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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5 |
민중과 성서
(한길사)
4. 우리의 선택

예수의 청중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었다.

하나는 그 시대의 소외자들이다. 저들은 물질적인 빈곤, 종교세계와의 차단에서 온 고독, 그 사회구조 안에서 설 자리를 잃은 데서 오는 불안에서 그날 그날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저들은 '지금'에서 가난하다. 이러한 저들을 살게 하는 것은 희망이다.

저들은 미래에서 현재를 산다. 저들은 그 미래에 자기를 개방하고 있다. 그러나 그 미래는 그 손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미래를 향해서 여전히 가난하다. 그러나 가난하기 때문에 그것을 향해서 동경(희망)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에 설 자리가 없어 굶주리고 멸시와 박해를 받았다.

따라서 저들의 가난은 물질만도, 정신만도 아니다. 아니, 존재적 가난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난함을 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가난을 피하지 않고 그 처지를 운명처럼 성실하게 인정하고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희망이 있다면 오직 주어질 순수한 새 가능성뿐이다. 그들이 바로 예수를 만난 세리, 창기, 그 시대가 규정한 죄인들이다. 저들이 바로 가난한 자들이며 저들에게 하느님의 나라가 약속되었다.

이에 반해서 순수한 새로운 미래를 필요로하지 않는 부류가 있었다. 그들은 그 미래에 대해서 자기를 차단했다. 까닭은 저들은 '지금'에서 충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그 사회구조의 중심부에 있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나 지위로나 그리고 종교에 있어서까지 모든 것을 장악한 지도자들로 포만 상태에 있으며, 그삶의 보장을 완전 구축했다고 생각한 자들이다. 그래서 순수한 새것에 대해서는 차단적이고, '지금'에 대해서 보수적이었다. 까닭은 새것은, 그 미래는 현재와는 다를 것이고, 그 미래가 오면 자신들의 손아귀 안에 있는 지금의 가치, 질서, 거기에서 획득한 보장이 무너지겠기 때문이다. 비록 저들이 미래를 종교적으로 말해도 지금보다 나은 미래, 즉 지금의 특권을 인정하고, 그 특권에 더해주는 그런 미래일 뿐이다.

저들은 예수에게 반항했다. 까닭은 예수가 저들의 이 모든 부를 근본적으로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당시 유다 사회의 주도권을 잡은 종교적 지도군상들이었다. 이들이 바로 부유한 자들이며, 이들에게 장차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누가 부자이고 가난한 자인가는 오고 있는 미래를 향해 개방적이냐 차단적이냐에서 폭로된다.

그러면 오늘에 사는 우리에게 이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선 이 말씀은 그들의 세계의 방향을 심판한다. 빈곤에 허덕이는 개인이나 국가에게 이 말씀은 축복의 약속일 수 있다. 그러나 빈곤에서의 탈출을 궁극적인 구원의 길처럼 생각하는 한 그들은 이 축복의 뜻을 알 수 없으며, 이 말씀은 전혀 무의미하게 들릴 것이다.

우리나라 같은 후진국에서는 늘 '근대화'라는 말과 '국민소득을 높인다'는 것을 일치시킨다. 그 목표는 선진국과의 경제적인 격차를 좁히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많이', '보다 더'의 서구 자본주의의 생활철학을 신조처럼 답습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가난한 자에게 화가 있고, 부요한 자에게 복이 있다"가 진리처럼 들리게 된다.

그러나 '보다 더 많이'란 욕심을 근간으로 하여 보다 더 많이 가진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저들은 '보다 더'의 생활 신조로 오늘과 같은 기술공업의 사회를 이루어놓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른바 과잉생산이라는 현실, 말하자면 너무 풍요한 상태에 돌 입했다. 그러나 기업주들은 '보다 더' 벌기 위해, 아니 기계를 계속 들려야 하기 때문에 계속 생산해내야 하며, 그 생산품을 팔기 위해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저들은 세계 약소민족이나 어떤 계층을 흥정의 미끼로 삼는 것까지 불사하므로 언제나 세계 평화와 정의를 짓밟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들은 그 목적을 위해 인간의 물질적 욕심을 온갖 수단으로 자극한다. "보다 많이, 보다 편리하게 살아야 사람이다", "소비는 미덕이다"라는 선풍을 일으켜 소비자를 유혹한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경쟁의 풍조에 휩쓸린 인간들은 비록 소득이 높아져도 그 소비성의 태풍을 앞지르지는 못한다. 그래서 '소득의 증대'란 숫자상의 마술일 뿐이고, 사실은 생산자들의 상품을 팔아주기 위해 모든 것을 다시 내주고 그 생산품은 계속 폐품으로 내버려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점점 더 바빠만 지고, 생활고는 시지푸스 신화의 바위처럼 인간을 억누르고 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은 완전히 돈을 위한, 돈에 의해 사는 이른바 경제동물이 되므로 자기존재는 메말라만 간다.

