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어두움은 남아 있는데
검은 껍질은 그냥 남았는데
시몬의 가슴에 불을 지른 닭의 울음은 있어야겠는데
너와 너희들은 아직도 잠이 들었는데
너희들끼리의 세대는 껍질 속에 묻혔는데
방황과 허무에 불을 지른 예루살렘의 닭은 있어야겠는데
밤을 울어 목이 터져도 모가지에 피가 엉겨 콱 막혀와도
내가 이젠 닭이 되어야겠다.
이 죽음의 세대를 울어야겠다.
깨어나지 못한 이웃을 위하여 어둠에 눌러 앉은 형제를 위하여
홰를 치고 우는 닭이 되어야겠다.
주여, 가슴속에 불을 울게 하소서
피의 온도만큼
뼈의 빛깔만큼 진실하게 하소서 시몬의 가슴이 되게 하소서.
(전재동)
"내가 이젠 닭이 되어야겠다."
"홰를 치고 우는 닭이 되어야겠다."
비장한 한 시인의 각오이다. 밤이 하도 길어 이제는 밤밖에 없는 줄 알고 오히려 어두움에 자신을 가리우고 체념의 영원한 잠자리에 자신을 묻어버린 눌린 형제에게 새벽이 왔음을 깨우쳐 줄 사람이 없어 스스로 한 마리의 닭이 되어 목에 피가 엉기도록 소리쳐 동 트는 여명을 알리겠다는 장중한 각오이다.
1969년에 낸 시집에 담긴 시니까 그 보다 더 전에 쓴 시일 텐데 그때도 시인의 촉각은 아직 어두움이 남았다고 봤는데, 1974년이 다 지나도록 아직도 동이 트지 않으니, 지구가 역전했는가?
아마 새벽은 따로 없고,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과 새벽을 알리는 사자(使者)의 소리가 맞부딪칠 때가 새벽이지. 새벽을 알리는 닭 소리에 자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이에게 새벽은 있지.
오실 이를 기다리는 성서의 시인(詩人)은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고 했는데, 기다리는 마음에는 시간은 도망치는 법이다.
1974년이 저물어 간다. 태양이 소멸되지 않는 한 정녕 아침은 오고야 말 것이다. 체념은 잠의 수렁이다. 새벽을 맞이하려면 체념에서 깨어나야 한다. 태양을 믿어라. 그것을 못 믿겠거든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한 그이를 믿어라. 그러면 아침은 네 것이 되리라.
(1974. 12. 『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