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하 신부라는 이가 있다. 독일 사람으로서 부산에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운동과 더불어 신ᆞ구교 일치운동의 선봉에 서고 있는 이다. 언젠가도 그의 초청을 받았으나 사정으로 응하지 못한 죄로 이번은 거절할 수 없이 잡혀서 부산으로 향했다. 그 이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 전날 기차로 소식 없이 가서 여관 신세를 지고 아침에 회합 장소로 갔다. 하 신부는 비교적 한국말을 잘한다. 그러나 나를 만나자 그는 독일어로 일관했다. 역시 자기 나라말에 대한 향수도 있겠지만 그게 더 편리한 때문이리라. 그의 인상은 이른바 '종교인'다웠다. 어딘가 세련된 흔적이 얼굴에 흐른다. 이 점은 가톨릭 신부나 불교 승에게 뚜렷하다. 이에 대해서 신교의 지도자들의 인상에서는 그런 것을 좀처럼 찾을 수 없다. 훈련이란 무서운 것이다.
이 날의 주제는 '사크라멘트'에 관해서였다. 그러나 자유한 제목을 선택해도 좋다는 중간연락에 의해서 마르코복음에 의한 예수상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미 신문에까지 발표한 모임이 되어서 약간 당황했다. 그래서 강연 전에 일간신문 기자들이 와서 강연 내용을 중심한 인터뷰까지 해야 했다.
강연 장소에 들어서니 약 60명의 회중이 모였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이 신교 목사들이고 가톨릭과 성공회 신부가 약간 섞인 정도여서 좀 의아했다. 강연 전에 신교, 가톨릭, 성공회의 예배 순서를 번갈아 가면서 거행했다. 그 중에 걸작은 일치운동가로서 '갑돌이와 갑순이' 곡으로 유머가 섞인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이었다.
교리를 따지고 들면 일치운동은 불가능하다. 참 일치운동은 자기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맏아들을 제물로 바쳐야만 가능하다. 마침 회장인 하신부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바치는 본문을 읽었기에 나는 가톨릭, 신교, 성공회의 이사악이 무엇인가를 묻고 바로 그것을 제물에 바칠 용의가 있어야 일치운동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일치 운동에서 교리적 관념을 지양해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바로 교리적(종교적) 관념에서 인간을 풀어 놓은 예수의 모습을 소개하기로 했던 것이다. 한 시간 이상의 강연에 약간 긴장감도 돌았다. 까닭은 예수를 종교적 이념의 측면에서 보지 않고 사회학적 고찰을 했기 때문이다. 만일 질문 시간이 허락됐다면 이의(異意)하거나 항의도 나올 법한 분위기였으나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아서 유감이었다. 모임이 끝난 후 모두 함께 식사를 했다. 함께 식사하는 분위기는 좋았다. 예수도 공동 식탁을 중요시한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가까이 아는 분도 몇 분 만났고 이야기도 함께하고 싶었으나 그날로 상경해야 할 일 때문에 총총히 저들을 떠나 서울행 고속버스를 잡아탔다.
교회일치! 하찮은 것의 차이를 고집해서 언젠가는 서로 피를 흘리면서 갈라지더니 이제는 또 합하기 위한 운동을 벌인다! 하느님이 보시고 웃으시리라. 비웃음이 아니라 귀여워서! 왜 성서에는 하느님의 고지(告知)에 어처구니없이 웃는 아브라함 등의 이야기는 전하는데 왜 하느님의 웃음은 전하지 않나!
(1972. 1. 『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