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해 동안 여러분과 함께 성서의 구절들을 명상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한 준비로 성서를 대하는 마음과 보는 눈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성서를 갈구하는 마음은 참되게 살려는 삶의 자세와 직결되어 있다. 성서에 흥미 없는 사람은 사실상은 인생을 그만두었거나 성서를 오해했기 때문이다. 믿는다면서 성서에 흥미 없는 사람을 많이 본다. 우리는 그들의 신앙이 어딘가 병들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인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성서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잘못으로는 대개 다음의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성서는 모든 것의 교과서라고 생각하는 잘못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할 때 성서 읽는 마음은 곧 막혀 버린다. 중학교만 나왔어도 벌써 성서의 세계상에 막힐 것이며, 윤리문제에 부딪칠 것이다. 왜? 성서에 있는 세계상은 코페르니쿠스가 태어나기 이전의 것이며, 또 그 시대의 윤리적 습성이 현대의 우리에게는 도무지 용납될 수 없는 기록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서는 모든 것을 가르치는 교과서가 아니다. 아니, 그것은 그때그때의 인간에게 하느님이 어떻게 역사했으며, 사람들은 어떻게 그 하느님을 대했는지를 기록한 책이다. 따라서 성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그 모든 표현을 통해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며 또 우리에게 어떤 '물음'을 하고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따라서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 내게 묻는 하느님의 '물음'을 찾아야 한다.
둘째는 성서를 다 알았다는 결론을 가지고 성서를 대하는 태도가 있다. 즉 성서를 대할 때 어떤 도그마적인 결론을 가지고 색안경을 쓰고 성서를 읽는다. 그럴 때 성서는 절대로 새 말씀이 아니고 언제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결론을 그대로 반영하는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무리 읽어도 내 삶과 상관없는 것이 된다. 아니 성서는 내게 언제나 새 말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자명적인 것을 다 버리고 빈 마음으로 새로운 지시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성서를 대해야 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성서를 읽을 때 '내가 지금까지 안 것이 아니었구나!' 해지지 않으면 성서를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베뢰아' 사람들은 모범 할 만하다. 저들은 마음이 넓어서 열심히 설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이 참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기 위해서 성서를 날마다 그리고 자세히 공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비록 마음의 갈구는 있으나 성서의 언어가 벌써 우리와 수천 년의 거리를 가진 것일 뿐만 아니라 팔레스틴을 중심으로 한 중동의 풍습에서 된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에게 생소함을 느끼게 한다. 이 생소함을 뚫고 그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하는 말씀으로 하기 위해서 신학자들은 계속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성서를 보는 눈을 마련해 주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음의 몇 가지를 지적하기로 한다.
첫째는 성서는 오랜 세월을 거쳐 이루어진 여러 가지 자료로 되어 있다. 그것은 지질학에서 말하는 지층과도 같이 여러 요소가 가득 차 있다. 또 그 표현형식도 법의 조문, 예언, 노래, 시, 교훈적 대화체, 소설체, 논쟁체 등 한없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를 볼 때 지층을 식별하는 지질학자처럼 또는 금을 캐는 광부와 같은 심정으로 읽어가야 한다.
다음은 이에 따라서 처음부터 통일된 대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한 장면 또한 한 책씩 독립시켜서 그 안에서 나타내려는 본뜻을 되도록 그대로 밝혀 보려고 해야 한다. 가령 이전처럼 갈라디아서 같은 것을 읽고 그리고 그 눈으로 모든 성경을 읽으라는 따위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각 책은 다 하나의 집과도 같이 그 자체의 입장과 목적이 있는 고유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것을 위해서는 약간 힘이 들더라도 성서개론 하나쯤은 착실히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처음에는 오히려 복잡한 마음을 일으킬 것이나 거기에서 성서의 자료를 식별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넷째, 성서의 참 맛을 알려면 원문을 알면 더할 나위 없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되도록 여러 가지 번역을 읽는 일이다. 우리말 번역들도 늘 대조하며 읽을 것이며, 영어를 읽을 수 있는 이는 그것을 대조하면서 정독하면 훨씬 다른 인상을 받을 것이며 생각지도 않았던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로 어떤 문제, 예를 들어 죄의 구원, 그리스도 또는 사랑, 평화 등등을 설정하고 각 책을 하나씩 읽는 일이다. 마르코복음은 어떻게 이해했나, 요한복음은 어떻게 이해했나, 이렇게 물으면서 읽으면 점점 확실해질 것이다.
우리는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내 삶의 물음을 가지고 성서에서 물을 때 성서는 산 말씀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성서는 침묵하며, 그럴 때 내 삶도 시들어 죽는다.
(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