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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의 맥 1 |
구원에 이르는 길
(한국신학연구소)
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 11
 
1

야곱은 레아-라헬 형제와 그들의 몸종 빌하와 실바 등 네 여인과의 관계에서 열두 아들들을 두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동생인 라헬을 가장 사랑했는데, 장인의 속임수에 마지 못해 첫 아내로 맞은 라헬의 언니인 레아가 연속해서 네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출산하지 못해 그의 위치가 위태로워지므로 그의 몸종을 씨받이로 하여 두 아들을 연거퍼 낳게 했습니다. 이에 맞서 레아도 자기 몸종을 씨받이로 두 아들을 낳게 하고 그 뒤를 이어 야곱이 사랑하지 않는 레아가 또다시 두 아들을 낳았으니 그녀는 여섯 아들을 낳았습니다. 맨 나중에 야곱이 처음부터 사랑하는 라헬이 임신하여 요셉과 벤야민을 낳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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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자권은 종주권으로써 신의 이름을 빌린 권위를 내세운 인습에 따르면 처음난 아들에게 부여되어야 합니다. 이에 따르면 레아와 더불어 얻은 첫 아들 루우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레아는 야곱의 첫 아내이기도 합니다. 그는 첫 단계로 넷을 연거퍼 낳았고 다음 단계에 둘을 추가하므로 혈통을 계승하는 데 결정적 공로가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순리를 거부합니다. 레아는 그녀의 몸종인 실바를 씨받이로 두 아들을 더 야곱의 혈통으로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런 그녀의 공로에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라헬은 제 때에 출산하지 못해 초조한 나머지 그리고 레아에 대한 경쟁심으로 그녀의 몸종 빌하를 씨받이로 하여 두 아들을 낳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전혀 동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끝으로 라헬이 수태하여 연거푸 두 아들을 낳습니다. 요셉과 벤야민이 바로 그들입니다. 야곱은 이중 라헬과 함께 낳은 첫 아들 요셉에게 모든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는 그를 특별하게 취급하고 극진히 사랑했습니다. 요셉에게는 옷부터 다른 형제와 구별된 화려한 옷을 입혔습니다. 따라서 그의 큰 형들이 한결같이 그를 질투의 대상으로 삼아 미워했으나 야곱은 그를 자기의 계승자로 점찍었습니다. 요셉이 곡식단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 등 11개씩이 자기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 꿈 이야기를 들은 형제들의 질투심은 극대화되었는데 야곱만은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창세 37, 11)고 합니다. 야곱은 종주권의 후계자로 그로 재확인 한 것입니다. 이것은 신의 이름으로 된 인습에 반한 것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신의 뜻을 거부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요셉이 죽임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며 야곱의 아버지인 이삭의 경우와 과정은 다르나 꼭 같은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할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신의 뜻을 반항한 벌인가? 하여간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뜻에 따라 멀리 세겜 지역에서 목축을 하고 있는 이복형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갔다가 평소부터 미워하던 그 형들이 요셉을 처음에는 죽여버릴 생각을 했다가 피를 흘리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유로 어떤 깊은 구덩이 속으로 던져버렸습니다. 물기가 전혀 없는 그 구덩이 속에서 굶어 죽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 형제들은 이미 요셉을 죽인 셈입니다. 그러데 저들의 탐욕이 그 계획을 바꾸게 했습니다. 때마침 상인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요셉을 그들에게 은 20냥에 팔아버렸습니다. 요셉 자신 편에서 보면 다시 사는 길이나, 형제들의 편에서 보면 이중적 살인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상인들은 바로 이스마엘 족속이었다고 언급했는데 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내쫓은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생각했을까? 그랬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저들은 그 한마디 지적에서 듣는 자에게 많은 상상을 하도록 합니다. 저들은 그 아이를 이집트로 끌고가 팔아버린 것입니다. 이스마엘 족속은 노예상인의 역할을 했고 요셉은 죽임당하는 대신 이국땅의 노예로 팔린 것입니다.

요셉을 죽이는 대신 팔아버린 아들들은 화려한 요셉의 옷에 양의 피를 발라서 야곱에게 가져다 보이면서 그가 맹수들의 먹이가 됐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옷을 찢고 베옷을 걸치고 피묻은 요셉의 옷을 끌어 안고 침식을 거르면서 여러 날을 통곡했습니다. 그에게는 일단 요셉은 죽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고 했던 순간이 그랬던 것처럼. 이것은 야곱에게 사실상 그의 혈통이 끊어지는 사건입니다. 그렇다고 그는 요셉의 자리대신 다른 어느 아들에게 장자권을 주는 축복을 한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오랜 후 그들이 살던 일대에 한재로 큰 기근이 닥쳐왔습니다. 한편 이집트에서 노예 신분이었던 요셉은 일약 국책을 담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시기에는 일찍부터 농업정책에 주력한 이집트를 제외한 중동 아시아 전 종족들이 기근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저들은 자동적으로 이집트로 모여들게 됩니다. 야곱의 집안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의 큰 아들들이 먼저 이집트로 양식을 구하러 갔습니다. 갔다가 우연하게도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우여곡절 끝에 요셉은 자신을 알리지 않은 채 자기의 같은 배의 형제인 벤야민을 불러오게 하고 마침내 야곱을 위시한 전가족을 초청해서 자유롭게 가업인 목축업을 하게 합니다.

