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으로 그의 전향과 관련해서 언급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가 전향한 시기이다. 그가 전향한 때는 빨라야 A.D. 31년이고 아무리 늦게 잡아도 A.D. 33년을 넘지 않는다. 그 어느 쪽이라도 좋다. 예수가 처형된 시기를 A.D. 30~31년으로 잡는 것이 일반적 견해인데, 그렇다면 바울로의 전향은 아무리 늦게 잡아도 예수가 처형된 지 2~3년 안에 일어난 사건이 된다. 이것은 충격적인 사실이다. 그때에는 예수의 적대자들, 방관자들, 그를 처형한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구경한 사람들, 그 자리를 도망친 사람들 할 것 없이 거의 다 생존했음에 틀림없는 시기이다. 바울로 자신도 예수 부활의 목격자가 대부분 살아 있다고 한다(고전 15, 6). 그리고 그때에는 예수의 출신, 활동에 대한 정보가 미화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짧은 기간에 어떻게 예수의 운동이 이처럼 강력하게 전개되어 곳곳에 공동체를 구성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짧은 기간에 역사의 인물인 예수가 예배의 대상인 '그리스도'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기적이란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적당한 말이 없다. 아직까지는 예수에 대한 전승이 제대로 수집되어 꼴이 갖추어졌을 리도 없었을 것이며, 예수의 공동체가 합리적으로 제도화되었을 까닭도 없다. 더군다나 예수의 처형과 더불어 낙담하고 도피했던 그 민중이 절망에서 헤어나기에도 짧은 기간임을 생각할 때 어떻게 저들이 대담하게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를 '대속의 그리스도'로 증거하며, 그것도 예수를 처형한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증거하기 시작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우리가 관심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사울이 그렇게 새로 출발한 미숙한 이 민중운동에 그처럼 빨리 굴복했다는 사실이다. 예수의 민중 중에 어느 누구도 이론을 가지고 바울로에게 맞설 만한 사람은 알려진 바 없다. 그렇다고 사회 신분적으로도 그와 어깨를 나란 히할 사람도 알려지지 않았다. 가령 예수운동의 중심 역할을 한 베드로는 일개 어부에 불과했다. 그런 무리가 어떻게 '율법적으로 흠 없는' 이 완전주의자를 굴복시켰는가! 우리는 그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사실들을 알 만한 자료를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의 민중이 이 완전주의자 바울로라는 엘리트를 굴복시켜 180°로 전향시킬 힘을 지닐 만큼 강력한 공동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
바울로는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은 사람에게서 온 것도 아니오, 사람을 통하여 온 것도 아니라고 한다(갈라 1, 1). 또한 그는 전향 이후에 사도들이 있는 예루살렘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고 한다(갈라 1, 16~17). 그러나 이런 말들은 전향과는 상관없다. 그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것은 사람들을 통해서 그리스도교의 주장을 들었기 때문이며, 그가 전향한 기준도 바로 그들에게서 들은 내용에 대한 결단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예수의 민중이 이 완전주의자를 굴복시키고 전향시킬 만큼 강력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예수의 민중의 위력 외에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하느님이 편드신 그 민중 외에!
■ 『살림』 제1호, 1988년 12월호에 수록.