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 연합회에서 '남은 자'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남은 자', 그것은 구약성서에서 따온 말일게다. 그런데 '남은 자'의 의식은 겸손한 의식일 수도 있고, 아주 교만한 의식일 수도 있다. 바알 신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는 뜻처럼 하나의 엘리트 의식일 수도 있고 찌꺼기처럼 쓸모 없거나 제할 일 다 못해서 소외되어 남은 자라는 의식일 수도 있다. 이 제목을 받은 나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생각하게 됐다. 그가 만일 남은 자라면 어떤 의미에서일까? 물론 그는 끝끝내 제 갈 길을 갔기에 세상에서 민족에게서 국가에서 아니 마침내 제자들에게마저 버림받아 홀로 십자가에 남았다. 그러나 그 자신은 그것으로 어떤 엘리트 의식을 가졌을까? 아니면 세상을 구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그런데 성서는 그의 최후의 비명을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기록했다. 하느님마저도 그를 버렸단다. 하느님에게마저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이른바 엘리트 의식인가?
그래서 나는 저들이 행여나 오만한 엘리트 의식에서 '남은 자'라는 제목을 벌였는가 싶어서 그 따위 교만을 버리고 어쩌다 남았으면 못나서 남은 것으로 알고 남게된 것은 남겨주었기 때문인 줄 알라고 했다. 그럼 남은 자의 윤리란 무얼까? 못난 것도 남겨 주었다는 그 사실을 증거하고 그리고 못났기에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눌려버린 이들의 입이 되어 그들이 해야 할 말, 그들이 못한 억울함을 증거하기 위해 있는 것이리라고 했다.
(1971. 12. 『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