나는 국민들이 더 밉다. 재벌들은 국민들의 바로 그 허영심을 이용하여 실제 가격보다 몇 배에 이르는 이윤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계속적으로 한국이 마치 속국인 양 수입 압력을 협박적으로 요구해 오고 있다. 그 때마다 번번이 양보하는 정부의 불만하는 논조를 가끔 들을 수 있으나 만일 우리 국민들이 그것을 외면해 버린다면 그런 외부적 압력이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다시 묻자. 대다수의 한국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런 물음에 나는 뚜렷한 대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나는 우리 국민이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고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앞에는 넘어야 할 고개와 산들이 첩첩이 놓여 있다. 통일을 이룰 때까지 아니 통일을 이루는 과정을 대충 짐작해 보아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저력을 축적해야 될는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는 길밖에 없다. 외세는 물론이고 정부 자체가 극소수의 재벌들과 결탁하여 자기들의 살길 만을 계산하는 데 바쁘다. 남한 자체에서의 위화감을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이 정부에 남북 통일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어떻게 기대 하겠는가?

통일은 오직 '민(民)'의 힘으로

우리가 한 민족으로 치사하지 않게 살아남으려면 통일을 하루 속히 성취하는 길밖에 없다. 까닭은 위에서 열거한 모든 갈등과 모순도 분단 상태를 빌미로 일으키는 조작이다. 정권은 남이나 북 할 것 없이 정권 유지에 분단 상태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반공법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보안법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하면서 전체 공산 세계에 대해서 이처럼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것도 자가당착이지만 같은 동포가 살고 있는 북한만은 예외로 하고 그들과의 접촉을 극구 막으려는 저의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남북통일은 이 정권에 불이익을 가져온다는 판단 아래서 설정한 억지가 아닌가! 대 이북 적대 선전은(외적으로는 통일 염원을 온갖 아름다운 말로 표현하지만) 결국 남한 자체를 통치하려는 내부용으로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왜 통일을 원하는 사람들을 공산당으로 뒤집어 씌워 투옥하는가? 현재 방북으로 인해 투옥된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당국은, 지령에 의해서나, 돈을 받아 먹고서, 이북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처럼 발표해 왔는데 그런 모든 것이 재판정에서 부정됐는데도 정부의 해명은 들을 수가 없다. 장삿속으로 가는 사람은 애국자이고 민족의 진정한 미래를 위해서 가는 사람은 모두 반역자란 말인가?

한마디로 이 정권에서는 티끌만한 통일 의사도 발견할 수 없다. 하기는 통일을 눈앞에 보고 있는 독일의 양 정권에서마저도 통일 의사는 볼 수 없었다. 그것은 재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심지어 안전 지대에 들어서 있는 이른바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까지도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가령 한국과 독일 교회 대표가 여러 차례 통일 문제를 논의했으나 저들은 어느 한 번도 우리의 통일 염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도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의 큰 문이 열리고 악명 높은 분단의 담이 헐려졌다. 동독에 갇혀 있던 민중들은 동구를 거쳐서 서독으로 서독으로 밀려 들어왔다. 이 민(民)의 걷잡을 수 없는 강렬한 의지와 행동에 정권도 밀리고 안전 지대에 있는 사람들도 밀리고 세계의 독일의 반통일 세력들마저도 굴복하여 마침내 상상도 못하던 독일 통일이 눈앞에 다가 오기에 이르렀다. 통일은 민이 하는 것이지 정권이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권에 의해서 폭력으로 만들어 놓은 통일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소비에트에 강제로 묶였던 저 소수 국민들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모습을 보라. 중국도 미국마저도 이런 파동을 겪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민에 의한 통일은 언제나 반정부 투쟁과 결부되어 있다. 그래서 세계의 분단 됐던 민중들은 모두 통일을 이룩해나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만이 예외이다. 한국의 통일도 민이 앞장서기 전에는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 통일 논의를 완전 독점해버렸던 정부가 지금은 통일 논의 자체를 막지 못하게 된 것은 민의 통일 운동의 추인의 결과이며 따라서 앞으로 통일 자체도 정부나 한국과 관계된 외세마저도 민에 의해서 이룩되는 통일의 현실을 추인하는 이상의 역할을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중차대한 과제를 짊어진 우리 민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비장한 회개 운동과 자성적인 생활 개선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를 모래 자루로 만든 온갖 반민중적 반민족적 요소들과 투쟁으로 목적을 향한 유기적 민족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저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보안법 철폐와 민을 교란시키는 공작 정치의 근거인 안기부법 철폐를 위한 투쟁에 국민이 단결해야 할 것이다. 관에 의해서 조작된 지방색의 극복을 위해서나 민주주의 터전을 장만함으로써 독재정권의 소지를 제거하기 위해서도 지자제의 실현을 하루 속히 이루도록 투쟁을 해야 한다. 통일을 위한 민족의 저력을 방해하는, 상류층이 유도하고 있는 이기주의적 소비성의 풍습이나 허영심에 사로잡힌 사치 풍조들에 대해 거부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날 4당이 정당하다고 보아서 합의한 토지의 공정한 분배나 금융실명제 등을 하루속히 실현하도록 정부와 투쟁함으로써 정경유착의 소굴을 파헤쳐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분단의 쇠사슬에 묶여있는 유일한 민족이다. 우리가 만일 향후 수년 내에 민의 힘으로 이 분단선을 끊지 못한다면 오래도록 계속된 치욕의 역사를 영원히 면치 못하고 세계에서 가장 못난 민족으로 남게 될 것이다.

(원제: "민에 의한 통일만이 참 해방이다", 『藝鄕』 199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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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 |
한국 민족 운동과 통일
(한국신학연구소)
List of Articles
표지
 
제1부 옳은 민족 옳은 역사
서양사람 한국사람
구라파에서 본 조국
사상의 주체성
세계 속의 한국
   
제2부 한국의 민족 감정
민족 감정
아키히토 방한과 민족 감정
히로히토가 엄존하는데
민족적 염원
'조국 근대화'와 민족문화
민족 정신 문화 불식시키는 외래 종교
   
제3부 한국의 민족 운동
3•1절과 민족사적 고백
8•15와 해방
3•1 운동과 기독교
민중 운동의 새 기원
4•19혁명과 민주주의의 갈망
4•19의 혼
4•19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제4부 한국 민(民)과 종교
민족적 과제와 교회
그리스도교와 민족 공동체
개화기의 한국 교회의 위치
한국 사회와 기독교 대학의 방향
주체성과 신앙
더 이상 종교는 침묵일 수 없다
   
제5부 민족 자결
민족 자결의 민족주의
민족 문제와 민중신학
혼선된 역사
   
제6부 분단과 평화
해방은 통일로써만
한국전쟁과 평화
6•25전쟁은 언제 끝나나!
이 땅에 평화를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
   
제7부 통일의 주체
민족 통일 문제의 성서적 조명
통일 운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통일은 민(民)의 손으로
씨알과 민족 통일
   
제8부 평화의 길
평화와 칼
아시아 평화와 일본
함석헌의 평화 사상
통일을 위한 민족 교육의 방향
평화의 실현
분단 극복과 평화
새 국면에 선 민족 통일과 기독교
희년 선포와 통일 헌법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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