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해도 저물어 간다. 세계는 격동하는데 우리 국민들은 조용하기만 하다. 무엇을 기다리기 때문인가! 무엇을 기다리나? 무엇이 오고 있나?
새해가 도래(Advent)하고 있다. 이것은 낡은 데서 벗어나서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새해의 도래는 사적인 생활에서 낡은 습관을 버리고 성실한 새 출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갈라졌던 사이가 화해하는 계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새해는 전혀 새로운 출발을 불가능하게 한다. 비록 새해라고 해도 그 법, 그 빚, 그 의무는 그대로 있어 나를 묶어 놓은 채 풀어 주지 않는다. 그러니 참 의미의 새것을 갖다 주는 새해가 도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도래하는 성탄을 기다린다. 그것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을 이루어 우리 안에 계신" 장엄한 날로 믿는다. 그 날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주가 오신 날임을 믿는다. 루가는 그 날을 "주께서 그의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며 제 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낮은 자를 높이시고, 주린 자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고, 부한 자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게 될" 날이라고 한다. 루가는 또한 이 날에 난 예수는 "포로된 자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자들에게 눈 뜨임을 선포하며, 눌린 자들을 놓아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심이라"고 한다. 그 날은 바로 석방의 날이기 때문에 그 날의 도래를 기다린다.
그런데 그 날이 언제 오나? 성탄절에? 그러나 2,000번의 성탄이 왔어도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아니 그 날이 설령 기다리는 성탄에 와도 그것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그 Advent는 언제인가? 그것은 기다림과 직결된다. 이런 뜻에서 한용운의 시 한 토막은 읽고 또 읽어도 언제나 새 말로 들린다.
오서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어요. 어서 오서요.
당신은 당신이 오실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당신의 오실 때는 나의 기다리는 때입니다.
'오서요'
(한용운의 <님의 침묵>)
(1975. 12. 『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