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도다.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심은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심이라.
주께서 나를 보내심은
포로 된 자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자들에게 눈 뜨임을 선포하며
눌린 자들을 놓아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심이라(루가 4, 18-19)
이것이 예수가 세상에 온 목적의 선언이다. 가난한 자들, 포로된 자들, 눈먼 자들 눌린 자들이란 말에 어떤 단서도 없다.
그 무엇 때문에서거나 그 무엇에 의해서 라는 구별은 불필요하다. 하여간 그러한 상태에서 고통하는 인간을 해방하고 이제 참된 미래가 올 것을 약속할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 기본적인 선언 위에 선 그리스도의 선언은 정치와 종교라는 영역으로 구분하기 이전의 것이다.
서구에는 정치와 종교를 구분한 과거가 있다. 그것은 신정정치라는 암흑 시대에 대한 저항에서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분리가 아니라 분담이다. 그것은 전체를 그리스도교의 권한 아래 두었던 시대이기에 한 집단의 일을 기능적으로 구분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결과로 서구는 피비린내 나는 처참한 비극을 맛보았다. 그것은 분담이 분리로 변질된 때부터이다.
그리스도의 목표는 인간 세계를 구원하자는 데 있다. 만일 인간이 정치나 경제적 여건에서 완전히 자유할 수 있는 세계에 있다면 그런 문제에 관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금의 인간은 위의 힘들의 구조 속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인간 구원 또는 세계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마당에 잘못된 정치나 경제 질서에 대한 비판 없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인가?
그러나 요새 '정치'라는 말이 아주 모호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른바 정치인의 목적은 정권을 장악하여 그 뜻을 실현하려는 데 궁극적 목적이 있다. 그리스도교의 참 목표는 이러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그리스도교의 목표는 그 무엇이든지 상대적인 것이 절대화하여 인간을 노예로 하는 것과 싸울 뿐이다. 이것을 구태여 설명한다면 이 현실의 정의에 기준이 되고 양심의 역할을 하려는 데 있다. 그런 것도 정치 행위라고 보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교 자체를 애당초 없애버리라는 말이 옳을 것이다.
(1974. 7. 『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