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바울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바울로가 끼친 영향은 압도적이다. 바울로의 편지들이 씌어진 것은 대체로 A.D. 50~60년 사이이다. 복음서들이 씌어진 것이 대체로 A.D. 70~90년 전후인 것을 생각하면 그리스도교 안에서 그의 영향이 상당히 빨리 퍼져나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수의 직계제자들인 베드로를 위시한 어느 누구도 문서로 그들의 생각을 남긴 것이 없음을 생각하면 바울로의 위치는 특수하다. 신약 성서가 대체로 지금 모양으로 편집된 것은 A.D. 400년경인데 복음서들 외에 바울로의 편지들이 단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양도 단연 많다. 학계에서 바울로의 편지가 아니라고 판정된 글들도 많다. 에페소서, 골로사이서, 데살로니카후서, 디모테오전후서, 디도서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을 제2 바울로서신이라 한다. 그 내용으로 보거나 문장으로 보아서 바울로의 편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러나 바울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런데 이 필자들이 자기들의 이름을 감추고 바울로의 이름을 내세워 그가 쓴 것처럼 한 것에서 바울로의 비중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 수 있다.
교회사를 보면 복음서보다는 바울로의 편지들이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교권은 비록 복음서를 읽더라도 바울로의 편지들을 읽고 거기서 안경을 얻어 읽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바울로가 신약성서 전체를 이해하는 데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교리사는 거의 바울로에게 치중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로의 가르침이 교회를 주도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우리는 교회에 나가거나 안 나가거나 그리스도교를 생각하면 우선 바울로의 입장에 서게 된다. 우리 머릿속에 형성된 교리는 바울로적이다. 그러면 우리가 정말 바울로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울로가 비록 틀린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너무 좁고 그리고 한편으로 치우친 것은 아닌가? 특히 신교에서는 루터의 바울로 이해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꼭 루터의 방식대로만 해석되어야 하는가?
2천 년 전의 바울로를 2천 년 전으로 거슬러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우리의 '살림'과 동떨어진 것이 되고 말 수 있다. 그의 생각이 우리의 '살림'에 연결되려면 우리의 '살림' 속에서 그를 새롭게 풀이해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바울로의 시대와 오늘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힘이 미치는 한 그를 우리의 '살림' 속으로 끌어들이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정말 바울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로 생각했는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바울로는 무엇을 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