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복음에서 말한 '예복'은 무엇일까? 전혀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해석자가 전가의 보도로 삼는 데 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텃세를 하면서도, 기득권 독점을 꾀하면서도, 방해자에게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추방ᆞ파면하고 생명까지 빼앗을 수 있었다. 바로 '교권'이라는 것이 이것을 십분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마태오에 전승될 때만 해도 교회가 세상에서 생사권을 행사할 만큼 강력한 세력이 아니었다. 외부와의 관련에서는 물론이고, 내부로 향한 교권도 뚜렷하게 확립되지 않았다. 이미 바울로의 편지에서 '사도권' 주장이 등장한 것을 볼 수 있으나 마태오와 비슷한 시기에 씌어진 루가복음에서는 예수의 직계제자가 아닌 이를 '사도'라고 부른 예가 두세 차례 있는 것으로 보아, 마르코와 비교하면 사도권 수호의 흔적이 뚜렷함에도 불구숭)고 권력행사를 할 만한 교권은 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예복'은 수세적 입장에서 자기 정비를 위한 보도(寶刀)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무나 와도 좋소!'라는 무조건적 개방성을 감당하기에는 교회는 너무 약했을 것이다. 초기에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을 얻는 것이 그렇게 소중했을 것이다. 그때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은 다 오라"(마태 11, 28)는 말씀이 그대로 교회의 말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가 민중에게 뿌리를 내리고 따라서 그들이 교회 안에서 큰 비중을 가지게 되자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되고 나아가서 교회를 이끌어 가는 충에게는 교회를 '지킨다'는 생각이 대두하게 되었다. 그들은 다음의 몇 가지 문제에 봉착했으며, 이에 대해서 어떤 '조치'를 내려야만 했다.
첫째는 그리스도인의 규정이 문제가 되었다. 즉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느냐 하는 한계설정의 문제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다." 그런데 그는 교회공동체안 '우리'에 소속하기를 거부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두 가지 입장이 맞섰다. 하나는 그런 권한행사는 박탈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한 그를 제동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양하는 것이라는 결론에서 결국 후자로 낙착됐다(마르 9, 38~40). 그런데 교회질서에 크게 비중을 두는 마태오복음에서 바로 이 문단이 누락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되면 교회의 권위가 추락된다는 기우 때문이다. 즉 마태오의 문제 제기는 처음부터 '누가 그리스도인답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를 따르느냐, 아니냐'가 문제였다.
둘째는 교회 안의 질서문제이다. '아무나 와도 좋소!'라고 해서 어중이떠중이 모두 모여들었고, 그들 가운데는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이 생겨났다. 이런 마당에서는 어떤 윤리나 종교적 조건 없이 이른바 죄인들의 편에 섰던 예수의 입장을 관철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곧 이방인에 관한 문제, 그리고 애찬 참여도 문제되었다. 결국 이방인문제로 오랜 진동을 겪었으며, 애찬은 새크러먼트(sacrament, 성례전)화되었다.
셋째는 이것도 내적 질서 문제인데, 교회공동체내의 일을 분담함에 따라 위계질서를 형성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바울로는 여러 직능을 첫째, 둘째로 나열했는가 하면, 마태오는 믿음도 적고 큰 것 또 한 많고 적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끝으로 "아무나 와도 좋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등의 활짝 열린 말씀은 그것을 전승하는 교회에 그대로 둘 수 없는 교란자가 생길 때문제가 되었다. 그런 경우에 '예복' 요구와 더불어 '성령을 모독하는 죄'가 적용되었다.
