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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의 맥 1 |
구원에 이르는 길
(한국신학연구소)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1

20세기의 사건 중에 가장 큰 것을 말하라면 역시 '이스라엘 국가의 재건'이라고 할 것이다. 그들이 점령 세력 아래에서 조공을 바치던 때를 빼고는, 그것마저도 박탈되어 국가형성의 3대 요소라는 '국토', '주권' 그리고 '민족' 중에서 두 가지를 깡그리 잃어버리고 세계에 영원한 목적지 없이 순례자의 길을 떠난 것이 주후 70년인데 제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 국가를 세웠으니, 2천년 썩은 고목에 꽃이 핀 것 같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저들에게 그 명맥을 이어오게 했을까? 우리는 단순히 신앙이라고 하는 모범답안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어떤 신앙?

구약은 곧 이스라엘 민족사와 그들의 신앙이 하나로 엮어진 것이다. 그런데 구약에서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민족사적 고백이다. 그 고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어느 것이 가장 낡은 것인가를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신명기 26장 5-9절이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 앞에 아래와 같이 아뢰어야 한다. '제 선조는 떠돌며 사는 아람인이었습니다. 그는 얼마 안되는 사람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거기에 몸붙여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불어나 크고 강대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우리를 억누르고 괴롭혔습니다. 우리를 사정없이 부렸습니다. 우리가 우리 선조들의 하느님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는 우리의 아우성을 들으시고 우리가 억눌려 고생하며 착취당하는 것을 굽어 살피셨습니다. 팔을 뻗으시어 온갖 표적과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모두 두려워 떨게 하시고는 우리를 이집트에서 구출해 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이 곳으로 데려오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원로들이 그들 자손에게 대대로 일러주어 암송하게 할만큼 된 민족사적 고백으로서 아마 초기 단계에는 개별적으로, 사적으로 하다가 마침내는 민족적 축제, 특히 감사절에서 필히 이것을 낭독 또는 교독 등으로 전승하게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저들은 하늘에서 허공에 떨어져 현재하는 시간과 공간에 정착된 것이 아니라 오늘이 있기까지의 어젯날, 즉 그들이 선 뿌리, 그들을 이끈 역사적이요, 원초적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런 기본적 고백이 어떤 때, 누구에게 전승됐는지는 뚜렷하게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서 그 예를 다 들 수는 없고 단지 몇 가지만 소개한다. 신명기 6장 20-24절에는 "이집트부터 만일 후손이 하느님께 받은 훈령과 규정과 법령이 웬 것이냐고 묻거든"(신명 6, 20)이라고 하면서 그 시기와 대상을 알려준다. 또한 여호수아 24장 2-13절은 아브라함으로 소급하여 역사를 기술하면서 "장로, 어른, 법관, 공무원들을 모아놓고"(여호 24, 1)라고 함으로써, 즉 지도층이 타락하고 제 할 일을 잊었을 때 이 민족적 고백을 다시 함께 읽으라고 했다. 거기는 훨씬 사적(史的)으로 자세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민족사적 고백은 시편에 네 번(78; 105; 106; 136)이나 나오는데 그 중 둘(78; 136)은 민족사적으로 베푼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를 잊고 방종하는 민중에게 창세기, 이집트 탈출에서 시작하여 민족사적 구원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훈계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즉 첫 마디는 이렇다.

"내 겨레여 나의 가르침을 들어라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역사에서 교훈을 뽑아내며
그 숨은 뜻을 밝혀주리라 …"(시편 78편).

여기서는 이집트부터 광야까지 출애굽의 민족사를 약술하고 있다. 한편 136편은 이 민족사적 고백이 제사의식의 내용으로 되어 있고, 사회자와 참여자의 화답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교독이 아니며 창세기의 족장이야기부터 출애굽을 기술하고 있다.

사회 : 어지신 분 야훼께 감사노래 불러라.
회중 : 그의 사랑 영원하도다.
사회 : 이집트인들의 맏아들을 치셨도다.
회중 : 그의 사랑 영원하도다.
사회 : 우리를 원수들 손에서 빼내 주셨다.
회중 : 그의 사랑 영원하도다(시편 136).

이상과 같이 그 시대적 정황에 따라 약간의 바이브레이션이 있으나 기본적인 민족사적 주제를 간결하게 만들어서 대대로 전함으로써 그들은 역사의식 속에서 민족형성을 했고, 또 그 민족적 신앙의 기반을 잡아왔던 것이다.

2

이상의 이스라엘의 고백을 보면서 중요한 다음 몇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은 종교적 민족으로 유명한데 그들의 신앙은 비시간적, 비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족사 속에서 고백됐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들의 신은 초월적이기는 하지만 역사적 또는 민족공동체와 더불어 현존하는 신이었다.

둘째, 그들의 민족형성의 본격적 출발은 탈출(Exodus)로써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탈출이란 무엇에서 무엇에로가 분명한 경우에 가능하다.