그렇다고 세상이 결코 복지사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보다 더'의 경쟁에서는 언제나 자본가가 커져 독주할 수밖에 없기 마련이다. 따라서 날이 갈수록 빈부의 격차는 커져만 가고 사회정의는 그 균형을 잃게 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인류는 이른바 생태학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보다 더'의 생활도구인 공장과 기계는 인간의 집인 이 자연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부요함에서 배설된 폐물과 오물 들은 사람이 있을 자리를 점령하며, 사람에게서 대기와 물을 약탈해 간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인류멸종의 위기를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가진 자는 '보다 더'의 궤도에서 빠져나올 수도 없고, 정지할 수도 없다. 말하자면 '보다 더'의 역사는 사람을 '빵으로만'이라는 순수 동물적 인간으로 휘몰았으며, 이제 많이 가졌기 때문에 오는 위기 앞에, 불안 속으로 인류를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부요한 자들은 받을 위안을 지금의 사회구조에서 향유하기 때문에 문제를 여전히 보다더 많이 가지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며, 지금의 사회구조를 끝내 사수하려고 한다. 이런 자들은 이 말씀 앞에 심판을 받아야 한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가난한 자란 우선 자기의 가난함을 아는 자이다. 그는 가난함을 알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필요로하고 동경한다. 그러나 그것은 욕심이 아니다. '보다 더' 가져 거기서 삶의 보장을 찾자는 것이 아니다. 그 존재성의 가난을 알기 때문에 '무엇으로'보다 '왜' 사느냐의 대답이 없어서 가난하다. 그들도 배가 고프면 빵이 필요하다. 그러나 저들이 빵을 구함은 보다 더 많은 빵을 찾아 거기서 삶의 보장을 찾는 것이 아니다. 저들은 '위해서'의 삶을 위해 여전히 가난하다.

서구의 일부 청년들은 그들 사회의 물질과 문화의 부요함을 향유할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의 사회구조의 쇠사슬을 끊고 뛰쳐나왔다. 그들은 먹기 위해 사는 세계가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 세계를 그리워한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wozu) 가난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가난함을 알기 때문에 새것, 새 세계, 새 존재를 동경한다. 그들의 이러한 희망에는 어떤 설계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자기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이 시대에 설 자리가 없는 것을 알 뿐이다. 그래서 저들은 미지의 본향을 찾는다. 저들이 그 세계를 스스로 의식하고 있는지는 별 문제이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약속된 미래가 있다. 저들은 적어도 이미 대답을 가지고 있는 듯이 현재에서 안일한 삶을 누리는 종교인보다는 가난하다.

가난한 자는 기다리는 자이다. 그래서 이제 올 미래에 전 존재를 개방한다. 그들의 기다림은 무엇 때문에 바빠야 하며,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다. 그들은 이 대답을 자기 안에 갖고 있지 않으며, 또 오늘의 사회구조를 형성한 가치체계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지 않기에 미래를 기다린다. 그러나 동시에 그 희망 자체가 바로 그 대답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 기다림에서 산다. 이 미래를 위해서 바쁘게 일하고 있다.

따라서 가난한 자는 이 시대에 도전한다. 까닭은 이 시대의 사회구 조가 거짓된 삶의 보장을 약속하며 '절대'로써 군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도전하는 한, 이 세계가 주는 권리에 도전하는 한, 이 세계가 주는 권리에서 소외된다. 그래서 저들은 여전히 '지금' 가난하다.

바로 이러한 사람에게 미래의 축복이 약속됐다. 즉 그들은 미래(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하게 되리라고 한다.

 

■ 『현존』 1971년 8월호에 수록.


| 안병무전집5 |
민중과 성서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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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예수의 민중사건 : 『민중과 성서』를 내면서
   