야곱은 여기서 죽었다고 알고 있었던 요셉을 만난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의 악착같은 투쟁의 삶 속에서 일으킨 죄와 신에 대한 반항도 다 용서했다는 듯이 그에게 새롭게 축복의 약속을 합니다. 그 축복에 첨가된 구체적인 것은 단순히 그의 자손이 번성하리라는 것 만이 아니라 바로 그 이집트 땅에서 번성하리라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요셉과 맞물립니다(창세 46, 3-4). 이로써 야곱은 자기의 소원을 성취한 것입니다. 이집트에 갔을 때 이미 130세라고 하는데 그는 그의 생애를 온 세상을 누비며 떠돌았다는 고통스러운 민중적인 삶을 진하게 술회하고 있습니다(창세 47, 9). 야곱은 유랑하는 과정에서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도 땅에 묻고 그 마음에 유일한 아들로 정하고 있던 요셉도 잃었습니다. 이런 그의 행로는 비애와 슬픔 자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집요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땅에 묻고 그의 몸에서 낳은 요셉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그의 집요함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유일한 혈통인 이삭을 제단에 놓고 칼을 뽑아들면서도 그의 희망, 하느님의 약속을 믿어 의심치 않았듯이 야곱도 절망하는 빛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맏아들은 므나쎄이고 둘째는 에브라임이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야곱은 이 두 아이를 손자가 아니라 친아들로 임명하고 그들에게 마지막 축복을 합니다. 이 축복은 장자권의 임명 의식입니다. 요셉은 앞을 제대로 못보는 야곱에게 므나쎄를 오른 편에 에브라임을 왼편에 세우므로 야곱이 으례히 므나쎄를 오른손으로 축복하므로 그에게 장자권이 계승되도록 했는데, 야곱은 끝끝내 둘째인 에브라임에게 축복함으로 장자권을 그에게 계승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간섭을 물리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안다. 므나쎄가 한 겨레를 이루고 크게 되겠지만, 그 아우가 형보다 크게 되고 아우의 자손에게서 여러 겨레가 갈라져 나올 것이다."

이것은 집요한 민중적 투쟁이요 도전이며 자기 뜻을 관철하여 꿋꿋이 역사를 관철하는 역사의 담지자, 민중의 모습이다.

이미 위에서 그가 얍복 강에서 신과의 투쟁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획득했는데, 이 마지막 시기에 또다시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명명을 재확인합니다. 그것으로써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는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을 재확인하며 그것은 동시에 앞으로 형성될 이스라엘 민족의 뿌리와 그 성격을 극명하게 밝히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리하여 아브라함으로 시작되어 이삭―야곱―요셉―에브라임이라는 맥이 이어지는데 이 맥을 끝끝내 일관시킨 것은 너무나도 민중적인, 야곱적인 투쟁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이런 민중의 인습에서 탈출의 길을 인정하고 축복해 주었다는 고백으로 창세기를 마무리합니다.


| 성서의 맥 1 |
구원에 이르는 길
(한국신학연구소)
List of Articles
표지
 
제1부 절망 속의 희망
실락원 (창세 2-3장)
종주권과 민중의 투쟁 (창세 4, 1-16)
카인의 후예 (창세 4, 1-26)
아브라함과 종주권 (창세 16, 3-12)
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창세 25, 19-24)
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탈-향(脫-向)의 인간사 (창세 12, 1.7)
절망 속의 희망 (창세 22, 1-13)
   
제2부 지성소
바벨탑 (창세 11, 1-9)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창세 18, 22-33)
지성소(至聖所) (출애 3, 5)
나는 나다 (출애 3, 13-15)
탈향(脫向)의 기수 (출애 3, 7-10)
지평선 너머 (신명 32, 48-52)
   
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고대 이스라엘 종족 동맹 (사사 5, 1-8)
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믿음의 조상 (히브 11, 17-19)
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제4부 남은자의 믿음
다윗 왕권의 죄 (삼상 8, 4-18)
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바알 (열상 19, 18)
남은 칠천 명 (19, 7-18)
민중의 손으로 통일되는 날 (아모 9, 11-15)
겨울은 가고 (에제 37장)
에제키엘이 무등산에서 절규한다 (에제 24, 6-8)
포로에서의 탈출 (이사 66, 1-8)
위정자와의 대결 (이사 7, 10-14)
   
제5부 새로운 존재
일상성과 비일상성 (루가 10, 38-42)
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창세 3, 1-10)
새로운 인간상 (창세 12, 1-9)
믿음의 조상 (창세 22, 17-18)
두 사이 에 손을 얹을 판결자 (욥기 9, 25-35)
하느님으로부터의 도피 (시편 139편)
하느님의 웃음 (시편 2편)
잠과 신앙 (시편 127편)
교회란 무엇인가 (로마 8, 9-30)
인간을 말한다 (마르 12, 28-34)
존재 근거 (시편 42편)
우주의 품으로 (시편 8,3 이하)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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