셋째, 이들의 민족형성의 동기요, 모체는 고난이었다. 이집트에서 "억눌리고 괴로움을 당하고 착취를 당했다"가 민족형성의 시발점이다. 출애굽기에는 하느님이 모세에게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들은 광야 40년의 고난생활이 그 민족형성에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여 마침내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저들은 모두 "우리의 하느님 야훼의 억센 손과 팔로 된 것이라"는 확고한 신앙을 반복하며 그것이 그들의 민족형성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3

이제 우리는 59번째 31운동을 맞이하였다.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우리가 우리의 민족사적 고백을 한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과제다. 그러나 31운동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가(史家)에 의하면 교회 있는 곳에서 궐기 안한 데는 없는데 순전히 총독부 발표에서 피검자 19,525명 중 17.7%인 2,190명이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교인 수로 보아 압도적 다수가 운동의 전선에 섰던 것은 분명하다. 천도교에 최우선권을 주어도 11.7% 뿐이고, 불교 유교도 각각 1.1%, 1.8%뿐이다.

그런데 피검된 전체에서 문맹이 31.4%고, 서당이나 다녀 한문학을 아는 자가 19.2%이니 반수 이상이 무식한 대중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교도 대부분 이런 민중이었으리라.

31운동은 33인이 한 것이 아니며, 또 그들의 독립선언서가 민중들에게 잘 이해된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31운동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민중적 봉기이다. 이 민중! 자기 조국의 지도층에 절망하고 서구에서 온 새 종교에 열광하던 이 민중! 그래서 외국인 선교사들을 하느님 다음처럼 받들었던 그들! 그런데 그들은 절대로 지배층의 꼭두각시도 아니었고 또 선교사와는 이 점에서 정면으로 맞선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클라크(Clark)의 『한국교회사』에는 "1910년대에 선교사들은 교회와 정치문제에 관련을 맺는 것을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 불법한 행동에 그리스도교인들이 관여하지 않도록 힘썼다"고 했다. 또 선교사들이 총독에게 보낸 글이 있는데, 그것에는 "기독교가 반란 선동의 소굴이라고 지정된 감을 주는 것은 선교사로서 선교상 다대한 이해관계가 있다. 우리 교회 일원 및 교사에게 권세에 복종함을 가르치고 교회는 정치운동에 관여함을 허락치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그 전인 1901년의 장로회 합의회의 의결에 "교회는 성신의 붙인 교회요 나라 일을 보는 교회는 아닌데 … 예배당이나 회당사랑이나 교회 회당은 교회 일을 위하여 쓸 집이오. 나라 일 의논하는 집은 아니오… 누구든지 교인이 뒤에서 다른 데서 공론하지 못할 나라 일을 목사의 사랑에서는 더욱 못할 것이오"라는 것이 있음을 보아 일면 모든 그리스도 민중이 민족적 울분에 끓고 있었고, 반면 선교사들은 정교분리를 절대 고수한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예는 무수하다. 선교사들은 대부분 교회 민중을 한말이나 일제시대의 역사 현실에 눈이 어둡도록 이끌어 왔다.


| 성서의 맥 1 |
구원에 이르는 길
(한국신학연구소)
List of Articles
표지
 
제1부 절망 속의 희망
실락원 (창세 2-3장)
종주권과 민중의 투쟁 (창세 4, 1-16)
카인의 후예 (창세 4, 1-26)
아브라함과 종주권 (창세 16, 3-12)
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창세 25, 19-24)
야곱의 후예와 종주권 (창세 37, 1-11)
탈-향(脫-向)의 인간사 (창세 12, 1.7)
절망 속의 희망 (창세 22, 1-13)
   
제2부 지성소
바벨탑 (창세 11, 1-9)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창세 18, 22-33)
지성소(至聖所) (출애 3, 5)
나는 나다 (출애 3, 13-15)
탈향(脫向)의 기수 (출애 3, 7-10)
지평선 너머 (신명 32, 48-52)
   
제3부 최후의 소원
역사의 행렬 (신명 32, 48-52)
고대 이스라엘 종족 동맹 (사사 5, 1-8)
신앙고백과 역사 (신명 26, 5-9)
최후의 소원 (판관 16, 28-31)
믿음의 조상 (히브 11, 17-19)
히브리적 비극 (욥기, 23, 1-9)
민족사적 고백 (신명 26, 5-9)
   
제4부 남은자의 믿음
다윗 왕권의 죄 (삼상 8, 4-18)
불의의 온상 (삼상 12, 7-14)
절대 권력은 절대 악이다 (열상 11, 1-13)
바알 세력과의 투쟁 (열상 18, 17-24)
바알 (열상 19, 18)
남은 칠천 명 (19, 7-18)
민중의 손으로 통일되는 날 (아모 9, 11-15)
겨울은 가고 (에제 37장)
에제키엘이 무등산에서 절규한다 (에제 24, 6-8)
포로에서의 탈출 (이사 66, 1-8)
위정자와의 대결 (이사 7, 10-14)
   
제5부 새로운 존재
일상성과 비일상성 (루가 10, 38-42)
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창세 3, 1-10)
새로운 인간상 (창세 12, 1-9)
믿음의 조상 (창세 22, 17-18)
두 사이 에 손을 얹을 판결자 (욥기 9, 25-35)
하느님으로부터의 도피 (시편 139편)
하느님의 웃음 (시편 2편)
잠과 신앙 (시편 127편)
교회란 무엇인가 (로마 8, 9-30)
인간을 말한다 (마르 12, 28-34)
존재 근거 (시편 42편)
우주의 품으로 (시편 8,3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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