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대사원 앞에 두 천사 상이 세워져 있는 것을 가끔 본다. 그런데 한 천사는 얼굴이, 특히 눈이 가리워져 있다. 그런데 이 두 천사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상징한다. 구약성서의 천사에게는 아직 진리가 베일로 가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근경 한국에 대교회당 건축이 한창이다. 모든 교파마다 몇 배 이상의 교회 수 확대를 목표로 내세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 중 어느 하나는 거짓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일 눈에 거슬리는 것이 십자가 '처리'이다. 그 중 어떤 큰 교회는 황금색 십자가를 제단 중앙에 세우고 거기에 베일을 드리우고 조명까지 하여 은근히 보이도록 한다. 여기에 몇 가지가 연상된다. 첫째, 일제 시 천황 사진을 앞에 걸고 평상시 커튼으로 가리웠던 것을 본 생각이 난다. 우상화의 한 방법이었다. 둘째, '구약성서의 천사'가 연상된다. 아직 십자가의 참 뜻이 계시되지 않았다는 고백과도 같다. 셋째는 도대체 왜 십자가를 가리우나? 정면으로 보기에는 송구스럽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 진상을 직시하고 생각하면 어딘지 불안한가? 넷째로, 아니면 십자가는 심미의 대상 이상일 수 없다는 것인가? 실은 서구에서 십자가는 이미 장식품의 일종이 된 경우가 많다. 수도사나 수녀들이 엄숙한 의미에서 가슴에 걸고 다니던 그 십자가가 이제는 육체파 여인들의 가슴에 달려 그 나무와 더불어 흔들리고 희롱당한다.
이렇든 저렇든 문제는 하나이다. "이제라도 너희가 나를 따르려 거든 네 십자가를 지고 …"라는 말씀만 취소해 준다면 아무러면 어떠랴! 그렇지 않으니 문제인 것이다.
(1977. 9. 『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