제1부 복음서와 민중
   
예수와 민중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전제
    2. 마르코복음 안의 오클로스
    3. 마르코복음에 나타난 오클로스의 성격
        1) 오클로스의 성격
        2) 오클로스에 대한 예수의 행태
        3) 종합
    4. 예수를 따른 자들
    5. 마르코복음 안에 있는 어록
    6. 오클로스의 언어학적 의미
        1) 라오스와 오클로스
        2) 오클로스와 암 하 아레츠
    7. 종합
마르코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
    1. 전제
    2. 마르코의 삶의 자리
    3. 마르코의 민중신학의 기조
        1)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14a절)
        2) 갈릴래아로 가다
        3) 하느님 나라의 도래 선포
    4. 민중의 행태
예수사건의 전승 모체
    1. 문제 제기
    2. 케리그마의 성격
        1) 고린토전서 15장 3~8절
        2) 필립비서 2장 6~11절
        3) 사도행전에 나타난 케리그마
    3. 민중언어의 성격
    4. 수난사
    5. 예수의 행태 일반
        1) 기적 이야기와 예수의 행태
        2) 아포프테그마와 예수의 행태
        3) 로기온(Logion, 어록)과 예수의 행태
    6. 결론
가난한 자 : 루가의 민중 이해
    1. 가난한 자
        1) 통계적 고찰
        2) 루가의 특수자료
        3) 예수의 탄생설화와 나자렛 선언
        4) 마르코와 Q자료
    2. 루가복음서의 청중
    3. 결론
마태오의 민중적 민족주의
    1. 문제 제기
        1) 마태오의 신학적 주제에 대한 논의들
        2) 문제 제기
    2. 마태오가 처한 현실
        1) 마태오와 그의 시기
        2) 민족적 와해 위기
    3. 마태오의 현실인식
        1) 이스라엘 : 길 잃은 양들
        2) 길 잃은 양이 놓여 있는 현실
    4. 민족동일성 재확립
        1) 뿌리 찾기
        2) 바리사이파가 주도하는 라삐 유다교와의 대결
    5. 마태오의 민중 이해
        1) 언어적 성격
        2) 의식화된 민중
    6. 맺는 말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 : 마르코복음을 중심으로
    1. 예수사건의 재발견
    2. 마르코복음과 민중
    3. 민중은 수단이 아니다
    4. 민중은 객체일 수 없다
    5. 십자가는 민중수난의 극치다
민중신학의 어제와 오늘
    1. 독재와 대항하므로
    2. 민중을 만나므로
    3. 민중과 더불어
   
제2부 민중운동사
   
민중사건과 언어사건
    1. 성서에서 본 말의 성격
        1) 그 말의 현장은 어떤 것이었나
        2) 예수의 경우
        3) 예수사건에 관한 전승
        4) 오순절의 말 사건
    2. 무엇으로 말하는 것인가
    3.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4. 우리가 해야 할 말
미래는 가난한 자의 것 : 루가 6장 20~26절
    1. 축복과 저주
    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3. ‘지금’과 ‘장차’
    4. 우리의 선택
나라가 임하옵소서
    1. 예수의 기도
    2. 그의 기도를 전달받은 자들
    3. 하느님의 나라
고향 잃은 민중
    1. 피난민
    2. 성서에서 본 피난민문제
    3. 게르(GER) 문제 해결의 시도
    4. 이방인에 대한 관용의 한계
    5. 당면한 과제
        1 ) 새로운 인식을 위한 운동
        2)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제언
이스라엘 민중사
    1. 머리말
    2. 출애굽
    3. 고대 이스라엘 종족동맹
    4. 민중을 배반하고 세워진 왕권
    5. 분단시대의 고난
    6. 민중운동의 여러 계열
    7. 예수의 민중운동
    8. 맺는 말
   
제3부 민중과 체제
   
민중사실의 증언
    1. 민중신학의 전제들
    2. 민중사실의 증언
고난과 고백
    1. 수난자와의 일치
    2. 마르코의 민중
    3. 수난사와 고난
    4. 더불어의 고난
    5. 맺는 말
갈릴래아 민중에 항복한 바울로
    1. 바울로의 위치
    2.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3. 그리스도교 박해
    4. 예수를 만남
    5. 전향
    6. 맺는 말
소명(召命)
    1. 바울로의 소명
    2. 사도 됨과 소명
    3. 이방인에게로
바울로와 역사의 예수 I
    1. 머리말
    2. 예수에 대한 바울로의 말
    3. 예수냐 바울로냐
    4. 왜 예수가 아니고 케리그마인가
선택받은 민중: 고린토전서 1장 26~31절
    1. 고린토교회 구성원의 사회계층
    2. 공동체원의 가치 판단 기준
    3. 민중을 보는 눈
    4. 택함을 받은 민중
   
제4부 예수의 희망
   
하늘도 땅도 공(公)이다
    1. 낙원 이야기
    2. 아담一인간
    3. 실락원은 공을 사유화함으로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마르코 16장 1~8절
    1. 제3의 자리
    2. 갈릴래아
    3.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예수의 희망
    1. 새 세계에의 희망
    2. 희망과 세계혁명
    3. 바른 인간공동체의 희망
    4. 맺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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