공동체가 크고 연륜이 깊어질수록 문제는 복잡해지고, 계속 계율 이 많아지고, 그 계율의 성격은 준엄해진다. 그 여러 계율들이 말씀에 근거를 두기 위해서는 그 말씀들이 원래 계율성을 지닌 것이 아닌데도 점차 계율화하고, 그렇게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데에 '예복'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바로 '예복'이라는 말은 추상적인 것이기에 해석자의 재량의 폭도 컸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해석자가 누군가? 그것이 바로 교권이다. 그러나 이른바 교권확립은 성서의 민중언어적 성격을 제동 내지는 토막낸다. 교권은 개방적인 복음을 점점 축소시켜 마침내 모든 것을 율법화해버린다. 그리스도교가 세상의 큰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성서는 종교 재판소의 법전으로 아용되어 이단 색출, 출교, 파면, 나아가서는 사형까지할 수 있는 권리의 뒷받침이 되었다. 그런 방향으로 치달은 결과는 성서해석권자를 '법왕'이라고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강권—예복을 안 입었다고 매도하는—이 현금 신학계에서도 거침없이 요구되고 있는 게 문제이다. '민중신학'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민중에 관심하고 그 시각에서 성서를 다시 보고 교회사도 다시 읽은 결과를 부분적으로 발표한 것인데, 국내에서보다 국외에서 더 호응하므로 '민중신학'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그러한 논꾼 듭을 모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신학연구위원회에서 펴낸 첫 책을 '민중신학'이라고 부르지 않고 『민중과 한국신학』이라고 제호했다. 까닭은 아직 '민중신학'이라고 부르기에는 할 말을 다 한 것이 아니며 그렇게 내놓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민중에 관심하는 신학자들은 말의 운을 멘 것 일뿐 이야기는 이제부터라는 자세를 갖고 있다. 사실 민중신학 운운하는 이들은 어떤 자부심보다는 부끄러움을 앞세운다. 까닭은 이미 역사학, 문학 등에서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시각에서 많은 업적을 세상에 내놓기 시작한 지 오래인데 이제서야 이렇게 뒤늦게 민중의 소리에 귀기울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겨우 운을 뗀 마당에, 한편에서는 서둘러 결론을 내려버리고 마구 칼질하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돌출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민중신학을 '폭력신학'이라고 단정하는가 하면―그런 구체적인 문제의 근처에도 안 갔는데, 어떤 이는 그것은 신학이 아니고 신학의 탈을 쓰고 다른 목적을 이루려는 선동이라고 했단다. 이 소리의 임자는 아마 신학을 옛날 궤 같은 데에 가두어 둘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자신이 수문장이라도 된 것으로 아는 모양이다. 그렇게 함부로 칼을 휘두르면 피차 상할 뿐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해묵은 군중우매론을 내세우면서 민중신학을 반대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어떤 이는 민중신학이 개척한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신학은 Theo-logie인데 logie로서는 납득이 가지만 Theo가 그 대상에서 제외된 게 아니냐는 이유있는 걱정을 한다. 그런대 그것은 서구 신학자들의 언어를 동원하고 그 시각에서 민중신학의 소재를 묻는 데서부터 이야기가 잘못되어 버린다. 한마디로 하면 모두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호통이거나 안 입었다고 내쫓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만찬회가 진행되기도 전에 중단시키려는 행태처럼 보인다.
우리는 신물이 날 정도로 서구인들이 제기한 문제를 자기문제인 양 거론했고, 또 그들이 만들어준 대답을 배워서 앵무새처럼 반복해 왔다. 몸에 맞지도 않고 필요도 없는 서구의 예복으로 몸을 가려오던 입장에서, 이제는 우리 자신을 살려는 노력이 바로 민중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운을 뗀 것인데 왜 '예복'을 다시 강요하는 것일까?
민중신학은 민중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아니, 민중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민중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또 민중으로 하여금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게 하자는 것이 민중신학의 자세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이라고 규정하면 민중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삶과 더불어 있다. 그러니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삶이 있는 한 끝없이 계속할 수도 있다. 따라서 민중신학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논리를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쉽게 결론(판단)짓지 말고 개방된 상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배곯은 이야기, 억울한 이야기, 한 맺힌 이야기, 슬기로운 이야기!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드시 밥 달라는 이야기, 원수 갚아달라는 이야기로만 들으라는 것이 아니다. 아니, 그 이야기가 언젠지 모르게 우리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 속에 '천사의 루머'가 들리고, 죽은 그가 살았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이다.
민중신학은 저들을 이야기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하게 눌러두면 그것이 독이 되며 그 농도가 지나치면 폭발한다. 그런 고로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해야 한다. 이야기하게 하는 길에 선행되는 것은 들어주는 귀를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이야기가 '강같이 흐르고' '태풍같이 불어나' 저들을 깔보던 자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범죄자인지를 깨닫게 해야 한다. 그게 회개운동이 아닌가! 마치 예수를 죽이던 이야기를 백, 천, 만 입이 계속 반복하므로 예수가 그리스도 되는 획기적 사건과 더불어 로마제국이 갈릴래아 민중에 굴복했듯이!
■ 『신학사상』 제38집, 1982년 가을호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